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스님 마곡사 포교국장·중앙대학교 겸임교수

1. 행복해지고자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 온다. 기다리던 휴일, 값진 여름휴가에 맘껏 개성있는 모습으로 화려한 곳을 찾을 수도 있건만, 수수한 옷을 입은 조용한 얼굴들이 하나 둘씩 마곡사로 들어와 연화당 마루에 앉았다. 낯선 사람들이다. 그리고 낯선 곳이다. 차 소리도 멈추고 뒤섞인 사람소리도 끊어졌다. 대신 듣지 못하던 소리가 들린다.

계곡에서는 귀를 시원하게 하는 물소리가 들리고, 매미 소리도 대단하구나 싶게 나뭇잎 사이에서 “꽥 꽥”거린다. 사람들이 스쳐지나는 곳마다 자갈이 밟히는 자글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에어컨이 없어도 땀이 점점 식어가는 걸 느낀다.
여기에 왜 왔을까?

많은 곳이 있는데 그들은 여기에 무슨 까닭으로 왔을까?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한 때는 해외여행이 자랑거리였다. 지금도 젊은 사람들은 밖에부터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겠지.
해외여행도 이젠 어지간해졌다. 우르르 차에 싣고 맛있다고 소문난 집 찾아가 식구들하고 외식도 해 봤다. 사람 손에 닳고 닳은 관광지에도 눈도장 찍었고.

이젠 무엇으로 여가를 보낼까. 내가 원하는 문화적 욕구는 무엇인지, 이젠 진짜를 찾아 보고 싶어진다.
어쩌면 정말 난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처음부터’ 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렇게 여러 가지 것을 해 보고 많은 곳을 가 봤지만, 공허한 마음이 남는 게 아닐까.
여가인 듯, 문화 생활인 듯 싶어보이지만, 무언가 찾기 위해 열심히 살아 이런 여유를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은 이렇게 절을 찾아든다.
무엇인가 자신을 채워주기를 기대하면서, 무엇인가 어지러운 내 마음을 고요하게 해 주기를 바라면서,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행복해지고자 한다.
압도하는 외국의 유적이 이젠 시큰둥하고,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차려진 밥상이 싫증나고, 시끄럽고 화려한 오락시설은 본래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것들-밖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들에 의해 난 행복해지는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면, ‘나’와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게 된다.

이 사람들과 내가 행복해질 수 없을까?
어디 행복을 사고 파는 행복 문화 사업은 없나…
그리고 이들은 지금, 여기 오기 전보다는 훨씬 더 조용해진 자신을 가만히 안아보고 있다. 이게 시작인 것을…

좀 더 나은 내가 되어 행복해지고자 한다.

2. 좀 더 나은 내가 되어

스트레스가 쌓이고 몸이 지쳐간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 들어 쉽게 짜증이 나고 일도 예전처럼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이럴 때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기분을 풀려고 노력한다.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하며 맞장구에 기뻐하기도 하고, 술 먹고 내가 아닌 양 “그 새끼, 저 새끼… 내가 말이지 …”하며 욕도 하고 허세도 부린다. 일상적으로 혼자 해결되지 않는 경우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1980년대 들어 새롭게 만들어진 약 중 가장 많은 게 우울증 약이라고 하니, 약도 나를 편안하게 해 줄 수 있겠다.
꼭 병원이 아니더라도 전문상담가나 집단 상담에 참가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나는 위로 받는다. 내 안의 힘을 북돋아 주고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준다. 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지금도 잘 해내고 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다. 난 너무나 기쁘고 행복하다. 지금처럼만 같다면 이 세상은 정말 살만한 거라고 힘이 난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게 오래 가질 않는다. 일주일, 이주일… 지나며 보기 싫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난 서서히 본래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배운 대로 잘 되질 않는다. 모든 게 당연하다는 듯이 제 위치를 다시 잡고 만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나…
예전의 소용돌이 속에 살기에는 난 뭔가 한 발을 내디뎌 버렸다. 좀 더 행복한 느낌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본래의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을 거라는 걸 안다.

3. 고통스러운 수행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귀한 시간을 내고 작심을 하고 나섰다.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고통은 꼬리를 물고 물고 늘어질거라는 걸 이젠 안다. 그러니 수행을 해야겠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모습에 기대어 나도 할 수 밖에 없는 거다.

머리 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직장 일도 지워버리고, 어깨에 올려져 있는 가족들도 잠시 잊자. 부처님 말씀에 의지해 인연을 따라 일어나고 사라짐을 진실로 느껴보자. 내가 없고 모든 것이 변함을 체험하고 싶다. 그리하여 고통의 이 바다에서 진정 평화로움을 잠시라도 호흡할 수 있었으면…

부처님 공부는 세상에서 가장쉬운 공부인데 많이들 힘들어한다.
온갖 관념에 사로잡혀 제대로 집중을 못한다.
자기 눈으로 헤아린 것이 전부인양 고집하고 떠들고 따진다.
이래서 고통이 생긴다.
이 고통을 어떻게 해야 벗어날까?

