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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운동의 확대와 불교시민운동의 전망
조대엽 고려대 강사
[1호] 1999년 12월 10일 (금) 조대엽 고려대 강사

1. 종교 시민운동을 다시 보며

올해 들어 주요 일간지들은 시민운동이나 NGO의 활동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때로는 시민의 힘을, 때로는 제5의 권력을 강조하며 특집기사나 장기적인 연재기획물로 시민단체의 활동을 상세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신문지면만으로 실제사회를 짐작해 본다면, 이제 우리 사회는 정부와 의회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제도정치의 영역으로부터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하는 시민정치의 영역으로 힘의 중심이 옮겨진 듯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물론 군부권위주의의 파행적 제도정치가 시민사회를 질식시키던 시기에 비해 시민사회의 다양한 하위정치(subpolitics)가 크게 신장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제도정치는 권위주의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시민정치를 주도하는 시민운동 역시 괄목할 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허약한 단계에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에는 시민운동을 비롯한 시민정치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70년대와 80년대의 민주화운동 이후 90년대에 새롭게 전개된 시민운동의 흐름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점은 전문운동단체의 활동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이미 1989년에 사회운동의 변화를 예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출범 이래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 다양한 전문운동단체들이 꾸준히 성장해 왔던 것이다. 이제 이러한 전문운동단체들이 활동한 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여 년의 기간이 지났다. 현 시점에서 이러한 운동단체들은 90년대 내내 시민사회를 선도해 오면서 조직의 내적 성장을 이루기는 했지만 여전히 대중적 기반의 취약함과 아울러 점점 더 폭주하는 사회의 요구에 대처할 역량의 한계 또한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그리고 시민운동의 이와 같은 현 상황에서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도 종교시민운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민운동은 시민사회에 위치해 있고 또 종교는 교육이나 언론부문과 아울러 시민사회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할 때 종교시민운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종교단체는 70년대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부터 이미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70년대 민주화운동은 공개적인 저항조직을 통한 재야 공개기구운동이 전개됨으로써 큰 진전을 이루었는데, 종교단체 특히 기독교 관련단체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기구 또한 이 시기 민주화운동의 주요한 조직적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교회기구들은 대중들과의 접근이 차단된 억압적인 유신체제 하에서 민주화운동의 미시적 동원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 종교시민운동은 어떠한가?

 

각 종교는 교리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중을 하나님의 자식으로, 혹은 중생으로 차별없이 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사회운동에 있어서도 특정 계급에 편중된 이념을 가진 운동보다는 탈계급적인 시민운동과 친화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종교든 간에 과거 민중지향적 민주화운동보다는 당연히 90년대 이후의 시민운동에 더 적극성을 띨 것이 기대된다. 그러나 90년대에 새롭게 전개되는 시민운동을 전문운동단체들이 왕성하게 이끌어 가는 동안 종교시민운동은 무대 뒤로 밀려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개신교 관련 시민단체나 불교 관련 시민단체들은 꾸준히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특히 개신교 관련 단체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들을 개발해서 나름대로의 운동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광범한 사회변동이 급속히 진행되는 현 시점에서 종교시민운동이 어떤 경우에는 비대한 몸집 때문에 또 어떤 때는 지나치게 분산된 활동 때문에 사회적 요청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비록 활동이 지속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퇴행이요 잊혀진 운동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오늘날 세계사회는 중첩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구생태계의 종말적 상황, 핵전쟁의 위협, 끊임없이 이어지는 국지전, 세계적인 범죄현상, 생태계 파괴로 인한 치명적 질병의 확산 등 다양하고도 폭넓은 위기가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전개되고 있는 대부분의 시민운동은 이러한 위기들을 이슈로 삼고 있고, 이러한 위기들은 대체로 서구문명의 부정적 결과인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러한 위기들이 생태 및 생명의 보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면 이제 시민운동의 과제는 종교의 지향점과 분리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로 다른 종교윤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전 국민이 혹은 온 인류가 똑같은 방식으로 기도할 수는 없을지라도 동일한 이슈를 두고 기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시민운동 또한 서로 다른 이념과 목표, 행위양식을 가질지라도 동일한 이슈에 대해 고민하고 행동할 수는 있을 것이다. 개별 시민단체를 성장시키고 시민정치를 활성화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이 같은 서구문명의 부정적 결과가 가져오는 위기로부터 우리의 삶을 보존하고 나아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대전제로 한다면, 전문운동단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현재의 시민운동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금 종교시민운동을 다시 보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불교시민운동의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구공동체를 피폐시킨 서구문명의 대안이 많은 경우에 동양종교에서 찾아지기 때문이라는 점이 하나의 이유라면, 다른 하나는 한국에서 불교가 오랜 역사와 풍부한 기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저력에 비해 그리고 기독교시민운동에 비해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2. 우리 시민운동은 건강한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3천 8백여 개 정도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노동조합이나 종교단체, 연구기관 및 문화예술단체들을 제외하고 순수하게 공익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만 해도 7백여 개 이상이나 된다. 이러한 시민단체의 약 74% 가량이 1987년 이후에 설립되었으며 또 이 가운데 대부분은 90년대에 만들어진 단체들이다.

