정병조 동국대 교수

1. 신승(navaya?a) 불교의 역사적 의미

 1) 대승불교 전야의 사상적 추이

종교적 가치관으로서 세계지도를 분류할 때, 한국은 대승불교의 문화권에 속한다. 유럽은 주로 가톨릭, 미국은 개신교, 중동 및 아프리카는 이슬람으로 분류되는데, 아시아의 경우는 불교문화권이 압도적이다. 그 가운데 타일랜드·미얀마·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는 장로(長老)불교의 전통이 강한 데 비해, 한국·중국·일본 등 동아시아는 대승불교의 전통이 살아 있다. 실제로 이들 두 문화권의 차이는 현격하다.

그러나 대승불교의 많은 부분은 장로불교와 비교해서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교단체계였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다만 현재까지 학자들이 공감하는 점은 첫째 남인도, 특히 안드라(Andra)왕조가 지배하던 기원 전후가 그 시발이라는 점, 둘째 어느 특정한 인물이 대승불교를 주도했다기보다는 당시의 기성교단에 대한 반성이 자연스럽게 그룹을 형성했으리라는 점, 셋째 재가불교가 그 중심이었으며 아마도 불탑(佛塔)지 등에서 대승의 사상과 체계가 이루어졌으리라는 점 등이다.

그렇다면 대승운동의 초점은 무엇일까? 먼저 주목해야 할 점은 ‘수레(ya?a, 乘)’라는 개념이다. 근본불교나 부파불교 당시에는 이 ‘수레’의 개념이 없다. 《법화경》에 처음 ‘수레’라는 낱말이 등장하는데, 이때 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방편’으로 보려는 사상이 싹튼다. 회삼귀일(會三歸一)·일승(一乘) 사상 등의 밑바닥에는 부파불교 교단과의 차별화가 강력하게 시사되고 있다.

대중부·상좌부 등 부파교단에서는 부처님의 이상을 실현한다는 측면에서 출가의 중요성은 강조되었지만, 결코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 하는 방편상의 수레라는 개념은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대승불교는 이 수레의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소승 → 대승 → 일승이라는 자각을 심는다. 즉 혼자만의 안일을 소승적 태도로 못박고, 대승이야말로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이상적 수행 의지라고 주장한다.

일승의 경우에는 대승의 변증법적 이해이다. 다시 말해서 대승이 소승에 대한 반대개념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소승을 부정한 대승, 그 대승마저도 넘어선 경지에 대한 표현이다. 부파교단이 주로 대승불교의 공격 초점이었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이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인지 ‘경량부(經量部)’인지는 불분명하다. 대승불교가 문제 삼은 것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면이다.

    ① 불교교리의 왜곡 : 무아(無我)에 대한 이론적 근거가 박약하다고 생각한 당시의 불교도들은 법유아무(法有我無)를 내건다. 즉 진리로서의 부처님 선언은 아무(我無)로서 파악되지만, 진여 그 자체는 부정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승불교는 그에 대한 강력한 반발로서 공(空)을 내세우게 된다.

    ② 실천의지의 결핍 : 부파불교는 불교교리의 형이상학적 구성, 체계화 등 업적을 쌓았지만, 그 형식화에 머물고 만다. 즉 불교의 진리가 생동하는 삶의 현장 속에 점화되는 것이 아니라, 일부의 지식인층에 독점되는 우(愚)를 범하고 만다. 이것은 불교의 형해화(形骸化)이고 관념화이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는 자각적 실천인으로서 보디삿트바(Bodhisattva, 菩薩)를 내세우게 된다.

    ③ 일불(一佛) 신앙의 극복 : 역사적 인물이었던 석가모니에 대한 사모는 급기야 부처님 유일신앙을 낳게 된다. 다른 수행자들은 다만 아라한(阿羅漢)을 얻으려는 실제적 목표에 머문다. 부처님에 대한 보편적 이해가 사라지게 될 때, 부파교단은 이른바 절대신앙체계로 전락하고 만다. 대승불교에서는 다불(多佛)신앙을 표방한다. 한량없는 부처님들은 기실 우리들 마음의 권화(權化)라고 이해한다. 모든 생명들은 이 마음의 부처님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발전한다.

    ④ 출가 중심주의의 한계 : 출가인들의 염원이 아라한의 증득일 때, 재가신자들의 경우에는 생천(生天)의지로 집약된다. 즉 교단에 대한 헌신과 보시를 통해 하늘나라에 태어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이 주류를 이룬다. 출가와 재가 사이는 이중적 구조를 지니게 되며, 상하의 주종적 수직관계가 맺어진다. 대승불교에서는 이와 같은 형식이 불교의 수평적 사고를 변질시킨 근본원인이라고 파악한다. 따라서 중생과 부처가 하나라는 《반야심경》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이 그 해답으로 등장하게 된다.

