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교 시조시인 <유심>주간

세계평화시인대회! 이는 광복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해사상실천선양회(이사장 조오현 백담사 회주)」가 주관한 「2005 만해축전」의 핵심 프로그램이었다.

이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국토가 둘로 갈라진 분단상태로 반세기가 넘게 휴전중인 나라 한반도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 시인들이 모여 평화를 노래하는 축제의 한마당이 4박5일 동안 펼쳐졌다.

영국, 프랑스, 폴란드, 스페인, 이탈리아, 쿠바, 남아프리카공화국, 미국, 타이, 일본, 인도, 호주, 브라질, 멕시코, 칠레, 터키, 러시아, 미얀마, 스리랑카, 카자흐스탄,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참석한 60여 명의 시인들과 우리나라의 대표 시인 70여 명이 모여 서울→백담사 만해마을→금강산→서울로 이동하면서 평화를 노래한 그야말로 축제의 대장정이었다.

평화는 자비이다. 원(圓)이다.
평화는 쌀이고 밀이고 옥수수이고 옷이다. 평화는 굴뚝이 있는 집이고 거리다.
평화는 노래이고 달밤의 춤이다.
평화는 시이다.
시인이여 시의 벗들이여
이제 평화를 노래하자

축제 이틀째, 금강산에서 펼쳐진 시낭송회 서막은 대회장인 고은 시인이 ‘시인이여 이제 평화를 노래하자’라는 시로서 대회사를 대신했는데, 그 특유의 열정적인 몸짓과 살아있는 음성으로 대회장의 분위기를 압도해나갔다.
이보다 앞서 첫날인 8월 1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의 개회식에서는 만찬을 곁들여서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환영사가 있었고, ‘평화의 시 낭송회’ 제1부로 우리나라 시인들의 낭송이 자정 무렵까지 이어졌다. 첫날은 외국 시인들을 손님으로 맞는다는 의미에서 우리나라 시인들만의 낭송으로 꾸며졌던 것이다.

그리고 이튿날인 12일 새벽 6시, 신라호텔 본관에 모인 시인들은 다섯 대의 버스에 분승하여 백담사 만해마을로 이동했다.「2005 만해축전」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인 만해대상 시상식과 ‘평화의 벽’에 동판으로 영구 부착될 세계평화시인대회 참석자들의 육필원고 ‘평화의 시’ 제막식에 참석키 위해서였다.

이날 만해대상 평화부문 수상자인 티베트 망명정부 수반 달라이라마는 참석치 못했다. 달라이라마를 대신해서 온 동북아시아 초펠라 대사가 대독한 수상소감에서 ‘티베트의 평범한 승려인 저에게 이런 큰 상인 평화상을 준 것은 저뿐만 아니라 저희 나라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 이라며, ‘진정한 평화는 상호 신뢰와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한 일’ 이라고 했다.

1986년 아프리카 흑인으로는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Wole Soyinka)는 만해대상 문학부문의 수상소감에서 ‘이 자리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광부」들이 함께 했다. 이 광부들은 어둡고 깊은 땅 속에서 힘든 작업을 해서 작은 금덩이를 캐내 세상에 그 빛을 보태는 시인들이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그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왜 배우지 못하고 전쟁과 폭력을 계속 자행하는지에 대해 시인이 답을 말해 줄 수는 없지만 그 대신 사람들에게 위안은 줄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밖에 학술부문을 수상한 가산불교연구원장 이지관 스님과 실천부문 수상자인 함세웅 신부는 “만해 스님의 실천사상과 일관된 정신을 되새겨 남북평화와 인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는 취지의 수상 소감을 피력했다.
만해대상 시상식이 끝나고 만해마을에서 마련한 오찬을 마친 시인 일행은 곧바로 금강산으로 향했다.

금강산 관광호텔에 여장을 푼 일행은 제2, 3부 시낭송회에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애초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행사 시작 때부터 북측 시인들의 참가가 확실하지 않아서 조마조마한 것은 비단 집행부 측만이 아니었다. 외국 시인들도 큰 관심을 기울였고, 특히 우리 측 시인들은 기대와 우려 속에 금강산 도착 때까지 반신반의의 심정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려했던 북측의 불참이 현실로 나타나자 그 실망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이 컸다.