시민단체의 숫자만으로 본다면 90년대 들어 우리 시민사회는 대단히 크게 팽창된 셈이다. 1990년대 이후 시민운동의 전개에 있어서 뚜렷이 부각되는 특징은 시민운동을 목적으로 설립된 전문운동단체들이 크게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시민권익과 관련된 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과학기술운동, 보건의료운동 등 다양한 형태의 운동들이 이전의 민주화운동과는 달리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러한 운동을 이끄는 운동조직들은 대부분 상설화된 전문운동단체들이었다.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시민운동단체인 YMCA를 비롯하여 경실련,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녹색교통운동연합, 인권운동사랑방, 다른과학 등이 대표적인 예로 활동영역을 넓혀 왔다. 무엇보다도 전문운동단체들은 회비나 기금의 운용을 통해 전문화된 관리체계를 갖춤으로써 회원들이 간접적으로 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이러한 단체들은 조직 내에 여러 분야의 실무분과를 갖추고 있어서 그때 그때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나타나면 거기에 맞는 다양하고 부가적인 이슈를 개발해 낼 수 있다. 운동의 방식 또한 과거 민주화운동 조직들과는 달리 자기단체를 광고하고 활동반경을 넓힘으로써 전국적으로 가급적이면 많은 회원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활동하는 특성을 보인다. 즉 자기단체의 독특한 운동상품을 개발하여 시민의 관심을 촉발시키거나 언론을 비롯한 다양한 제도적 기제를 이용하여 여론을 조성하고 캠페인과 공청회, 토론회 등을 주요활동 방식으로 삼았던 것이다.

확실히 90년대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전문운동단체들은 과거의 민주화운동의 방식과는 차이를 보였다. 계급적 이념에 바탕을 두고 가능한 한 조직의 운영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으며, 구성원들은 민주화에 대한 열정과 헌신을 무기로 시위, 집회, 농성 등 적극적인 직접 참여를 특징으로 했던 민주화운동의 방식과 비교하면 전문운동단체의 활동은 참으로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전문운동단체의 활동이 확대되고 나아가 시민운동이 활성화된 것은 무엇보다도 80년대 이후에 나타난 한국사회의 정치·사회적 변동과 연관되어 있다.

