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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교와 성에 대한 이해
정성준 동국대·위덕대 강사
[24호] 2005년 09월 10일 (토) 정성준 동국대·위덕대 강사

밀교에 대한 오해

밀교는 ‘비밀불교(秘密佛敎)’의 줄인 말로 대승불교의 전통에서 설명되지 않았던 불·보살의 신체적 모습과 진언과 다라니, 또는 부처님의 삼매 등에 대해 밀교의 교리와 수행체계의 범주에 입각해 해석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밀교를 구성하고 있는 도상과 만다라, 진언과 비밀한 의식 등에는 대승불교의 전통적 사상이 상징화되어 내재되어 있으며, 밀교의 수행은 불상이나 만다라를 관하면서, 수인(手印)을 결하고, 진언을 외움으로써 수행자의 의식을 부처님의 지혜로 상승시키는 것에 근본 목적이 있다.

밀교는 교리적으로 대승불교의 중생구호 이념을 배경으로 중관사상과 유식사상 등을 계승하여 성립된 것으로 8세기 경 인도의 붓다구히야 논사는 대승불교의 수행을 바라밀문과 진언문으로 나누었다. 여기서 진언문은 밀교의 다른 명칭으로 당시 인도불교의 논사들은 밀교를 대승불교의 교리적, 실천적 전통에서 이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밀교에 대해 체계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이들은 밀교를 주술이나, 마술, 비밀한 의식을 행하는 종교로 생각하거나, 심지어 밀교의 수행 가운데 성교를 통해 성불(成佛)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좌도밀교(左道密敎)가 밀교의 주류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오해는 근대의 일본 및 서구의 학자들이 불교의 전통에 기인한 밀교와 힌두딴뜨리즘(Hindu-tantrism)을 혼돈한데서 비롯된다. 근본적으로 ‘밀교(密敎)’란 용어 자체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의 한자문화권에서 유행한 밀교를 정의하는 것으로 이들 지역의 밀교는 인도에서 성립된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양부경전을 중심으로 화엄과 천태, 선(禪) 등의 사상과 결합된 지역적 특성을 보인다.

그러나 딴뜨리즘은 8세기경 인도종교에 유행한 ‘딴뜨라(Tantra)라는 경전 군에 나타난 사상적 조류를 가리키는 말로 불교와 힌두교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진언과 천문학, 의학, 점성술을 비롯한 비밀한 의식과 노골적인 성속(性俗)을 주제로한 한 수행을 담고 있다. 따라서 밀교와 딴뜨리즘은 인도종교에 뿌리를 둔 역사적인 공통점은 찾아볼 수 있지만 시대나 지역적으로 다른 사상체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불교의 경우 딴뜨리즘이 반영된 밀교경전이 등장하는 시기를 인도 후기밀교시대로 구분하고, 이러한 경전군을 티벳경전의 분류방식에서 ‘무상유가(無上瑜伽)딴뜨라’로 지칭하고 있다.

근대학자들은 힌두교의 샤끄띠파의 성을 매개로 한 성력(性力)적인 수행을 좌도밀교(左道密敎)라 지칭하여 비판하고, 이에 비해 윤리적이고 사회적 도덕성을 강조한 쉬바나 비슈뉴파 등은 우도밀교(右道密敎)라고 말하여 구분하였는데, 이는 지역적으로나 시대적으로 속성이 다른 용어를 강제로 결합시킨 말이 되며, 이러한 언어적 오류가 한국불교에도 해명되지 않은 채 답습되고 있는 것이다. 좌도밀교는 원래 ‘힌두딴뜨리즘의 샤끄띠파의 성력(性力)사상이나 그 실천체계’라고 불러야 정확한 말이 된다.

인도종교의 역사를 보면 힌두교와 불교는 인도의 종교와 문화의 공통분모 위에 동일한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해왔으나, 양 종교가 변함없이 견지해온 근본사상을 단적으로 말하면 힌두교의 경우 바라문교 이후 주장해온 유(有)사상이며, 불교는 연기법에서 비롯된 공사상(空思想)으로 요약할 수 있다. 두 종교는 양자간에 많은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有)와 무(無)의 근본적인 사상을 두고 오랜 기간 동안 경쟁하며 논쟁을 벌이면서 발전해온 것이다.

