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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소설] 묘현 스님의 창작법 / 손홍규
[84호] 2020년 12월 01일 (화) 손홍규 novelism@nate.com

그해 봄날은 쓸쓸했다. 해마다 봄이면 그랬듯이 봄인데 왜 이렇게 추운 거야 하며 투덜거렸고 날씨는 아직 쌀쌀한데 홀로 먼저 피어나는 산수유나 목련 꽃을 보면서 봄이 오긴 왔구나 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개학을 맞은 교정은 활기가 넘쳤지만, 한낮에도 그늘 속에 들어가면 사뭇 서늘한 기운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강의가 없는 시간이면 도서관에 가는 대신 구석지고 한산한 장소를 찾아갔고 그런 곳에 있는 낡고 더러운 나무 의자에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책을 펼쳐 들기는 했지만 두어 줄 읽고 나면 딴생각이 들어서 무얼 읽었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눈으로는 활자를 읽고 있었으나 내 마음속으로 들어온 건 하나도 없었다. 다른 학생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학기 초여서도 아니었고 복학생이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군대에 다녀오기 위해 휴학하던 무렵에도 내 대학 생활은 고즈넉했다. 조별 과제를 위한 모임이 아니라면 사람들을 따로 만날 일이 거의 없었고 학과 행사 등에도 성실하게 참여한 적이 없었다. 복학하기 위해 군대 가기 전에 살던 고시원을 찾았을 때 시간이 정지해버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학교 후문에서 십 분 거리의 주택가에 자리 잡은 사 층 건물의 이 층에 있던 그 고시원은 전혀 바뀐 게 없었다. 어두침침한 계단과 복도. 지저분하고 오래 묵은 냄새가 고인 신발장. 라면과 김치 냄새가 밴 공용주방. 하수구에서 올라온 고약한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공용화장실. 이 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더 낡아 보이지 않는 건 이미 낡을 대로 낡아서 더는 그럴 수가 없어서인 듯했다. 그나마 예전에 쓰던 방은 아니었고 바깥으로 창이 나 있는 방을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창밖으로는 다른 건물이 버티고 있어 답답하긴 마찬가지였지만 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점이었다. 고시원에 사는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한번 학교에 가면 녹초가 되어 더는 버틸 수 없을 때까지 견디다가 오로지 잠을 자기 위해 고시원으로 돌아왔다. 왜 그런 식으로 살았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지만, 굳이 이유를 찾아보자면 그때 나는 내게 미래가 없다고 느꼈다. 절망적인 심정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살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들을 의무적으로 치르면서 고시원 건물처럼 세월이라는 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일상을 견디어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어디냐를 생각해 볼 때 내가 아무리 내 능력을 넘어선 자리에 이른다 해도 그곳은 삭막한 땅일 듯했다. 학점을 관리하고 토익 시험을 치러 졸업 점수를 확보하고 나면 사실 더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자기소개서에 써넣을 수 있는 남다른 사회활동이나 경력을 쌓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내가 갈 수 있고 가려는 곳들은 특별한 이력이 필요 없었다. 한자 자격증과 같은 관련 자격증 말고는 그다지 쓸모가 없었고 차라리 모든 일이 여의치 않다면 엉뚱한 일에 시간과 노력을 쏟느니 몇 년쯤 공부할 각오를 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나는 아직 젊었지만 젊다는 게 특별한 이점도 아니었고 약점도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나처럼 젊었고, 그들도 나와 그리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서로가 비슷해 보인다는 사실이 불러일으키는 지겨움이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볼 때 이상하게도 불쾌하거나 짜증이 나는 때가 많다는 걸 알았지만 그런 기분이 든 건 아니었다. 타인에게 나를 견준다거나 내가 어떻게 비칠지를 생각할 겨를 자체가 없었다. 나는 스스로에 몰두하고 있었고 그것이 나를 현명하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세상과 나를 분리된 존재인 것처럼 여기게는 해주었다.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스스로를 관찰하고 있다는 기분이었고 그런 식으로 나 자신에게 어느 정도 냉담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될 수 없기 마련이었고 언제든 어디에서든 반드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아프게 되돌아볼 수밖에 없음을 이제는 이해한다.