    ⑤ 형식적 계율관에 대한 반발 : 부파교단은 오계(五戒)를 중심으로 발전한다. 더구나 그 계율의 형식적 준수 여부가 올바른 수행자를 가리는 수단이 된다. 그러나 마음의 행로를 중시하는 대승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계율을 세분화하고 공식화하는 것보다는 진심으로의 수긍과 실천이 더 중요하다. 이 형식적 계율관에 대한 대승적 응답이 삼취정계(三聚淨戒)이다. 특히 섭선법(攝善法)·섭중생(攝衆生)은 보다 적극적인 사회참여, 정의구현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대승불교의 도전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인도를 휩쓴다. 특히 용수(龍樹, Na?a?juna)의 등장은 대승사상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한다. 공과 반야의 이상은 대승불교의 중심개념이 되면서, 3세기 이후의 대승불교는 인도 대륙의 중심사상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2) 대승교단의 실체

대승교단이 실체로서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증명된다. 산치(Sanchi)의 대탑에는 B.C. 2세기경 대승과 소승 사원이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고 있었다. 또 초기의 구법승이었던 법현(法顯)을 비롯하여 현장(玄?), 혜초(慧超) 등의 기행문에는 대승과 소승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인도 현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막연하게 대승교단으로 말해지는 그 구체적 형태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부파의 교단들은 독자적인 성전(聖典), 운영조직, 규율, 경제기반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승교단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었는가? 우리는 그 단서를 불탑지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승교단은 불탑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이었으며, 경제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부파교단과는 차별화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대승불전에 무수히 등장하는 보살중(菩薩衆)이라는 표현이다.

그 산스크리트 원어는 보디삿트바가나(Bodhisattva-gan.a)로서 전통적 개념의 상가(Sam.gha)와는 구분되는 것이 주목된다(졸고, 〈文殊菩薩의 연구〉, 1988, 한국불교연구원, pp. 38∼39). 부처님의 입멸(入滅) 이후, 부파교단은 왕실이나 호부들의 귀의에 의해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다. 탁발을 원칙으로 하는 출가생활은 경제적 활동과 양립할 수 없었다.

그런데 기원전 2세기경에 이들 교단과는 무관한 조직으로 불탑지 등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아쇼카 대왕의 발원으로 시작된 이 불사(佛事)는 적어도 인도 전역에 이천 곳 이상의 대규모 불탑지로 완성된다. 자연히 이곳은 불교순례객들의 참배대상이 되며, 많은 보시물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나 불탑지는 왕이나 재산가들이 기성 교단에 기증하기 전에는 독자적인 운영체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대승불교의 초기사상가들은 순례를 통해 자신들의 이념을 확산하였고, 그 가운데 불탑지를 자연스럽게 그들의 근거로 삼았으리라고 본다. 그러면 보살가나의 생활은 어떻게 유지되었을까? 우선 주목할 점은 그들이 불교신자들의 보시를 ‘받는’ 입장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비구(比丘)라는 낱말은 빅수(bhiks.u), 즉 ‘걸식하는 이’라는 뜻이며, ‘보시를 받는 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재가신자를 뜻하는 우파사카(upa?aka)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원적으로는 ‘시종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교단에 ‘의식주약(衣食住藥)의 사사(四事)를 공양하는 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승교단에서는 보시를 베푸는 우바새와 공양을 받는 비구라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정립된다. 그러나 보살이라는 어휘 속에는 ‘보시를 받는 이’라는 뜻이 전혀 없다. 오히려 ‘보시를 베푸는 사람’이다. 따라서 보살가나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라는 이중의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권16에는 출가보살이 머무는 곳을 탑사(塔寺)와 아란야(阿蘭若)라고 말하고 있다. 탑사가 곧 불탑지를 가리키는 말이고, 아란야(Aran.ya)는 수도를 위한 한적한 암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아란야는 대승의 선법(禪法)을 닦는 곳이며, 탑사는 십사(十事) 등 각종 대승불교 의례를 집행하거나 교학을 연수하는 장소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십주비바사론》 권12에는 출가보살이 삼매를 닦을 때에 주의해야 할 점 60가지가 나열되어 있다. 그 가운데 대승교단의 실체를 알게 하는 몇몇 자료를 예시한다.

    ① 병든 이를 치료하려면… (16조)
    ② 이양(利養)을 탐내지 않는다(24조)
    ③ 두타공덕(頭陀功德)에 머물지 말 것이며(26조)
    ④ 화상·아사리(阿淞梨)에 공경심이 일어나도록(32조)
    ⑤ 법을 듣고 경전을 구송(口誦)하는 이 사람에게 부모의 상(想), 선지식의 상, 대사의 상이 일어나도록 하라.(36조) ⑥ 단월(檀越), 선지식중(善知識衆)을 탐하지 않는다.(39조)

①의 인용구는 당시의 탑사가 병을 요양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는 암시이다. ②와 ③은 보살가나 역시 두타행이나 만행 등 일반적인 출가생활에 의거했었다는 반증이다. ④의 인용구는 이 보살가나에도 지도자급의 훌륭한 인사들이 있어서, 그들에 의해 교단이 움직여진다는 뜻이다.