8~9세기경 양 종교에 몰아친 딴뜨리즘의 영향은 힌두교가 현실과 친밀한 신격(神格)을 중심으로 대중들과 가까이 속화(俗化)된 입장을 보이는 반면에 밀교는 유가행파(瑜伽行派)의 수행을 밀교적 소재에 반영시키는 관념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다. 힌두교의 경우 자신들이 옹호하는 유(有)사상은 현실세계를 신성의 범주로 해석하고, 신격에 있어서도 농경과 목축 등 생산적 삶과 육신긍정의 형태로 발전해왔다.

힌두교는 쉬바파와 샤끄띠, 비슈뉴 등 여러 신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힌두교의 유파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종교적 성향에 따라 주존으로 모시는 신격이 각기 다르다. 힌두교의 사상은 전통적 창조신(神)인 브라만을 남성원리를 가리키는 쉬바와 여성원리인 샤끄띠로 나누고 전자에 대해 절대적이며, 이성적 속성을 부여하고, 후자에 대해 생산적이며 활동적인 속성을 부여하여 우주가 지닌 절대와 현상의 양면성을 표현하였다. 특히 샤끄띠파는 인간의 육체와 우주적 원리를 동일시하여 성교를 통해 내재된 양성(兩性)의 에너지를 일깨움으로서 해탈에 도달하는 수행체계를 발전시켰다.

반면에 불교의 경우는 현실세계를 공성의 지혜를 통해 파악함으로써 불성의 참된 실재가 드러내는데 근본 목표가 있으며, 딴뜨리즘에서 시도된 육신을 통한 해탈도 육신의 현실적 긍정보다 삶과 죽음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관조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양 딴뜨리즘의 교리에 나타난 부존(父尊)과 모존(母尊)의 속성을 비교할 때 힌두교의 경우 이성을 상징하는 쉬바와 달리 샤끄띠는 현상세계의 생산성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인간의 몸인 여성의 성적 생산력도 샤끄띠의 우주적 속성의 표출로 파악한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 부존과 모존은 각기 방편(方便)와 반야(般若)를 상징하여, 남존은 자비(慈悲)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이타적 행동을 가리키는 것이며, 모존은 무자성인 공성(空性)을 의미한다. 모존은 붓다의 존재를 탄생시키는 불모(佛母)로서 지혜를 상징화한 것이기 때문에 윤회의 산물인 육체의 현실과 이로 비롯된 감각들을 긍정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불교의 부모존의 합일은 지혜와 이타적 행동을 겸비한 궁극적 수행목표이기 때문에 딴뜨리즘이 주류가 된 인도 후기밀교의 수행은 인간의 육신에 대해 업과 윤회의 산물이라는 기본적 이해를 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행자의 의식을 지배하는 성욕과 번뇌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인간의 생리와 호흡조절에 의해 중생의 마음에 자리한 육체적 번뇌를 짧은 시간에 해결함으로써 신속히 성불에 이를 수 있다는 수행이념이 반영되어 이전의 불교적 전통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수행의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육체(肉體), 성(性), 번뇌(煩惱)

인도불교의 역사상 육체적 삶의 간접요인인 성과 관련하여 독립적으로 취급된 사례는 많이 발견되지 않는다. 근본불교시대의 경우 성은 번뇌의 일부로 취급될 따름이며, 성과 관련해 불교교단 주변에 일어나는 다반사는 율장과 경전에 여러 가지 사례로 등장한다. 교단과 관련해 성이 개입된 문제는 여성출가자의 허용을 두고 석가모니 붓다에 의해 여성이 남성과 비교해 수행의 장애가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이다.

한편 육체에 대해서는 불교의 성자인 아라한의 지위에 대해 ‘번뇌를 초탈하여 윤회의 몸을 더 이상 받지 않는 것(諸漏已盡 不受後有)’으로 정의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육체적 삶의 탄생과정을 밝힌 내연기(內緣起)의 십이지 연기법을 보더라도 중생의 육체적 삶을 형성하는 주된 요인은 근경식(根境識)과 관계된 인간의 오감의 세계이다. 초기불교의 문헌에서 오감은 인간의 번뇌와 작용하여 윤회적 삶의 주요 원인이 된다. 때문에 석가모니 붓다는 윤회와 육체에 기인한 고(苦)를 설하고 이로부터 해탈할 것을 도처에 설하고 있다.

