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욱 청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불교는 유교, 도교와 더불어 동아시아 문화의 근간을 이루어 왔다. 방대한 경전 체계와 교리를 통해 동아시아인의 행동과 정신세계를 이끌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역으로 동아시아인들의 가치관과 행동 양식은 그들의 종교에 삼투하여 그 발전과 변형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도 사실이다. 종교와 신앙 집단들은 상보적으로 존재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역학 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본고에서는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우리 한국의 불교문학 속에 형상화 되어 있는 여성들의 위치와 의미를 살펴보려고 한다. 한국의 불교문학은 한반도와 한국 문화라는 지역적, 해석적 한계를 가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불교 자체가 동아시아 전역, 나아가 전지구적인 가치와 영향력을 가진 만큼 보편적인 불교문학 속의 여성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문자로 그 교리를 기록하는 행위가 실제적으로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의 기반 아래 진행된 만큼 종교문학 속의 여성상은 곧 그 문화와 민족이 지니고 있는 여성관과도 그대로 접맥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점에서 불교문학 속의 여성의 위상을 살펴보는 일은 또 다른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이를 위해 우선 몇 가지 개론적인 논의부터 시작하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구상의 모든 지역과 문화 속에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종교와 신앙이 전해지고 있다. 신도의 양이나 그 종교가 지닌 외적인 힘에 관계없이 종교는 그 자체로 합목적적이고 가치중립적이다. 인종적, 문화적 편견 이상으로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종교적 편견임을 생각할 때 일부 종교에 의해 강요되는 종교 우월론은 자칫 인류에게 거대한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

서양을 대표하고 있는 종교는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를 포함한) 신앙이다. 그들의 교리 속에 드러나는 여성의 모습은 어떤지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기본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여성을 죄악의 원천으로 파악하고 있다. 남성은 우월하고 여성은 열등하면서 그들의 사회에 재앙과 불행을 제공하는 존재로 여겨왔던 것으로 보인다. 주로 신앙적 차원을 지배한 헤브라이즘에서의 여성은 서양인에게 씻을 수 없는 죄의식인 원죄(原罪) 의식을 심어준 장본인으로 규정되어 있다. 여성인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서양인들은 낙원에서 추방되었고, 서양인 최초의 어머니가 저지른 이 죄악은 그 후손들에게 태어나면서 죄인이라는 끔찍하고도 무거운 짐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여기서 왜 하필이면 헤브라이즘에서는 그 죄악의 원인제공자를 남성인 아담이 아니고 여성으로 몰아갔는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곧 그들의 여성관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 교부철학의 아버지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에게 올리는 기도에서 자신을 생명체로, 인간으로, 남성으로 태어나게 해준 것을 감사해 하는 점에서도 여성에 대한 편견은 확인된다. 또한 중세의 마녀 사냥을 비롯해서 수많은 기적담(奇蹟譚)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윤리적 타락과 신앙적 갱생(更生)이라는 수레바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창녀에서 성녀로 개과천선한 막달라 마리아나 굳이 처녀성을 지키도록 강요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예를 통해서도 그들의 여성 혐오는 엄연히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지적, 문화적 풍토는 헬레니즘 쪽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서양 철학의 원천인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지독한 악처로 묘사되어 있다. 악처가 없이는 철학도 없다는 궤변일까? 여성과의 혼인은 곧 고행과 득도의 길이라는 묘한 암시가 숨겨져 있는 듯하다. 또 그 제자인 플라톤은 여성을 ‘영혼이 없는 존재’로 매도하면서 여성들에게 사회적, 정치적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관습에 동의한다. 이런 씨앗들은 서양의 지적 전통에 뿌리 깊은 여성 혐오의 전통으로 꽃을 피우게 된다. 서양 철학사에서 상당수의 철학자들이 독신이거나 동성애에 빠졌던 사실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고 생각된다.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부분적으로 변하긴 했지만 가면을 한 꺼풀 벗기면 여성을 도구화하고 여성성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는 서양 문화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런 서양의 사정과 비교할 때 동양의 종교는 어떤 궤적을 그리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동양에서는 여성 차별이 보편적이었다고 말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이것을 ‘여성 잔혹사’란 말로 표현했겠는가. 물론 비판의 일부는 사실이긴 하지만, 제도와 이념의 괴리는 서양의 예를 보더라도 잘 드러난다.

