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호 동국대 대회협력 담당관

1.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의 15세 이상 인구 가운데 종교 활동 참여인구는 53.9%로 조사되고 있다. 통계상으로 보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각기 하나의 종교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 종교 인구를 각 종교별로 분류해보면 불교 47.0%, 개신교 36.8%, 천주교 13.8%, 유교 0.7%, 원불교 0.4% 등이다.1)

종교는 각기 나름대로의 교리와 그 포교를 통해 자기 종교의 우월성을 대중화시켜 나가고 있다. 그 방법의 하나로 대중매체가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특히 전문분야로서 독자적인 대중매체 운영이 일반화되어가고 있는 추세이다.
대중매체로서 한국전문신문협회에 등록된 종교관련 신문은 모두 18종(불교계 7종, 개신교 11종)이 되고 있다.2)
그러나 신문을 뺀 인터넷이나 라디오, TV, 전문잡지, 그리고 등록되지 않은 개별단위 매체까지 합치면 종교관련 대중매체 숫자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종교계 신문의 등장은 여타 전문신문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산업화와 사회적 분화의 심화로 관련분야에 대한 정보의 욕구는 점차 늘어나고 있으나, 일반적인 종합지가 지면의 한계 때문에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데서 그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즉, 현대사회가 정보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으며, 이렇듯 정보가 범람하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언론매체의 기능 또한 다양화되어 전문지들의 등장을 가속화시켜 온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3)
현재 한국전문신문협회에 회원사로 등록된 한국 불교전문신문들은 대한불교조계종에서 발행하는 불교신문(1960년 창간)을 비롯하여 밀교신문(1973년), 주간불교(1982년), 법보신문(1988년), 한국불교(1988년), 현대불교(1994년), 만불신문(1999년) 등 7종에 이른다.

불교계 언론은 그동안 양적인 측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주간신문의 경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불교신문’ 하나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9개나 되고, CATV, 라디오 방송까지 불교언론의 영역을 넓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불교언론의 질적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4)

2. 불교계 신문의 실태와 문제점

1) 불교계 신문의 발행 실태

우리나라에서 신문형태의 불교계 신문이 처음으로 선을 보인 것은 해방이후 1946년 5월1일 창간된 월간 <불교신보>다. 이어 <대중불교(1947년)>, <불교공보(1949년)>가 창간되었으나 발행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신문인 <불교신문>은 1951년 후반기에 창간되었으나 현재 정확한 창간일과 신문사 운영 주체 등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러한 불교계 신문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60년 <대한불교(현 불교신문 전신)>가 창간되면서 부터다. <대한불교>는 그때까지만 해도 월간 단위로 발행되던 불교매체를 주간 단위로 좁혀놓았다. <대한불교>는 1980년 12월에 <불교신문>으로 제호를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어 1970년대에는 진각종이 <진각종보>를 1973년 1월1일 창간(1981년 10월19일 문공부 정기간행물 등록)하였는데 1999년 제호를 <밀교신문>으로 변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천태종 기관지인 <천태종보>는 1975년 5월1일 창간(1979년 6월15일 문공부 정기간행물 등록)됐으며, 한국불교태고종에서 발행하는 <한국불교>는 1988년 10월20일 문공부에 등록됐다. 재단법인 화쟁교원에서 종파를 초월한 범 불교지를 표방하며 1982년 창간한 불교회보는 1986년 <주간불교>로 제호를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1987년‘6.29선언’이후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매체 창간이 자유로와짐에 따라 우리 불교계도 신문들이 많이 늘어났다.

1988년 5월16일 <법보신문>이 창간되었으며, 1990년엔 <대한불교>가 선을 보였다. 부산에 본사가 있는 <대한불교>는 1991년 부산불교신문사와 흡수·합병되어 제작해오다가 2004년 11월부터 내부사정으로 휴간상태에 있다. <한라불교>는 1989년 5월 창간된 제주법보와 동년 9월 창간된 <제주불교>가 통합되어 1990년 7월 창간됐다. <한라불교>는 2001년 제호를 <정토불교>로 변경했다.1989년 3월 창간된 <해동불교>는 재정난으로 1995년 10월 발행이 중단되었으며, 같은해 12월 창간한 <법무교화신문>은 1995년 <시대불?gt;로 제호를 바꾸었으나 2000년 7월에 폐간됐다.