   
 

내가 즐겨 찾는 으슥하고 한적한 공간은 대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벤치였다. 반쯤 썩은 데다 여기저기 떨어져 나가 을씨년스러운 벤치가 세 개나 있었는데 벤치 뒤로는 옹벽이 있고 그 위에는 매점과 학생 식당, 교직원 식당 등이 있는 사 층짜리 건물이 서 있었다.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서 숨어 있기 좋은 곳이었다. 시야도 확 트인 곳이어서 운동장 너머의 빌딩이며 호텔이며 고급 주택가 등이 한눈에 들어왔고 가끔 미세먼지 없이 하늘이 청명한 날이면 이름을 알 수 없는 산들이 손에 잡힐 듯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곳에 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낡은 벤치를 굳이 찾아오는 학생은 대체로 나처럼 이마에 상관하지 마시오라 씌어 있었고 한동안 그 자리에 묵새기다 깊은 한숨을 내려놓은 채 떠나곤 했다. 그 자리에서도 식당 건물로 오르는 계단 옆에 자리 잡은 말끔한 쉼터가 잘 보였다. 말하자면 쉼터에서도 그 자리가 보였다. 잘 가꾸어진 쉼터에는 깨끗한 의자와 탁자가 많았고 학생들은 그곳에서 간식을 먹거나 배달 음식을 먹기도 했다. 그들도 가끔 고개를 돌려 깊숙한 곳에 있는 낡은 벤치 쪽을 보긴 했지만 별 뜻 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그들의 이마에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씌어 있었으니까. 개강한 지 이 주차로 접어들 무렵 그 자리에서 누가 아는 체를 했다. 키가 크고 낯빛이 창백하며 잿빛 재킷을 걸친 그는 스스럼없이 자기소개를 하며 내 옆자리에 앉았다. “형, 뭐 읽어요?” 나는 읽던 책을 덮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다른 대학을 다니다 올해 우리 과에 편입했다고 했다. 아직은 수강신청 정정 기간이어서 모든 강의에 출석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복학생인 내가 그런 행동을 하기란 어려웠다. 첫 강의부터 출석해야 낯선 학생들과 얼굴을 익힐 수 있었고 교수의 눈 밖에도 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편입생인 그 역시 나와 비슷한 처지였다. 그는 맨 뒷자리에 앉았던 나를 안다고 했다. “우리 함께 듣는 강의가 있거든요. 소설 창작이요.” 물론 나는 그가 기억에 없었다. 그는 얼굴이 갸름하고 선이 부드러워서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인상을 풍겼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건 맞았다. 다만 서울이 아니었을 뿐. 첫 만남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에 대해 몇 가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학비나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제법 부유한 집안이고 학교 근처 하숙집에서 지내며 이름은 김상우라는 것 그리고…… 소설가를 꿈꾼다는 걸.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편입을 시도한 이유도 결국 그래서였다고 했다. 재킷의 칼라를 세워둔 터라 그의 얼굴은 연꽃을 연상시켰다. 나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꿈꾸는 사람은 내가 꾸었던 꿈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억지로 돌아보게 했다. 내가 같은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들과 거리를 두려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그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꿈이 있는데 내게는 꿈이 없다는 사실을 들키기 싫었고 그들 때문에 내가 꿈꾸었던 것들을 내 의지와는 무관히 상기하게 되는 것도 싫었다. “다른 친구들이 그러던데 형이 군대 가기 전에 학보사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을 받았다면서요? 다들 형은 소설가가 될 거라고 말하던데요. 교수님들도 형한테 기대를 하는 것 같던데요.” 이런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는 초등학생 아이가 투망을 던졌다가 끌어당기는 아빠를 보면서 이 세상 전체를 건져 올리고 있다며 감탄할 때처럼 순진하기 짝이 없었다. 중앙지의 신춘문예나 유수의 문예지가 주관하는 신인상도 아닌 겨우 대학 학보사의 문학상에 당선된 적이 있을 뿐인, 그마저 대상도 아닌 우수상에 불과한 나를 대단한 작가라도 되는 것처럼 치켜세우는 그에게서 숫보기의 냄새가 났다. 내 머릿속으로는 습관처럼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소설을 쓰겠다는 녀석치고는 너무 순진하다. 소설은 그런 순진한 문학이 아니야. 삶에 패배하기도 전에 소설에 얻어맞아 쓰러지기 십상이겠군. 치졸한 생각들이긴 했지만 적어도 그때의 나로서는 반박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고정관념이기도 했다. 그리고 경험으로 보았을 때 이처럼 순해빠진 사람이 소설에 열망을 품으면 누구보다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소설을 쓰게 된다는 거였다. 세상이 요구하는 규약과 질서에 순응하기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일제히 소설을 통해 발현하기라도 하듯 그로테스크한 소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써내는 걸 자주 보았던 터라 이런 고정관념 역시 내게는 뿌리가 깊었다. 

소설 창작 강의실에서 상우는 내 앞자리에 앉았다. 지난 첫 주에는 한 학기 동안 진행될 강의 방식을 설명하고 간단히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고 두 번째 주에는 학생들이 창작한 소설을 합평하는 일정을 잡았다. 전공과목이라 수강생은 제법 되었지만 3학점 과목인 데다 합평 위주로 진행되는 강의여서 수강생은 저마다 두 편씩의 작품을 제출하고 합평을 거쳐야 했다. 두 차례나 순번이 돌아오는 탓에 작품 발표 일정을 늦추는 게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 차라리 한 주라도 빨리 제출하고 합평을 거치는 게 다른 과목의 시험 일정 등을 고려할 때 나은 선택일 수도 있었다. 강사는 학과 선배로 현직 소설가였다. 발표 순번을 정한 뒤 강의실을 빠져나오자 상우가 나를 붙잡았다. 상우 옆에는 연한 회색빛 승복을 입은 스님이 다소곳이 서 있었다. “형, 이분은 묘현 스님이에요.” 우리는 인사를 나눈 뒤 학교 근처의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두 사람 뒤에 두어 걸음 떨어진 채 걸어갔다. 묘현 스님의 첫인상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스님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건만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을 만난 것처럼 낯설었다. 물론 묘현 스님은 흔히 사람들이 비구니에게 기대하는 그런 인상을 지녔다. 나이는 삼십 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얼굴은 이십 대처럼 곱고 환했다. 