유교의 창시자이자 동양 윤리를 집대성한 공자는 “아녀자와 소인배는 곁에 두기가 쉽지 않다. 가깝게 대해주면 불손해지고, 멀리하면 곧 원망을 한다.(子曰 唯女子與小人이 爲難養也니 近之則不孫하고 遠之則怨)”(《논어》 양화편)고 하여 동양 문화사에 여성 폄하의 단초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수많은 제자 가운데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하여 동양사에서 여성의 차별은 상당히 공공연하게 그리고 제도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곧 여성 혐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동양사의 다른 부분들을 읽어보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권익은 상당 부분 보호받았으며, 여성성 자체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가지는 않았음을 알게 된다. 대체적으로 부덕(婦德)은 동양 문화와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미덕의 하나였다.

그것은 도교에서도 마찬가지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여성성을 숭앙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노자가 지었다는 『도덕경(道德經)』은 도(道)를 설명하면서 무수히 많은 여성 이미지들을 동원했다. 노자는 여성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여 내면의 아름다움을 망각하는 일을 경계했고, 현빈(玄牝, 이상한 어머니)이라는 말로 부드럽고 유약하지만 만물을 창조하고 기르는 여성의 힘을 도와 동일화한다. 물의 이미지나 계곡의 이미지 등은 여전히 여성성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불교는 또 어떤가? 만물실유불성(萬物悉有佛性, 모든 존재는 다 부처가 될 바탕을 가지고 있다)을 선언함으로써 이미 남녀를 넘어서서 존재의 평등성을 선언했고, 이 우주 속에서 오로지 나만이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는 부처의 외침은 어떤 외부적 상황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할 존재의 절대성을 인정한 발언이었다. 대부분의 보살(菩薩)들은 여성들이며, 부처조차도 여성에 가깝게 묘사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고행상(苦行像)을 제외한 대부분의 불상이 지닌 외형은 풍만한 여성의 몸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들에도 일정 정도 부분을 보고 전체를 판단한, 오해와 편견이 스며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상당 부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화두를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동양 문화에 대한 근원을 알 수 없는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진면모를 봐야 할 시점이 많이 지난 것 같다.

이런 개론적인 검토를 전제로 하면서 이제부터 한국의 불교문학 속에 보이는 여성상은 어떤지 살피도록 하겠다. 미리 밝혀야 할 사실은 본고에서 말하는 ‘불교문학’은 경전문학(經典文學)이 아니라는 점이다. 경전에 대해서라면 필자는 전공자가 아니니 논의할 자격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불교문학은 불교의 교리와 행동 양식, 가치관을 기반으로 해서 창작된 다양한 형태의 문학 작품들을 일컫는 것이 된다. 다만 논의를 구체화하고 기술의 편의를 위해 세 시기, 즉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그리고 현대에 창작된 대표적인 작품들을 대상으로 국한시켰다. 고려시대에서는 일연선사(一然禪師, 1206-1289)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택했고, 조선시대에서는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금오신화(金鰲新話)》와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의 《구운몽(九雲夢)》을 논의할 것이며, 현대의 작품으로는 한용운(韓龍雲, 1879-1944)과 서정주(徐廷柱, 1915-2000)의 시에 나타난 여성 화자를 검토할 것이다.

숭고한 여신(女神)들의 세계 - 삼국유사

『삼국유사』를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이 책에는 대단히 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신분으로 보아도 고귀한 여왕부터 비구니 스님, 비천한 노비까지 한 사회의 모든 여성 구성원들이 다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삼국유사》는 신분으로만 따져도 이미 해방된 열린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비천한 신분으로 등장하는 여성이라면 종이었던 욱면(郁面)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신분은 보잘 것 없었지만 겸손하고 지고한 신앙심으로 인해 부처의 몸으로 변신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그 구절을 읽어보자. <감통편(感通篇)>에 <여종 욱면이 염불하여 서쪽 하늘로 올라가다(郁面婢念佛西昇)>에 나온다.