⑤, ⑥은 구체적으로 이들 보살가나에게는 신도, 즉 외호(外護) 그룹이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와 같은 자료들을 종합하면서 우리는 대승교단의 모습을 이렇게 그려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대승교단의 생활기반은 탑사와 아란야의 두 군데이다. 그들은 때에 따라 걸식을 하였고, 옷은 가사의(袈裟衣)였다. 보살가나에는 화상·아사리 등의 지도자가 있었으며 소승의 250계(戒)는 여전히 지켜지고 있었다.

그들은 탑사에서는 주로 병을 요양하거나 경전을 학습하였고, 아란야에서는 불보살 등 성중(聖衆)을 공양하거나 수능엄삼매(首楞嚴三昧)·반주삼매(般舟三昧) 등 삼매에 들어서 교법을 사유하는 훈련을 거듭하였다. 아마도 《십주비바사론》이 성립될 시기의 출가보살의 생활은 성문승가(聲聞僧伽)와 외형적으로 확연하게 구분되는 모습은 없었다고 보여진다. 이 점이 대승불교교단의 한계점이었다. 즉 내용은 달랐지만 형식은 같을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3) 대승불교의 사상적 반성

대승불교는 불교사상에 대한 재해석이었으며, 위대한 불교발전을 이룬 원동력이었다. 근본불교가 가진 철학적 조직력을 종교적 환희심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번쇄적 철학으로 일관하던 불교를 실천적 의지로 재구성하였다. 그래서 서양학자들은 대승불교의 이론적 완성자였던 용수보살을 기독교 역사의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예수와 바울은 90여 년의 시간 간격이 있었다. 더구나 예수는 신의 아들을 외쳤던 예언적 선각자였고, 바울은 그 가르침을 계승한 인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적 업적을 평가해 보면,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한다. 결과적이기는 하지만 예수는 자신이 바라던 바를 성취시키지 못하였다. 신국건설은 꿈으로 돌아갔고, 온갖 박해 끝에 참담하게 십자가에 못박혀 짧은 인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가 지배하는 전 유럽에 기독교의 메시지를 전했으며, 고난 속에서 교회를 건설하였다.

결국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을 완성시킨 인물은 바로 바울이다. 다소 어폐가 있지만 기독교의 역사에 있어서 바울은 예수보다 위대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대승불교가 바로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근본불교가 지닌 한계점을 극복하고, 원대한 세계관을 심음으로써 인도의 민족종교에 불과하던 불교를 세계종교로 키운 것이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몇 가지의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21세기에 적응하려는 불교사상에 여전히 부담으로 남아 있다.

대승불교에 대한 근본적 비판의 초점은 부처님에 대한 신앙의 결핍이다. 초기불교도들이 부처님 절대신앙에 빠진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부처님신앙을 희석화시켜 버렸다. 대승불교는 다불(多佛)을 표방하였기 때문에 법신으로서의 부처님이 다양한 인격으로 표상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서방정토의 교주이신 아미타불, 동방세계의 약사유리광불, 미래불로서의 미륵불, 연화장세계의 비로자나 부처님 등 다양한 부처님들이 형상화되었다. 그러나 다양성은 불교사상을 보편화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애매모호성 때문에 대중들의 혼란을 야기시킨 책임 또한 면할 길이 없다.

불교도로서 이 다불보살(多佛菩薩)에 대해 회의를 느껴보지 않은 이는 없을 줄 안다. 오랜 신앙생활을 했다는 이들도 헷갈리기 십상이다. 과거칠불은 무엇이며, 석가모니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나? 만약 부처님 한 분뿐이라면, 다른 불보살은 왜 필요할까? 대승불교는 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법신불의 상징이라는 관점에서 애매모호하게 불보살을 설명할 따름이다. 특히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고 선종이 일세를 풍미하면서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벽암록(碧岩錄)》에는 민망할 정도로 부처님에 대한 폄하언사가 반복된다. 부처란 무엇인가? “똥 막대기”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마(麻) 서 근” 혹은 “단번에 때려죽여 개에게나 줄 물건” 등 이루 다 열거하기 어려운 선언들이 줄을 잇는다. 이 부분만 떼어 놓고 보면 선불교는 마치 부처님 내려깎기 운동을 하는 종파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곳에는 단서가 붙는다. 개념화된 불교, 우상화된 불상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도 너무 심하다. 심지어는 여래선을 열등하다고 못박고 조사선(祖師禪)이 진정한 길이라고 강변한다. 이쯤 되면 이미 불교는 사라진다.

