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복 진주교대 교수

글의 실마리, 혹은 불교영화론

우리나라 영화의 경우에 있어서 불교의 의미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즉,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서로 상반되게 드러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충무로 영화가에서 불교영화는 흥행에 실패한다는 징크스가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거나, 은둔과 한의 정서를 바탕으로 불교의 기본적인 성격을 부각시키는 영화가 간헐적으로 만들어져 왔다거나, 영화계와 정치권력이 결탁하여 불교 소재의 호국 이념을 선양하는 영화를 통해 정권 안보나 반공 이데올로기에 봉사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거나 하는 것 등이 전자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있어서 불교의 의미가 한편으로 영화를 위한 불교가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불교를 위한 영화가 되기도 했던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마다 그 나라 특유의 장르영화가 있었다. 미국 영화 하면 한때 미국의 건국 이념을 알게 모르게 전파한 서부영화(웨스턴)가 있었고, 일본에는 사무라이 영화나 핑크 포르노·로망 포르노 하는 것이 있었고, 홍콩의 무술·권격 영화는 우리에게 영화의 오락적 수용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예컨대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 영화나 프랑스풍 필름 누아르 등과 같이, 우리 영화의 경우에 관한 한 우리의 정서와 우리의 독특한 삶의식을 담고 있는 장르영화가 있었느냐 하는 물음에 관해서라면, 다소간 회의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우리의 영화 가운데 그나마 한국적인 것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세칭 ‘불교영화’라는 사실에 이견이 없을 듯 싶다.

우리 영화사에서 불교영화가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비유컨대는 국가 대표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1) 해방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불교영화는 6. 25 때 월북하여 북한의 국책 선전영화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활동한 윤용규가 연출하고, 50년대의 남한에서 대표적인 감독으로 활동한 한형모가 촬영한 「마음의 고향」(1949)이다. 이것은 산사에 몸을 의탁한 동자승이 불공을 드리러오는 젊은 미망인에게 모정과 어머니에 대한 환상을 느끼게 됨으로써 마침내 그가 절을 떠나 생모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의 주제는 출세간이 아니라 입세간(入世間)이라고 하는 점에서 불교적 인생관의 역방향성에 놓여 있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고향」이 의미 있는 불교영화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사찰을 배경으로 재현된 시각적인 이미지가 전개되는 가운데 세속주의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의식을 제시하고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마음의 고향」과 같은 유의 불교영화는 소재적인 면에서 하나의 장르적인 전통을 이룩하였다고나 할까? 이와 같이 함세덕 원작을 영화화한 또 하나의 경우는 주경중 감독의 「동승」(2003)이라고 할 수 있다.

목가주의적인 천진성과 서정적인 것의 긴 여운 속에서 한국적인 풍광과 인간 보편의 정서를 동시에 성취해낼 수 있었던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승가(僧家)의 지원을 받으면서 사계의 아름다운 변화를 영상미로 승화시켰으며 여기에다 육친에의 그리움과 가족애라는 보편적인 휴머니티의 색조를 더했다는 점에서 국제 무대에서 매우 긍정적인 반응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불교적인 소재의 영화가 적잖이, B급 영화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은 돌이켜볼 때, 「동승」의 영화예술적인 진보 및 성취는 놀랄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70년대는 불교소재영화의 전성기였다. 원효대사나 이차돈 등과 같은 전통적인 승전(僧傳) 양식의 영화가 있었는가 하면 소박한 권선징악형 영화도 있었다. 「다정불심」(1967)으로 대표되는 역사적 사건 중심의 불교영화도 잇따라 제작되었으며, 「호국 팔만대장경」(1978) 같이 호국불교의 이념을 다룬 영화도 없지 않았다. 이 시대를 정치적으로 지배했던 박정희가 이승만 정부의 잠재적인 억불책으로부터 민심을 전환시키기 위해 불교소재영화를 장려한 측면이 있었다. 그의 통치 이념과 긴밀하게 관련되는 내용, 이를테면 국민적인 통합과 지도자의 인간적인 고독 등이 함축되어 있었다.

