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

1. 스님·승가·승보

우리말로 굳어져 있는 ‘스님’은 원래 출가 승려가 그 스승을 일컫는 말로 사승(師僧)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스님’이란 어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나로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도 ‘승(僧)님’이라 하다가 이응 받침이 탈락되어 생긴 말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출가 수행하는 승려를 통틀어 일컫는 흔한 말로 전락해 버렸지만 ‘스님’의 의미를 두레박을 타고 근원까지 추적해 보면, 우리가 지금 다루게 될 ‘승가(僧伽)’란 말과 만나게 된다. ‘승가’의 줄임말이 ‘승(僧)’이기 때문이다. 하기야 말에도 사회적 생명력이 있어서 어떤 말은 인간의 오만방자한 마음에 걸러질 때 본래 지녔던 중후한 맛을 잃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큰스님’이란 말도 내가 어릴 때에는 좀처럼 듣기 어려울 정도로 가려서 쓰였던 것 같은데 요즘은 사방에 ‘큰스님’ 투성이니 시대가 바뀌기는 바뀐 모양이다. 심지어는 전화로 자기를 소개할 때 ‘나는 아무개 스님입니다’ 하니, 스님이 자신을 ‘스님’이라 부르는 것은, 우리말 어법에 딱히 들어맞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자기 자신에게 존칭을 사용하는 우스운 일인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겸양지덕을 더 이상 미덕으로 생각하지 않는 데서 생긴 골계일 것이다. ‘승가’는 산스크리트 어 ‘상가(sam.gha)’를 중국의 번역자가 음사(音寫)한 말인데,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말이므로 여기서는 ‘승가’로 쓰기로 하겠다. 불교 신자라면 누구나 불·법·승 삼보에 귀의(三歸依)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실제로 삼귀의는 재가 신자뿐만 아니라 출가 승려도 당연히 표명해야 할 덕목으로 인정된다. 사미십계를 받을 때 삼귀의를 하거니와 비구, 비구니가 된 뒤에도 매일 독송하는 예불문에는 어김없이 삼귀의가 등장한다. 산스크리트 어로 쓰여진 불교 사본에서도 경전이나 논서의 첫머리에 삼귀의를 하나로 뭉뚱그려 ‘나무삼보(南無三寶)’로 표현하는 경우를 자주 대할 수 있다.

‘승가’는 이 삼보 가운데 ‘승보(僧寶)’에 해당하는 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여 제이, 제삼의 부처님이 되기 위한 길을 걸어가는 공동체를 뜻한다. 그렇다면 ‘스님’이 ‘승가’와 같은 말인가? 불교도의 귀의의 대상이 되는 승보가 곧 스님인가? 이 물음에 간단하게 대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오늘날 종교학에서는 종교의 필수조건으로 교주·교의(敎義)·교단, 이 세 가지를 꼽는다.

샤마니즘이나 일본의 신도(神道)와 같은 자연종교, 힌두교나 유대교와 같은 민족종교 가운데는 교주가 없거나 교의가 없는 등,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모자라는 경우가 있지만, 이른바 ‘세계종교’는 어김없이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는 없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법·승 삼보도 어느 정도 교주·교의·교단에 대응한다고 보아도 좋을 듯 싶다. 교단이란 관점에서 승보를 바라보면 스님은 당연히 승보가 될 것이고, 이 점에 대해서 아마도 별다른 이의는 제기되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왜냐하면 우리의 상식으로는 재가 신자도 당연히 교단에 속하지만, 재가 신자를 승보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님만이 승보일까? 여전히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또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 우리는 교단적 관점에서 말하는 승가와 승보의 관점에서 말하는 승가를 구분하는 편이 좋겠다.

재가 신자와 출가 스님의 관계 설정이 방향성을 잃고 헤매는 것도 실은 이 양자를 구분하지 않는 데서 야기된 ‘그릇된 문제제기’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스님’이란 말이 내포하는 함의와 외연적인 범위가 불교의 컨텍스트 속에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한 통로를 마련해 보기로 하자.

2. 승가의 유래와 기본정신

‘승가’는 부처님 당시 사문(沙門, saman.a)으로 불리었던 수행자를 좇아 형성된 제자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사문이 다른 말로 ‘승가의 소유자(sam.ghin)’로 불리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사문을 지도자로 삼아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가 바로 승가였으며, 이 점에서 ‘승가’는 불교 교단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였다.

사성계급의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바라문과는 달리, 사문은 카스트 또는 출신 성분의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신분이었다. 승가의 구성원도 사문과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신분이 보장되었는데, 우리가 ‘출가(出家)’라 부르는 과정이 아마도 이와 같이 자유로운 신분으로 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카스트가 지니고 있는 문화적 흡수력은 대단하기 때문에 출가하는 본인으로서는 자유로 향하는 길이었는지는 몰라도 일반 사회인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도인으로서 인도에서 살면서 카스트를 벗어난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자유를 얻기 위한 ‘죽음을 건 모험’이기 때문이다.

출가(出家, pravrajita)란 집(家)이 상징하는 바 세속적인 온갖 규제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이는 흔히 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서 각자의 이름을 잃어 버리고 바다의 한 맛으로 합쳐지는 사태에 비유된다. ‘강’이 출가하기 전에 각자가 갖고 있던 사회적 계급이나 지위·성명 등을 뜻한다면, ‘바다’는 그와 같은 온갖 세속적 차별을 벗어나 해탈의 맛 하나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뜻한다.