살아오면서 인상을 찌푸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것처럼 순진하고 무구한 표정이었으며 사납고 거친 언어를 입에 담아본 적이 없을 듯한 목소리였다. 오랫동안 발성훈련을 받아 호흡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된 노련한 성우를 떠올리게 하는 목소리였다. 듣는 이를 편안하게 하고 별 내용이 아니더라도 가슴 깊은 곳에서 이미 수긍해버리고 말 것 같은 목소리였다. 아마도 행자 시절을 지나 강원을 거쳐 수계를 받아 정식으로 승적에 오를 때까지 인고의 세월을 건너왔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었다. 스님은 걸음걸이 역시 단정했고 몸짓 하나하나가 고아했다. 날 때부터 스님이었거나 스님이 될 운명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가 멈춘 곳은 중국집 앞이었다. 일 층 홀은 작고 침침했는데 계산대 옆에 이 층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단이 있었다. 이 층에는 칸막이로 구분된 사인용 테이블이 줄줄이 있어서 소모임을 할 때 학생들이 즐겨 찾았다. “스님, 중국 음식 괜찮으세요?” 상우의 물음에 묘현 스님은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을 드나드는 스님들을 봐왔던 터라 별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메뉴에 고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염려가 되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각자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묘현 스님은 차분하게 왜 스님들이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보통 사람들이 짐작하는 것과 달리 부처님은 고기를 먹지 말라는 계율을 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도량에서 가축을 잡아 공양을 했던 터라 수행처에 피가 낭자하게 고였고 부처님은 이를 행하지 못하게 했다.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이 차츰 일상화되면서 절에서 도축하는 일이 사라졌고 자연스럽게 수행자들도 고기를 멀리하게 되었다는 거였다. 묘현 스님은 엄밀하게 따지면 고기를 먹는다고 해서 반드시 계율을 어긴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상우는 눈빛을 빛내며 묘현 스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 잘 듣는 막냇동생 같았다. 차근차근 설명하는 목소리에는 처음에 느꼈던 것처럼 듣는 이를 부드럽게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더불어서 내가 이 자리를 불편해할까 봐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분위기를 편하게 만들어준다는 인상도 받았다. 그날 묘현 스님에 대해서도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승가대학을 나왔으나 더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선학과에 입학했어요.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문예창작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했지요. 법정 스님이나 혜민 스님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글을 쓰고 싶어요.” 당연하게도 내 머릿속으로는 소설 창작보다는 동화 창작을 수강하는 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사적인 이력에 대해서는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보통 사람들이 스님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게 되면 그렇듯이 나 역시 묘현 스님이 왜 출가를 해야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서원을 세웠는지 궁금했지만 당사자가 스스로 말해주지 않는 이상 캐묻기에는 무례한 일로 여겨졌다. 선학과는 묘현 스님처럼 스님 신분인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불교학과에는 스님이 없었다. 여느 학과와 다름없이 평범한 학생들이었다. 내가 불교학과 학생들을 조금 알고 있는 이유는 학보사가 주최하는 문학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을 때 대상을 수상한 사람이 불교학과 학생이어서였다. 나보다 두 살이 많아 형이라 부르게 된 이였는데 그 형은 무척이나 겸손해서 자신은 소설을 쓸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이 가슴 어딘가를 쑤시고 들어와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기도 했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그 형이 출가해서 장성 백양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나는 그 형에게서 내가 놓친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곤 했다. 불교학과에는 그처럼 학업 도중에 혹은 학업을 마친 뒤에 출가하는 학생이 심심치 않게 있어서 놀라운 일은 아닌 듯했다. 따지고 보면 나는 그 형의 이력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셈이었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평범한 학생 신분을 버리고 불가에 들어서야 했는지……. 솔직하게 말하자면 대체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한 건지가 궁금했다. 성실하고 모범적인 데다 전공이 아니었음에도 소설까지 잘 쓰던 사람인데 대체 무엇 때문에 속세를 떠나야 했는지. 그 사연을 알게 되었다면 내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었을까. 그건 아니었을 테다.
묘현 스님은 사람을 편하게 해주었고 그 덕분에 가장 편안해진 사람은 상우인 듯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상우의 뜻에 따라 근처 술집으로 갔다. 아직 한산한 시간이었다. 묘현 스님은 따뜻한 차 한 잔을 시켰고 상우와 나는 막걸리를 기울였다. 상우가 말하기를 굳이 묘현 스님을 내게 소개해 준 이유는 소설 창작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소설을 써야 하는데 내 조언이 필요해서였다고 했다. 나는 조언해줄 능력도 재주도 없다며 물러섰으나 묘현 스님이 정중하게 부탁하는 데에는 더 이상 발뺌할 도리가 없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떤 모티프를 다루고 싶냐는 의례적인 질문을 던졌다. 묘현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싶어요. 누구나 그런 상태에 처해 있더라도 반야를 얻을 수만 있다면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거든요.” 반야가 뭐냐고 묻고 싶었는데 상우가 내 질문을 대신 해줬다. 반야는 지혜라고 했다. 지혜라. 그 대답부터가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지혜라니. 