불교영화 중에서 불교소재영화의 미학적인 저급성이나 주제의식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했던 경우가 있었다. 이를테면 세 차례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진 「꿈」이 대표적이다. 영화 「꿈」은 삼국유사의 조신 설화와 이광수의 동명(同名) 원작을 이어받은 것, 구비문학에서 문자문학으로, 또 다시 영상문학으로 계승함으로써, 그것은 말하자면 영상 시대의 새로운 버전으로 거듭 태어나게 이르렀던 것이다. 신상옥 감독은 1955년과 1967년에 두 차례에 걸쳐 「꿈」을 영화화했다. 또한 배창호 감독은 1989년에 「꿈」을 리메이크했다. 두 사람의 「꿈」은 봄날로부터 시작하여 봄날로 끝나는, 소위 순환적인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가 애욕의 백일몽이 무상하다는 종교의 교술성이 드러나 있다면, 후자는 애욕의 문제보다는 관조의 세계, 도덕적인 엄숙함보다는 탐미적 영상과 인간의 내면풍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2)

개인적 구도의 문제를 사회적인 의미의 차원에서 해명하려고 한 두 편의 영화, 즉 한승원 원작, 임권택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아제」와, 고은 원작, 정지연 감독의「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는 사뭇 대조적이다. 전자는 몰역사적이고 탈세속적인 불교에 대한 반작용에 의해 그려졌다. 이에 반해 후자는 현실과 고립된 절의 생활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 가고 있다. 남성 편력의 경험을 가진 비구니의 삶, 혹은 사미승과 사미니 사이의 애틋한 사랑의 화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 금기시되어온 부분이라는 점에서 두 편의 영화는 신선함을 환기시키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편의 영화가 사회적인 의미를 획득해 가는 방향성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는 듯하다. 소설가 김인숙의, 전자에 관한 심층적인 읽기에서 보듯이, 전자는 사회적인 모습을 때고 있지만 개인적인 성격으로 귀결되고 만다.

이 영화는 절보다는 속세에 더 가깝고 종교보다는 사외에 더 가까운 영화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 순녀는 행자 시절에 사찰 관광객과 말하는 대화 중에서, 불교의 갈 길이 면벽수도만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또 미륵불상을 보며 그것이야말로 민중의 얼굴이 아니냐 하는 말을 함으로써 그의 세계관이 민중적이고 실천적인 것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녀의 이런 세계관을 빨치산 태생의 청년을 만나 파계를 당함으로써 그 실천의 계기를 맞이한 셈인데, 이후 순녀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순녀가 한 일이라고는 고작 개인적 구도의 차원에 지나지 않았다. (……) 순녀의 모습은 중생들과의 치열한 만남이 아니다. 순녀는 그 자신 스스로 중생이 되었을 뿐인 것이다.3)
 
이에 비해 「산산이 부서진 ……」은 개인적인 구도의 차원이 사회성을 얻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제 아제 ……」에서의 비구니의 환속과 「산산이 부서진 ……」에서의 사미 승의 환속은 다르다. 이 사미승은 세속과 단절된 개인적 구도가 민중의 삶과 어떠한 관련성을 맺게 되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면서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환속한다. 열반에 이르면서 남긴 노스님의 알쏭달쏭한 말이 이 영화의 주제를 집약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중생의 기쁨이 없는데, 어찌 나만 혼자 행복할 수 있는가?

김기영의 「파계」 : 성담론과 정치적 함의

영화 「꿈」과 「아제 아제 ……」와 「산산이 부서진 ……」등의 불교영화가 중간적인 단계의 수준을 성취한 것이라고 한다면, 이 위에 놓이게 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불교적인 구도(求道)의 영화라고 할 수 있으리라. 영화 미학에 있어서는 성취의 수준에 도달하고 불교의 사상적인 깊이를 드러내는 데 있어서는 구체적인 이미지로 재현되거나 재구성되어야 하는 것. 그런데 이 단계에 도달한 불교영화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면서 내밀하고도 심원하기까지 한 섹스의 문제에도 유연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된다.

