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로 한국사를 서술하다

1.

20세기 초 근대 학문으로서 한국불교사 연구가 시작된 이후 《조선불교약사》(권상로, 1917), 《조선불교사》(이능화, 1918), 《조선선교사(朝鮮禪敎史)》(忽滑谷快天, 1930), 《조선불교사고》(김영수, 1939), 《한국불교사》(우정상 · 김영태, 1969), 《한국불교사연구》(안계현, 1982), 《한국불교사 개설》(김영태, 1986), 《신앙과 사상으로 본 불교 전통의 흐름》(국사편찬위원회 편, 2007)을 비롯해 한국불교사를 다룬 책은 여러차례 간행되었다. 

이 책들은 당시 한국불교사 연구의 전반적인 수준을 잘 보여주었지만, 불교라는 특정 분야만을 다룬 분야사로서 성격이 강했다. 여러 연구자가 각자의 전공 시대나 분야를 담당하여 공동집필한 경우에는 한 권의 책으로서 통일성을 갖추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또한 당시로는 의미가 컸지만 새로운 성과나 바뀐 내용이 반영되지 못하기 때문에 사학과 학생들로부터 혹은 다른 시대나 분야를 전공하는 동료들로부터 한국불교사를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을 소개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면 난감한 경우가 많았다. 늘 아쉬움을 느꼈던 새로운 한국불교사에 대한 갈증은 정병삼✽ 교수의 신간 《한국불교사》를 접하면서 해갈되었다.

《한국불교사》는 불교 수용 이전부터 현대불교까지를 다룬 통사(通史)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서술하거나 특정 분야의 기본적인 얼개를 간략하게 설명해주는 개설서와 달리 통사는 무엇보다도 전 시기를 관통하는 저자의 관점과 문제의식 그리고 통찰력이 요구된다. 사료에 드러나는 현상과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사건이나 인물, 사상과 문화, 제도를 시대의 맥락 속에서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사료 비판이 수반되어야 하며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는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한 전문가의 영역이며, 시대와 분야에 따라 전공이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는 오늘날의 학계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통사를 쓰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되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불교사 통사를 쓰는 것은 역사적 통찰력과 시대별 정치 · 사회 · 경제 · 대외관계 · 문화 등 제 방면에 대한 이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 자체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가능한 작업이다. 

《한국불교사》는 ‘불교’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사의 전 시기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사학사적인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도 불교 수용부터 현대까지 한국불교의 흐름을 서술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서명처럼 이 책은 한국불교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책을 읽어 나가면 《한국불교사》는 불교를 통해 한국사를 서술한 한국사 통사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간의 범위를 보면 상한은 삼국의 불교 수용이 아닌 선사시대 이래의 토착신앙이고, 하한은 조선 후기나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20세기 말 사회의 민주화 운동 속에서 등장한 개혁종단과 현재 조계종의 과제까지 다루고 있다. 한국불교사 연구의 시간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2. 

최근의 연구성과들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었고, 문헌사뿐만 아니라 유물이나 유적과 같은 물질자료를 통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우선, 가야의 불교와 발해의 불교가 각각 별도 항목으로 배정되었다. 또한 근대사와 현대사에 대한 서술이 늘어나고 역사적 평가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갖는 의미도 크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은 것은 조선시대에 대한 서술이 늘었다는 것이다. 

근대학문으로서 한국불교사 연구가 시작된 이후 조선시대는 불교가 탄압받던 억불의 시기이자 불교의 침체기로 인식되었다. 삼국,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경우 각 시기를 이해하는 데에서 불교는 주류사상이자 문화로서 중요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불교를 알지 못하면 한국의 고대 및 중세사회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이해에서 불교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조선시대 불교사는 한국사 일반뿐만 아니라 불교사 연구에서도 그 비중이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 조선시대 연구자들이 증가하면서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의 붐이 일었다. 연구자 수가 증가하면서 연구의 폭이 넓어지고 깊이도 깊어졌으며, 억불정책과 승병의 활약으로 요약되던 조선시대 불교가 사상, 신앙, 의례, 사원경제와 사원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채롭게 밝혀지고 있다. 