나는 선명하게 잡히지 않는 무엇인가를 억누르고 슬픔에, 분노에,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억압은 명상에 집중할 수 있는 힘을 잃게 하고 수마에 매달려 다니게 하고, 잡념 더미에서 질식할 지경이 되어버렸다. 마음 속에서 들리는 이런 호소만 있는 게 아니다. 몸도 여기저기에서 제 할 소리를 하겠다고 나선다. 무릎도 아프다고 하고 허리도 끊어지겠다고 그러고, 발목이 시큰거리면서 속도 울렁인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 낫고, 책에서들 말하는 느낌이 오기도 하지만 발전은 거북이 걸음처럼 느리기만 하다.
푹 자고 난 뒤의 상쾌한 머리 속처럼 되질 않는다. 비가 온 뒤 햇볕 화사한 가을하늘처럼 맑지가 않다.
명상하고 나면 평온해지면서 세상이 환하게 열리며 개오의 기쁨이 찾아 온다고 하던데, 난 어쩌면 전보다 속이 더 시끄럽고 모든 게 엉망진창인 것 같다.

엉망진창인 것 같은 게 아니라 엉망진창이었던 게 이제 느껴지고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네 안에 있었지.
어깨에, 등에 짐을 이고 지고 어찌 날고자 하는가!!
두텁고 두터운 오온에 덕지 덕지 붙은 카르마가 거미줄 같은 것을…”

4.고인 고통을 걷어내니

붓다는 이 세상 모두가 고라 했다. 찌르는 고통, 자르는 고통, 배고프고 아픈 고통만이 고가 아니다. 나와 연기하는 만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구하고 탐하는 마음이 일어 적정(열반)에 도달하지 못함을 고라 하셨다.
그리고 고는 고임을 알지 못하는 무지에서 발생한다.
붓다가 깨달음의 길로 들어선 까닭도 세상에 있는 고를 바로 보셨기 때문이니…

다시 연화당 마루에 수련복으로 갈아 입고 앉아 있는 이 사람들을 본다.
이 사람들은 각각 다른 주제를 가지고 함께 모여 명상을 한다.
실직자를 위한 시간도 가졌고, 철야정진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했다. 한가위가 되도 갈 곳 없는 사람이 절로 모이고, 가족을 위한 템플스테이, 어린이 명상, 60대 이상의 노인들을 위한 지혜명상, 장애인과 그의 가족들, 마음과 몸이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하는 치유명상으로 이어진다.
고는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나타나고 각각의 업보에 따라 짊어지게 된다.
그래서 고통을 이야기하는 내용도 다르고 풀어나가는 모습도 조금씩은 차이가 난다. 그런 까닭에 처음으로 이렇게 주제를 나누어 템플스테이를 해보았다.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한 현재 실직자들이, 빛이 바랜 노인들이, 몸 아픈 이들이 끼리끼리 모인다면 참 답답할 것 같다는 첫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이들은 서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고통의 근원에 다가가고 서로 의지하고 격려한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은 지금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자신의 핵심문제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주 호소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할 지를 알고자하는 단계까지 접근한 것이다.
자신에겐 그다지 큰 문제가 없고, 대체로 만족하며 성공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전쟁터의 위급함에 다리에 난 총상을 느끼지 못하고 도망가는 군인처럼 내 안의 문제를 모르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그들은 자신이 가진 고통의 끄트머리를 잡은 것이고 템플스테이를 통해 또 한 업보를 내려 놓았다. 고인 고통이 머물렀던 자리가 가시면서 명상에 집중하지 못한 까닭이 이해되고, 수행에 발전이 더뎠던 것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많은 자아초월심리학자들도 심리상담과 명상의 병행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리라. 상담을 통한 심리치료로 수행을 해 낼 수 있는 근기를 기르며 현실도피적인 명상을 경계하고, 수행을 통해 심리상담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게 우리가 하고 있는 템플스테이의 현재다.

5. 맑은 내가 있구나, 내가 없어지는구나

두터운 카르마의 겹겹에서 문제는 끊임없이 다시 나타나지만 큰 짐을 내려 놓은 나는, 이지도 지지도 못 하던 업보 덩어리를 어느새 번쩍 들고 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 힘은 내 안에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그 힘을 기르고 있다. 이 힘이 번지고 번져 언젠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겠지.

템플스테이는 행자 흉내내고 절 생활 며칠 경험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붓다가 깨달은 그 길을 중생도 가고자 하는 대중과 사찰이 함께 노력한 합의점이기도 하다. 쉽고도 분명한 깨달음의 길을 함께 갈 도반을 얻고자 함이기도 하다.

고인 고통을 걷어 내고 맑고 밝은 내 본성과 만나길, 그래서 그 드넓은 속에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를…

주제별로 하는 명상을 거친 도반들과 나도 한참을 더 수행하고 싶고, 언젠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인 수행 지도에 전념하고자 한다. 그러고 싶다.

세상 모든 존재들이 평화로워지기를…
진심으로 평화로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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