대승불교시대에 들어 성(性)이 등장하는 일화는 《법화경》의 용녀(龍女)의 현신성불(現身成佛)의 사례로 배경은 불교교단의 여성 출가자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경전에는 여성이 성불하기 어렵다는 비구들의 오만을 용녀(龍女)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성기를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꾸어 성불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불교의 수행이 육체적 요인에 의해 기인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유마경》의 경우 “방편을 아버지로 하고, 반야를 어머니로 한다”라고 설한 장면은 성속(性俗)과 관련한 의미보다도 대승불교 수행이 반야의 지혜와 자비의 실천인 방편으로 요약된 사례를 보여준다. 이처럼 근본불교 이후 대승불교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교단의 기본 입장은 인간의 번뇌와 관련된 감각과 심성(心性)의 세계에 대해 풍부히 다루지만 성(性)과 관련된 직접적인 주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밀교를 통해 성과 육체, 번뇌를 다룬 내용은 기존의 대승불교(顯敎)와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밀교의 교리와 수행체계를 최초로 체계화한 《대일경》은 대승불교사상이 다양한 측면에서 결합된 것으로, 중관, 유식, 여래장사상이 경전에 반영되어 있다. 경전의 비로자나여래는 절대법신인 《화엄경》의 비로자나불을 계승한 것이지만 보살과 같이 공성에 머물면서 중생구호를 위해 다양한 신변을 나투는 능력을 보이는 것으로 묘사된다. 밀교의 붓다들은 열반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수용신과 육신을 통해 중생을 직접적으로 구호하는 존재들이다.

현교의 경우 중생의 세계에 드나드는 존재는 중생구제를 위해 성불을 포기한 대비천제(大悲闡提)인 대보살들로서 관세음보살이나, 보현보살, 문수보살 등이 그 예이다. 열반을 성취한 현교의 붓다는 열반이라는 절대세계에 도달한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는 지혜의 광명인 수용신의 범주를 넘지 않으며, 중생의 현실과 접촉할 수 있는 것은 대보살의 몫이다. 그러나 유식계의 논서를 통한 불신론(佛身論)의 전개는 붓다의 몸은 법신, 수용신, 화신의 세 가지가 있으며, 열반의 절대신이라도 삼계의 범주를 다양한 불신을 통해 넘나드는 것으로 이론화하였다.

《대일경》 이후 성립된 《금강정경》에는 중생의 의식과 우주법계의 현상세계가 오불의 속성(屬性)을 지니고, 이에 입각해 현화한다고 보는 부족사상(部族思想)을 체계적으로 설하였다. 오불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아촉불, 보생불, 무량수불, 불공성취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도 후기 밀교경전에는 경전마다 다르지만 오불의 범주에 번뇌를 포함시켜, 탐진치(貪瞋癡)와 아만(我慢), 질투(嫉妬)의 다섯 번뇌도 불성의 부족으로서 성불한 붓다에게 중생을 구호하기 위한 의지와 갈망의 대번뇌로 전변한다고 설하고 있다.

?금강정경?에 설해진 부족사상과 번뇌의 긍정은 인도 후기밀교의 성과 번뇌의 긍정이라는 대전제를 이끌어내는 핵심사상이 된다. 그러나 밀교의 긍정은 중생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성의 지혜에 입각한 불지(佛智)에 의해 조명되었을 때 비로소 대번뇌로 전화할 수 있는 것이다. 《금강정경》에서 설해진 오상성신관(五相成身觀)의 수행은 일체의성취(一切義成就)보살이 육신을 사바세계에 둔 채 수용신(受用身)의 몸으로 색구경천(色究竟天)에서 일체여래의 가르침에 의해 성불한다는 내용이 설해지고 있는데, 오상성신의 증금강신(證金剛身)의 수행은 중생의 삼업(三業)의 현실을 신금강, 어금강, 의금강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그 이론적 배경은 마음의 자성을 깨닫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수행이념이 경전을 통해 형식화된 것이다.

한편 대반야경에 소속된 《반야이취분(般若理趣分)》은 공성의 지혜를 통해 정(淨)과 부정(不淨)의 분별을 초월한 보살에게 번뇌와 육체적 현실은 청정한 진여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극적인 표현을 볼 수 있는데, 같은 품은 독립적인 밀교경전으로 조직화되어 《이취경(理趣經)》으로 출현하고, 여기에는 인간의 감촉과 애욕의 수용과정을 17가지로 분류한 ‘17청정구(淸淨句)’로 표현되어 있다. 이에 대한 인도후기밀교의 주석은 17청정구를 포옹과 결합을 통해 일어나는 애락(愛樂)을 향수하는 남녀의 성교(性交)로 해석한 주석서도 존재한다.