우선 전문운동단체의 확대는 개인들이 자유롭게 운동을 선택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이 넓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간의 정치민주화 과정을 통해 시민사회의 자율성이 그만큼 신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른 한편 전문운동단체의 확대는 탈산업사회적 변동 혹은 정보사회적 변동과도 관련되어 있다. 실제로 시민운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삶의 수준이 일정하게 안정되는 것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공익성을 바탕으로 하는 시민단체의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정서적 여유와 회비라도 낼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일정하게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성장과 부의 축적을 제일의 과제로 삼아왔던 산업사회적 가치보다는 삶의 질과 관련된 탈물질적 가치가 확대되는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90년대 시민운동을 이끄는 전문운동단체의 확대는 한국사회의 이러한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나아가 전문운동단체의 확대는 다양한 정보네트워크의 발전과도 결부되어 있다. 개인들이 헌신적으로 직접 참여하기보다는 운동단체들의 다양한 활동상품을 컴퓨터를 비롯한 정보통신수단이나 매스컴을 통해 손쉽게 확인하고 또 쉽게 회원가입을 할 수 있는 통로가 구축되어 있는 것은 전문운동단체의 확대에 크게 기여하는 셈이 되었다. 1990년대 한국 시민운동은 이와 같은 전문운동단체의 확대가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운동들이 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대부분의 전문운동단체들은 새로운 이슈와 특별한 운동상품을 개발함으로써 회원을 확보하는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운동의 조직화방식 및 행위양식이 마치 상품의 판매를 위해 고객을 유치하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에 ‘시장적 관계’라는 점을 강조해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전문운동단체들은 이런 점에서 ‘시장형(market type)’의 운동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특정지역의 주민공동체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지역주민운동은 지역이라는 공통의 사회지리적 공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공동체형(communal type)’의 특징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핵발전소 건립이나 핵폐기장 건립에 반대하는 주민운동을 비롯해서 1990년대 들어 지방자치의 활성화와 함께 활발하게 나타난 지역주민운동은 댐건설 및 쓰레기 매립에 반대하는 운동, 양담배자판기 철거운동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운동조직은 해당지역의 특정사안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동원된다는 의미에서 1차 동원적 특성을 보인다면, 전국적인 규모의 전문운동단체 가운데도 직장이나 학교 혹은 이익집단과 같은 기존의 공통의 사회관계를 운동에 재동원하는 2차 동원적 공동체형의 특징을 보이는 운동조직들도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시민운동은 90년대 들어 다양한 분화를 보이는데 전체 시민운동을 선도해 온 것은 역시 시장형의 전문운동단체들이었다. 특히 몇몇 주요 전문운동단체들은 국면마다의 주요한 사안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일정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자체의 활동뿐만 아니라 주민운동에 대해서도 지원함으로써 실질적인 영향력과 인지도를 높여 왔다.

그러나 시민단체의 수가 늘어나고 전문운동단체의 활동이 돋보인다고 하더라도 실제 시민운동의 기반은 대단히 허약한 것이 우리 시민운동의 현주소이다.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운동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1%에 불과하고, 약 60%에 가까운 사람들은 시민운동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조차 모른다고 응답하고 있다. 또한 연령별로는 나이가 많을수록 시민운동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의 전망도 그리 밝지 않은 듯하다. 시민운동에 직접 참여하는 시민단체의 회원수를 보면 운동기반의 허약성은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시민단체들 가운데 서울 YMCA의 경우 10만여 명으로 가장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있으며, 환경운동연합이 5만여 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만여 명, 참여연대가 3천여 명을 확보해 그나마 시민운동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같이 지명도 높은 시민단체를 비롯하여 국내에 활동하고 있는 전체 시민단체의 총회원수는 1백 50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더구나 이들 가운데 회비를 내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각 단체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절반에도 못미치는 실정에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전국민의 1%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1999년 현재 우리 시민운동의 현실이 이 정도나마 되는 것은 어쩌면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일해온 시민단체의 활동가들과 스텝들의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길게는 1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 시민운동이 쏟아지는 과제에도 불구하고 시민적 힘의 뒷받침이 거의 없는 그리하여 머리만 비대해져 실제로는 허약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은 실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실제로 주요 전문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은 최근에 들어 이와 같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심각한 반성과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할 방안에 골몰하고 있다. 이와 같은 딜레마에 봉착해 있는 대부분의 전문시민운동단체들은 앞에서 언급한 시장형의 운동단체들로서 원자화된 개인들을 대상으로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시장형의 운동단체는 이러한 점에서 우선 회원이 내는 회비나 기금이 충분해서 재정적인 조건이 갖추어져야만 더 많은 회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적절한 재정적 충당에 기반하여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홍보나 광고를 통해 원자화된 대중들에게 회원가입의 매력을 호소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우리 운동단체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이러한 방식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다. 일반시민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시민운동단체들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정부나 기업에 대한 특징적인 소송을 시도하거나 항의방문이나 공개서한을 보냄으로써 언론에 기사화되고 이러한 기사를 통해 시민들이 그 활동상을 인식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전문운동단체들의 이러한 현재 수준의 운동방식은 일반 시민들이 시민운동단체와 더 가까워지도록 하는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우리의 의식구조는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이 내가 아니라 남들의 일이며 ‘나서는 사람들의 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기본적으로 시장형의 운동방식은 합리주의와 개인주의로 무장하고 오랜 시민민주주의의 역사적 훈련을 거친 서구사회의 문화적 특성에 어울리는 운동방식이다. 집단주의와 연줄의식에 기초해 있고, 남들보다 조금 손해보고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거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뒤에서’ 무언가를 하기를 즐기는 우리의 문화적 속성은 시장형 시민운동의 방식과 친화력을 갖기 어려운 조건에 있다.

