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카톡!’

폰이 딸꾹질 소리를 연거푸 낸다. 제 몸에 손을 대라는 이야기다. 다그치는 소리에 어쩔 수 없이 폰을 연다. 노란색 카톡방에 들어가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절집 아이다. 절집 아이가 틀림없다.

절집 아이는 그동안 여러 개의 카톡방을 만들었었다. 매번 이상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아니다. 오히려 물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되돌아오는 말들을 소화 못 해서 힘들까 봐서였다. 어쩌면 성장과정에 따라 개설하고 없앴나 싶다. 아니면 번호를 여러 번 바꾼 걸까.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다.

 

몇 해 전 여름날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식곤증과 다투고 있는데 교무실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문 쪽을 응시하다가 순간 입이 얼어버렸다. 출입문 소리와 함께 들어온 이는 비구니 스님이었다. 스님은 머릿밑이 드러나도록 파르라니 깎고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장삼 차림이었다. 얼굴은 뽀얗다 못해 백지장같이 투명했다. 실핏줄까지 내비칠 정도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마치 절집에 들른 것처럼 예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아이를 전학시키기 위해 왔다고 했다. 누군가의 부탁이냐고 묻자 잔고갯짓을 했다. 보호자 또한 본인이라는 이야기에 그제야 동행한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스님과 몇 걸음 떨어진 뒤쪽에 서 있었다. 제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 다소 왜소해 보였다. 나는 둘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볼일을 보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돌아가는 두 사람을 뒤에서 한참 동안 바라봤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여간 복잡하지 않았다. 저 비구니 스님은 왜 머리를 깎았을까. 숭고한 종교적 목적이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는 없었을까. 그리고 저 아이는 또 누구일까. 어쩌면 엄마와 아들의 관계일지도 몰랐다. 아니 아닐 것이다. 절에 의탁한 아이를 스님이 가르치고 길러주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런 세속적인 상념에 젖어 나는 그들이 까만 점이 되어 사라진 뒤에야 움직일 수가 있었다. 어쩌면 이렇게 머릿속에 보푸라기가 일어나는 것을 번뇌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홀연히 나타난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구분했다. 먹을거리 앞에서조차 내 손저울은 절집 아이에게 후했다. 학교 밖으로 현장학습을 나갈 때도 아이의 자리를 먼저 잡아 주었다. 장난칠 때도 아이를 대하는 손길에는 온기까지 두둑하게 얹었다. 덕담도 목소리에 정겨움을 도탑게 묻혀 과하게 건네는 경우가 잦았다.

아이는 수심에 젖어 있을 때가 많았다. 더러는 건드리기만 하면 울음이 넘쳐날 것 같아 가정사나 지금 처한 심정 등을 묻고 달고 하지 않았다. 저 비구니 스님은 무슨 사연으로 절집에 들어갔을까. 저 아이와의 관계는 혈연일까, 아니면 법연일까. 혼자 속으로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도 특별했다. 무심한 척하면서도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으로 인해 교실이 어수선했던 적이 있었다. 열어둔 창문으로 벌이 날아들어 하늘바라기와 함께 비행 연습에 열심이었다. 놀잇감을 찾던 아이들에게는 입에 맞는 군것질거리가 생긴 셈이다. 벌을 쫓아내려고 책을 던졌다. 분위기를 빨리 주저앉히기 위해서였다. 책이 천정에 가 닿는 소리와 함께 교실 안은 이긴 자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놀고 싶은 아이들에게 거리를 만들어준 셈이었다.

순간 절집 아이가 구시렁댔다.

“그냥 둬도 되잖아? 우리한테 피해를 주지도 않는데…….”

절집 아이는 벌을 유인해서 세상으로 내보내면 되는데 죽였다며 은근히 꾸짖었다. 갑자기 주변은 숙연해졌다. 비록 제 또래를 탓하는 말이었지만 나도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멀쩡한 목덜미를 수도 없이 만졌다. 그러다 창밖으로 시선을 보내며 못 들은 척했다.

열 살배기 아이의 생각과 말에는 생명존중과 함께 온 우주가 담겨 있었다. 모른 척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었지만 절집 아이의 무게 있는 말들이 목에 걸렸다. 할 수 없이 행동이 과했다며 장난처럼 사과도 했다.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 아이의 한마디는 노예의 몸에 찍힌 자국 이상의 흔적을 남겼다. 아이가 절집의 향내를 맡으면서 생활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혼잣소리가 결코 낯설지 않았다. 나와의 연령 차를 떠올리니 오히려 나이 먹었다는 것이 허우대만 멀쩡한 건물 같아 민망했다.

우리는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특히 아직 뼈가 여물지도 않은 그 아이에게 절집은 불가의 정신세계를 뿌리내리게 했으리라. 그러다 보니 여느 다른 집 아이들과 달리 신중하고 깊이 있는 행동들이 자연스레 배어 나왔다고 본다. 또한 제 또래들과 달리 서둘러 어른의 세계로 접어들게도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 길이 가야 할 피안의 세계라 할지라도 그렇게 급하게 가지 말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 생각조차 부질없는 사치였는지 아이는 온몸에 절집 향기를 묻히고 다녔다.

절집 아이가 문자를 또 보내왔다. 확인한 후 서둘러 낯선 번호를 저장한다. 아이와의 인연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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