아마도 그 단어에서 불교적인 색채를 걷어낸다면 통찰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의미일 거였다. 아니 사르트르의 지식인 개념에 가까울 거였다. 어떤 분야에 정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인간적으로 수행하는 자. 사유할 뿐만 아니라 고뇌하는 자. 나는 이 이미지가 너무 진부하다 여겼고 묘현 스님이 쓰게 될 소설이 그처럼 진부한 형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어떤 식으로 조언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말을 고르는 동안 상우는 자신도 바로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며 묘현 스님을 치켜세워줬다.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은 오랜 세월 헤어졌다가 상봉한 오누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답고 화기애애했다. 상우의 친화력과 묘현 스님의 너그러움이 만나 그런 듯했으나 거기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듯도 했다. 굳이 따지자면 우리 세 사람이 이처럼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도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서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였다. 편입생인 상우와 복수전공인 묘현 스님 그리고 복학생인 나. 내가 묘현 스님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세상에 쓰지 못할 이야기란 없고 소설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할 줄 아는 것이며 결국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뿐이라는 거였다. 용기라니. 내가 말해놓고도 낯이 뜨거웠다. 우리 세 사람 가운데 가장 용감한 사람은 묘현 스님일 게 분명했으니까. 그 뒤로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우는 소설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플롯이라고 강조했다. 묘현 스님은 부처가 다르마 그러니까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해주었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마지막으로 도달한 인식은  인연생기, 다시 말해 연기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상우는 이 말에 열렬하게 호응했다. “거봐요, 부처님도 결국 플롯을 깨닫고서야 진정한 깨달음에 이른 거잖아요.” 상우에게 플롯은 인과관계 자체였고 이 세계를 설명하는 유일하게 참된 인식론이었다. 그러나 상우에게는 부처에게는 없는 게 있었다. 바로 조바심이었다. 상우는 하나의 원인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고 그 결과가 다시 새로운 원인이 되어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세상의 모든 일들을 소설만이 정확하게 포착하고 그려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뻔한 일을 하지 못한다면 소설가라 할 수 없고 자신은 분명히 그걸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며 믿어달라고 칭얼거렸다. 묘하게도 상우가 얄밉지는 않았다. 상우의 열정이 비록 거칠다 해도 무척 순수한 형태라서 그런 듯했다. “형, 묘현 스님 소설이 어떨지 기대되지 않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우는 점점 취해갔다. 술집을 나오니 어느새 사위가 캄캄해져 있었다. 봄밤이었다. 차가운 공기 속에 미약하지만 봄꽃 냄새도 섞여 있었다. 상우는 술집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술을 깨는 중이었다. 묘현 스님과는 그사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한결 가까워졌음에도 여전히 어색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힐끔거렸다. 스님의 고요한 목소리가 귓가에 다가왔다. “왠지 서글퍼 보여요.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 나는 고개를 돌려 묘현 스님을 바라보았다. 차라리 그렇게 말하는 스님의 얼굴이 누구보다 서글퍼 보였다. 묘현 스님과 헤어진 뒤 상우와 나는 주택가 골목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상우의 하숙집이 있는 곳이었다. “사실은요 제가 학보사에 가서 옛날 형의 작품이 실린 신문을 찾아서 읽었거든요. 근데 좀 아쉬웠어요.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마세요. 서로 잘 모르던 남녀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원룸에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라고 느꼈어요. 두 인물 사이에 오가는 정서적 교감은 세부적이고 구체적이어서 설득력이 있긴 한데 상황 자체가 무슨 드라마 같잖아요. 난 형이 그런 드라마 같은 어쭙잖은 이야기나 쓸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번 학기에 기대해볼게요.” 상우는 다그치지 않았고 나는 화내지 않았다. 상우의 말이 옳았다. 그러나 상우에게 말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다. 그 소설이 내 이야기라는 걸. 내가 그처럼 말도 안 되는 우연을 겪었다는 걸. 내가 쓸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는 걸. 운이 좋아 우수상이라는 걸 받기는 했으되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인 탓에 오히려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낯설게 여겨진다는 걸. 그 이야기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고 그 이야기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는 걸.