경덕왕(景德王) 때 강주(康州) 지방의 남자 신도 수십 명이 정성껏 서방(西方)에 구해서 고을의 경계에 미타사(彌陀寺)를 세우고 만일(萬日)을 기약하여 계(契)를 만들었다. 이때 아간(阿干) 귀진(貴珍)의 집에 계집종 하나가 있었는데 이름을 욱면(郁面)이라 했다. 그녀는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마당에 선 채 스님들을 따라 염불(念佛)했다.
주인 귀진은 그녀가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는 것을 보고 미워해서 매일 곡식 두 섬을 주어 하룻밤 동안에 다 찧으라 했다. 욱면은 초저녁에 이를 다 찧어 놓고 절에 가서 염불을 했는데 밤낮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녀는 뜰 좌우에 긴 말뚝을 세워두고 손바닥을 뚫어 노끈에 꿴 뒤 말뚝에 메고는 합장(合掌)하면서 좌우로 흔들면서 스스로를 격려했다. 그 때 하늘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욱면 낭자는 불당에 들어가 염불하라.”
절의 스님들이 이 말을 듣고 그녀에게 불당에 들어가 정진(精進)하도록 했다. 얼마 안 되어 하늘의 음악소리가 서쪽에서 들려오더니 욱면은 몸을 솟구쳐 집 대들보를 뚫고 올라가 서쪽 교외(郊外)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해골을 버리고 부처님 몸으로 변하여 연화대(蓮化臺)에 앉아 큰 광명을 발하면서 서서히 가버렸는데, 음악소리는 한참 동안 하늘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불당에는 지금도 구멍이 뚫어진 곳이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는 이 일화를 소개한 뒤 욱면의 전생담을 소개하여, 신이한 이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그녀의 이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받은 일까지 소상하게 기술했다. 관음보살의 현신이었던 팔진(八珍)의 무리 가운데 계(戒)를 얻지 못한 사람이 축생도에 떨어져 부석사(浮石寺)의 소가 되었다가, 불경을 지고 간 공덕으로 인해 사람으로 태어나 욱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쉬지 않고 염불을 거듭해서 9년만에 집의 들보를 뚫고 떠나는 이적을 보였다는 것이다. 또 욱면이 살던 집을 귀진이 희사하여 법왕사(法王寺)라는 절을 짓고, 이후 회경대사(懷鏡大師)가 중창해서 이름난 절이 되었다고 적어 놓았다. 욱면의 왕생은 현신(現身)으로 극락에 간다는 신라 정토설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언뜻 우리에게 신데렐라 이야기를 연상하게 만든다. 마음씨 착하고 예쁜 신데렐라가 계모와 의붓언니의 잔인한 학대를 받지만 초자연적인 존재가 그녀를 돕고, 왕자가 나타나 그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함으로써 운명이 뒤바뀐다는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설화다. 우리의 고전 소설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이나 《콩쥐팥쥐》 이야기도 이런 계통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세속의 고난을 극복하고 고귀한 신분으로 승화한다거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원한을 갚는다는 구조 등이 아주 비슷하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설화에서 주인공은 초자연적인 존재의 도움을 통해 시련을 극복하는 반면 욱면 이야기는 그 자신의 숭고한 신앙과 근면성이 이를 대신한다. 앞의 설화들이 타력신앙(他力信仰)적인 요소가 강하다면 욱면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자력신앙(自力信仰)이다. 하늘에서 그녀를 법당에 들이게 하라는 명령이 내려지고 음악 소리가 서쪽에서 들려온 것은 기적이라기보다는 욱면의 독실한 노력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자력신앙에 의해 위기를 극복하고 위대한 불성을 실현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여러 편이 전하고 있다.

분황사 천수관음(千手觀音)에게 빌어 눈먼 아이의 시력을 회복한 어머니 희명(希明)이 있고, 인간과의 소중한 인연을 지키고 피붙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살신성인(殺身成仁)을 이룩한 범 처녀 이야기도 같은 예에 속한다고 하겠다. 이들은 모두 신분이 비속한 계층에 속했지만, 누구보다 숭고한 언행으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보살이 여성의 몸을 빌려 장애에 빠진 구도자들의 성불을 인도하거나, 스스로 장애로 등장하여 미망의 사슬을 벗겨주는 이야기도 『삼국유사』에 많이 보이는 사례다.

<탑상편(塔像篇)>에 등장하는 두 구도승 노힐부득(努夫得)과 달달박박(朴朴)을 도와 대보리(大菩提)의 길로 인도한 이는 처녀로 환생한 관음보살이었다. 그녀는 두 사람의 근기와 수련 정도를 시험하여 궁극적으로 두 사람 모두를 부처가 되도록 했던 것이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자신의 몸을 방편으로 삼아 두 사람을 시험한다. 달달박박은 그녀를 매몰차게 내치고, 노힐부득은 자비심으로 감싸는데, 이는 두 사람의 수행 방식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 성품의 우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즉 수행의 두 방편이 어떤 모습인가를 두 사람의 태도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때로는 강한 모습으로 때로는 부드러운 모습으로 정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표상하는 예다. 두 사람 모두 부처가 되어 서방 세계로 갔다는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고귀한 신분의 관음보살은 비천한 여성의 몸으로 화현해서 두 구도자를 해탈의 경지로 이끌고 있다. 무작정 여성을 이상화시키지도 않았지만 비속한 인격으로 격하시키지도 않은 중세 불교의 여성관이 잘 드러난 예라고 하겠다.