말하자면 시장형 시민운동은 한국 시민사회에 문화적 적합성의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식은 더 오랜 민주주의의 훈련과 서구적 합리성이 체계화되어야만 그 적합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꾸준하고도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3. 지구적 사회변동과 시민운동의 이중과제

최근에 지구적 단위로 전개되고 있는 사회변동과 관련해서 우리 시민운동은 더욱 중요한 과제들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도 1980년대부터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범지구적 세계경제의 통합과정은 개별국가의 정체성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조류는 신자유주의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각국의 시장자유주의자들과 IMF, WTO 등의 국제기구를 통해 거침없이 확산되었던 것이다.

특히 구 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이후에는 이른바 ‘터보자본주의’라고도 불리는 세계자본의 난폭한 전횡 앞에 기존 질서는 맥없이 허물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더욱이 한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가들은 급속한 경제성장과정에서 자본의 높은 해외 의존도로 말미암아 일국의 운명이 이미 세계시장에 저당잡힌 바나 다름 없었다. 이와 같은 세계시장의 단일화 경향은 정보화 사회로의 변화를 가능케 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을 통해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다.

정보화 사회로의 변동은 세계사회를 시간적, 공간적으로 응축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보 및 지식의 가치를 크게 높여 사회 전체를 일국단위의 산업사회적 구성과는 다르게 변모시키고 있다. 이와 아울러 세계사회는 생태환경의 위기적 징후로부터 파생되는 다양한 위험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궁핍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계급불평등과 국가간 불평등을 초래했지만 이제 ‘스모그’는 사람과 국가를 초월하여 평등하게 위험을 제공한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압축적 경제성장을 경험한 사회에는 급속한 경제개발의 과정과 중심부국가의 공해산업의 이전으로 무분별한 생태계의 파괴가 자행되었기 때문에 그 폐해가 훨씬 더 심각하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지구적 사회변동의 내용들은, 특히 공동체를 해체시키고 삶의 질을 떨어뜨려 급기야 생명 자체의 존속을 불가능하게 하는 환경으로 우리를 내몰아친 변동의 부정적 요소들은 대부분 서구의 근대적 합리성에 바탕한 과학기술발전과 자본주의 산업화의 결과물이다.

자연과 인간과 사회를 개조시켜야만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과학기술을 오로지 대상에 적용시키는 것만을 생각해 왔던 1차적 과학화의 결과가 오늘날의 위기적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비록 20세기 후반에 들어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한 반성이 있어서 ‘성찰적 과학문화’가 확산되고는 있지만, 더 큰 힘으로 거침없이 밀어붙이고 있는 국제자본의 시장주의는 1차적 과학화 이념의 20세기 최종판이라고 할 수 있다.

부의 양극화와 생태환경의 파괴를 수반하는 세계시장의 단일화 과정, 나아가 시장의 논리가 모든 공동체의 논리를 파괴하는 시장전제주의의 확산을 보면서 우리는 이제 시민운동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사회 자체의 존립문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좋든 싫든 이제 신자유주의의 냉혹한 경쟁질서 속에 본격적으로 편입하게 되었다. 80년대의 마가렛 대처가 그러했고 레이건이 그러했듯이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회생을 위해 사회의 죽음을 동반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의 기수들이 단언한 바대로 ‘사회란 없는’ 것이다.