상우가 개설한 카톡방에서 우리는 일상의 소식들을 주고받았다. 가장 자주 말을 거는 건 상우였고 거기에 가끔이나마 화답해주는 건 묘현 스님이었다. 스님은 자주 응대하지 않는 대신 한번 답하면 장문의 메시지를 남기는 편이었고 가장 적게 답하는 사람은 나였다. 그것도 대부분 응, 그래, 알았어, 와 같은 단답형이었다. 상우와 묘현 스님은 시 창작 강의도 함께 수강하는 터라 굳이 내가 대답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메시지가 많았다. 상우는 줄기차게 메시지를 남겼고 카톡방은 상우의 활기찬 단어들과 이모티콘 때문에 겨우 세 사람이 모인 공간치고는 부산스러운 편이었다. 나는 카톡방 알림을 무음으로 바꿔놓았고 아주 가끔 확인했다. 그사이 쌓인 상우의 메시지들이 상우의 조바심처럼 번쩍거렸다. 삼월이 지나고 사월이 되었다. 교정에는 봄꽃들 중에 붉은 꽃들이 가득 피어났고 나는 사월 말로 예정된 합평에 제출할 소설을 써보려고 애썼다. 그동안 다른 학생들이 제출한 소설을 합평하면서 기계적으로 합평문을 써내고 토론에 참여했다. 그 소설들 중에 내 마음을 끄는 작품은 없었고 설령 아주 특별한 작품이 있었다 해도 그 시절의 나는 알아보지 못했을 거였다. 내 작품을 완성해야 했지만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몇 주를 흘려보냈다. 내가 강화도와 석모도를 떠올린 건 묘현 스님 영향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전등사를 비롯해 보문사에 올랐던 기억과 거기에서 보았던 장엄한 일몰과 그 절들에 전해지는 목수의 전설이며 나한상의 전설 등을 소설로 써보려 했다. 절을 짓는 동안 연인이 배신하고 도망가버린 데 분개한 목수가 평생 추녀나 이고 살라는 뜻으로 추녀 아래 벌거벗은 여인상을 만들어 두었다는 전설에서는 그 질투심이 부러웠다. 누군가를 질투할 수 있다는 건 아직 여지가 있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어느 어부가 그물을 던졌는데 그물에 나한상이 걸려와 보문사에 바쳤다는 전설도 마찬가지였다. 나한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다렸을까. 자신을 건져줄 어부가 나타날 때까지. 그 기다림이 부러웠다. 마침내 건져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오랜 세월을 견딘 운명이. 기다려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상우와 묘현 스님은 나보다 한 주 일찍 소설을 제출해야 했고 서로를 격려하며 착실하게 소설을 써나가는 듯했다. 상우는 시 창작 강의에 제출할 시를 카톡방에 올렸는데 난해하기 짝이 없는 시여서 한마디라도 해주라는 상우의 종용에도 불구하고 그저 괜찮아 보인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었다. 강의가 끝난 뒤에 함께 차를 마시거나 산책을 했다. 상우는 자신이 쓰는 소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그건 묘현 스님도 마찬가지였다. 낮이면 봄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고 밤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했다. 봄밤이란 그런 거였다. 여기저기 헤매던 이가 결국 지쳐 쓰러진 시간. 봄밤의 나른함과 그 나른함에 깃든 기이한 정서는 슬픔마저 소진해버린 사람의 내면을 은유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도서관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남아 소설을 써보려 했으나 헛되이 시간만 흘려보냈고 결국 사월 첫 주 강의가 끝난 뒤 소설가인 강사에게 작품 제출이 불가능하니 처분을 바란다고 말해야 했다. 휴학 신청이 가능한 시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강사는 이런 경우를 자주 겪은 터라 놀랍지는 않다는 듯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두 번째 합평까지 기한을 연기해 줄 테니 그때까지 두 작품을 써서 한꺼번에 제출할 수 있겠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남은 학기를 견딜 수 있을지 잠깐 생각해보았다. 강사는 나름대로 관대한 처분을 한 셈이었기에 내가 거절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복도에서 기다리던 상우가 물었다. “무슨 얘기 한 거예요?” 나는 별일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날도 우리는 함께 산책을 하다가 대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내 각자의 강의실을 찾아 헤어졌다. 강의가 끝난 뒤 도서관으로 가던 나는 팔정도 한가운데 있는 불상 앞에 나란히 앉아 있는 상우와 묘현 스님을 보았다. 두 사람은 묘하게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썩 잘 어울렸다. 이런 표현은 모호하긴 했지만 모호함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가장 적절하기도 했다. 소설 제출 기한을 한 주 남겨두었던 날 우리는 학교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소설은 잘 마무리되고 있는지 넌지시 물었더니 상우는 잘되어간다고 답했지만 묘현 스님은 조심스럽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처음 써보는 소설인데 소설을 쓴다는 게 이렇게 지독한 일인 줄은 몰랐어요. 내가 만들어 낸 인물이고 사건인데 그 생각만 하다 보니까 처음에는 명료했던 게 오히려 뒤죽박죽이 되면서 혼란스러워요. 욕망을 들여다보는 내 마음속으로 그 욕망이 거슬러 올라와 나를 침범한다는 기분이 들어요.” 묘현 스님이 돌려 말하지 않고 자신이 느낀 걸 솔직하게 말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 리모컨으로 볼륨을 높였는지 벽걸이 텔레비전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우리는 고개를 돌려 화면에 등장한 삼십 대의 사내를 보았다. 뉴스 속보였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를 쓴 사내는 아동학대 및 살해 혐의로 체포되어 경찰서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일곱 살짜리 아이가 주검으로 발견된 지 이틀 만이었다. 식당 주인은 혀를 찼고 몇 안 되는 다른 손님들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때 상우가 소리를 쳤다. “저 개새끼는 죽여버려야 돼! 저런 새끼는 사형시켜야 된다고!” 나와 묘현 스님은 순간적으로 눈을 마주쳤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상우의 날 선 목소리였다. 개새끼, 죽여, 사형과 같은 험악한 단어도 평소의 상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상우는 얼굴이 잔뜩 상기된 채 먹던 밥을 마저 먹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 자신만 모르는 것 같았다. 식당 주인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렇지, 저런 놈을 죽여야지. 그러라고 사형제도가 있는 거니까.” 묘현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가서 잽싸게 카드를 내밀었다. 만류할 틈도 없었다. 그러더니 식당 주인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의 목숨을 법으로 정해서 빼앗는 건 사람 스스로 존엄을 버리는 게 아닐까요. 굳이 사형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처벌할 수 있잖아요.” 식당 주인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지요, 스님. 저런 더러운 놈 죽여봐야 우리 손만 더러워질 뿐이니까요.” 물론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같은 상황을 겪었음에도 서로 전혀 다른 진술을 하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과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마저 의사소통이 불가능함을 보여주었던 안톤 체호프의 소설을 그리고 인물들의 대화를 동문서답이라는 형태로 즐겨 구사했던 남정현의 소설 등을 떠올렸다. 소설만이 삶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었다. 삶 역시 때때로 소설을 재현했다.

