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돌이켜 보면 나와 ‘백담사’와의 인연은 참 깊은 것 같다. 그것은 내가 불교 신자라서가 아니라, 1999년 백담사에서 열린 제1회 ‘만해축전’ 때문이었다. 정식 초청을 받았는지 어떠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러나 해마다 8월이면 축전에 참가하여 그 언저리에서 빙빙 돌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 해는 강원문인협회 회원들 몇 명이 초청되어 가기도 했지만, 우리의 존재감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먼발치에서 지면으로만 뵙던 오현 큰스님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 후 시인이신 오현 큰스님을 가까이서 뵌 것은 2000년대 초, 어느 해 가을이었다. 최동호 교수가 이끄는 ‘시사랑회’ 일원으로 백담사로 문학기행을 갔다. 숙소를 배정받고 저녁 공양이 끝난 후 큰스님께 인사드릴 겸 어느 방으로 모였다. 몇 명이 참석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일행은 방안을 가득 메우고 둘러앉았다.

방에 들어서자 모두 공손히 합장으로 인사를 드렸다. 지금까지 스님을 한 번도 가까이서 뵌 적이 없던 나도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그런데 스님은 문단의 말석인 내 이름을 알고 계시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깜짝 놀라며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사람은누구나 세상에서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엔도르핀이 상승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날 밤, 스님의 말씀이 길게 이어졌다. 나는 속으로 감탄하면서 종이쪽지에 메모했다. 그 메모지를 잘 보관하다가 언제인가 버렸던 것이 아쉽기만 하다. 잘 두었더라면 이 글을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도 같기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어떤 느낌을 적었을까? 그 메모지가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튼 그날 밤 내가 무한히 감동하였던 것은 큰스님이 자기 자신을 문둥이니, 땡중이니 하시면서 중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쓰시던 기억 때문이었다. 자신을 한없이 낮추신다는 인상을 받았다. 기억에 남는 이야기로는, 당신은 한없이 게을러서 서당에도 안 가고 개울가에서 소금쟁이를 잡으며 놀기만 했단다. 그리고 철이 좀 들어서는 절간에 소 머슴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떤 날은 소를 몰고 들에 나가서 너럭바위에 벌렁 누워 잠을 자다가 보면 소가 온통 남의 밭을 다 망쳐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절에서 저 절로 쫓겨 다니면서 산 시정잡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자신은 땡중으로 부처를 팔아먹고 산다면서 무슨 ‘염장이 이야기’도 하셨던 것 같고, ‘다람쥐가 어떤 스님의 흰 고무신을 뜯어 먹었다는 이야기’ 등 얼핏 들으면 장난기 어린 옛날이야기 같은 그런 말씀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무지한 나는 그 후 한참 뒤에서야 그날 하시던 말씀이 모두 스님이 이미 쓰신 ‘절간 이야기’이란 것을 알았다. 2003년 8월 초 스님의 《절간이야기》란 시집 한 권을 받고 스님 말씀의 참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 책은 불교적 진리를 담은 선문답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마디로 우리 세인들을 깨우치게 하는 심오한 경지의 설법이었다.

그 이후로 큰스님의 시집과 경전, 그리고 백담사 전시관 판매대에 꽂혀 있던 책을 갈 때마다 한 권씩 사게 되었다. 그리곤 시상이 안 잡히거나 시가 안 써질 때면 종종 꺼내 읽는 자산이 되었는데, ‘백담사’와 그리고 오현 스님과의 인연 덕분이다.

 

그날 밤 나는 절간 방에 들어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이 너무나 작은 미물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더구나 캄캄한 산사의 밤은 적막 그 자체였다. 적막 속에서 풀벌레 울음소리는 온통 산사의 적막을 깨우는 듯했다.

나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불가에서 이르기를 ‘모든 번뇌와 스트레스는 외부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란 말처럼 나는 자꾸 내가 무엇을 하는 인간인지, 왜 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나 자신에 대하여 한없이 회의적인 밤이었다.

옆 사람들의 곤한 잠을 깨울까 봐 어둠 속에서 살금살금 손에 잡히는 대로 메모지에다가 이런 시를 썼다.

가을 산사에서 하룻밤을 지샌다/ 깊이 잠든 별도 쳐다보고/ 숲 속에서 이는 바람소리도 들으면서/ 큰스님의 이야길 듣는다/ 내 진작 어려서부터 중은 안 되더라도/ 절을 가까이 하면서 살았더라면/ 스님의 깊은 언저리라도 배웠을 것을//

밤 깊어 스님은 풍경 속으로 잠들고/ 슬프도록 적막한 고요 속에서/ 나는 홀로 귀 세운 짐승처럼/ 어디선가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산이 우는 소리를 듣는다//

오늘 밤은 이 산사에서 귀를 뉘이고/ 내일은 또 어느 곳에 가서/ 잠들 것인가를 생각한다

— 〈가을 산사에서〉 전문

 

이 시의 내용처럼 내가 불교에 대하여, 학문에 대하여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의 발화였다.

결국, 그날 밤은 큰스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또한 처음으로 불교에 대한 호기심을 느껴 귀와 눈을 열었던 산사의 하룻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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