오직 조교(祖敎)만이 난무할 따름이다. 선종은 중국적 불교이지만, 대승불교의 정수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논리의 비약이 끝내 대승불교의 불타관(佛陀觀)을 혼돈 속에 몰아 넣는 근본요인이 된다. 한국불교의 경우에는 한 술 더 떠서 오방잡신이 다 불교의 탈을 쓰고 버젓이 등장한다. 칠성(七星)·산신(山神)·시왕(十王)·용·호랑이·코끼리 할 것 없이 모두 숭배의 대상이 된다. 엄밀하게 따지면 칠성신앙이나 산신숭배 등은 불교의 예배대상일 수 없다. 민간신앙이나 무속, 도교 등의 강한 영향을 입은 것으로 보여진다. 열등한 신앙을 흡수하고 조화로운 발전을 기한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으나, 불교의 순수 신앙이 망가진다는 면에서는 부정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대승불교는 순수 신앙 대신에 복잡하고 다양한 신앙 형태들을 모두 합리화시켜 버렸다. 성불이 대승불교의 목표라면, 당연히 그에 이르는 과정은 획일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도·참선·만행·보살행·정토신앙 등이 뒤섞여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한문글자가 다의성(多義性)이라는 긍정성과 함께 애매모호성이라는 부정성을 동시에 가진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중국·일본·한국, 가릴 것 없이 대승불교를 표방해온 나라들의 교단 운영 형식은 철저히 소승적이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머리를 깎고, 잿빛 옷을 걸치고, 육식과 결혼을 금하는 형식은 바로 소승교단이 가진 출가 중심적 교단의 한계가 아닌가. 그런데도 그 규율과 형식은 철저히 소승불교를 답습해온 데에 대승불교의 반성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2. 천년의 시발, 불교도 변해야 산다

1) 종교영역의 축소

오늘의 세계를 정보화로 규정짓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도 인류는 지금 엄청난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다. 그 까닭은 최근의 변화가 신속하고 격렬하다는 데에 있다. 십년 전만 해도 우리는 ‘삐삐’라는 호출기가 무엇인지 몰랐다.

핸드폰이라는 개념도 생소했다. 그러나 정보·통신의 눈부신 발달은 이제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 통일시켜 버렸다. 더구나 인터넷은 지상의 국경선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으며, 무궁무진한 사이버 세계의 변환은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정착되기까지 인류는 수천 년의 세월을 보내왔다. 산업화의 과정 또한 이백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재의 정보화는 불과 20여 년 만에 우리의 생활패턴을 바꾸어 버렸다. 그렇다면 이 엄청난 변혁의 근원은 무엇인가.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우리는 그것을 과학기술에 토대한 정보기술의 혁명이라고 본다. 동양이 서양에 비해 뒤떨어진 것은 바로 과학·기술 그리고 지적(知的) 모험심이다. 동양의 제도와 사상은 정적(情的) 구조를 가졌지만, 서양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철저한 이성적 기반을 갖는다. 합리와 논리는 끝내 정서를 앞세운 동양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도표로 적기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모습이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동서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의 초강국화는 세계의 질서를 변모시켰다. 미국의 질주가 언제까지 지속될는지는 알 수 없다. 문명의 진로로 보아 로마 → 유럽 → 미국 → 환태평양이라는 등식을 조심스럽게 그려 보지만, 현재로서는 그 시기를 단정짓기 어렵다. 이와 같은 균형의 파괴는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쳤지만, 가장 심각한 분야는 역시 종교분야이다. 금세기 최대의 이슈는 과연 종교가 인류의 가치관 속에 살아 남겠느냐 하는 의문이다. 종교의 영역이 축소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 무렵이었다.

과학의 발달은 기독교에 대한 정면도전이었고, 기독교의 몰락은 불교·이슬람·힌두교 등 다른 기성 종교에도 경종을 울리게 된다. 다윈의 진화론 이후 서구는 실증주의의 풍조에 휩싸인다. 사실 중심적이며 결과론적인 것만이 신빙성 있게 취급되었으며, 종교의 상징성과 신비성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 결과 고·중세 세계에서 종교가 누리던 영광은 그 자리를 과학과 기술로 대치하게 되었다.

종교가 갖던 세계관은 더 이상 설득력을 갖기 어렵게 되었다. 정신적 권위 또한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종교의 입지는 갈수록 좋아졌고, 오늘날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역은 ‘도덕적 청정성’ 정도이다. 종교의 입지가 좁아든 근본원인은 사회변화에 있다고 보여진다. 아놀드 토인비는 미래종교의 전망에 대해 ‘종교의 세속화’ ‘일반인의 종교에 대한 무관심’을 꼽고 있다.