이처럼 대승불교의 밀교화는 외교적 요소를 단기간에 수용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부적으로 반야와 중관, 유식사상 등의 대승불교사상을 점진적으로 반영시켜 경전화된 과정을 여러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승불교의 밀교화가 외교의 수행을 급작스럽게 받아들인 타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성장과정에 의해 경전화되고 출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밀교에 있어서 육체뿐만 아니라, 번뇌와 성마저도 불지(佛智)에 의해 관조할 때 현실은 실제(實際)로서 법계의 현현인 것이다. 이러한 사상적 연원은 연기법의 무아사상으로부터 반야, 공, 유식 등 불교사상의 전개에 따른 것으로 밀교는 딴뜨리즘에 의해 문제시 되었던 성과 번뇌를 전통적인 불교사상의 영역에서 해석한 것이다.

성(性)의 유가(瑜伽)

힌두교의 샤끄띠파의 수행은 주로 인도의 동북지역인 벵갈, 오릿사 지방에 유행하였고, 이러한 수행의 조류는 힌두교뿐만 아니라 인도 후기밀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힌두교와 무상유가부 밀교의 공통적 이론은 육체를 존속시키는 생명에너지의 존재와 이들이 흐르는 통로로서 척추를 통해 흐르는 아바두띠와 좌우에 병행하는 랄라나, 스쉼나의 신경로, 그리고 전신에 흐르는 혈맥의 존재와 좌우의 신경로가 만나는 결절인 챠끄라이다. 샤끄띠파가 육체를 매개로 남녀의 성교 시에 일어나는 엑스타시를 통해 육체의 특정부위에 위치한 챠끄라를 각성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과 달리 불교의 밀교의 수행은 관상(觀想)과 집중을 통한 의식변화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인도 후기밀교의 수행에 인간의 성이 수행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오해와 관련한 중요한 문제이다.

인도 후기밀교 시대 이전에 출현한 《대일경》에는 의식의 집중을 통해 육체의 내적 변화가 관찰된다는 사실이 오자엄신관(五字嚴身觀)의 수행에서 보여지고 있다. 《금강정경》의 경우 오상성신관의 수행에서 가슴에 월륜을 관상한 의식의 집중이 수행자의 생체에너지인 풍(風)의 흐름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전의 붓다구히야(Budhaguhya)의 주석과 사꺄미뜨라(akyamitra)의 주석을 비교할 때 후기밀교에 가까운 후자의 주석은 무상유가부 밀교의 생리적 이론이 강하게 반영되어 《대일경》의 성립 이후 의식집중과 생리적 변화의 관계가 수행자들에 의해 오랜 시간을 통해 관찰되고 실험되어 왔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금강정경》 이후 출현한 《비밀집회딴뜨라, Guhyasamaja-tantra》의 초기문헌 가운데 즈냐나빠다(Jnnapada)류의 문헌에는 띠라까(tilaka)라고 하는 영점을 코끝이나, 심장에 배치하여 집중함으로써 오색의 광명이 발산함과 동시에 육체적 번뇌가 소멸하는 과정을 전하고 있고, 후대에 성립된 용수(龍樹)류의 주석은 띠라까의 의식집중을 통해 양 신경로에 흐르는 생체에너지가 중앙의 아바두띠로 흐르게 함으로써 지고의 법열(法悅)을 체험하는 경험을 적어놓고 있다. 이외 《비밀집회딴뜨라》의 여러 유파들에 의해 근본경전의 출현 이후인 10세기를 전후해 주석을 통해 자신들의 생리현상을 통해 나타난 수행체험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들에 의한 실증적 수행이 토대가 되어 후기밀교 시대를 장식하였다고 보여진다.