전화(戰火) 속에서 헤매던 고아 침애(枕崖)는 서산사(西山寺)의 고승 무불당(無佛堂)에 구출되어 입산 수도하게 된다. 모든 일에 탁월해서 덕망 있는 젊은 승(僧)으로 성장한 침애는 임종에 가까운 고승의 법통까지 이어받을 소수의 후보로서 경합하게 되었다. 마지막 시련이 과해졌으니, 그것은 여성에 대한 진리 탐구였다. 고승은 그에게 니암(尼庵)의 절세의 미니(美尼) 묘혼(妙昏)을 접근시켜 인연을 맺게 했으나 침해는 재빨리 여성 고민을 청산하고 단식으로 수도를 해서 이 난관을 초월하여 이겨내고 말았다. 그러나 고승은 젊은 두 사랑 사이에 싹트는 사랑의 생명을 짓밟을 수가 없었다. 고승은 자신의 미숙과 언제나 정신적으로 범했던 파계의 정체를 거리낌 없이 제자 침애에게 보여줌으로써 침애의 불도 정신에 또 한번 큰 혼란을 주어 미니(美尼)와 속세로 떨어지게 했으니 법통은 마땅히 이어받을 다른 제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고승은 죽어 말이 없다. 그러나 그의 높은 자비심은 남은 불도(佛徒)에게 크게 빛났다.4)

앞의 인용문은 영화 「파계」가 개봉되었던 1974년에 어느 영화 잡지에 소개된 스토리 라인이다. 이 영화는 고은의 원작 소설을 김기영이 각색, 연출한 것이다. 주지하듯이, 김기영은 우리나라 영화사에서 작가주의의 성향이 가장 뚜렷한 감독의 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영화는 관객을 때로 혼미에 빠뜨린다. 그가 정서의 극단적인 과격성을 앞세우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주눅들게 하는 것은 예술적인 사기일 수도, 아니면 영화적인 것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일깨우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영화「파계」가 개봉될 당시에 제작사에서는 「화녀」와 「충녀」에 이은 충격적인 문제작이라고 광고했었다.

이 영화는 불교의 파계와 영화의 파격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 난해한 의미구조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혼미한 서사구조……. 영화는 마치 스튜디오의 지배력이 상실한 실험적인 독립영화와도 같다. 관객들은 대사 가운데 끊임없이 난무하고 있는 성담론이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다. 중견의 한 수도승은 젊은 승려에게 ‘건강한 사내라면 5분마다 여자 생각을 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거리낌없이 쏟아낸다. 또, 한 젊은 여승은 잠자리에 든 고승을 유혹한다. 그리고는, 법도 높은 스님이 여체가 몸에 닿았다 하여 흥분하면서 짐승처럼 몸에 열을 올리다니, 주지 자리를 내놓든가 목숨을 끊어 부끄러움을 청산하세요, 라고 꾸짖는다. 고승은 여승을 죽비로써 사정없이 구타한다. 불도야말로 성불구자가 되는 것을 연습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다.

영화 「파계」는 침애와 묘혼이라는 이름의 젊은 남녀승이 떠맡은 카르마의 결과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의 주안점은 두 사람이 불가피하게 감수해야만 한, 이를테면 이효인의 표현대로 ‘가혹한 섹스와 후유증이 가져다 준 파멸’5)에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영화에서의 과도한 섹스 장면은 없다. 이를 시각적으로 함축한 침해와 묘혼의 누드는 당시로는 다소 과격한 수준에 달했다. 비구니 묘혼은 끝내 어머니께 용서를 구한다는 소리를 외치면서 벼랑 아래로 추락해 죽는다.

이 영화에서 본능의 억압이 인간의 억압에 다르지 않다는 숨은 뜻에 착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인간의 억압이 자유의 탈각이라는 시대적인 문맥 속에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법통의 계승을 둘러싸고 승가(僧家)에서 권력투쟁을 어수선하게 일삼고 있다는 것은 유신 정부의 인권 탄압이 극심한 시대의 배경 속에서 어렵사리 얻어내고 있는 현실 정치의 알레고리가 아닌가 한다.