이런 여성의 위치를 좀더 능동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예가 또 있다. <감통편>에 나오는 광덕(廣德)과 엄장(嚴莊) 이야기가 그것이다. 남편의 수도 정진을 위해 10여 년을 뒷바라지하고 마침내 남편을 서방 세계로 인도한 다음, 음욕(淫慾)에서 벗어나지 못한 엄장마저 깨치게 만들어 서방정토로 왕생하게 만든다. 그녀의 세속 신분은 고작 분황사의 종이었지만, 사실은 관음보살 19응신(應身)의 하나였다. <탑상편>에 등장하는 조신(調信)의 꿈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태수 김흔공의 딸 역시 미망에 허덕이는 조신을 구원하기위해 관음보살이 현신한 것이었다.
역시 <탑상편> 같은 조에 나오는, 낙산사(洛山寺) 관음 성전에 얽힌, 원효대사와 두 여인의 이야기도 그런 관음의 현신이 소재가 된 예라고 하겠다.

그 후 원효법사(元曉法師)가 뒤이어 와서 이곳에 예(禮)를 올리려 했다. 처음에 남쪽 교외에 이르자 논 가운데 흰 옷을 입은 여인이 벼를 베고 있었다. 법사가 희롱삼아 그 벼를 달라고 청하니, 여인은 벼가 잘 영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다시 가다가 다리 밑에 이르렀는데, 한 여인이 월수백(月水帛, 개짐)을 빨고 있었다. 법사가 물을 달라고 청하자 여인은 그 더러운 물을 떠서 바쳤다. 법사(法師)는 그 물을 엎질러 버리고 다시 냇물을 떠서 마셨다.
이때 들 가운데 있는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그를 불러 말했다.

“제호(醍)스님은 쉬십시오.”
그리고는 갑자기 숨어 보이지 않는데 소나무 밑에는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있었다. 법사가 절에 이르러 관음보살상(觀音菩薩像)의 자리 밑을 보았더니 조금 전에 보았던 신발 한 짝이 벗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제야 전에 만난 성녀(聖女)가 관음의 진신(眞身)임을 알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 소나무를 관음송(觀音松)이라 불렀다. 법사는 성굴(聖窟)로 들어가 다시 관음의 진용(眞容)을 보려고 했지만 풍랑이 크게 일어나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떠나고 말았다.

이 이야기 속의 원효는 해골 속에 든 물을 마신 뒤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아 중국으로의 유학까지 포기한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등장한다. 아마도 이런 두 여성의 간곡한 인도가 있었기 때문에 후대의 위대한 승려 원효가 탄생했을 것이다.

이밖에도 꼭 불교와 관련은 없다 하더라도 《삼국유사》에는 숭고한 이념을 몸으로 실현해서 어두운 세상에 등불 같은 역할을 했던 여성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속진(俗塵)에 물든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여 본래의 불성과 염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무명(無明)의 그늘에서 벗어나 광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데 여성의 이러한 조력(助力)이 없었다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보살이 신격(神格)을 내포하고 있다면 이들은 여성들은 당연히 여신(女神)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색의 세계에 머물러 이성의 눈을 흐리게 하는 여성을 『삼국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색을 통해 색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고, 아직 개오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숭고한 여신의 세계를 표상한다. 그것이 곧 《삼국유사》가 보여주는 여성관이기도 한 것이다.

비속과 숭고의 길목에 선 여인들 - 《금오신화》와 《구운몽》

조선시대는 불교가 공공연하게 논의되기가 어려운 시기였다. 유교를 국시로 한 조선 왕조는 음으로 양으로 불교를 탄압했고, 성리학으로 무장한 유가 사대부들 역시 불교에 대한 접근을 차단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불교는 명맥을 유지하기에도 빠듯한 위가를 맞이한다. 오랜 신앙적 전통이 하루아침에 붕괴될 수는 없었고, 불교계 자체의 노력도 설득력을 얻어 현상유지는 했지만, 여러 모로 조선 불교사의 행로는 우울한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뛰어난 선승들은 속출했고, 또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문학은 계속 쓰여 졌다. 《안락국전(安樂國傳)》에서는 불교 설화들이 다양하게 원용되었고, 판소리계 소설인 《심청전》이나 《옹고집전》등에도 부분적인 불교의 영향을 엿볼 수 있지만, 가장 직접적으로 불교 이념이 구현된 작품은 역시 《금오신화》와 《구운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려시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 속에서 창작된 이들 작품은 형식에서도 설화나 민담의 구조를 벗어나 본격적인 소설 형태를 갖추었다.