《한국불교사》에서는 조선시대 불교를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로 구분하고 다른 시대와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었다. 조선 전기를 ‘억불’로만 이해하기보다 성리학 사회에서 불교의 역할과 사원의 활동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요소이기도 한 살아 있는 유산(living heritage)로서 산사를 조선 후기 불교의 독자성으로 꼽고 있다. 이는 의상의 화엄사상 전공자이면서 동시에 사원문화, 불상과 불화와 같은 불교 문화유산을 연구해 온 저자의 연구 이력 덕분이면서 최신 연구성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였기 때문이다. 

최신 연구성과의 적극적 반영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다른 시대 서술에서도 드러나는 이 책의 강점이다. 이와 함께 전근대 시기에 해당하는 1~6부까지의 경우 불교문화에 대해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으며, 신앙이나 사상에 대한 설명에서도 구체적인 물질자료를 제시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  

3.  

본문만 거의 7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에서 ‘서설’은 책을 읽는 동안 맥락을 놓치지 않도록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저자는 한국불교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주제로 ‘유교 · 도교 · 토착신앙과의 관계’ ‘불교와 국가의 관계’ ‘추복과 현세신앙’ ‘한국불교의 특성-조화와 융합’ ‘한국불교의 종파’ ‘오교-양종’이라는 일곱 가지를 제시하였다. 이 일곱 개의 주제들은 책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므로 본문을 읽기 전 ‘서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국가와 불교의 관계는 불교 수용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불교계의 현재적 문제로, 모든 시기마다 국가(정권)와 불교의 관계를 통해 당대의 불교를 조망하고 있다. 한국불교의 통설로 자리 잡은 ‘호국불교론’이나 ‘통불교론’에 대해서는 근대 한국불교의 산물임을 분명히 지적하였다. 또한 종파와 오교양종의 문제는 한국불교의 체계적 이해에 필요한 부분이면서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조계종과도 닿아 있는 것이다. ‘호국불교론’ ‘통불교론’ ‘종파와 종단’은 학계에서도 항상 논쟁이 뜨거운 부분인데, 이러한 문제를 서설에서 제기한 것이다. 

실은 ‘서설’의 문제 제기뿐만 아니라 소제목 하나하나가 중요한 연구주제들이다. 저자가 학계에 그리고 한국의 불교계에 던진 묵직한 물음은 21세기 학계와 불교계가 각자 그리고 함께 고민해 나가야 할 문제들이다.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수입된 외래종교이자 사상이었고, 애초 불교의 수용자들은 국가와 왕실 그리고 지배층이 중심이 되었으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불교는 곧 전통종교’로 이해되고 있다. 

불교가 오랜 세월 동안 이 땅에서 일반 서민들의 보편적인 종교신앙으로 자리 잡고 한국 전통문화의 중추가 된 것은 불교로서 그리고 동아시아불교로서 보편성을 유지하면서도 불교 수용 이후 1,700여 년의 시간을 한국의 역사와 함께 호흡하며 발전,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대, 현대로 시간이 흘러오면서 변화하는 시대 속에 불교가 시대적 과제를 인식하고 해결해온 시간을 쌓아가며 그 역사적 의의 및 한계를 따라가다 보면 현재의 우리에 이르게 된다. 100여 년 뒤 한국사에서는 21세기의 불교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오늘날의 한국불교 교단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비판적 성찰에 대한 요청으로 마무리한 ‘글을 마치며’에는 역사학자로서 날카로우면서도 현재의 한국불교를 향한 따뜻한 비판이 담겨 있다.

책의 내용이 방대하여 책의 목차를 따라가며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하기보다는 오랜만에 출간된 《한국불교사》의 문제의식을 무겁게 느끼며 한국불교사 통사로서 의미를 서평자 나름대로 조심스레 짚어보았다. 이 책은 연구자들에게는 한국사의 흐름 속에서 각자의 문제의식을 돌아보고 날카롭게 벼리는 기회가,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나침반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서설’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을 뛰어넘는 연구도 나오기를 바란다. 

저자의 바람처럼 ‘한국불교 문화사’나 ‘한국불교 사상사’의 체계적 정리는 여전히 학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아울러 이 책은 한국사 속의 불교와 불교문화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천천히 따라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강호선
hskang@sungshin.ac.kr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한국불교사 전공. 주요 논문으로 〈고려말 나옹혜근 연구〉 〈13~14세기의 대장경 인출 · 유통과 고려대장경〉 〈조선 태조 4년 國行水陸齋 설행과 그 의미〉 등이 있고, 《대동금석서 연구》 《고려시대사 2-사회와 문화》 등의 공저가 있다. 현재 성신여대 사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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