이같이 예견되는 가혹한 상황은 시민운동이 존재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시장독재의 거센 파도를 견뎌내고 최소한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주의’를 통해 우리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방패는 여전히 ‘정치’라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러한 상황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제도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시민운동의 정치야말로 시대적 요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 시민운동은 국제자본의 시장전제주의에 대응해야 하는 대외적 과제와 아울러, 지구적 사회변동의 국내적 효과 및 정부의 개혁을 감시해야만 하는 대내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이미 우리는 IMF 관리체제라는 가혹한 시련을 통해 이러한 이중적 과제를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현재 우리 시민단체들은 조직의 역사와 역량에 비해 이 같은 과중한 부담을 안게 되면서 딜레마에 봉착해 있는 듯하다.

더구나 시민운동을 이끄는 전문운동단체들의 수준과 조건이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러한 어려움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 운동단체들이 대외적 과제 및 대내적 과제와 관련해서 갖게 되는 한계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선 현재의 시민단체들이 가진 대외적 과제와 관련된 한계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이념의 부재현상을 들 수 있다.

한국의 사회운동은 70년대와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이념적으로는 계급적 혹은 민중지향적 경향을 강하게 보여 왔다. 80년대 말과 90년대 초까지도 이러한 운동의 잔여적 형태들이 존속해 왔으나 현재 대부분의 시민운동단체들은 정책에 대해 더 비판적이냐 덜 비판적이냐의 차이만을 가질 뿐 새로운 이념적 정향이나 운동의 새로운 전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많은 경우에 조직 내에 다양한 분야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둠으로써 통일된 이념의 부재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결국 시민단체의 활동이 그때 그때의 사안에 대해 즉응적으로 대처하도록 만들고, 또한 활동가들의 활동을 조율하지 못하도록 해서 조직의 질서를 위태롭게 하거나 도덕성 문제를 야기시킬 수도 있다. 미래에 대한 비전과 새로운 지향점이 없는 상태에서는 실제로 다국적 기업과 국제금융자본이 지구 전체를 쇼핑상가와 투기장으로 만들어가는 데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에 많은 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생명주의와 생태적 사고는 비단 환경관련 단체들에 국한된 이념이 아니라 많은 시민단체들이 나름대로의 독자적 활동영역과 연계할 수 있는 이념적 포괄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것이기도 하다. 대내적 과제와 관련해서 시민단체들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는 조직의 경직성과 폐쇄성에 있다. 이러한 경직성은 일반적으로 조직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현단계 우리 시민운동에 있어서는 시민단체의 주요 인적 구성이 가지는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주지하듯이 현재의 시민운동을 주도하는 핵심구성원들은 대부분 지난 군부권위주의 하에서의 민주화운동과 연속선에 있다. 따라서 현재의 시민정치는 민주화운동 당시 비교적 오랜 역사를 가진 시민단체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온건 자유주의 노선에 있었던 인사들과 민주화운동 당시 비교적 진보적 변혁운동을 추구하다가 90년대 전문운동단체로 자리를 옮긴 이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운동정치의 기득권을 가졌다고도 볼 수 있는 이러한 인사들이 가지는 특징은 시민단체의 폐쇄성과 관련해서 두 가지 함축적인 의미를 가진다.

우선, 이들은 현 김대중 정부의 권력구성원들과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제도정치권의 핵심인사들과 친화력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정부정책이나, 권력운용의 문제점, 그리고 부정부패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한계는 제도정치권에서 지속적으로 이른바 ‘젊은 피’론과 같은 제도정치 충원작업을 통해 시민정치의 활동가들을 요구함으로써, 나아가 이미 제도정치에 진입한 시민운동출신 인사들과의 연계로 인해 더욱 확대되고 있다. 다른 한편 90년대 새롭게 전문운동단체들을 이끌고 있는 인사들은 진보적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과거 민주화운동의 관성을 혁신해 내지 못함으로써 개방적이고 탈계급적인 시민운동의 정치에 적응하는데 일정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의 사회변동을 염두에 둔다면 시민단체들은 과감한 개방을 통해 폭넓은 전문직업인들의 확충이 요구되는 시점에 있다. 이른바 지식기반사회로의 변화는 사회구성 자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이 다양한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과학, 기술, 법률, 보건의료 등 광범한 분야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인적 요소가 갖는 제약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운동 리더십의 변화와 운동 지식인의 확대가 혁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단체들의 대외적, 대내적 과제는 이러한 점에서 운동 단체들이 갖는 조직적 한계에 동시적으로 맞물려 있다. 또한 이러한 한계는 앞에서 지적한 대중적 기반의 취약성에 따라 나타나는 머리뿐인 시민운동의 한계와도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