《금오신화》는 우선 현실세계의 정변으로 인해 크게 상처를 입은 작자 김시습이 문학을 통해 그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을 읽으면 세 편이 이승의 빼어난 재능을 지닌 문사(文士)와 정숙하지만 유명을 달리한 요조숙녀와의 사랑을 구가하고 있다. 그리고 공간적인 배경 역시 송도(松都)거나 평양(平壤), 경주(慶州) 등과 같은 옛 왕조의 도읍지였다. 또 주인공이 방문하게 되는 장소 역시 남쪽 저승인 염부주(炎浮洲)거나 용궁(龍宮) 등이었다. 산 자의 세상과 죽은 자 또는 초현실계의 인물들이 밀접하게 관련을 맺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장치들을 통해 우리는 김시습이 이상적인 군주였던 세종(世宗)을 향한 충혼(忠魂)을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교 국가였던 조선의 현실 속에서 완성된 작품인 탓인지 《금오신화》는 불교적 색채가 다양하게 가미되어 있지만 뭔가 미진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작자 김시습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중 인물들이 추구하는 이상 역시 깨달음을 통해 해탈을 얻고 부처가 되어 서방 세계에 왕생하려는 숭고한 목표는 아니었다. 남자 주인공은 재색을 겸비한 미인을 좇고, 세속의 영광과 자신의 문재(文才)를 과시하는 일에 주로 흥미를 느낀다. 숭고한 이상은 상당히 희석되고 세속적인 욕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양상이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의 앞부분에 나오는 한 구절만 보아도 그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그 이튿날은 마침 3월 24일이었다. 이 마을에서는 만복사에 등불을 밝히고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는데, 남녀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날이 저물고 법회도 끝나자 사람들이 드물어졌다. 양생(梁生)이 소매 속에서 저포를 꺼내어 부처님 앞에다 던지면서 말했다.

“제가 오늘 부처님을 모시고 저포놀이를 하여 볼까 합니다. 만약 제가 지면 법연(法筵)을 차려서 부처님께 갚아 드리겠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지시면 아름다운 여인을 얻어서 제 소원을 이루게 하여 주십시오.”
빌기를 마치고 곧 저포를 던지자, 양생이 과연 이겼다. 그래서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말했다.
“인연이 이미 정해졌으니, 속이시면 안 됩니다.”

양생은 불좌(佛座) 뒤에 숨어서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다. 얼마 뒤에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들어오는데, 나이는 열대여섯쯤 되어 보였다.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깨끗하게 차려 입었는데,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몸가짐이 마치 하늘의 선녀 같았다. 바라볼수록 얌전했다.

청춘의 나이에 아름다운 인연이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부처님과 좋은 인연을 조건으로 내기를 한 양생과 마찬가지로 불당에 들어온 이 여인이 부처님 앞에서 요구하는 것도 훌륭한 배필을 점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부처의 도움으로 인연을 맺어 서로의 소원을 풀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바란 소원은 이승에서 욕망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왜구의 침탈로 죽음을 당해 이승의 인간이 아니었던 여인조차 소원은 극락왕생이라기보다는 육욕의 충족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이미 《삼국유사》에서 보여주었던 숭고한 이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녀가 소개하는 친구들인 네 여인 역시 문벌 높고 시재(詩才)를 갖춘 귀족집 따님들이었다. 함께 시를 짓고 여흥을 즐기지만 나올 법한 불교적 화제는 없다. 두 사람의 이별 역시 세속적인 슬픔은 자아내지만 그 이상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맨 마지막 장면에서 여인이 하늘에서 양생을 향해 하는 말에서 그나마 불교적 구색을 갖출 뿐이다.

“저는 당신의 은혜를 입어 이미 다른 나라에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승과 저승이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도 이제 다시 정업(淨業)을 닦아 저와 함께 윤회를 벗어나십시오.”

숭고한 이상은 부수적인 과제로 떨어지고 오로지 이승에서의 인연이 끊어진 것에 대한 한없는 미련과 아쉬움이 작품의 전면에 나서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오히려 여성의 몸을 벗고 남성으로 화한 것에 감격한다.