불행하게 그 예측은 서서히 적중하고 있다. 많은 종교들은 현대화를 외치면서, 끝없는 상업화·세속화에 빠져들고 있다. 종교적 논리 대신에 경영적 논리가 판을 친다. 이에 따른 일반인들의 무관심도 가중되고 있다. 기껏해야 종교의 신비성 정도에만 매혹될 뿐, 더 이상의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제 종교는 스스로의 자각에 의해, 자신의 영역을 새롭게 계발해 가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불교가 변해야 한다는 당위성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2) 신승불교의 필연성

불교는 언제나 새롭게 해석될 수 있고, 또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불교는 결코 여태까지 없던 교리체계를 만든다거나 형식을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불교가 가진 진리성을 오늘의 현실에 투영하고, 그 응용성을 진지하게 논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불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승불교의 대두는 필연적이다. 종교가 과거의 영광을 상실하게 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종교인, 특히 성직자의 평가절하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다. 고대사회에서의 종교 성직자는 이념적으로나 현실성에 있어서 그 사회의 지도층이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왕사·국사 등의 지위는 반드시 상징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고려의 경우는 승가의 책임자가 국가 권위를 능가하고 있었다. 더구나 일반인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던 시기였다. 따라서 불교 성직자는 곧 그 사회의 엘리트 집단이었다. 서양의 경우는 기독교, 동양은 불교가 바로 그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근대사회로 넘어가면서 이 종교 성직자들의 권위는 급속히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특히 지적 권위는 대학이나 연구소 등이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 정신적 권위의 몰락이 바로 종교의 평가절하로 이어지게 된다. 다음으로 지적되어야 할 점은 재가신자들의 급성장이다. 그들은 전문지식을 갖고, 사회에 공헌하는 그 사회의 중추세력들이다. 재가신자들은 지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이미 독자적으로 틀을 형성해 가고 있다. 또 다변화된 사회 속에서 여러 이익집단과 동호인 그룹이 생겨나게 된다.

이 점 역시 농경사회구조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변혁이었다. 종교는 도저히 그 광범위한 조직 속에 영향을 끼치기 어렵게 되고 만 것이다. 요컨대 재가신도들의 도약은 성직자들의 입지를 위축시켰고, 종교는 그들을 설복할 만한 가치체계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은 결코 원리만으로 대중들을 감복시킬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오늘날의 이슈는 과거의 경우와 판이하다. 예컨대 유전자조작의 가능성, 복제동물의 출현, 안락사의 문제, 뇌사(腦死)의 규정문제, 사이버 섹스의 도덕성문제, 환경파괴에 대한 대응논리, 공해와 산업쓰레기 문제, 수질보존문제, 청소년 범죄 등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우리가 ‘마음을 깨친다’고 해서 북한 도발우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청정해진다고 해서 국가가 부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적 가치관이 철저히 무시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산적한 문제들에 대해서 불교적 시각으로 정리하고, 해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은 가설이지만, 이와 같은 학문영역을 우리는 응용불교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불교정치학, 불교경제학, 불교사회학, 불교심리학, 불교문학, 불교미학 등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노력이 가능해지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점은 승가의 질적 개편이다. 불행히도 현재와 같은 기능과 조직의 승가로서는 이 엄청난 변혁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판단이다.

그 점이 바로 신승불교의 도래를 예고하는 서곡이다. 이제 신승불교는 대승불교가 가졌던 한계점을 극복하면서, 이와 같은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불교적 대안으로서 등장하게 된다. 우리는 그 신승불교의 가능성을 목도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는 ‘불교생태학회(The Buddhist Society for Ecology)’가 조직되었다. 미시간 주립대학 교수들을 중심으로 사회 각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일종의 환경보호단체이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환경감시단을 가동하고 있고, 계간의 잡지 《불교와 환경(Buddhism & Environment)》을 출간하고 있다. 대부분은 불교를 믿는 과학자·전문경영인들인데, 이들의 주장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지구는 유기체이며, 생명체이다. 따라서 신선한 공기와 태양열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구의 산소공급원인 히말라야와 아마존 유역은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되어가고 있다. 또 오존층의 파괴는 강력한 자외선을 다수 유입시킴으로써 빙하를 녹이고 있다. 해수면으로 흘러들어간 물들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주범이다. 그렇다면 이 지구 파괴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바로 불살생(不殺生)의 불교적 선언이다. 스스로 이 계율을 지키고, 조직화해 나가야 한다. 불살생의 원리를 확대함으로써 자연친화적 인간군을 형성할 수 있고, 그 길만이 파멸을 막는 첩경이다. 실제로 분기별 모임인 워크숍에서 그들은 철저한 금욕·채식·참선 등의 수련을 통해 스스로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일본 정토종의 재소자 교육프로그램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일본 최대의 종파인 정토진종(淨土眞宗)에는 사찰마다 직업훈련소가 있다. 미장이·목공·재단사 양성 등 실질적 직업교육인데, 특히 재소자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불교환경단체, 불교장애인복지시설, 불교간병인회(호스피스 포함) 등 다양한 사회활동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와 같은 불교운동의 원동력은 바로 재가불자들의 지성화 경향 때문이다. 1980년대 이래 지속되어온 각종 불교교양대학의 움직임들이 그 산실이다.