1994년 창간한 <현대불교>는 재단법인 조계종 한마음선원에서 출자해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대구에 본사를 두고 1999년 1월에 창간한 <만불신문>은 불교계 최초로 신문이나 잡지 등 인쇄매체의 발행부수를 조사하고 인증하는 기관인 ABC (Audit Bureau of Circulations)에 가입하고 있다.
그 외에도 지방 불교신문, 사찰단위 신문 등이 다수 발행되었으나 재정 등의 이유로 대부분 발행이 중단되거나 휴간상태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 불교계 신문의 문제점

(1) 운영적 측면

불교계 신문들의 소유구조를 보면 <현대불교>는 주식회사이고, <주간불교>는 재단법인, <법보신문>은 사찰 소유이다. <불교신문>, <밀교신문>, <한국불교>는 조계종, 진각종, 태고종에 소속된 기관지다. 이 가운데 전문경영인이 사장을 맡고 있는 <현대불교>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신문사가 스님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불교계 신문은 바로 ‘전문 경영의 부재’라는 점에서 문제 발생의 소지를 안고 있다.5)

불교계 신문 가운데 대외적으로 자본금이 발표된 신문은 <현대불교신문사(100억원)>뿐이다.6)
불교계 신문들의 발행주기를 보면 <불교신문>이 주2회, <현대불교> ·<법보신문>·<주간불교>는 주1회, <한국불교>는 순간, <만불신문>과 <밀교신문>은 격주간으로 발행하고 있다.

유무가의 경우는 <한국불교>와 <밀교신문>만 각각 태고종과 진각종의 기관지로서 무가지이고, 나머지는 모두 유가지이다.
발행면수는 통상 <불교신문>과 <현대불교>가 32면(불교신문은 주1회로 환산한 면수임)을 발행하고, <법보신문> 24면, <주간불교> 12면이다. 순간인 <한국불교>는 12면, 격주간으로는 <만불신문> 28면, <밀교신문> 16면 등이다.

불교계 신문들의 발행부수는 <만불신문>이 8만부로 가장 많고, <현대불교> 7만5천부, <법보신문>과 <주간불교> 각 5만부, <불교신문> 4만부, <한국불교> 2만부, <밀교신문> 1만5천부로 되어 있다.7)
그러나 신문사들이 발표하는 발행부수는 광고주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일뿐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적다. 무가지를 제외한다면 불교계 신문 시장이 얼마나 열악한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8)

또한 불교언론의 경영현실을 보면 ‘문만 열면, 어떻게든 꾸려가겠지’하는 안이한 발상이 대부분이다. 한 주간신문의 경우, 발행부수를 보면 20년 가까이 부증불감(不增不減)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9)
이러한 불교계 신문의 문제점은 결국 경영진들이 발행목적과는 달리 신문을 불교 전문지로서의 역할보다는 사실(fact)에 대한 단순 보도가 마치 언론의 기능인 것처럼 인식,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무목적성, 무계획성에 있다고 할 것이다.

(2) 편집제작적 측면

불교의 포교매체를 접하는 대중은 일반적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교라는 특정된 주제의 정보와 지식, 또는 교양을 얻기 위해 불교관련 매체에 접근한다. 따라서 불교매체는 구독자나 시청자들에게 보다 전문화된 내용의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일간지와 주간지를 대하는 취재원들의 태도, 취재에서 편집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주간지 시스템과 맡은 부분만 담당하면 되는 일간지 시스템과의 차이에서 오는 한계 등이 불교언론 종사자들에게는 큰 부담일 수 있다.10)

편집제작상의 문제에서 우선 떠오르는 것은 불교언론이 가지고 있는 ‘무특성의 특성’이다. 불교언론은 신문이나 잡지를 막론하고 기획이나 편집, 기사에서 특성이 없다는 것이다. 지면 구성이나 내용, 기획물은 말할 것도 없고 판형·편집체제·필자까지도 비슷해 결국은 독자만 잃게 된다고 우려하기도 한다.11)
불교계 신문도 시장경제 원리에서 볼 때 경쟁 관계가 불가피하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 신문마다 자기 특유의 칼라가 있어야 할 것이다. 거의 모든 신문들의 내용이 대동소이하다면 발전하기 어렵다. 독자가 불교인이라는 일정한 범위내에 한정되어 있다면 그들이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예측하여 신문의 편집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12)