이런 양상은 《구운몽》에 와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액자 소설 형태를 띠고 있는 《구운몽》은 《금오신화》보다는 좀더 불교적 이념에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세속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제자 성진(性眞)을 일깨우기 위해 육관대사(六觀大師)가 설정한 환몽의 세계를 경험한 뒤 그 욕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못가 다리 아래에서 수작과 희롱에 함께 어울린 팔선녀(八仙女)도 꿈속에서 여덟 명의 미녀로 환생해서 역시 성진이 환생한 양소유(楊少游)와 속세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사랑을 만끽한다.
《구운몽》의 구성은 90%가 환몽의 세상이고, 10% 정도가 각몽(覺夢)의 세계다. 환몽의 세상은 부귀영화의 논리가 지배하고, 각몽의 세계는 열반해탈의 이념이 지배한다. 수도자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길을 걷지 않고 타락의 나락에 빠졌을 때 오는 허망한 상실감을 주제로 삼고 있는 만큼 다양한 환락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소설적 장치이긴 하지만, 역시 그 정도가 지나치다. 그야말로 경계하는 것은 하나뿐이고 권하는 것은 백 가지나 되는, 풍일권백(諷一勸百)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양소유는 놀랄 만한 신통력과 뛰어난 글재주로 가는 곳마다 위기를 극복하고 미녀들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맺으면서 승승장구한다. 결국 그는 한 나라의 승상이 되어 두 명의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여섯 명의 미녀를 첩으로 거느리면서 세속적 영예의 극치에까지 다다른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약간의 갈등과 좌절이 갈 길을 막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더 큰 승리를 위한 장치 이상은 되지 못한다. 서로 속고 속이면서 대립하는 장면도 남녀간의 가벼운 시샘이나 충돌일 뿐 이들의 결연(結緣)에 장애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환몽의 세상에서 양소유를 비롯한 여덟 명의 미녀는 세속적 욕망이 가져올 불행이나 허망함에 대해 아무런 의구심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세속의 물질적 영화를 다 누린 양소유가 생의 황혼을 맞아 인생무상을 느끼면서 말하는 넋두리에서 비로소 이 소설의 숨겨진 주제가 드러난다.

천하에 세 가지 도가 있으니 유도(儒道)와 불교(佛敎), 선술(仙術)이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 오직 불교가 높고, 유도는 윤기(倫紀)를 밝히며 사업을 귀하게 여겨 이름을 후세에 전할 따름이고, 선술은 허망한 것에 가까워 옛날부터 흉내 내는 사람이 많았지만 마침내 징험을 얻지는 못했다. 이는 진시황과 현종황제의 사적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내(양소유)가 벼슬을 마친 후로 밤마다 꿈속에서 부처님께 배례하니, 이는 아마도 불가(佛家)의 연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 장차 장자방이 적송자(赤松子)를 따르는 소원을 이루고 남해에 가서 관세음보살을 찾으며, 오대산(五臺山)에 올라 문수보살을 만나 불사불멸(不死不滅)의 도를 얻어 인간 세계의 괴로움을 벗어나고자 한다. 다만 그대(여덟 미녀)들과 함께 한평생을 상종하다가 이제 멀리 이별해야 하니 비창한 마음이 자연 퉁소 속에서 나왔구나.

양소유는 애절한 피리 소리에 담긴 슬픈 가락의 연유를 묻는 여덟 미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결국 세속의 욕망이란 아무리 채워도 무상한 것이며, 진정한 삶의 길은 부처님께 귀의해 영원한 생명인 해탈의 길로 들어서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다. 올바른 깨달음이긴 하지만 세속의 욕망도 충족하고 내세의 행복도 얻겠다는 과분한 욕심이 묻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소설이란 양식 자체가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상상의 세계 속에서 실현시키는 특징이 있긴 하다. 그러나 두 작품은 모두 목적보다는 도구에 너무 지충하여 작가의 원래 창작 의도가 무엇인지 호도하는 위험성이 다분하다.

『금오신화』와 『구운몽』은 소설답게 세속적 욕망의 충족이라는 타락의 상황에서 궁극적으로는 물질적 욕망의 무의미함을 깨달아 종교적 갱생의 길로 나아가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 조선시대의 불교문학은 그 시대적 상황에 맞게 새로운 모습으로 변개한 것이다. 세태를 반영한 적절한 진화라고 볼 수도 있다. 더욱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성격이나 행동도 『삼국유사』에서의 그것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들은 남성들의 논리와 이익을 대변하는 기존의 교리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지는 않는다. 숭고한 이념 자체의 존엄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이익과 배치될 때는 과감하게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기존의 온화하고 온건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대안을 찾는 적극적인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양소유가 자신들을 희롱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록 강력하지는 않지만 동일한 방식으로 이에 대응합니다. 또 자신들을 불행에 빠뜨린 세력이라면 가차없이 응징에 나선다. 《금오신화》속의 여성들은 남성 주인공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세계로 이끌고 간다. 비록 이승과 저승이라는 절대적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손익을 따져 나에게 이롭게 처신하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두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조선조 후기에 등장하는 일련의 판소리계 소설 속의 여성들처럼 아주 적극적으로 윤리보다는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숭고한 세계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 아님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다. 비속한 삶도 중요하며 여성들의 제 자리 찾기도 어떤 이념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라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인식하고 있다. 이런 점이 조선조 중기에 등장한 불교계 소설 《금오신화》와 《구운몽》이 지닌 중요한 소설사적 의의의 하나라고 하겠다.