김기영 감독의 클로징 자막인 ‘지상에 행복이 넘쳐흐를 때를 기다리면서’가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이 지상의 행복이란, 다름 아니라 자유의 실현일 수도, 혹은 인권의 회복일 수도 있다. 젊은 남녀승이 분별없이 자행한 섹스, 그 컬트적인 신성모독은 정치적인 우상파괴를 적절히 함축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억압적인 종교의 계율이야말로 통제된 사회에 있어서의 정치적인 규율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권택의 「만다라」 : 성행위와 객승의 길떠나기

임권택 영화의 분수령이 되었던 「만다라」는 김성동의 동명(同名) 원작소설을 각색, 연출한 것이다. 종교적인 문제―특히 불교에 국한할 때 더욱 그러하겠지만―를 진지하게 다룬 문학 작품 중에서 일제 시대의 시집 「님의 침묵」이나 수필집 「무상」이래, 소설 「만다라」는 독서계의 비상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종교적인 관념보다는 묘사의 충실성에 작가의 역량을 한껏 기대고 있기 때문에 독자와의 공감의 폭이 넓을 수밖에 없다.

눈발이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하늘은 짙은 잿빛이었다. 눈송이는 부르짖으며 아우성치며 끝없는 생멸(生滅)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다함이 없는 중생의 팔만 사천 번뇌처럼 수천 수 만 송이의 만다라(曼陀羅)가 되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다.
부르르, 진저리를 치면서 나는 기계적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앞서 가는 지산의 바랑 위로 수북하게 눈이 쌓여 있고, 쌓여 있는 눈 위로 또 눈이 덮이고 있었다.6)

젊은 구도승 법운(안성기)은 인간 조건의 실존적 한계상황에 대한 해답을 불교의 가르침에서 찾기 위해 이미 출가한 터였다. 그의 출가와 고행은 그의 마음을 온전히 채우지 못한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땡초승 지산(전무송)과 잠시 도반이 됨으로써 삶의식이나 불교관에 있어서 변화가 생기게 된다. 이 변화는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는 동기가 되는 것.

감독 임권택은 이 영화를 두고 언젠가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의 한국인의 삶의 방식을, 방랑하는 승려의 걸음걸이의 속도로 응시하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었거니와, 그 당시 영화를 어느 정도 음미할 수 있었던 불교신도나, 불교에 관해 특별한 배타감을 갖지 않는 영화팬들이 갓 출범한 5공 정권에 의한 법난(法難)으로 무력해진 우리 불교를 애정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는 게 관객의 입장에서 본 변화라면 변화이다.

영화 「만다라」이전의 불교영화는 대부분이 성자형(聖者型) 범주에 포함된 것이었다. 김기영의 「파계」를 디딤돌로 하여 이 영화가 구도자형(求道者型) 이란 새로운 양식의 가능성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 사실이 일본을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사토 다다오(佐藤忠男)를 크게 감명케 하고 매료시켰다. 그는 이 영화를 본 후에 한국 영화에 큰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임권택 영화를 공부하기에 이른다.

장례식 비즈니스에 치우쳐 있어서 구도의 요소가 결여된 일본의 불교에 비해 그는 영화의 창을 통해 우리 불교의 구도적인 탈속 및 그 염결성을 감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법운이 찬바람 휘몰아치는 겨울 해변에서 좌선하는 아름다운 영상을 가리켜 영화 「만다라」의 명장면으로 손꼽았다.

법운이 견성에 도달한 성자여서가 아니라 견성으로 향해 수행하는 구도자여서 아름다운 것이다. 이 영화에 ‘색다른 것이 없는, 그저 양쪽에 나뭇잎이 떨어진 가로수가 죽 늘어서 있을 뿐인 시골길’7)로 묘사된 인상적인 명장면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수행의 ‘길(道)’을 암시하고 있는 상징적인 영상이다. 길이 끝난 곳에는 늘 새로움이 시작된다.