   
 

휴학 신청이 마감된 그 주였다. 다음 주에 합평하게 될 상우와 묘현 스님의 소설을 받았다. 합평 일주일 전에 모든 수강생에게 소설을 나눠주는 게 원칙이었다. 나는 두 편의 소설을 가방에 넣어둔 채 꺼내 보지 않았다. 합평일까지 일주일이 남아서만은 아니었다. 겨우 한 달 남짓한 기간이었지만 우리 셋이 자주 어울린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우리는 가까워져 있었다. 가깝다는 건 언제 어디서나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으며 그냥 스쳐 가는 대신 마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래 나눈다는 거였다. 상우는 내게 더없이 친근하게 굴었다. 내가 그만큼 상우에게 다정하지 못하다는 사실 탓에 마음이 불편했다. 주말에는 고시원에서 꼼짝 않고 지냈다. 그제야 소설을 읽어볼 생각이 들었다. 상우의 소설부터 읽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가 쌀쌀한 겨울날 북한산을 오른다. 평일 대낮이기도 해서 등산객은 드물었다. 젊은 남자는 산행을 시작할 때부터 몇 번 마주쳤던 노인과 동행하게 되고 가파른 길을 서로 격려하고 손을 잡아주며 올라간다. 정상에 올라 노인이 싸 온 음식을 함께 먹은 뒤 서로 다른 하산길을 선택해 내려가지만 여러 등산로가 만나는 지점에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그러나 노인은 젊은 남자를 전혀 모르겠다고 한다. 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는데 노인이 이전에 알던 것과는 달리 무례하고 강퍅하며 상소리까지 해대서다. 노인은 바위로 난 길에서 굴러떨어지는데 이 장면은 젊은 남자의 실수인지 고의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묘사되어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젊은 남자는 넘어지고 구르면서 산길을 내려가는데 마주치는 사람들을 모두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지만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다. 겨울 해는 짧았던 탓에 어느덧 사위가 캄캄해진다. 마침내 산 아래 등산로 초입에 다다른 젊은 남자는 경찰차들의 전조등 불빛에 둘러싸이게 되고 경찰이 확성기로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으라 말하는 걸 듣는다. 사방에서 총성이 울려 퍼지고 젊은 남자는 늑대 울음을 내면서 죽어간다. 경찰들은 조심스럽게 죽은 남자에게 다가가는데 그들이 발견한 건 피 흘리며 죽어가는 한 마리 괴물이다. 상우의 소설을 다 읽은 뒤 나는 작은 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담배를 피웠다. 낡은 벤치가 있던 곳에서 상우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문학비평론의 교재인 라캉의 책을 읽고 있었다. 어느 날 상우가 느닷없이 물었다. “형은 라캉을 어떻게 생각해요?” 나는 되물었다. 라캉이야말로 네가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플롯의 비밀을 밝혀준 게 아니냐고. “그래요. 플롯이죠. 그런데 나는 프로이트나 라캉이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인과관계인 건 분명한데, 너무 지저분한 인과관계거든요.” 별 기대 없이 읽은 상우의 소설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상우는 첫 작품이라 부끄럽다 했지만 노련한 작가 못지않았다. 물론 전체 줄거리는 습작생의 흔한 패턴을 보여주지만 세부적인 부분들은 그렇지 않았다. 한마디로 상우의 소설에는 서스펜스가 있었다. 젊은 남자와 노인의 동행은 왠지 모르게 불안했고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리라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마침내 노인이 굴러떨어지고 난 뒤 이번에는 자신에게 닥친 일에 혼란스러워하는 젊은 남자의 심리가 분명하고 쉽게 묘사되어 있었다. 합평에서 어떤 말이 오갈지 짐작이 되었다. 담배를 다 피운 뒤 묘현 스님의 소설을 읽었다. 초등학생인 한 아이가 학교 교문에서 머뭇거린다. 밤새 내린 비로 강이 범람했던 탓에 학교에서 먼 지역에 사는 학생은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어서이다.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교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간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평일 오전 그 시간에 집에 있어 본 적이 없던 아이였기에 모든 상황이 낯설다. 점심때가 되어 배가 고픈 아이는 집에 먹을 게 없다는 걸 알고 근처 구멍가게로 간다. 구멍가게에는 아무도 없다. 평소부터 먹고 싶었던 컵라면을 들고 나온 아이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몹시도 두근거린다. 아이가 저지른 최초의 도둑질이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풍로에 주전자를 올려 물을 끓인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마루 끝에 앉아 기다린다. 다시 비가 내린다. 바람이 분다. 마루 끝에 올려둔 컵라면이 넘어진다. 아이는 흙탕물에 섞여 들어가는 라면 국물과 덜 익은 면발이 실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걸 본다. 다음 날 학교에 간 아이는 교문까지 왔다가 되돌아갔다는 이유로 체벌을 받는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문 채 회초리를 맞는다. 아이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나는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대신 가벼운 외투를 걸치고 아직은 쌀쌀한 밤공기를 마시러 고시원을 나섰다. 아마도 묘현 스님이 말한 적나라한 인간의 욕망은 집으로 돌아갈 건지 말 건지, 컵라면을 훔칠 건지 말 건지로 괴로워하는 아이의 내면인 듯했다. 그렇다면 체벌을 받으며 흘리는 뜨거운 눈물이야말로 반야일 거였다. 예상했던 일이었는데 기분은 이상했다. 