해탈을 향하여 번뇌를 넘어서
- 한용운과 서정주 시에서의 여성 화자

서구 문명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하는 20세기를 전후한 시기는 불교문학에도 변신을 요구하게 된다. 전통과 혁신이 충돌하면서 시대의 조류에 적응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차츰 전통적인 문학적 규범들이 머물 입지는 좁아졌고, 물 건너 온 새로운 개념과 형식을 갖춘 문학을 수용해서 적절하게 탈바꿈시키는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이 시기의 불교문학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라면 마땅히 만해 한용운과 미당 서정주를 빼놓을 수 없다. 두 사람은 모두 시인이었다. 그러나 한편 한용운은 승려의 신분이었고, 서정주 역시 오랜 기간 불교적 색채가 강한 공간을 살았다. 그리고 이들이 추구한 문학 속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짙게 깔려 있는데, 그것은 특히 불교적 반향 속에 어우러진다.

1926년에 간행된 한용운의 《님의 침묵(沈默)》에는 88편의 시 작품이 실려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일련의 시들은 심오한 불교적 비유가 녹아 있을 뿐 아니라 고도의 상징적 수법이 깔려 있는 서정시들이다. 그 속에는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민족에 대한 애정이 짙게 나타나 있기도 하다. 한용운은 진실과 정의가 부재하는 세상에서의 고통과 번민을 노래하고 있지만 이런 슬픔과 고뇌는 초월적인 희망과 의지로 승화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그는 작품 전편을 여성 화자의 목소리로 감쌈으로써 독특한 시적 분위기를 완성한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민족시인으로 활약한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시편에도 여성 화자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이 두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화자는 동일한 여성이면서도 각기 다른 개성의 목소리를 추구하고 있어 흥미를 더해준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작품의 정조(情操)를 이끌어가는 여성 화자는 ‘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간절하게 노래한다. 그러나 그 노래는 울림이 아주 크다. 그 중 한 편 <선사(禪師)의 설법(說法)>을 읽으면서 이를 살펴보자.

나는 선사(禪師)의 설법(說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苦痛)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질거우리라.”고 선사(禪師)는 큰 소리로 말하얏습니다.
그 선사(禪師)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이운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束縛)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해탈(大解脫)은 속박(束縛)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버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드렸읍니다.

속박이 곧 해방이라는 역설의 논리를 이 여성은 내세운다. 반상합도(反常合道)의 선적 논리가 아주 큰 진동으로 독자의 가슴에 와서 꽂힌다. 그녀는 선사조차도 이 깊은 이치를 제대로 깨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역설의 내면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님의 침묵》의 세계에 진정으로 접근했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이 시집에는 역설로 가득하다. 그리고 역설의 경험은 변화와 충격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인고(忍苦)의 세월을 이겨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이다. 선사로 대변되는 남성의 한계는 이런 변화와 충격에 빨리 적응하려고만 서두른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관조하거나 관망할 여유가 없다. 즉물적으로 반응하여 해결의 길을 모색하지만, 그것이 참다운 해결이 아님은 분명하다. 사랑의 쇠사슬에 묶인 육체가 받는 고통을 고통으로만 인식하는 물리학적 세계에서 그 속에 담긴 정신적 쾌락의 무게가 느껴질 수 없는 법이다.

<님의 침묵>에서도 여성은 이별의 고통을 당한다.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을 풀기보다는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현재의 이별이란 인(因)이 곧 다시 만날 미래의 과(果)로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하여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가 되는 것이다. 이런 역설의 세계를 뼈저리게 경험했을 때 대해탈의 순간은 찾아온다. 그녀는 화해와 굴종의 징검다리를 지혜롭게 건너면서 위대한 이념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다.

서정주의 시세계는 복잡하고 다기다양하다. 그가 우리 한국시사에 남긴 날갯짓은 셀 수 없는 방향으로 선회했을 뿐더러 한없이 넓은 하늘을 자유자재로 활강했다. 그의 시는 육체와 번뇌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를 모두 녹여버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사색의 공간을 창조하기도 했다. 육체에의 몰입과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는 간절한 몸부림을 우리는 그의 시에서 읽게 된다. 그 몸부림이 어디로 갈지 우리는 짐작할 수는 있지만 명제화시킬 수는 없다. 명제가 되어 버릴 때 그의 시는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는 누구보다 불교가 가진 미적 세계를 가장 잘 시화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덕여왕(善德女王)의 말씀>이란 시를 읽어보자.