지산과 법운의 여로는 계속된다. 서울에 이르자 지산은 법운을 데리고 어느 뒷골목의 초과한 매춘가에 들른다. 과거에 물의를 일으킨 상대 여학생이 거기서 매춘부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산과 그녀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사이 좋은 부부처럼 자연스럽고 다정하게, 그러면서도 느긋하고 편안하게 포옹하고 몸을 섞는다. (……) 지금까지 나는 베드신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보아 왔지만, 그런 고귀한 정신적인 요소마저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장면을 손꼽을 정도로 걸출한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특별히 종교적인 문답 같은 것이 있을 리는 없지만, 일체의 명예나 허식을 버린 뒤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정한 위로의 마음이 있을 수 있다면, 설령 그것이 성행위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종교적 구도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8)

지나친 금욕주의는 지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국민에게 정신을 강요한다. 이때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황국신민이나 혹은 반공민주 사회의 건전한 시민으로서 통합된 국민 정신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불교에서도 육체성의 탈각이 부여한 금욕주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헌신하는 형국이 될 수 있다.

도시는 부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새벽이었는데도 길 위로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나는 정거장 쪽을 잠깐 바라 바라보다가, 차표를 찢어버렸다. 그리고 사람들 속으로 힘껏 달려갔다.9)

원작 소설의 끝판은 법운의 환속으로 귀결된다. 사찰 불교의 금욕주의에 대한 반발이랄까? 육체성의 아름다움이 지닌 비의(秘義)가 적이 감돈다. 한 비평가는 소설 「만다라」의 결말을 두고 소승적인 철저함에 숨막힐 듯한 아름다움이 있는 객승의 불교라고 표현된 바 있다.10) 법운의 환속은 이처럼 작가 김성동 자신의 환속에 대한 변명이면서, 정신과 계율을 맹목적으로 강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사찰 불교에 대한 비판의 의미심장한 상징인 것이기도 하다.

110. 길
멀리까지 곧게 내뻗은 길
피안으로 향하는 길인 듯 끝없이 뻗어 있는 그 길 위로 법운이 활기차게 걸어간다.
이윽고 점처럼 까맣게 멀어져 가는 법운의 뒷 모습…….11)

영화의 클로징 시퀀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법운은 원작의 경우처럼 환속하지 않고 수행을 위해 새롭게 길을 떠난다. 그의 길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원작이 서사적 마성(魔性)을 드러내고 있다면, 영화는 시적인 화해의 세계를 모색하고 있다. 원작에서 법운이 서른, 아니면 마흔 살 먹은 노창(老唱)과 섹스를 해대지만, 영화에서의 그는 수행자로서 꿋꿋한 위의를 보여준다. 영화에서의 애욕의 갈등은 지산의 몫이다. 승과 속이 서로 둘이 아니듯이 육체적인 쾌락도 영혼의 고통에 다름 아니리라. 김성동보다 임권택이 무언가 탄력성의 여운을 남긴 듯하다.

양윤호의 「유리」 : 성교, 그 에로스와 타나토스

박상륭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는 섹스의 주술적 의식, 수도자적인 고행의 경험으로 이해되는 방탕, 깨우침과 지복(至福)의 통로 따라가는 인간의 성욕 등을 문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볼린느 레야쥬의 「O의 이야기」와 유사한 소설이다. 그것은 불교의 세계를 빙자한 너절한 소설이 결코 아니다.

다소 과장된 표현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 작품은 ‘극미의 존재론으로부터 시작하여 극대의 우주론을 포괄하는 하나의 장대한 형이상학적 세계를 구축’12) 했다는 관점에 의거한다면 무시할 수도 없고, 간과되어서도 안될 작품성을 지닌 것으로 판단될 수도 있다.
「유리」는 《죽음의 한 연구》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 유리는 죽음과 재생이 엇갈리는 상징의 땅인 유리에서 불멸성을 획득하기 위해 구도의 길에 들어선다.

존재의 본질과 생명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집요하고도 끝없는 열정 때문에, 오히려 정사의 적나라함과 살인의 잔인함 속에 빠져들게 이른다. 영화 「유리」는 1996년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조계종 총무원에서 공륜(公倫)측에 불교를 고의적으로 왜곡한 영화를 결코 상영해서는 안 된다고 압박했다.