(3) 사회적 측면

신문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사명은 신문윤리강령에 나타나 있듯이 자유, 책임, 보도와 평론의 태도, 독립성, 타인의 명예와 자유, 품격에 관한 것이다. 완전한 자유는 신문의 보도와 평론에서 비롯되며 신문이 사회의 공기로서 공중의 이익을 위하여 늘 정의편에 서서 공정·정확하여야 하며, 부도덕하여서는 안되고, 품위와 긍지를 가지고 저급한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신문도 예외는 아니다.13)

우리 불교계 신문도 사회적 사명을 다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그것은 언론매체는 포교의 가장 바람직한, 그리고 가장 효율적이며 필수적인 포교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불교계에서 많은 신문들이 창간되었거나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그 역할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한마디로 창간도 중요하지만 기존 매체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반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의 하나로 불교계와 불교인들이 언론매체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현대는 정보화사회이다. 대중매체가 인간생활에 필수조건으로 요구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이용한 포교활동을 극대화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불교를 발전시키는 첩경이고 또 다종교사회에 있어서 불교인의 입지를 넓혀가는 길이다.14)

3. 한국 불교계 신문의 전문성 강화 방안

1) 불교계 신문의 정체성 확립

한국 불교계 신문은 포교매체이면서 언론매체라는 이중성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다. 이같은 이중성은 한국 불교계 신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논란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즉, 불교계 신문이 포교매체로서 그 역할을 다한다면 홍보지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언론매체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다보면 불교 포교에 부정적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엇보다 신문의 발행목적과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다. 신문을 제작하는 주체는 사주나 경영진이지만, 신문이 제작되어 독자에게 전달되면 이미 그것은 공기로서 독자의 것이 된다. 때문에 누가 신문을 읽을 것인가 하는 독자층을 설정하고, 또 그들에게 어떤 정보를 전달하여 어떤 목적을 이룰 것인가의 문제가 먼저 검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설문조사기관을 통한 독자 분석 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이를 토대로 신문제작 시스템, 즉 편집분야·사업분야·생산분야에 대한 재편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처럼 종교간의 갈등과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발행 목적과 방향성이 확실하지 않으면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을 뿐만 아니라 전체 불교계까지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2) 기자 재교육과 전문성 확보

훌륭한 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과거에는 75%의 폭넓은 지식과 25%의 전문적 지식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화시대, 특히 전문지의 기자는 기본적인 지식 25%에 75%의 전문가적 지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 견해가 되고 있다.
불교계 신문기자의 전문화를 위한 활동과 노력은 다양한 측면에서 전개될 수 있다. 전문직이 되기 위한 여러가지 요인을 밝혀내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 즉 태도적 측면에서는 재교육을 통한 전문직업인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직업자율성을 확립해 나가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전문인으로서의 기자들의 자질 향상을 위한 재교육은 대체로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전문기자 지망생에게 기초지식과 실기를 가르치는 실무교육이며, 둘째는 중견언론인을 대상으로 하여 전문인화를 위해 일반교과목이나 전문지식을 중심으로 아카데믹한 분위기 속에서 교육시키는 일종의 전문화교육이다.
그러나 전문화를 위한 재교육이나 전문화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이들 인력들을 적극 활용하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으면 전문성은 무용지물이 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우선 엄정한 기자 선발과 기자들의 체계적인 연수교육을 통한 취재기자의 자질을 향상시키는 일이 급선무이며, 다음으로 이들 경력기자들이 전문성을 길러 불교 발전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범 불교적 차원에서 조성해 주어야 할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한번 기자면 영원한 기자로 대우하고 평생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기자로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우리 불교계 신문도 전문기자제가 활성화되고 정착될 때 비로소 신문이 불자들과 함께하고 사랑받는 포교지로 그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3) 불교계 신문의 게이트키퍼 기능 강화

