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국토의 70%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우리나라에서 빼어난 자연경관이 갖춰진 곳곳에는 고색창연한 절이 하나쯤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인구의 약 44%인 2,155만 명이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 불교 신도들은 791만 명(15.5%)에 달한다.

어린 시절 소풍을 갈 때면 으레 가까운 절이 목적지가 되게 마련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수학여행을 간 곳도 온통 부처님의 나라였던 경주를 두루 돌아왔으니, 옛 사진첩을 들춰보면 절이나 탑을 배경으로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많다. 이처럼 우리는 어릴 적부터 불교문화에 자연스레 친숙해진 터였다. 그러나 우리 집안의 할머니나 어머니께서는 불공을 드리러 자주 절에 다니시지는 않으셨다. 간혹 부처님오신날 구경하러 절간을 몇 번 기웃거렸던 정도였으니 절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학창 시절을 보냈다.

우리가 잘 아는 《심청전》이 그러하듯 초 · 중 · 고등학교의 국어나 문학 교과서에는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여러 편 실려 있다. 그러나 이런 작품들도 그저 공부하는 과제로 받아들여서 그런지 깊이 있게 천착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교직에 들어와서 가르치는 입장에서 다양한 불교적 소재의 글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과서를 가지고 40여 년에 이르도록 가르쳤지만 정작 절 마당에 가서는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학생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못 한 경우도 많았다.

모든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한 종교에 대하여 개괄적으로나마 이해를 한 뒤에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절에서 의례를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진 사물인 법고, 운판, 범종, 목어에 대한 이해도 없었다. 사찰 입구의 일주문에서부터 사천왕상이라든지 전통사찰의 가람 배치며 탑과 부도, 법당과 전각의 의미와 모셔진 불상의 명칭과 상징 등,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비록 수행자가 아니고 역사나 미술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웬만큼은 불교에 대한 배경지식을 갖추고 절을 드나들어야만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불교 입문서를 읽으면서 불 · 법 · 승이 불교에서 가장 기본적인 믿음의 대상인 삼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석가세존에서부터 우리나라의 불교 전래과정이며 기본 의례인 합장과 절, 불교 용어와 상식, 불교문화에 대하여 조금씩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다양한 형상의 불상이나 탱화에 대한 이해는 부족한 편이다.

오늘날의 교과서 편찬 내용과 방향은 시대 변화에 맞춰 과거와는 조금씩 달라졌다. 그렇지만 불교적 소재와 배경 사상을 지닌 작품들, 대표적으로는 고전인 신라 향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소설 《구운몽》 《심청전》을 비롯, 현대문학에 이르러 정한숙의 〈금당벽화〉 김동리의 〈등신불〉 한용운의 〈님의 침묵〉 조지훈의 〈승무〉 등, 산문과 운문 문학의 다양한 걸작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을 가르치려면 어느 정도 불교문화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만 제대로 된 수업을 진행해 나갈 수 있다.

위에 열거한 현대 소설과 시 작품들의 공통적 주제는 인간 고뇌의 종교적 구원 또는 세속적 번뇌의 종교적 승화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의 주제 구현을 위하여 여러 불교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금당벽화〉에는 담징이 그림을 그리는 금당, 관음상, 사바세계가 등장하고, 〈등신불〉에는 불상, 선사, 대사, 시봉, 소신공양, 입적, 공양, 포교당, 법의, 목어, 만해의 시에는 다양한 불교 사상, 조지훈의 〈승무〉에는 ‘번뇌’와 불교 의식인 ‘승무’가 소재로 등장하는바, 이들에 대한 이해가 우선 필요한 것이다.

 

나는 요즘 커다란 미륵불이 모셔져 있는, 집에서 가까운 절을 틈틈이 찾는다.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이신 미륵불에 마음의 평온을 의탁해 본다. 늘 한결같은 자태로 너그러이 맞아주는 엷은 미소가 외경심을 자아내는 가운데 저절로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최근 몇 달 사이 내 주변의 가까운 이들과 안타까운 이별을 해야만 했다. 혈액암으로 아우를 떠나보내고, 담도암으로 친구마저 세상을 떠났다. 한동안 마음이 심란했다. 거기다가 늙은 양친께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참척의 아픔 속에 요즘은 노환으로 병원을 자주 찾으시고, 과년한 두 딸이 있는 퇴직한 가장의 몸으로서 심적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러니 가족들이 나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종합검진을 받아 볼 것을 종용했다. 주기적으로 건강검진을 하고 있지만 더 정밀한 검진을 요구했다. 예약 후 몇 개월의 기다림 끝에 검진을 받고 나서 얼마 후 결과가 나왔다. 결과 통보가 올 때까지 은근히 걱정도 되었으나 별 이상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소견을 들었다. 그제서야 식구들이 안심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기나긴 시간 속에서 오욕칠정이 뒤엉킨 삶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 내가 자주 찾는 미륵 부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무엇을 현시해 주는지는 모르지만, 우선 나보다 몇 배 큰 몸채로서 무언가 이뤄내고 간절함을 들어줄 듯한 자비로운 형상에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이 또한 내가 가르쳤던 교과서의 작품 속에 나타난 주인공들이나 화자들이 한결같이 갈등을 일으키던 인간적 고뇌로부터 마침내 종교적 구원을 이루고자 하는 작은 행위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본다. 온 세상이 걷힐 줄 모르는 역병의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 몸부림치고 있다. 하루빨리 이 그림자가 걷혀야만 한다. 이보다 더한 구원이 어디 있겠는가.

한 편의 졸시로서 오늘 또 다른 반성을 대신한다.

일찍이 온 세상은 수심 모를 바다였었나
헛된 꿈 헤엄치던 우린 작은 물고기
두드려 묵은 때 벗고 소금기를 토한다

목어의 빈 배를 보면 허욕도 한때인 걸
기쁨과 슬픔이며 하찮은 사랑과 미움도
마침내 이르고자 하는 문턱에 서성임을.

— 〈목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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