불교교양대학은 재가신자들에게 불교의 기본교리예절들을 가르친다는 소박한 각오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불교교리를 익히고 보살행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불교대중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종래의 초하루·보름 기도법회라는 전근대적 사찰의식도 서서히 변모해 가고 있다. 이미 많은 사찰들이 한글의례로 축원문을 낭독하고 있으며, 이 한글화 의례는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 일련의 움직임들은 모두 신승불교의 조짐으로 파악할 수 있다. 대승 전야의 분위기처럼, 기성교단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으며, 재가중심적이다. 아마 가까운 장래에 이 신승불교의 움직임은 구체화되리라고 본다. 현재로서는 섣불리 그 성패 여부를 단정짓기 어렵다. 그러나 21세기의 정보화시대는 신승불교를 손짓하고 있으며, 불교인 내부에서 움트는 정법불교에 대한 열망은 반드시 이 운동을 확산시켜 나갈 것으로 본다.

3. 한국불교, 어디로 가야 하나?

1) 전통적 불교국가의 침몰과 서구에서의 불교 붐

서구의 불교적 관심은 학문적인 데에서 출발한다. 이른바 어용학문의 멍에를 썼던 16세기 후반 이미 인도학(Indology)이 형성되었고, 동양학 일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불교학이 정착하는 시기는 19세기 중반 무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부르노프(Eugene Burnouf)의 《인도불교사입문》 《법화경역주》는 근대불교학의 효시를 이룬다. 이후 리즈 데이비드(Rhys David, 1843∼1922)의 팔리경전연구회(Pali Text Society)는 불교학 연구의 밑거름이 되었다. 《금강경》 《정토경》 등의 번역은 불교가 종교로서 서양인들에게 다가선 계기가 된다. 막스 뮐러(Max Muller), 올덴베르크(Oldenberg) 등의 이른바 불교연구 제1세대를 거쳐 에드워드 콘제(Edward Conze), 라모트(E. Lamotte) 등의 제2세대에 이르면 각종 불교경전에 대한 해석, 불교사 연구 등으로 그 지평이 더욱 넓어진다.

현대에 있어서는 그 연구 중심지가 미국으로 이동되는 추세인데 하와이 대학의 칼루파하나(Kallupahana), U.C.L.A.의 버스웰(R. Buswell), 스탠포드의 호르(E. Faure) 등은 장래가 촉망되는 중견 불교학자들이다. 과거 서양에서의 불교연구는 순수한 학문적 관심이 주류를 이루어왔지만, 현재의 상황은 판이하다. 즉 불교학 연구 제2세대들인 경우는 거의 기독교 신학자였다. 푸생(La Vallee Poussin), 실방 레비(Sylvan Levee) 등은 신학자였으나 개인적인 관심과 불교적 진리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불교연구에 종사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현직 북미 불교학자들은 거의 대학시절에 월남전을 겪은 세대들이다. 그들은 제국주의적이고 절대권력적이며 기독교 우월주의적 전통에서 자유로워진 세대이다. 상당수의 이들 불교학자들은 수계를 받았거나, 각자가 전공으로 삼는 해당 지역의 불교사찰에서 자신의 불교적 체험을 쌓아 간다. 버스웰 같은 학자는 그 대표적 예로서 송광사에서 6년간의 엄격한 승려생활을 겪고 환속한 케이스다.

뤼그(David Seyfort Ruegg)가 관찰했듯이 그들은 불교를 ‘삶의 방식(way of living)’으로 생각하며, 일정한 교리체계에 의한 도그마(dogma)의 종교로 생각하지 않는 세대이다. 합리적이며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즐기는 이들은, 불교에 대해서 마음으로부터의 공감과 친화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李珉容, 불교학 연구의 문화배경에 대한 성찰, p. 15)

구미는 지금 불교의 열풍에 휘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스턴·뉴욕·LA 등에는 미국인을 위한 참선 센터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고, 캐나다·유럽 등에도 명상센터가 붐을 이루고 있다. 이들의 불교적 관심을 촉발한 데는 이민 1세대들의 공헌이 크다. 처음에는 고향에 대한 향수로서 소규모의 집단 형성을 해왔지만, 서구에서의 불교학 점증과 맞물리면서 서서히 사회 전면으로 부각하게 된다. 그 붐 조성의 결정적 계기는 달라이 라마였다.