일반적으로 신문의 사명은 사회적 공기로서 공중의 이익을 위하여 늘 정의의 편에 서서 공정하고 정확하여야 하며 품위와 긍지를 가지고 발행목적을 달성하는데 있다. 이와 같은 사명은 신문제작에 있어 나름대로의 게이트키핑 기능으로 작용한다. 보통 게이트키핑은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으로 구분된다. 불교계 신문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문제작의 영향력 행사 주체로 ‘데스크’나 ‘주필, 편집국장’, ‘자신의 언론관’, ‘경영진, 사주’ 등 주로 사내 요인을 크게 의식하고 있다. 또 불교계 신문기자들은 신문들이 쟁점을 피해가고 있다며 사주나 경영진으로부터 편집권의 독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자자신의 언론관’도 신문제작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신문제작의 1차적 게이트키퍼로서 기자들의 역할은 큰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불교계 신문은 ‘매우 주관적이고’, ‘자신의 경험, 태도, 기대 등에 기초한 가치판단에 의존’하는 기자들에 의해서, 또한 사내에서 영향력이 큰 간부들과 외부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게이트키핑을 거치고 있다. 따라서 내부에서도 기자와 간부사이의 갭(gap)을 해소하는 일, 즉 뉴스를 결정하고 보도하는 모든 과정들을 통합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그 일환으로 불교계 신문들도 일간지처럼 별도의 신문윤리강령을 마련하여 실천한다면 소기의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위해 ‘한국불교신문협회’등이 결성되어 나선다면 더 바랄나위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불교기자협회’를 활성화시켜 공동 모색의 발판을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아울러 내부적으로는 신문 보도의 원칙성과 공정성을 살리기 위한 ‘내부 보도지침’을 마련하여 실천한다면 그 자체가 일정부분 게이트키핑의 역할을 하게될 것이다.

4) 불교계 신문의 발전 방안

지금까지 우리 불교계 신문들이 안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점들을 조명해 보았다. 그리고 지적된 문제점들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지적된 사항들임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계 신문의 발전 방향을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첫째, 경영주의 인식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불교계 신문은 어디까지나 불교 포교의 대중교화를 그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거기에는 불교를 바르게 알리고 불교가 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역할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불교계 신문의 경영은 신심있는 불자가 맡아야 하고, 때로는 과감한 투자도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신문을 사유화나 사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으려는 자세의 견지가 중요하다.

둘째, 기자들의 자질 향상과 전문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신문의 제작은 기자 손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기자들의 자질 향상은 불교신문의 전문화로 이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신문사 차원에서 기자들에 대한 재교육이 정기적으로 실시되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관련전문대학원으로의 위탁교육도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신문제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하고 신분을 보장해 줌으로써 전문성을 지닌 기자들이 정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아울러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성을 가진 전문기자의 영입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전문 편집 등으로 신문 제작수준을 향상시켜 나가야 한다. 불교계 신문이 과거에 비해 질이 많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한편에서는 ‘그 신문이 그 신문’이라는 무특성의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불교 소식을 교환하기 위한 것인지, 불법을 홍포하기 위한 것인지, 또는 교리에 대한 교양이나 지식을 높이기 위한 것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독자층 설정과 함께 색깔있는 기획과 편집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불교계 신문 상호간의 정보 교류와 권익 창출을 위한 교류를 활성화해 나가야 한다. 적은 인원으로 많은 양의 업무를 수행하는 불교계 신문의 구조적 특성상 정보교류는 그나마 업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이다. 이를 위한 장치로는 기존의 ‘불교기자협회’의 활성화가 요구되며, 거기에서 교육프로그램 개발이라든가 회보 제작 등을 통해 서로의 상생과 공존을 모색할 수 있으리라 본다.

다섯째는 불자들을 위한 서비스가 다양하게 개발되어야 한다. 불교계 신문들의 발행부수가 크게 늘지 않는 것은 신문의 질적인 면도 크게 작용하지만, 운영적인 측면에서 가시적인 노력이 보이질 않기 때문이다. 즉 독자에 대한 배려나 피드백이 거의 없고 신문의 제작과 배포가 일방 통행식으로 되어 있는 구조적 모순이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불교계 신문들이 간헐적으로 몇몇 행사들을 주관하고 있지만, 그 규모나 운영면에서 불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아직도 불교계가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식의 안일한 현실 대처에서 나온 결과라 하겠다.

여섯째는 ‘불교언론기금’을 만들었으면 한다. 이 기금은 불교계 신문기자들의 연구나 연수, 그리고 재교육과 기타 복리증진에 유용하게 사용됨으로써 불교계 전체 언론인의 자질 향상과 전문성 제고, 사기진작 등을 가져오는 효과가 기대된다. 기금의 설립이나 조성은 별도의 연구를 거쳐 종단협의회나 불교관련 단체, 기업, 불자 등과 정부 지원 등의 협조를 얻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곱번째 신문사의 사주나 광고주, 기자들의 언론관 등이 신문발행의 목적에서 일탈하지 않도록 그 역할과 책임을 명시한 기존의 ‘한국불교신문 윤리강령’을 보완 제정했으면 한다. 이와 함께 기자들이 취재나 신문 제작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보도편람이 제작되어야 할 것이며, 불교계 신문의 제작환경과 기사 내용등에 대한 감시기능으로서 ‘불교기자협회보’ 같은 매체의 등장도 불교계 신문 발전을 위한 요소가 될 것이다.

