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꼭 선생님이 될 거야!”

“앞으로나란히! 열중쉬어!”

“내가 하나! 둘! 하면 너희들은 셋! 넷! 하고 따라와.”

여섯 살 나이부터 매일 선생님이 될 거라고 장소 불문하고 골목에서 툇마루에서 안방에서 헛간에서 너른 장소만 있으면 자리 잡고 선생님 놀이를 했었다. 친구들이 없을 때는 혼자 막대기로 땅에 글을 쓰고 읽고 지우며 선생님 놀이를 했고, 비가 오는 날은 방안에서 선생님 놀이를 했다. 이 일은 너무 재미있고 신이 나고 힘이 나는 일이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여섯 살부터 선생님 놀이를 시작해서 14년 학교 공부를 마친 후 현직에서 42년간 근무하고, 퇴직한 지금은 화실에서 문인화 선생님을 하고 있다. 그러니 내 인생의 거의 전부가 선생님 놀이였고 학교와 온 세상이 모두 다 내 놀이터였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부처님 같은 아버지랑 사시면서 집안의 기강을 잡으시느라 너무도 무서웠다. 아버지는 우리가 잘못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늘 “허허허, 괜찮아, 다시 하면 돼. 다음엔 안 그러면 돼.”라고 하면서 안심을 시켜주셨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따뜻하게 덮어주셨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도 사정이 있을 거라고 하셨다. 누구나 그 입장이 되어 보기 전에는 남을 미워하지 말고 그 마음을 헤아려 봐야 한다고도 하셨다. 아마도 아버지는 자식의 입장에 서서 늘 헤아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어머니 입장도 늘 헤아리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온몸 자체가 배려이고 사랑이고 따뜻함이셨다.

9남매를 낳아 아들 둘을 하늘나라로 보낸 어머니는 정초가 되면 꼭 하시는 일이 있었다. 어린 나의 손을 잡으시고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자주 청련암 부처님을 찾았다. 남은 자식들 건강하게 잘 자라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부탁하러 가시는 것 같았다. 금쪽같은 자식 둘을 잃었으니 남은 자식은 꼭 지켜야겠다는 마음이 가득하셨으리라. 그렇게 무서웠던 어머니가 부처님 전에 정성스럽게 두 손을 모으고 엎드려 절하는 모습은 어린 내게는 참 신기하게 보였고 나도 어머니를 따라 엎드려 절을 하곤 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자식 낳아 기르면서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사랑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모습을 닮고 싶었나 보다. 그 후 지금까지 나도 어머니처럼 부처님을 마음속에 고이고이 모시고 살아가면서 10년째 신도회장을 하며 부처님 가피를 받고 있으니 말이다.

 

살아생전 닦은 길이 내 마지막 길이 된다 했던가! 아버지는 90 평생 살아생전에 아무리 힘들고 고된 자갈길도 꽃길로 만드시며 사시었으니 가시는 그 길도 아버지가 가꾸어 놓은 그 꽃길이셨으리라 믿는다. 지금도 어렵고 힘든 일을 해야 할 때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극락에 계신 아버지가 지켜주고 응원해주신다는 것을 확신하며 힘을 낸다. 지금은 지장암 부처님 품 안에서 우리를 지켜 보고 계시는 아버지! 언제나 그립고 보고 싶다. 아버지 생각만 하면 그냥 마음이 따뜻해지고 불뚝불뚝 힘이 생긴다.

 

97세이신 어머니는 걸으실 수도 없어서 누워서 대소변을 보시지만 정신만은 또렷하셨는데, 언제부터인가 깜빡깜빡 기억이 사라져가고 있다. 아기천사 어머니 머리맡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 사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온 긴 세월 희로애락의 풍경들이 한 폭의 그림 되어 어제 일처럼 보인다

“엄마,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자식을 낳으셨어?”

“나도 모른다. 니 아버지가 옆에만 오면 애가 생기더라. 하하하.”

“엄마 아직도 아버지가 좋아? 다시 태어나도 아버지랑 결혼할 거야?”

“그럼, 이 세상에 니 아버지 같은 사람은 없어.”

64년을 함께 살고도 아직도 아버지를 사랑하고 계신 어머니가 존경스럽다. 아니 저세상에서도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계신 아버지가 더 존경스럽다

“어머니! 더 이상 아프지 마시고 이대로 오래오래 저희 곁에 계셔 주세요. 그리고 아버지한테 가실 때 아버지 잘 찾아가실 수 있게 아버지 얼굴만은 꼭 기억하고 계세요.”

오늘도 아기천사 어머니 옆에 나란히 누워 따뜻한 손을 잡아본다.

“선생님이 될 거야.”라고 수천수만 번도 더 했던 그 말이 곧 나의 삶이 되어 교장으로 퇴임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수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을 잘 이겨내고 아름답게 날아오른 나의 삶을 사랑하고 응원한다. 말이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나는 믿는다. 말에는 각인력, 견인력, 성취력이 있어 꿈을 이루어지게 해 준다는 어느 뇌과학자의 말에도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처음 교장으로 부임한 학교 교장 자리에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사진도 찰깍, 찰깍.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땐 그 사진을 가끔 꺼내 본다. “여기가 교장 선생님 자리야?” 하며 미소 지으시던 아버지, 어머니. 참 좋으셨나 보다. 내가 앉으며 감격했던 그 자리에 아버지 어머니가 앉아 계시니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속을 들여다보니 아버지 어머니께서 내 안에 가득 채워 주신 귀한 보물들이 구석구석 한가득 차 있다. 내 삶의 원동력이 된 그 보물들의 힘으로 그 사랑의 힘으로 오늘 하루도 힘차게 시작한다. 수미산 흙이 티끌이 될 때까지 천 번 만 번 해도 모자랄 그 말을 되뇌며…….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사랑합니다.”

saemmul402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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