티베트 소수민족에 대한 동정심리, 열아홉 살 때 망명길에 오른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독특한 카리스마로 청중을 압도하는 힘 등은 그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계기로 불교 붐 조성의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외에도 베트남 출신의 틱 냑한, 스리랑카의 월포라 라후라, 한국의 숭산행원 스님 등은 서구사회에 지명도가 높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서구사회에서의 불교 붐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특정 국가의 불교를 전파하는 국수주의적 면모가 강하다. 마치 티베트불교가 전체 불교를 대변하는 듯 오도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불교에 대한 보편적 진리의 현양보다는 특수한 상황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또 불교의 교설을 이론적으로만 천착하는 것도 문제이다. 이것은 불교를 신비화시키게 되며, 끝내 관념의 나락으로 떨어질 개연성을 안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서구의 불교 붐은 정상궤도로 진입하고 있으며, 미래 불교의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반면 전통적 불교국가들에서는 침체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타일랜드·베트남·스리랑카 등의 불교는 여전히 ‘관습과 전통’의 무게에 안주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 일본의 경우는 지나친 상업화와 학문화가 문제이다. 일본인 스스로가 탄식하듯이 일본의 불교는 장의(葬儀) 불교로 전락하고 있다. 절은 관광지화되었고, 도량은 더 이상 스님들의 수행처가 아니다.

이들 전통적 불교국가의 몰락은 인도불교의 종언과 함께 우리 세기의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불교를 현실에 응용하려는 노력이 부족하고, 물밀듯한 외래사조에 소극적으로 대응한 결과이다. 사회조직 자체가 종교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중국불교 역시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다. 따라서 관심은 한국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위대한 수도 전통과 보살 정신이 살아 숨쉬는 대지로서 한국의 불교는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2) 한국불교에 거는 기대

한국불교가 신승불교의 요람이 되리라는 예측은 결코 과대포장된 꿈이 아니다. 우리가 한국불교에 거는 기대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첫째, 승가의 전통은 여전히 수도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한국불교 최대종단인 조계종을 중심으로 생각할 때, 선종 위주라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천태종·태고종·진각종 등의 불교는 정토신앙·불교의례·기도법회 등 다양한 방편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의 승려들은 여전히 참선·간경(看經)·기도 등을 숙명처럼 안고 산다. 이것은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아름다운 전통이다. 비록 20세기 말의 조계종단 불화가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지만, 그것은 결코 한국불교의 전체 모습을 표상짓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승려들은 묵묵히 정진하면서 자기완성과 사회정화에 기여하고 있다. 따라서 이 수도 전통은 신승불교의 좌표가 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두번째는 재가불교운동의 활성화이다. 치마불교·기복불교로 대변되던 한국불교는 급속도로 지성화·생활화의 기치 속에 발전하여 왔다. 물론 그 사상의 저변에는 외래문화에 대한 반작용의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전통에 대한 확인, 불교적 예지가 지닌 참신성 등에 매료된 불교인들은 서서히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들은 종래의 기복적 불교관에서 탈피하여, 보살행의 실천이라는 쪽으로 힘을 응집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과제는 출가승과 재가신자 사이의 원만한 역할분담이다.

서로는 대립적 존재가 아니라 조화의 관계여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선(禪) 일변도의 교육 풍토에 대한 개선이다. 한국불교를 지칭하는 대표적 표현 가운데 회통(會通)불교라는 말이 있다. 이것도 종파주의를 지양(止揚)하는 선의의 의미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특징없는 절충주의로 전락할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불교는 선수행만을 예찬해왔다. 특히 남종선 일색이라는 점도 반성의 여지가 있다. 선은 그 혁명적 선언과 깨달음에 대한 참신성 때문에 많은 호응을 얻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깨달음에 집착하고, 깨달음의 사회화에 실패할 경우 엄청난 부정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무애행과 파계행이 혼동되며, 꾸준한 정진 대신에 돈오를 예찬하는 이상스런 풍조를 조성할 수 있다. 따라서 선교 병행을 닦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울러 교학적 풍토를 존경하는 분위기도 만들어 가야 한다. 그때 깨달음은 비로소 사회로 환원될 수 있다. 한국불교는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무대이자, 시금석일 수 있다. 신승불교라는 신지식을 공유하게 될 때, 이 운동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불교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희망일 수 있다.

3) 신승불교의 과제

무릇 새로운 불교의 탄생을 위해서는 뒷받침되어야 할 형식적 조건이 있게 마련이다. 신승불교가 이루어야 할 과제는 ① 교단의 형태와 조직, ② 교판(敎判)의 정립―불교성전 간행, ③ 율의(律儀)를 포함한 의례 ④ 경제적 기반 등이 있다. 이때 비로소 기성 교단과의 차별화를 이룰 수 있으며, 시행착오를 예방할 수 있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조건의 골자는 신승불교의 이념에 따라서 결정될 문제이다.