《비밀집회딴뜨라》의 경우 〈서분〉에 나타난 만다라에는 주존인 아촉금강여래(阿金剛如來)가 배우자인 명비(明妃)와 결합한 형태로 묘사되고 있으며, 합일된 부모존의 주위에는 사대(四大),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를 상징하는 제존들이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은 성(性)과 육체라는 인간의 실상(實相)을 제존을 통해 상징화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후기밀교경전에는 인간의 심적, 육체적 실상을 다양한 형태로 비유한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반야딴뜨라에 속하는 헤바즈라딴뜨라나 헤루까계열의 밀교경전에는 성(性)과 피(血), 해골 등 삶과 죽음과 관계된 공포와 죽음 등의 강렬한 의식을 야기하는 수단들이 반영되어 있는데, 이러한 후기밀교경전의 공통된 목표는 수행자의 내면에 잠재된 성과, 번뇌, 공포, 자만, 질투 등의 범부의식을 각성시켜 불지(佛智)를 신속히 성취하기 위한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후기밀교수행의 다른 예는 오마사(五魔事)로 이는 오불의 속성을 대표하는 다섯 가지의 육식과 육체의 분비물을 상징화하고, 이를 복잡한 의식 끝에 섭취하는 것으로 오마사의 의궤는 범부로 하여금 더러움과 살육의 잠재된 의식을 각성시켜 공성인 지혜를 통해 인간을 둘러싼 현실을 불성(佛性)으로 자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궤는 중생의 마음을 아뢰야식(阿賴耶識)과 더불어 심식(心識), 의식(意識), 오식(五識)의 심층의식으로 분석하고, 마음의 작용을 160가지의 양상으로 분류하는데서 볼 수 있듯이 성불을 위해서는 잠재된 범부의식을 단계적으로 드러내어 관조한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밀교에 있어 다양한 수행과정과 단계는 중생의 의식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는데 익숙한 선불교의 전통에서 볼 때 비교적 생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도 후기밀교의 수행은 생기차제(生起次第)와 구경차제(究竟次第)로 나뉘어져 있으며, 간략히 설명하면 생기차제는 현상세계를 진실세계로 깨닫고 현현하는 과정이며, 구경차제는 현상세계를 해체하여 공성(空性)의 절대성에 귀입하는 수행이다. 양차제의 수행은 육체로부터 중음, 절대법신에 이르는 과정을 순역(順逆)으로 관조하는데, 탄생과 죽음의 과정에 일어나는 생리적 변화와 징조를 파악하고, 마음과 호흡의 제어를 통해 생체에너지와 의식을 조절함으로써 올바른 재탄생과 죽음의 단계에 진입하는 것은 후기밀교수행의 주된 훈련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존(父母尊)의 존재는 상징화된 반야와 방편의 합일이며, 수행자(딴뜨리까)는 상징화된 매체에 의지해 공성의 집중을 통해 육체를 제어하여 결과적으로 육체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이때 수행의 성패여부는 의식의 성공적 집중이며, 만약 육체적 조건이 성불의 궁극적 요소가 된다면 불교는 초기부터 육체에 종속된 형태로 그 수행이 변모되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불교사원은 딴뜨리즘이 반영된 수행이 유행하였을 때에도 계율을 수지하는 전통을 간직할 수 있었고, 성속(性俗)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웠던 힌두교의 샤끄띠파는 자유롭게 현실의 세계에서 관념적 세계를 실수(實修)하여 신과의 합일을 도모하였을 것이다.

성유가에 대한 논란

대승불교의 전통에서 무상유가부 밀교의 수행이 육체적 현실보다 심적인 내면적 현실을 수행의 주안점으로 두고 개발해왔다는 점은 문헌적 검토에 의해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역사적으로 밀교가 유행한 인도의 동북지방의 현실은 밀교수행지로서 이름난 곳에 불교와 힌두교의 수행자들이 서로를 크게 의식하지 않고 순례한 사실과 불교가 이입된 티벳의 사회에서 불교교단의 문란한 풍속이 문제가 야기된 사실은 경전에 설한 이상과 현실이 다름을 의미한다.