4. 불교 시민운동의 확장을 위하여

이제 20세기가 저물어 가고 새로운 천년을 전망해야 할 시점에서, 그리고 우리 시민운동의 지난 10여 년을 성찰해야 할 시점에서 이상의 사실들을 통해 시민운동의 세 가지 핵심적인 문제점을 설정해 볼 수 있다. 즉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문제와 시민운동의 이념적 지향의 부재, 그리고 시민운동 리더들의 자기 폐쇄적 요소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현재의 고민이 비단 개별 전문운동단체들의 확대성장이라는 과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 시민사회의 발전과 시민적 삶의 수준을 고양시키는 데 겨냥되어 있다면, 시민운동의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종교 시민운동, 특히 불교시민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시민 없는 시민운동의 과제를 해소하기 위해 불교시민운동의 적극적인 확장이 요청된다.

현재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은 전체 인구 가운데 극소수라고 할 수 있는데 그나마 이러한 규모가 유지되는 것은 YMCA와 같은 기독교 시민운동단체가 방대한 회원규모를 갖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교시민운동이 다른 시민단체에 비해 압도적인 회원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오랜 역사를 가지고 꾸준히 활동해 온 결과라는 점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는 교회구성원들이 이러한 운동에 쉽게 동원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민운동의 동원방식으로 본다면 현재의 YMCA와 같은 단체는 시장형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실제로 동원화 방식에 있어서는 ‘유사공동체형’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즉 공통의 지리적, 사회적 관계를 바탕으로 결합된 것은 아니지만 공통의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교회성원들을 운동에 재동원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YMCA의 경우는 시장형과 공동체형의 절충식 조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인의 문화적 특성을 고려할 때 원자화된 개인이 직접 동원되는 시장형의 운동방식은 아직까지 한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린 훼밀리 운동연합’으로 바뀐 ‘그린스카우트’의 성공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 조직화된 학교, 직장, 교회 등을 2차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은 훨씬 더 우리 상황에 어울리는 운동방식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종교현황을 보면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는 당연히 불교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시민운동으로 연장시켜 보면 시민운동의 ‘미시동원력’을 가장 크게 가진 집단이 바로 불교집단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독교 시민운동에 비해 불교 시민운동은 크게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단적인 예로 1990년대 중반의 현황을 보면 종교별 정기간행물의 경우 전체 220여 종 가운데 불교 간행물은 25종으로 개신교 110여 종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있다. 또한 종교단체가 설립한 대학현황의 경우 불교는 2개로 개신교의 69개에 비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불교시민운동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불교계의 현황에 기반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은 불교사상이 지향하는 실천노선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겠지만 그토록 오랜 역사와 잠재된 동원력으로 볼 때는 아무래도 소극적인 사회참여로 비쳐지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사회참여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인식되고 있고, 종교이념의 구현 역시 시민사회의 다양한 제도와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종교에 헌신하는 수많은 신도들에 대한 사회적 역할을 담당해야만 한다는 점에 인식을 공유한다고 볼 때 불교의 사회제도화 혹은 조직화는 더욱 요구될 수밖에 없다. 시민운동의 동원구조로 볼 때 대학과 출판 및 언론의 요소는 가장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한다. 불교계의 이러한 요소들은 더 많이 그리고 일반 시민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설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는 오랜 동안 나름대로의 역할을 꾸준히 해온 다양한 불교관련 단체들이 있다. ‘전국불교운동연합’ ‘대한불교청년회’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실천불교승가회’ 등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체들이고 이외에도 분산된 여러 단체들이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다. 불교계의 종단과 대학, 출판기관 및 언론을 비롯하여 현존하는 이러한 불교관련 단체들은 이제 한차원 높은 포교방식과 관련해서도 새로운 불교 시민운동에 머리를 맞댈 때이다. 둘째로 최근에 확대된 전문시민운동단체들의 이념 부재현상과 관련해서도 불교시민운동의 확장은 시급히 요청된다.