짐(朕)의 무덤은 푸른 영(嶺) 위의 욕계(欲界) 제이천(第二天).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구름 엉기고, 비 터 잡는 데 - 그런 하늘 속.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너무들 인색치 말고
있는 사람은 병약자(病弱者)한테 시량(柴糧)도 더러 노느고
홀어미 홀아비들도 더러 찾아 위로코,
첨성대(瞻星臺) 위엔 첨성대(瞻星臺) 위엔 그중 실한 사내를 놔라.

살[肉體]의 일로써 살의 일로써 미친 사내에게는
살 닿는 것 중 그중 빛나는 황금(黃金) 팔찌를 그 가슴 위에,
그래도 그 어지러운 불이 다 스러지지 않거든
다스리는 노래는 바다 넘어서 하늘 끝까지.

하지만 사랑이거든
그것이 참말로 사랑이거든
서라벌 천년(千年)의 지혜(知慧)가 가꾼 국법(國法)보다도 국법(國法)의 불보다도
늘 항상 더 타고 있거라.

짐(朕)의 무덤은 푸른 영(嶺) 위의 욕계(欲界) 제이천(第二天).
피 예 있으니, 피 예 있으니, 어쩔 수 없이
구름 엉기고, 비 터 잡는 데 - 그런 하늘 속.

내 못 떠난다.

선덕여왕으로 구현된 작품 속의 여성 화자가 마지막으로 외치는 “내 못 떠난다.”는 절규는 이 시의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만인을 구제해야 할 군주에 자리를 지켜야 할 선덕여왕과 가장 인간적인 욕망을 이루지 못해 제 번뇌의 불길에 재가 되어 버린 지귀(志鬼)의 모습은 인간 세상의 지울 수 없는 갈등과 모순을 대변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국법보다 더 지엄하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녀는 이 갈등과 모순을 단번에 무화시켜 버린다. 몸은 죽을지라도 욕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혈연의 울타리에 갇혀 어쩔 수 없이 몸부림을 치지만, 그녀의 눈과 정신은 무욕계의 하늘을 향해 있다.

이 작품에서 여성 화자는 욕계의 삶 역시 우리가 긍정해야 할 현실임을 끊임없이 확인한다. 욕계를 부정하고 무욕계를 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 수용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여성은 고통스러워한다. 제 몸까지 불살라버리고서 무작정의 도약을 꿈꾸는 남성 지귀의 무모한 용기와는 달리 여성 선덕여왕은 그만큼 현명한 것이다. 문학에서 현명한 것이 반드시 좋은 미덕이 될 수는 없겠지만, 역설적으로 진정성이 담겨 있다.

두 시인은 오로지 불교적 이념을 지향하는 문학만 창작하지는 않았다. 또 그들의 문학 속에는 해답은 없다. 해답이 있고 대안이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두 시인이 바라본 세계에 그런 곳은 없었다. 그것이 ‘근대(近代)’의 삶이 가진 필연적인 한계다. 깊은 고민 없이 ‘사랑의 쇠사슬을 끊으라고’ 요구하는 선사나 사랑의 불꽃만으로 모든 모순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지귀의 신념은 완연히 가부장 중심 사회를 사는 남성의 폭력이자 월권이다. 두 시인의 시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두 여성은 성문을 부수고 성벽을 무너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잘 드러나지도 않고 옹색하지만 여유와 사색으로 가득한 그늘진 오솔길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이다. 그 길은 그렇게 멀지도 않다. 굳이 우리가 결론을 얻어낸다면 한용운의 여성이 조금 ‘해탈’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 있다면 서정주의 여성은 ‘속세’ 쪽에 한 발을 내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불교문학에 대한 논의는 아직 미답의 분야가 많고 미진한 부분도 많다. 사정이 그러니 불교문학 속의 여성의 위상을 점검하는 과제 역시 충분한 논의가 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접근의 초기 단계에서는 피상적인 논의도 귀중한 것이긴 하지만, 자칫 안이하게 결론을 맺을 위험성도 있다. 본고 역시 그런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불교문학은 우리 문학사 연구가 저지르고 만 전통 단절이나 이식문학론의 굴레에 크게 얽매여 있지는 않다. 불교라는 이념 자체가 그런 위험을 완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문학이 가진 내밀한 정체를 드러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 방법에 대해 입으로만 외치지 말고 몸으로 찾아가는 행동이 필요하다. 이 글을 쓰는 의의도 바로 그런 곳에 두고 싶다.

임종욱
청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동국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고려시대 문학의 연구》와 《운곡 원천석과 그의 문학》, 《한국 한문학의 이론과 양상》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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