인도 후기밀교의 경우 전법스승인 아사리(阿梨)와 수행을 전수받기 위한 제자의 자격은 오계를 비롯해 보살계 뿐만 아니라 삼매야계와 같이 행위가 아닌 내면적 의식을 문제삼는 등 엄격한 계율에 의해 자격을 심사받으며, 밀교수행의 자격도 현교(顯敎)의 경론에 대해 해박한 지식과 시험을 거쳐야만 비로소 관정(灌頂)의식을 통해 밀교수행에 참여할 수 있다. 실제 인도의 밀교수행의 전통을 계승한 티벳사원의 현실도 기본적으로 이러한 원칙에 의해 수행이 이루어지며, 밀교의 관정의식과 입문의식에 동원되는 성과 관련된 도구들도 남존의 보리심을 상징하기 위한 술이나, 여존을 상징하는 염색된 물을 이용하는 등 인간의 실상을 불성으로 관조하고 자각하기 위한 상징적 도구들이 사용되고 있다.

후기밀교의 한 시대에는 관상(觀想)에 의지하더라도 성적(性的) 관상을 실천하는 수행이 전통적인 비구계의 율의를 범한 것이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는데, 이와 관련한 대목이 《비밀집회딴뜨라》의 관정의식을 다룬 《제4관정의궤, Sakiptbhiekavidhi》에 전해진다. 저자는 위끄라마실라(Vikramala)사의 육현문(六賢門)의 한 사람인 와기슈와라(Vgvara)로 그는《비밀집회딴뜨라》의 유파인 즈냐나빠다류에 속하며, 현밀(顯密)과 계학(戒學)에 능통한 당시 인도에서 가장 번영한 사원의 학두(學頭)였다.

그가 다룬 제4관정은 인도후기밀교에서 중요시되는 것으로 ①병(甁)관정, ②비밀(秘密)관정, ③반야지(般若智)관정, ④제사(第四)관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략히 소개하면 병관정은 물, 보관, 금강저, 금강령, 명명식(命名式)의 다섯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여기에 동원되는 기물들은 만다라의 중심을 이루는 오불(五佛)의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아사리는 제자에게 기물을 부여함으로서 오지(五智)를 성취할 것을 명하는 것이다.

반면에 두 번째인 비밀관정과 세 번째 반야지관정은 성적인 요가를 수반하는 과정이다. 먼저 제자는 관상(觀想)을 통해 스승에게 반야모(般若母)를 바치는데 《비밀집회딴뜨라》에는 “푸른 연꽃의 눈을 가졌고, 16세의 나이로 아름다우며 도살자(屠殺者)의 딸이다”라고 묘사하고 있으나, 문헌에는 즈냐나빠다류의 전통에 입각해 문수금강(文殊金剛)의 화현으로 대신하고 있다.

비밀관정은 아사리에 의해 공성(空性)을 상징하는 반야모와 육신의 현상세계로 현현한 방편(方便)의 합일을 통해 반야와 방편의 합일이라는 상징적인 의식을 행하는 것이며, 반야지관정은 제자로 하여금 합일을 상징화한 매개물을 통해 반야(般若)의 대락(大樂)을 체험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의 제4관정은 ‘언어에 의한 관정’으로 아사리는 구두(口頭)로 제자에게 비의(秘義)를 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다.

《제4관정의궤》에는 대론자가 “(반야와 방편의 합일을 상징한) 이근교회(二根交會)의 의식이 어찌 비구의 율의를 훼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와기슈와라는 “삼계에 태어난 인간과 제천(諸天) 등의 아름다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여 유루(有漏)의 애착을 향수하는 것으로 탐욕을 향수하는 것은 비나야 등에서 금해지고 있는 것이지만, 삼계(三界)를 초월한 신체를 지니고, 유식(唯識)을 자성으로 하는 문수금강(文殊金剛) 등이 현현한 여성들은 그런 류가 아니다”라고 반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론자는 다시 “비나야 등에서 금지되고 있는 외적인 갈마인모(磨印母)에 대해서는 어떻게 적정(適正)하다고 할 것인가?”라고 반론하고 있다. 여기서 갈마인모란 현실세계의 육체를 가진 반야모를 가정하는 말이다. 이에 대해 와기슈와라는 “진언이취에 있어서 실재하지 않는 색 등의 일체의 사물을 자심의 현현(顯現)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꿈과 같은 문수금강을 본성으로 전변한 갈마인모들도 환(幻)과 같은 것이다. 때문에 그녀와의 성적유가를 포함한 관정을 실수(實修)한다 하더라도 청정하며, 과실이 없기 때문에 계율을 범한 것이 아니다”라고 설한다.