5. 맺는 말

신문시장의 변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었다. 언론기본법이 폐지되고 정기간행물등록법이 제정되면서 시장진입 제한이 풀렸고 한국 신문산업은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접어든 것이다. 특히 신문산업은 일간종합지 뿐만아니라 전문지의 대량 출현을 가져왔다. 한국 불교계도 불법 홍포, 정법구현 등을 내세우며 많은 불교계 신문들이 발행되고 있다.

불교계 신문들의 일차적 기능은 불법 홍포이다. ‘한 장의 신문은 한 사람의 포교사’라는 한 신문사의 캐치프레이즈가 말해주듯이 불교계 신문은 시간성과 공간성을 넘어 다중의 불특정 불자들에게 불교를 홍포하는데 가장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불교계 신문들의 제작 형태를 보면 아직도 체계적이지 못하고, 장기적 안목에서의 투자도 미비한 것 같다.
그동안 많은 불교계 신문들이 출현하여 불법의 홍포, 저널리즘적 감시와 계도 기능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불교계 일각에서는 아직도 ‘그 신문이 그 신문’이라는 쓴소리를 하고 있고, 적극적인 독자 확보 노력없이 신문제작에만 매달리는 인상을 주어 발행부수가 거의 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그 원인으로는 흔히 말하는 경영마인드 부족, 전문인력 육성 및 지원 외면, 기자의 직업의식 결여 및 정신적 황폐화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기자는 뉴스 가치 판단의 제1차적 게이트키퍼라는 점에서 그 역할이 중요하다. 게이트키퍼의 개성, 배경, 가치, 역할 개념, 경험 등과 같은 개인 특성이 메시지를 어떻게 평가하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뉴스 처리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제2차적 게이트키퍼로서 데스크들이 있지만, 적은 인원으로 취재와 편집을 겸하는 전문지들의 구조적 특성상 실제 역할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수시, 또는 정기적인 교육을 통해 기자의 자질 개발 기회를 부여하여 2차, 또는 3차 게이트키핑을 거치지 않더라도 그 기사가 일정 부분 요건을 충족시키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또한 신문 종사자들의 신분 보장과 처우개선을 통해 경력, 또는 전문기자들이 많이 양성되어 불교계 신문들의 질을 높여 나가야 한다.

불교계 신문들을 보면 그 역사와 종수만큼이나 많은 불교 언론인들이 배출되었음에도 조로현상이 심하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이다. 잘 키워놓은 인재들은 제대로 활동할 공간을 잃어버리고, 신문들은 매체간의 차별화, 전문화의 기회를 제대로 활용해보지도 못하는 등 답보상태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 불교계 신문들의 현주소라면 한국불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엄청난 손실이다.

이러한 지적들은 결국 ‘경영자들은 신문을 발행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하고, 기자들은 신문제작의 일차적 게이트키퍼라는 사명감과 자부감으로 자신의 전문분야를 개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대기자, 전문기자로 거듭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경계가 될 것이다.

또한 불자들은 다종교시대라는 경쟁속에서 불교계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지원, 협력 세력으로 불교계 신문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불자들이야 말로 불교계 신문들의 보도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실질적인 추동세력인 것이다.

불교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불교계 신문들이 변신을 해야하고, 그 변신을 위해 불교계 신문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불교계 신문의 발전은 먼저 ‘우리 신문사’만 발전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된다. 여러 신문사가 경쟁해야만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고 다양한 독자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계 신문의 공동 발전을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모색해나가는 것이 불교계 신문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본고는 동국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신문방송학과 2004학년도 2학기 석사학위 청구논문으로 필자가 직접 내용을 요약 정리했다.

신관호
동국대 보현회장, 한국대학홍보협의회 고문.동국대 경제학과 및 동 언론정보대학원 졸업. 동국대 홍보실장을 거쳐 현재 동 대외협력담당관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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