현대사회의 모든 삶의 형태는 무엇보다도 과학기술의 진보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바탕하고 있다. 그것이 자유주의적인 이념을 추구하든 계급이념을 추구하든 간에 기술의 진보와 사회의 발전을 동일시하고, 과학기술의 발달과 그 부정적 효과들을 분리시키려 애쓰며, 나아가 이러한 합의가 다름 아닌 자본주의의 담당자들 간에 이루어짐으로써 더욱 견고해졌다는 사실은 20세기 후반의 지구황폐화와 관련해 성찰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이 같은 기술발전과 경제성장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의 배경은 자연과 사회를 끊임없이 바꾸어 놓아야 할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 있다. 즉 자연으로부터 철저하게 인간을 분리시키고 대상세계를 보다 폭넓게 그리고 보다 빠르게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근대의 핵심적인 세계관에 대해 20세기 후반에 전개된 많은 비판들은 서구문명 비판으로 모아졌으며 그 대안은 대부분의 경우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는 지구공동체에 대한 생태적 사고였다. 이러한 관점은 종교의 본질적 질문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현대종교가 지향해야 할 바를 분명하게 했으며 특히 많은 학자들로 하여금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특히 불교가 가진 일체중생의 가르침이나 생명사상은 다른 무엇보다도 현재의 그리고 향후 세계사회의 변화와 큰 적합성을 가지며 이러한 신념의 실천은 시민운동의 이념적 바탕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20세기 전체에 걸쳐 확장된 서구 산업자본주의 질서 하에서 기독교가 크게 확대되었으며 기독교 시민운동 또한 이러한 흐름을 통해 확대되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찌기 베버(Max Weber)에 의해 분석된 바 있듯이 자본주의적 축적의 정당성, 말을 바꾸면 끊임없는 경제성장의 정당성은 문화적으로 개신교의 윤리와 적합성을 가져 왔다.

그러나 근대문명에 대한 성찰성이 증대하고 양적 성장의 신화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개념으로 바뀌었으며 또 그것이 지구 생태계의 존립에 대한 관심을 확대시킨 현시점에서는 어쩌면 개신교윤리의 적합성이 시효 만료적 시점에 왔거나 혹은 새로운 적응이 요구되는 시점에 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나치게 거대해진 조직 규모로 인해 활동의 장애를 보여 주는 개신교 시민단체의 경우도 이 같은 새로운 적응의 과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결국 이러한 사실들은 이른바 세계종교의 반열에 드는 종교들 가운데 불교의 시민운동이 새로운 세기의 문화와 가장 큰 친화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시민운동이 가지는 인적 구성에 의한 폐쇄성의 한계는 일정하게는 불교시민운동이 새롭게 전개됨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점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불교시민운동 역시 그러한 한계를 끊임없이 혁신해내야 할 과제로 남겨 둘 수 있다. 새로운 세계관과 이념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운동방식을 추구하는 시민단체를 구성한다면 이러한 한계는 일정하게 극복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관행을 감안한다면 개방적 의식과 새로운 행태로의 과감한 전환이 없을 경우 사람의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과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불교시민운동의 기반이 될 수 있는 대학과 언론 등의 제도들을 체계화시켜 새롭게 훈련된 인원의 충원과 운동에 대한 끊임없는 내재적 비판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 이러한 사실들은 불교시민운동의 확장이 현 단계에서 몇 가지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문운동단체들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의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종교시민운동의 영역 내에서도 새로운 대안으로 부각된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20세기의 막바지에서 그리고 새로운 세기의 문턱에서 우리 불교시민운동이 세계시민운동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나아가 한국불교의 독창성에 기반한 새로운 불교시민운동이 구상되어 세계 곳곳에 그 운동이 확장되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끝>

조대엽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현재 고려대 강사. 저서로 <1990년대 사회운동조직분화의 유형적 특성><한국에서의 사회운동 연구:동향과 과제><한국민주화운동의 쇠퇴와 정치적 기회구조><정보사회와 시민운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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