당시에 총무원 사회국장 직을 맡고 있던 원소 스님은 한 언론매체를 통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정사, 살인, 광기로 점철돼 있었다. 영화 어디에도 불교의 끊임없는 구도심, 금욕, 자비 사상은 한 군데도 없었다. 예술 표현의 자유를 빌려서 불교를 완전히 모독한 작품이었다.”13) 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었다. 비록 사견으로 발표된 것이지만 영화에 대한 불교계의 극단적인 반응을 잘 알게 한다. 영화 「유리」는 개봉도 되기 전에 긍정과 부정의 쌍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내가 발표한 글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전위적인 실험영화이다. 작가주의적인(비상업적인) 착안을 통해 한국 영화의 한 정형을 창조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낼 만한 불교영화가 아닌가 한다. 사교적(邪敎的)인 제식을 연상케 하는 일련의 엽기적 행위, 특히 난륜과 잔혹성에 있어서 한 바탕의 광란을 연상시키는 이 컬트적 우화는 불교계와의 극심한 마찰과 갈등을 빚게 했다. “나는 사망(死亡)으로써 사망(思望)한다”라고 한 주인공 유리의 죽음은 상극성의 극복을 통해 삶이 완성된다는 암시와 역설을 던지고 있다.14)

영화는 비구와 비구니가 만나 섹스를 탐하는 데서 시작한다. 바람난 연놈끼리 만났으니, 살인이나 성교하기 좋은, 바람 부는 밤의 황량한 벌판에서 서로 몸을 뒤섞는다. 새벽을 지나 먼동이 트기까지 그들의 섹스는 끝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비구와 비구니는 성불하라는 말을 남긴 채 서로 헤어진다.

이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박신양은 대부분 벌거벗은 몸으로 등장한다. 혼신의 열연은 높이 평가되어 마땅하다. 원작자 박상륭은 ‘마음의 우주’를 개벽하기를 열망했었다. 그에게 선(禪)이 마음의 우주를 벗어나 해탈을 성취하려는 것이라면, 탄트라는 몸을 질료로 삼아 마음의 우주를 뛰어넘은 것이다.15) 때문에 몸도 우주의 비의가 함축된 기호이거나 상징 체계인 것이다.

인간의 본능에는 생명 의지와 파괴 충동, 성적 욕망과 죽음에의 본능, 즉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있다. 이 두 가지의 것이 잡거성(雜居性)의 형태로 강화된다면 병적이거나 변태적인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영화 「유리」에서 보여준 과격한 정서도 두말할 나위도 없이 여기에 기인하는 바 크다고 하겠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해석하자면, 비구와 비구니의 성교 행위는 죽음을 이해하는 과정,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서로 충돌하면서 조화하는 과정,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본질을 이해하는 탐색과 명상의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사람이든 그 밖의 동물이든 간에 성교가 죽음을 준비해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앞으로 언젠가 죽음을 당할 몸으로 성교를 누린다. 그래서 모든 동물이 성교를 끝낸 후에 슬픔을 감지하는 것일까?16) 원작이나 영화에 있어서의 섹스는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사유되는 죽음의 욕망이자, 시원(始源)에의 팬터지이다. 여기에서의 섹스는 가치의 판단과 무관하게도, 적어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여언(餘言), 불교영화와 모성회귀

영화 「유리」에는 여성성이 생명력의 근원으로 환원되는 원형적 심상으로 늘 암시되어 있다. 예컨대, 법수(法水)로 채워져 있는 연못은 자궁의 이미지이다. 여성성의 상징으로서 가장 내밀하면서도 본원적인 것의 비의를 반영하고 있는 자궁은 만물에 있어서의 생명의 시원과도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독백 중에 다음과 같이 인용된 것이 의미심장하다. “사마귀 암컷은 수컷의 계집이었는데도 수컷을 목구멍으로 삼켜 자기의 자궁 속으로 몰아버린다.

수컷은 자궁 속에서 어느새 자식으로 변하고 암컷은 아내에서 어미로 전이되어간다.” 섹스야말로 자궁 회귀에의 본능적인 충동을 원형적으로 제시해주고 있지는 않을까? 섹스와 성불의 상관 관계는 탄트라 비전(秘傳)이나 라즈니쉬의 표현처럼 ‘붓다의 오르가즘’으로 비유되는 것일까? 「유리」에서 과도하게 표현된 섹스는 모성회귀의 여성성이란 문맥으로 읽혀질 수밖에 없으리라. 원작 소설을 읽은 비평가 김현 역시 「인신(人神)의 고뇌와 영향」이란 글에서 비슷한 견해를 남겼다.