상우와 묘현 스님의 소설을 합평하는 강의실의 분위기는 이전과는 달리 조용했다.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강사가 재촉하고서야 누군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재미있긴 한데…… 이거 장르 소설인 거죠?” “인물이 괴물이 되었다는 결말은 너무 딜레탕트하잖아요.” “문장력은 상당해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불쾌한데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불쾌하다고 말한 학우의 의견에 동감하는데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이 소설의 플롯이 프로이트나 라캉의 이론을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 여겨져서인 것 같아요.” 상우는 내내 부끄러워했다. 무슨 말이든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모든 게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상우는 어떤 말에도 상심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첫 소설을 합평 받는 풋내기 지망생의 역할을 정말로 완벽하게 해내고 있었다. “연쇄살인마의 심리를 다루고 싶었나요?” 누군가의 질문에 강의실은 숨죽인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상우도 웃었다. 묘현 스님의 소설을 합평할 때에도 예상한 발언들이 이어졌다. “스님, 이건 소설이 아니라 동화예요.” “갈등이 없어요.” “스님이 얼마나 착하고 순진한 분인지는 잘 알겠지만 이야기로서의 매력은 없어요.” 묘현 스님은 담담한 목소리로 질문에 대답했지만 변명을 하지는 않았다. 강의가 끝난 뒤 우리는 산책을 했고 뿔뿔이 흩어졌다가 저녁에 학교 근처 술집에서 다시 만났다. 묘현 스님은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셨고 상우와 나는 막걸리를 마셨다. “형은 왜 한마디도 안 해줘요?” 나는 그냥 미소만 지었다. 묘현 스님은 약간 분개했다. “소설과 동화의 차이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좋은 소설 중에 동화처럼 읽히는 작품도 있잖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가 형 합평 받는 날 아니에요? 근데 왜 작품을 안 줘요?” 나는 강사의 양해를 구해 작품 제출을 미루었다고 말했다. 상우와 묘현 스님은 배신당했다는 표정을 부러 짓더니 끝내 웃고 말았다. 사월이 지나고 오월이 되었다. 첫 작품에서 쓴맛을 본 묘현 스님은 더 조심스러워졌고 두 번째 작품을 쓰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밤이 되면 교정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대학 건물들 사이를 잇는 연등이 일제히 불을 밝혀 별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상우와 묘현 스님의 두 번째 작품 합평일은 달랐다. 상우가 한 주 먼저였다. 상우는 여전히 쓰고 있는 소설에 대해서는 별말이 없었다. 묘현 스님은 내게 소설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에 대해 자주 물었다. 그런 이유로 묘현 스님의 두 번째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를 훤히 알고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합평에서 다른 학생들이 했던 말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솔직한 심정은 답답했다. 묘현 스님은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죽어도 다른 이야기는 쓰지 못할 것 같았다. 인물이 반성하고 사유하고 이른바 불법에 귀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절대 쓰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집요함은 수행하는 한 스님에게는 장점일 수도 있었으나 적어도 소설의 경우에는 단점에 가까웠다. 묘현 스님이 어렵사리 써낸 부분까지를 내게 보내주면 나는 최대한 그 소설에서 결핍된 지독함이라든가 인물의 이중성 등을 강조하는 쪽으로 조언을 해줬고 묘현 스님은 알겠노라 한 뒤 수정한 작품을 다시 보내줬다. 그 일이 반복될수록 기이하게도 내가 한사코 불어넣으려 했던 지독함은 사라지고 오히려 처음보다 더 순결하고 이상적이며 인간적인 사건과 인물로 변모해갔다. 초파일이 지난 뒤 만났을 때 묘현 스님은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를 치렀음에도 활기차 보였다. 그에 비해 상우는 전보다 초췌한 몰골이었다. 상우가 묘현 스님에게 소설은 잘되어가는지를 물었는데 묘현 스님은 대답을 얼버무렸다. 나는 묘현 스님이 소설을 내게만 보여주었다는 걸 깨달았다. 상우와 묘현 스님의 관계는 이전과 다름없었으므로 왠지 상우를 속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월 말에 이르러 대동제가 열리고 교정의 지정된 장소에 학생회가 주관하는 주점들이 들어섰다. 다음 주에 합평을 받게 될 상우의 소설을 가방에 넣어두고 낡은 벤치에 앉아 오월에 피는 흰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나 혼자였다. 학과 주점에서 나는 묘현 스님에게 말했다. 자신이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면 그 작가야말로 더러운 작가라고. 이 말이 스님을 겨냥했다는 걸 모를 리가 없으므로 스님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나는 그 말을 하는 순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았고 설령 이것으로 우리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만큼 어긋난다 해도 상관없었다. 나는 나 자신과도 결별하지 못했으니 이렇게라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도망치는 수밖에. 
대운동장에는 눈부신 오월의 햇살이 부려졌다. 나는 상우의 소설을 꺼내어 읽었다. 한 아이가 잠에서 깨어난다. 아이는 아빠가 없다. 엄마만 있다. 아이는 기억할 수 없는 어떤 일에 시달린다. 악몽을 자주 꾼다. 악몽 때문에 잠드는 게 무섭다. 깨어 있을 때는 엄마가 무섭다. 엄마는 미친 사람이다. 미쳤지만 오래된 습관 때문인지 일상을 견뎌낸다. 어느 날 아이는 먼 암자에서 내려온 노스님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다. 집을 돌아보니 엄마는 멍하니 앉아 있다. 아이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하다. 아이는 손을 든다. 엄마도 손을 든다. 아이는 암자에서 자란다. 아이는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는다. 그동안에도 엄마는 아이를 보러 찾아오지는 않는다. 엄마는 미쳤으니까. 아이는 이렇게 스스로를 달랜다. 아이는 노스님을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에 동네 어른을 만난다. 엄마가 마을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재혼했다고 한다.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누가 미친 엄마를. 노스님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모른 척한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한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법당에서 절을 한다.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이는 엄마가 재혼해 산다는 도시를 찾아 한밤중에 산을 내려간다. 아이는 시장에서 좌판을 벌인 엄마를 본다. 엄마는 미친 사람 같지가 않다. 아이는 깨닫는다. 아이가 엄마 앞에 나타나도 엄마는 모른 체하리라는 걸. 엄마가 왜 그동안 자신을 찾으러 한 번도 오지 않았는가를. 아이는 마침내 진정으로 속세를 떠난다. 암자로 돌아간 아이는 행자 생활을 거쳐 강원에서 수행을 한 뒤 계를 받고 스님이 된다. 세월이 흐른 뒤 스님은 어머니의 소식을 듣고 찾아간다. 어머니의 마지막을 지킨다. 천도재를 치른다. 그날 하늘은 무섭도록 푸르다. 나는 상우의 소설을 다 읽은 뒤 상우가 직접 서술하지 않았으나 아이의 고향이 광주이고 시대적 배경은 광주항쟁 이후이며 아이 아빠의 죽음이 그와 관련이 있음을 누구나 알 수 있게끔 묘사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누구의 사연인지도. 상우의 소설을 합평하는 날 묘현 스님은 다음 주에 합평 받는 소설만 교탁에 올려둔 채 정작 강의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우는 첫 번째 합평과 마찬가지로 예의 바르게 처신했다. 