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김창완이 처음 부르고 아이유가 다시 불러서 우리 귀에 익숙한 노래가 있다. 바로 〈너의 의미〉란 노래이다. 그 노래 가사 중에서도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너의 모든 것은 내게로 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네”라는 노랫말이 자꾸만 가슴에 꽂힌다. 이제 70을 3년 앞둔 나이에 무슨 말 못 할 사랑이 있냐고 물을 것 같다. 그렇다. 나의 사랑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 진학한 막내아들이 중국 황실견이라는 시추를 사가지고 왔다. 내 손바닥에 딱 들어오는 크기이니 어미의 젖도 제대로 빨지 못한 채 팔려 나온, 가련하지만 너무도 예쁜 조그마한 생명체였다. 남편은 ‘지니어스’ 즉 천재라고 이름을 지어주었고, 나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 하며 ‘젠’이라 하였다. 자연스레 두 가지가 합쳐져 제니라고 불렀는데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 친구의 이름과 똑같아 사람들에게 암컷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젠은 너무도 아름답고 잘생기고 멋진 수컷이었다. 그렇게 ‘제니’와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막내아들이 잘 돌보았지만 대학 생활이 어디 그런가, 얼마나 재미있고 할 일이 많은가 말이다. 나날이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남편도 워낙 일 중독증 환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늦은 귀가는 일상이 된 사람이었다. 큰아들은 학교 앞 원룸에 살면서도 틈만 나면 집으로 와 제니를 참 살뜰하게 돌봐주었고 병원에도 제일 많이 데리고 다녔다. 그래도 제니는 언제나 나의 돌봄이 가장 컸다. 그래서 제니는 나와 애착 관계가 형성되며 나를 엄마처럼 따랐다. 귀가하여 집에 들어오면 현관에서 오로지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

제니의 저녁은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가 잘 챙겨 준다 해도 제니는 내가 집에 있어야 안정감을 찾는 것 같았다. 예쁜 눈동자와 잘생긴 얼굴과 몸매는 너무도 매력적이었고 이름값을 하듯 무척이나 지혜로웠다. 밤에는 내 손과 품에서 잠이 들었고, 일이 있어 외출할 때도 내 차에 태워 일을 보고 올 때까지 차 안에 있었다. 혼자 있는 것보다 오며 가며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나도 바쁘고 도우미 아주머니가 퇴근하면 제니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정이 들기 전에 그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 제니를 위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제니를 데리고 올 때 가지고 온 애완견 수첩에 적혀 있는 첫마디 “주인님! 저를 다른 곳에 보내지 마세요. 주인님은 영원한 저의 주인님입니다”라는 글귀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느 날 제니를 데리고 도선사를 찾아갔다. 아직 어리기에 품 안에 안고 지장보살님 상 앞에 섰다. “지장보살님! 이 어린 중생이 하늘나라로 가는 날까지 보살피겠다는 제 마음이 변치 않도록 살펴주시옵소서.” 그렇게 부처님 앞에서 끝까지 키우겠다고 약속까지 한 것이다. 제니는 우리의 사랑을 흠뻑 받으며 잘 자라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방접종을 위해 병원에 갔을 때 귀를 의심할 만한 말씀을 들었다. “제니는 관절에 이상이 생겨 7~8년 지나면 걷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걸어가 밥을 못 먹게 되면 데리고 오세요.” 의사 선생님은 실력 있고 평소 아픈 동물을 정성껏 돌봐주시는 신뢰가 가는 훌륭한 분이었다. 그동안 많은 반려동물을 보아왔기에 그러한 말씀을 할 수 있었으리라. 나름 이해는 가지만 아직 멀쩡한 제니의 보호자로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미리 내 마음에 예방주사를 놓는 것이라 생각했다. 세상에나 이럴 수가…….

제니는 2018년, 우리 집에 온 지 12년이 되던 해부터는 거의 걸을 수 없었다. 몸짱 제니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이제는 온종일 누워서 지낸다. 제주를 사랑한 김영갑 사진작가가 루게릭병에 걸려 제주의 오름을 오르내리지 못했을 때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아들 면회를 갔을 때도 반가워하며 아들에게 달려갔던 제니, 비록 색맹이라 해도 길상사로 연등을 보러 갔고, 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며, 서울에서 걷지 못하던 제니가 제주의 맑은 햇살과 바람을 매일 맞으며 서서히 회복되어 제주 해변을 힘겹게 걸어가던 모습들…… 이렇게 제니와 함께한 16년은 아름다운 추억도 한 편 한 편 쌓여 갔지만 ‘무상(無常)’이라 했던가. 너무도 달라진 제니의 건강 상태는 일상의 모든 일을 뒤흔들어 놓았다.

자신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니 무척이나 예민해진 제니는 시도 때도 없이 짖어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니와의 소통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종일 곁에 있어 보니 배고픔과 대소변의 배출, 그리고 어두움에 대한 두려움과 엄마인 내가 자기 곁에 없을 때의 불안 증세가 짖는 이유의 모두였다. 밥과 물을 먹여주고 오줌을 누이고, 똥도 근육이 빠져 항문에 힘을 못 쓰니 손으로 짜주어야 한다. 또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자리를 바꿔 가며 뉘어 주고 목욕은 2~3일에 한 번씩 시켜야 한다. 목욕은 남편의 몫이 되었다.

시아버님께서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을 때, 어머님의 극진한 돌봄 덕분에 몇 년을 누워 계셨지만 욕창 하나 없이 웃는 모습으로 깨끗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어머님은 나를 부처님 앞으로 인도하신, 오로지 부처님 말씀을 묵묵히 실천하는 존경스러운 분이시다.

누워 지내는 제니를 돌본 지 벌써 6년째다. 가끔 호흡을 가쁘게 하며 발작 증세를 보이기는 하나 그저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상태인 것 같다. 남편이 제니에게 말했다. “제니야 네가 우리보다 더 오래 살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너무 힘들다. 밤에 아무 걱정 없이 푹 자고 싶다.” 남편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오계의 첫 말씀 “살생하지 말라.”를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제니야! 너는 도대체 누구니? 우리 곁에 이렇게 힘겨운 모습으로 머무는 의미는 무엇일까? 지장보살님께 바친 오로지 나만의 힘겨운 약속을 지키려고 오히려 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제니의 눈을 쳐다보며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답을 오늘도 찾아본다. 시공간을 초월한 상생의 길이 무엇인지를…….

ysy2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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