「죽음의 한 연구」에서 내가 즐겨 되풀이해 읽는 장면은 주인공이 어머니를 회상하는 장면이다. (……) 그것을 읽고 있노라면 주인공의 어머니가 바로 내 어머니인 듯 가슴이 아파 온다.17)

우리 불교영화는 모태지향성이랄까 모성회귀 본능과 같은 것이 알게 모르게 깔려져 있다. 「마음의 고향」과 「동승」은 비교적 명시적인 수준의 ‘어미 찾기’가 드러나 있다. 「파계」에서도 한 비구니는 비구와 성 관계를 맺고 파계한 후 어머니를 처절하게 부르면서 죽음의 수렁으로 질주했다.

영화 「만다라」에서도 모성회귀가 드러난다. 법운이 재혼한 생모와 조우한 것은 작위적인 설정이다. 즉, 원작에 없는 어미 찾기인 셈이다. 사토 다다오에 의하면, 신앙의 의미를 묻는 본래의 주제에서 본다면 사족에 지나지 않는 것. 그는 이것이 모자 관계의 비극(성)을 강조하는 한국 영화 특유의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불만을 표출했다.18) 어쨌든, 우리 불교영화에 있어서 모성회귀의 원형 심상으로서의 성의 문제를 제기한 것은 불교의 진보적인 관념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방종한자의 갈망은 칡넝쿨처럼 자란다, 숲에서 숲으로 열매를 찾아다니는 날랜 원숭이처럼. (《법구경》, 홍법원판, 139면, 참고.)

물론 이 같은 전근대적인 애욕관이 비록 보수적이지만 시대착오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이 하나의 토대가 되어 기존의 토대 위에 다양한 견해와 여러 갈래의 성찰이 모이고 쌓여서 불교의 새로운 관념 체계를 이룩해 간다. 양윤호 감독과 불교계가 불교 섹스관의 문제를 놓고 심각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때, 그는 “나는 한국 불교보다 근본불교를 더 좋아한다.”라고 밝힌 바 있었다. 섹스의 문제에 개방적인 것이 과연 근본적이냐 하는 것이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진지한 비평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김기덕의 영화에서도 불교적인 것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국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제3세계 예술영화의 전형성을 획득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성싶다. 불교적인 소재주의에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내면화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해도 좋을 것이다. 원죄와 참회라는 서구적인 문맥에서의 카르마, 인간을 마성의 존재로 보는 허무적인 인간관 등의 시각에서 본다면, 영화 속의 주인공이 암자에 찾아와 요양하는 소녀와 섹스를 탐하는 것조차 여타의 불교영화에서 보는 섹스의 의미와는 사뭇 다른 것일 수도 있다.

김기덕의 「사마리아」는 여고생의 원조교제를 다룬 영화이다.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전혀 불교적이지 않다. 다만 이 영화는 화엄경의 ‘바수밀다’ 설화에서 얘깃거리가 비롯되어진다. 자신의 몸을 팔아서 부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는 광채로운 자기 희생의 여인상인 바수밀다라는, 불교적 모성(母性)의 용서와 관용 모티프를 통해 영상화되어 갔던 것. 여기에 기독교적인 부성(父性)으로 여겨지는 심판과 구원의 거대 담론이 짓누르고 있다.

소설가 박상륭이 기독교의 견고한 바탕에서 벗어나 탄트라 밀교(密敎)로 점차 매료되어 갔던 것과 달리, 영화감독 김기덕은 불교의 소재주의에다 기독교의 주제 담론이 지닌 압도적인 무게를 가하고 있다. 다만, 영화에서 종교와 종교의 간(間)텍스트화라는 새로운 장을 개방한 것은 사뭇 의의가 있다고 여겨진다.

송희복
진주교대 교수.동국대 국문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불교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평론집 <다채성의 시학>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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