학생들의 의견은 대체로 첫 작품보다 사실적이어서 훨씬 매끄럽고 공감이 잘 되는 편이라는 쪽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 상우는 내 팔을 붙잡고 낡은 벤치가 있는 쪽으로 이끌었다. “묘현 스님이 왜 안 오셨는지 혹시 알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상우는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제가 잘못한 건가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묘현 스님에 대해 알게 된 걸 곧이곧대로 쓴 건 아니에요. 의도는 스님을 통해 깨달은 것들을 표현하려는 거였어요.” 상우가 내 눈치를 살핀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어느 날 식당에서 고함을 치던 상우. 그렇게 언뜻 자신도 모르게 속내를 드러냈던 그 순간을 어쩌면 상우의 소설에서는 만날 수 없을 듯했다. 나는 상우를 비난하지 않았고 상우도 내게 섭섭해하지 않았다. 그다음 주 교정에서는 상우를 보지 못했다. 카톡방도 잠잠했다. 저녁에 도서관을 나온 나는 교정이 달라졌다는 걸 알아챘다. 연등이 없었다. 저녁이 되면 불을 밝히던 연등의 행렬이 사라진 공간에 원래의 공허함이 돌아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서 불현듯 무언가가 들끓었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는 원숭이처럼 내가 알았던 모든 것들 내가 알지 못한 모든 것들이 서로의 자리를 바꾸어가며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쓰는 듯했다. 그 탓이었는지 도서관에서 교문 쪽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뎠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넘어지면서 바닥을 짚었던 오른쪽 손이 조금 부어 있었다. 문과대학 현관에서 묘현 스님과 마주쳤다. 나는 내가 했던 말 때문에 묘현 스님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묘현 스님은 내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오른손을 잡았다. 이리저리 살피더니 바랑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약간 따끔하겠지만 견딜 만할 거예요.” 묘현 스님은 부은 자리에 대고 사혈침을 톡톡 두드렸다. 아프지 않았지만 아팠다. 문과대학 내부의 중앙 계단을 내려오던 상우를 보았다. 상우는 우리를 못 봤거나 혹은 못 본 체했다. 내 손을 붙잡고 있는 묘현 스님도 상우를 보지는 못한 듯했다. 그런 것 같았다. 상우는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문과대학 현관에서는 팔정도의 불상 뒷모습이 환히 보였다. 상우 뒷모습이 그에 겹쳐지면서 멀어져갔다. 손등에서 아슴아슴 피가 배어나왔다. 허공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여전히 서글퍼 보여요.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힘내야 해요.” 묘현 스님의 목소리는 범종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운동장이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묘현 스님의 소설을 읽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은 눈치를 챈다. 두 사람은 무척 가까운 사이였으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는 순간 어색해진다.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소한 일들이 심각해진다. 두 사람은 결국 사이가 멀어진다. 한 사람은 이 상황을 납득하지 못한다. 죄가 없음에도 형벌을 치르는 심정이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기분이다. 두 사람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노력은 의도와는 달리 두 사람을 더 멀어지게 한다. 마침내 두 사람은 결정적이고 극적인 과정이 없었음에도 이별하게 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두 사람은 재회한다. 사실 소설의 서두는 두 사람의 재회로 시작된다. 재회한 두 사람은 옛일을 기억해내며 대화를 나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서로에 대해 오해했던 것들이 하나씩 밝혀진다. 두 사람은 서로 연락하지 않게 된 뒤로 서로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리고 사실 두 사람은 서로를 몰래 지켜보던 상대방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했던 이유를 돌아본다. 그 모든 게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였음을 서로가 더 이상 상대방에게 번민의 근원이 되지 않기를 바라서였음을 이해하게 된다. 나는 소설을 다 읽은 뒤 묘현 스님이 내 조언을 지혜롭게 반박하고 있음을 알았다. 내가 지녔던 인간에 대한 불철저한 믿음은 묘현 스님에게는 쓸모가 없었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므로 그 너머를 꿈꾸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아마도 반야는 바로 그 너머를 꿈꾸는 사람에게만 기적처럼 발견되는 것일 테다. 상우가 소설에서 완벽하게 다루지 못했던 진실도 그러했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보았다. 엄마는 아이를 모른 척하기로 했다. 아이가 가는 길을 막지 않기 위해서. 그 사실을 아이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엄마의 임종을 지키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상우가 왜 완벽한 플롯을 포기했는지. 다만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건 상우가 플롯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을 지독히 미워하지 않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는 것뿐이었다. 묘현 스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상우 씨는 최선을 다해 그런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그런 사람이 되었잖아요.” 이 도저한 믿음은 소설 창작에는 별 쓸모가 없었지만 나는 더 이상 묘현 스님의 창작법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리라 느꼈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하는 대신 무엇을 향해 가야 하는지를 알았잖아요.”

계절은 초여름에 접어들었고 학기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는 여전히 소설을 쓰지 못했지만 설령 쓰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었다. 불상 앞에 상우와 묘현 스님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시선을 마주쳤다. 부처가 그들을 내려다보았고 나는 부처를 바라보았다. 내 슬픔을 그들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해 봄날은 쓸쓸했지만 외롭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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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규
전북 정읍 출생.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1년 《작가세계》 소설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소설집으로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톰은 톰과 잤다》 《그 남자의 가출》 《당신은 지나갈 수 없다》 등과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이슬람 정육점》 《서울》 《파르티잔 극장》 산문집 《다정한 편견》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등이 있다. 노근리평화문학상, 백신애문학상, 오영수문학상, 채만식문학상,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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