먼저 신승불교의 특징은 출가·재가의 구분을 문제삼지 않는 데서 출발할 전망이다. 현재 세계의 4대종교 가운데 성직자 개념이 없는 종교로는 이슬람이 유일하다. 신승불교가 그 전철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구조의 다변화 때문이다. 따라서 출가라는 형식보다는 불교적 진여(眞如)에 가까이 다가서려는 원행(願行)이 더욱 중요하다. 다음으로 제기할 문제는 두번째에서 말한 교판의 문제이다. 대승불교도들은 경전의 재편집을 통하여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그 이후 일어난 중국불교의 작업이 바로 교상판석(敎相判釋)이었다. 이것은 부처님 말씀에 대한 내용별 분류인 셈이다. 대승불교문화권에서 특히 활발했던 이 교판론은 아직까지 불교학의 정석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렇다면 신승불교 또한 새로운 불교경전을 편찬할 것인가. 이것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대승불교는 근본불교와의 시간 간격이 너무 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전의 재구성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즉 현재 인류들이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불교적 입장을 정리해 보자는 것이다.

예컨대 자유·진리·평화·사랑·정의·통일·화합 등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근본불교와 대승불교는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나 하는 점을 재구성해야 한다. 불교진흥원에서 간행했던 《통일법요집》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평면적인 금언집(金言集)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라고 규정했을 때도 정의와 불의, 정의의 조건, 개인적 정의와 사회정의, 불의에 대한 대처 등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쪽으로 논의를 분산시켜 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통일성을 기하려면, 원전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함께 현대학문의 제 분야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형태가 한글이어야 한다는 데도 아무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나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 신승불교의 교전은 1권, 전체 분량은 480페이지 내외(사제·팔정도), 세부적인 항목은 108개로 간추렸으면 한다.(졸고, 〈‘현대사회와 결집’의 章·節 분류에 관하여〉, 《한국불교철학의 어제와 오늘》 p. 398 이하 참조) 세번째 율의의 문제는 모든 법회의례가 한글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만 다라니(陀羅尼)의 경우에는 독송용과 해설용의 구분이 있어야 한다. 출가·재가를 문제삼지 않기 때문에 의복이나 두발 등에 관해서는 상당한 융통성이 있을 수 있다. 아울러 《범망경》 십중사십팔경계(十重四十八輕戒)에 대한 재구성이 필요하다. 또 오계의 윤색 또한 불가피하다고 본다. 오계의 경우에는 금지적 표현이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지막 불고주(不?酒)의 경우에는 실효성에 의문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범망경》의 마지막 다섯 조항을 신승불교의 오계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① 삼보를 공양하라(護三寶)
    ② 승가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說四衆過)
    ③ 남을 헐뜯지 말라(自讚毁他)
    ④ 재물과 진리를 널리 베풀라(즃惜財法)
    ⑤ 뉘우치는 중생을 용서하라(嗔心不受悔)

이것은 전통적 형식의 삼귀오계(三歸五戒)뿐 아니라 삼취정계(三聚淨戒) 등 대승윤리를 담고 있다. 동시에 신승불교가 표방하는 불교대중화의 이상을 적절히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졸고, 〈현대사회에서 요청되는 三寶〉, 앞의 책, pp. 426∼427 참조.) 마지막에서 제기한 경제적 기반은 철저히 자립의 토대를 닦아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려면 다양한 수익사업의 전개는 필수적이다.

불교교단의 침체 원인 가운데 하나는 재정자립의 실패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신승불교는 생산불교를 표방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선종이 풍미할 무렵, 전통적인 노동관은 폐기되었다. 또 인도불교에서 내세워온 탁발이라는 수행양식 또한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사회와 시대의 변화는 본질을 바꿀 수 있는 법이다. 미래의 승가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시주와 보시에 의존한 경제활동으로는, 그들이 표방하는 불교대중화를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신승불교의 도래를 예감하고 있다. 소승과 대승을 거친 불교사상은 이제 신승(新乘)이라는 새 물결을 맞을 차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의 필연이며, 불교적 흐름의 과보이기도 하다. 그 개화의 지점이, 여러 가지 사상적 연유로 인하여 한국일 가능성이 높다.

그 점은 우리에게 자부와 책임을 동시에 걸머지게 하고 있다. 따라서 미래불교의 주역임을 자각하는 한국불교인들은 이제 보다 성숙하고 글로벌한 감각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잇는 한국불교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끝>

정병조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졸업.인도 네루 대학 교환교수. 철학 박사. 현재 동국대 교수. 한국불교연구원장. 저서로 <인도철학 사상사><지혜의 완성><불교와 인도고전><인도의 여정><정병조 불교입문>등이 있으며 역서로 <역해 육조단경><현대불교입문><야스퍼스의 불교관><불교의 심층심리>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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