어렵게 밟은 북측 우리의 땅 금강산에서 반갑게 맞아야 할 북측 시인들은 정작 찾아볼 수 없으니 그 허탈함을 무어라 표현할 것인가. 함께 어깨를 겯고 목매어 외쳐보리라던 평화의 시 구절구절은 그 메아리마저도 끝내 맺지를 못한단 말인가. 그러나 언제까지나 실망에 휩싸일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도 그리던 우리 땅 금강산에 와서 목청껏 평화의 시를 노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위안을 삼아야했다. 그랬다. 그 이상 무엇을 이 시점에서 더 바라겠는가.

외국 시인 한 명에 우리나라 시인 두 명이 한 조가 된 평화의 시 2부 낭송은 만찬 후 곧바로 시작되었다.
첫번째로 무대에 오른 폴란드의 여류시인 아그네슈카 주압스카-우메다(Agnieszka Zulawska-Umeda)는 ‘한용운을 추억하며’ 라는 부제를 붙인 「테페약 언덕에서 나눈 대화」를 낭송하였다. 그녀는 일본의 하이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시조와 한시를 번역하여 유럽에 알린 바르샤바 대학 동양학부 교수이기도 했다. ‘오세요 이제. 지금 바로, 이제는 나에게 머무르세요.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립니다. 님이 없이는 알 수 없어요……’ 라는 만해시풍의 평화를 희구하는 시를 낭랑한 음성으로 낭송하여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서 이근배 시인은 「금강산은 길을 묻지 않는다」라는 40여 행의 결코 짧지 않은 시를 참석자들 중 유일하게 대본을 보지 않고 한구 한자도 틀리지 않고 암송하는 특유의 실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또한 신경림 시인은 시의 내용이 잘못하면 작금의 북한을 빗댄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어서일까. 5공 시절에 씌어진 작품이라고 밝힌 뒤, 자신은 시낭송을 잘 하지 못한다고 겸손해 하면서 “쓰러질 것은 쓰러져야 한다 / 무너질 것은 무너지고 뽑힐 것은 뽑혀야 한다 / 그리하여 빈 들판을 어둠만이 덮을 때 / 몇 날이고 몇 밤이고 죽음만이 머무를 때 / 비로소 보게 되리라 들판 끝을 붉게 물들이는 빛을 / 절망의 끝에서 불끈 솟는 높고 큰 힘을” 이라고 노래했다.

태국의 나오바랏 퐁파이분 시인은 자국의 고유악기로 연주를 곁들였는데, 우리의 피리와 비슷한 음질이 특이했고, 강은교 시인은 징을 울리며 시를 낭송하여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다이애나 페러스(Diana Ferrus)는 흑인 특유의 물끼어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거짓 없는 시… 평화를 위하여’를 낭송하였다. “내가 총알로, 폭탄으로, 파편으로 죽을지라도, 당신과 눈을 맞추며 숨을 거두렵니다. …평화 속에서, 평화를 위해, 평화를 주며, 평화를 사랑하며 숨을 거두렵니다. …평화롭게 숨을 거두렵니다.” 라고 하여 가장 우렁찬 박수를 받았다.

특히 1부와 2부 사이에 공연한 가야금산조 국악 한마당은 외국시인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2부에서는, 연작시 「백두대간」을 오랫동안 써왔던 이성부 시인의 「향로봉에 와서」 도 기억에 남을 만한 낭송이었다. “산길이 잘 보이는데도 더는 가지 못한다 / 무산 국사봉 금강산이 저 앞에 첩첩 펼쳐져 있는데도 더 나아가서는 안 되는 곳이다”라고 시에서는 노래했지만, 낭송을 하는 이 순간은 그 경계를 넘어 금강산에 와 있으니 그 감회가 남달랐으리라.

낭송은 자정이 임박하여 끝이 났다. 그런데도 모두 무언가 미진한 듯 자리에서 선뜻 일어설 줄을 몰랐다. 미적이던 몇몇은 다른 층의 홀로 자리를 옮겨 술잔을 나누었고, 또 다른 몇몇은 노래방을 찾아가 미처 못다 부른 응어리를 목청껏 노래로 불러젖혔다. 그렇게 금강산에서의 밤은 깊어갔다.

이튿날,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친 일행은 버스에 올라 외금강산 속으로 들어가다가 중간에 신계사(神溪寺) 복원 현장을 둘러보게 되었다. 우리 조계종측에서 복원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대웅전은 완공이 되었고, 그 외 본전은 주춧돌이 놓이고 몇 개의 기둥이 세워진 상태였으며, 부속 건물들은 터닦기가 한창이었다. 법당을 둘러본 일행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전쟁중에 불탄 신계사가 반세기를 넘겨서 다시 복원되듯이 그렇게 통일이 오기를 기원하면서.