이와 같은 와기슈와라와 대론자의 논란은 근본적으로 형상진실론(形象眞實論)과 형상허위론(形像虛僞論)으로 나누어지는 논란을 포함하고 있으며, 당대의 육현문의 논사들도 양이론을 가지고 논란을 넓혀갔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와기슈와라는 같은 문헌에서 성문이라 하더라도 진언이취를 수행하려는 진실한 의지가 있다면 제4관정의 의식을 통해 비밀집회계의 수행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기 때문에 계율과 함께 제자의 수행의지와 근본적인 동기를 중요시하는 입장에 서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와기슈와라 후대에 생존했던 인물로 같은 사원의 대학승(大學僧)이었던 아티샤(Atia)는 그의 명저인 《보리도등론(菩提道燈論)》, 에서 “범행자(梵行者)는 비밀과 반야의 관정을 실수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하고, 계를 범할 시 악취에 떨어지는 죄과를 받는다고 경고하고있어 와기슈와라와 반대의 입장에 있다. 반면 같은 시대의 아브야까라굽타(Abhaykaragupta)는 Vajrval에서 “일체가 공성이기 때문에 갈마인모도 또한 공성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그녀와의 유가도 율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펴고, 반면에 ‘결고한 진실을 신해하지 않는 비구’인 경우 갈마인모(磨印母)가 아니라 지인(智印)을 사용한다 하여 와기슈와라와 아티샤와의 절충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청사(靑史)》에는 아브야까라굽타 자신은 위끄라마실라사의 학두로 있으면서 평생 비구의 불범계(不犯戒)를 지키며 결정코 성적 유가를 행하지 않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딴뜨리즘의 평가

현교와 밀교수행을 비교하면 현교는 바라밀문의 수행을 통해 3아승지겁을 경유해 성불하지만, 밀교는 당생에 성불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행에 실패했을 경우 돌아오게 되는 죄과가 적지 않음을 공통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번뇌와 성을 대면하여 생리적 변화를 감수하는 수행에서 실패할 확율이 적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바즈라요기니, Vajra-yogin》 딴뜨라에는 수행의식을 간소화하고, 수행자에게 번뇌가 오히려 수행을 활성화시키며, 말법시대에는 바즈라요기니의 수행이 유행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티벳불교의 교학은 “《비밀집회딴뜨라》가 전승되고 있다면 불법이 이 세상에 아직 존속하는 것이고, 《비밀집회딴뜨라》가 사라졌다면 사바세계에 불법이 영원히 사라졌음을 뜻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경전의 내용이 비밀집회만다라에서 보이듯 인간의 육체와 마음이라는 현실적 실상을 반야라는 이성적 지혜를 밀교의식으로 형식화하여 청정한 불세계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며 경전의 존속은 불교의 본질로서 전통적 수행이념이 여전히 인간세계에 전승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한국불교의 전통에는 인도 후기밀교가 전승되지 않았지만, 《삼국유사》에는 살아있는 육신보살이 생사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간세계와 동화된 내용의 설화를 볼 수 있고, 원효스님과 같이 인간과 성의 범주를 넘어 설총이라는 위대한 인물로 역사에 자취를 남겨 번뇌와 성, 육신이라는 범위를 초탈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근대의 경허스님도 선과 밀교가 다르지만 그 결과에 있어 인간이 종교적 잣대로 비난하는 현실세계의 틀을 크게 넘은 것으로 보여진다.

불교가 성립된 이후 불교의 수행을 말할 때 모든 시간을 초월해 수행자가 여전히 마주해야할 문제는 자신의 마음과 번뇌, 그리고 육체와 성이다. 인도 후기밀교가 보여주는 것은 진정한 해탈을 위해 인간의 현실에 담긴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그 실체를 명확하게 들여다 볼 때 중생의 의식으로 닫혀진 껍질을 깨고 비로소 해탈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도의 종교적 환경을 반영해 의례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계율과 관련하여 불교교단은 율법주의에 의지한 다른 종교와 달리 행위의 결과에 대해 수행자의 동기와 내면적 반성을 중요시해왔다고 할 수 있으며, 각 시대별로 행위에 대해 결과와 동기 가운데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는 가는 주변의 문화와 사회구조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여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정성준
동국대·위덕대 강사.동국대 대학원에서 ‘비밀집회딴뜨라의 수행체계 연구’로 박사학위 받음. ‘라다관음의 밀교수행관’ ‘성문수진실명의경의 불신관’ 외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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