버스가 갈 수 있는 종착지 목란각 아래서부터는 걸어서 금강산에 올랐다. 촉박한 시간에 쫓겨 허락하는 동안만의 등정으로 금강산 흙을 밟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서둘러서 오후 네 시 무렵에 남북 분계선을 넘었지만, 종착지인 서울의 신라호텔에 도착한 것은 자정을 넘겨서였다. 그야말로 강행군의 연속이었는데도 참가 시인들은 마지막 날 오전 8시 조찬과 10시의 ‘시와 평화 심포지움’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열의를 보여주었다.
1·2부로 나뉜 심포지움의 제1부는 정현종 시인의 사회로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핀스키의 기조강연에 이어 프랑스 시인 장미셸 몰푸아, 스페인 시인 안토니오 콜리나스, 러시아 시인 미하일 시넬르니코프, 터키 시인 투룰 타뇰의 발제 순으로 계속되었다.

심포지움이 열린 신라호텔의 대회의장 시설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발제 시인들이 저마다의 모국어로 강연을 했지만 이어폰을 통해 곧바로 듣고자 하는 나라의 말로 통역되어서 내용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었다.
제2부는 최동호 시인의 사회로 월레 소잉카의 기조강연이 있었고, 뒤이어 칠레 시인 타울 수리타, 일본 시인 이쿠라 고헤이, 우리나라의 오세영 시인의 발제가 있었다.

장장 여덟 시간 동안 진행되었던 심포지움의 내용은 축제 뒤 정리하여 「2005만해축전」에 수록될 것이라고 한다.
이제 마지막 제4부 평화의 시 낭송에 앞선 만찬 직전에 참가 시인들의 평화의 시 모음시집인 「평화, 그것은」의 헌정이 있었다. ‘세계평화시인대회’ 준비위원장인 서울대 권영민 교수가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에게 시집을 헌정하는 것으로 화려한 휘나레의 서막을 장식했다.

곧이어 만해대상 문학부문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와 김남조 시인이 제4부의 시낭송 테이프를 끊었다.

부조화에 대한 기억이
영원 속으로 묻혀 사라진 후에야
코라, 플루트, 바이올린의 현, 음비라, 실로폰과 발라폰이 어우러져 내는 하나의 화음,
하나의 목소리에 세상이 깨어나
현자들이 우주의 음악에 모여들면서
정지된 그 순간에 평화의 콜라나무 열매는 익어가리.

월레 소잉카가 「평화의 비전」을 아주 편안한 음성으로 낭송하였다. 이어서 김남조 시인은 마치 앞의 시에 화답하듯이 나직하면서도 힘 있는 떨림으로 ‘평화’를 낭송하였다.

누구라도 그를 부르려면
속삭임으로 안 된다
자장가처럼 노래해도 안 된다
사자처럼 포효하며
평화여, 아니 더 크게
평화여, 천둥 울려야 한다

원로 김종길 시인은 가장 열성적으로 모든 행사마다 자리를 지켜주었는데, 특히 본인의 시 「우리는 하나」를 낭송한 뒤 후배 고은 시인의 시를 영역하여 즉석에서 낭송하여 줌으로써 외국시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축제 마지막 날 밤은 제4부의 시낭송으로 그렇게 깊어가고, 테이블마다 몇 순배 돌린 포도주로 해서 달콤한 취기에 휩싸인 가운데 마침내 프로그램에 따른 최종 시인의 낭송도 끝이났다. 그런데 그때, 순서에 없는 또 한 시인의 시낭송이 장내에 조용조용 울려퍼졌다.

삶의 즐거움을 모르는 놈이
죽음의 즐거움을 알겠느냐

어차피 한 마리
기는 벌레가 아니더냐

이 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

「2005만해축전」의 실질적인 후견인인 무산 조오현 스님이 끝내 흥을 이기지 못했음인지 자작시 ‘적멸을 위하여’를 낭송함으로써 세계평화시인대회의 대미(大尾)를 장식해 주었다.

분단의 땅, 휴전선 철책이 드리워진 땅, 한반도에서 펼쳐진 세계평화시인대회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해서 어느덧 자정에 다다라 있었다.

오, 시여, 영원한 평화의 등불이여!

박시교
시조시인 <유심>주간. 1945년 경북 봉화 출생. 1970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에 <겨울강> <가슴으로 오는 새벽> <낙화> <독작(獨酌)> 등이 있고, 중앙시조대상, 이호우문학상, 가람문학상 등을 수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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