절에 자주 다녀본 사람이라면, 일주문에 새겨진 글을 유심히 본 적이 있을 것이다. “入此門來 莫存知解(이 문안에 들어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승가는 원래 이와 같이 ‘정신적 대전회(大轉回)’를 거쳐 세속의 출신성분, 알음알이를 모두 벗어 버리고 오직 완전한 자유만을 위해서 모인 공동체를 의미한다.

초기 불교의 자료를 보면, 승가의 구성원은 자신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모이며, 화합의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자주 회의를 열어 자신들의 지도자를 뽑는 등 공동체에 관한 일을 결의하거나 그 밖의 공동체에 관련된 사안들을 만장일치제로 처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승가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전제조건이 충족되었어야 했을 것이다.

첫째, 사문과 같은 종교적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둘째, 승가의 구성원은 세속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신분이어야 한다.

셋째, 만장일치로 공동체의 일을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상호 화합하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

넷째, 승가는 해탈이라는 한 목적을 향해서 운영되어야 한다.

3. 교단으로서의 ‘승가’

종교학에서 말하는 ‘교단’과 승가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사부대중(四部大衆)’ 또는 ‘사중(四衆)’이 불교의 ‘교단’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大衆은 ‘paris.ad’의 번역어로 徒衆, 眷屬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사중’은 비구·비구니, 우바새·우바이를 통틀어서 일컫는 말로, 출가 수행자와 재가 신자를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다. (또는 출가 수행자에 사미·사미니·식차마나를 포함시켜 ‘七部大衆’ 혹은 ‘七衆’이라 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비구·비구니는 출가 수행자이다. 한편 우바새·우바이는 ‘근사남(近事男)’ ‘근사녀(近事女)’로 번역되기도 하듯이, 부처님이나 그 제자께 가까이 가서 섬기는 자를 뜻하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공양을 모시는 재가 신자가 이에 속한다. 재미없는 이야기가 될지 몰라도 불전(佛典)에서 ‘승가’는 사중(四衆)과 엄격하게 구별된다 .

우바새·우바이는 승가에서 제외되며, 비구·비구니를 비롯한 출가 수행승만 승가로 분류된다. ‘사중’이 현대적인 의미로 ‘교단’에 해당한다고 하면, ‘승가’는 현대적인 의미로 ‘성직자(聖職者)’에 해당한다. 물론 ‘성직자’가 신(神)을 전제로 한 말이라고 한다면 승가를 성직자와 동일시한다는 것은 불교 교리체계와 상치되는 일이겠지만 ‘성직자’를 말 그대로 ‘성스러운 직업을 갖고 있는 이’로 해석하는 경우에, 승가는 성직자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말을 바꾸어서 ‘교단’에 넓고 좁은 의미를 둔다면, 사중은 넓은 의미의 교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승가는 좁은 의미의 교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다섯 비구가 생긴 초전법륜 때를 최초로 승가가 성립한 시점으로 보는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 《아함경》이나 팔리 니카야에는 부처님이 다섯 비구를 만나기 전에 상인 두 명을 만났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두 사람은 부처님께 우바새로 받아들여 줄 것을 요청했고 부처님은 이를 받아들였다. 당시는 아직 불·법 이보(二寶)밖에 없었으므로 부처님께서는 그 두 사람에게 나중에 생길 승가 곧 승보에도 귀의하도록 권하였다. 이 때문에 이 두 상인은 ‘이보(二寶)에 귀의한 우바새’로 불리우게 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그 두 사람이 ‘삼보에 귀의한’ 우바새로 표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고, 또한 불·법 이보에 귀의했다고 해서 승가로 인정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교단적 관점에서 승가가 출가 수행자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경·율·론 삼장(三藏) 중 율장의 내용을 분석해 보아도 명백하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율장은 그 모두가 출가 수행자 공동체에 대한 규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율장 속에 비구 승가·비구니 승가에 관한 용례는 있어도 우바새나 우바이를 승가에 포함시키는 구절은 한 군데도 없다.

그렇다면 초기불교에서 교단은 승가와 재가 신자로 구성되었다고 하는 편이 좀더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팔리 니카야에서는 이와 같이 출가 수행자로만 이루어진 좁은 의미의 교단을 ‘삼무티상가(sammutisan.gha ; 世俗僧伽 곧 세상에서 말하는 승가)’로 표현한다. 우리가 ‘스님’이라 부르는 출가 수행자가 바로 이 세속승가(世俗僧伽)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4. 승보로서의 ‘승가’

‘스님’이 내포하는 함의내용과 외연적 적용범위를 철저하게 따져 묻기 위해서는 우선 세속승가와 승보를 엄밀하게 구분해야 한다. 출가 승려를 통틀어 일컫는 ‘스님’의 일상적 용법이 세속승가와 연결된다면, 사승(師僧)을 가리키는 ‘스님’의 원래 의미는 승보와 연결된다.

흔히 ‘스님’을 승보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불교도가 귀의의 대상으로 삼는, 승보로서의 승가는 외형적인 삭발 형상이나 승복과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산스크리트 어 불교문헌이나 팔리 니카야에서 세속승가와 대비시켜 사용하는 말로 ‘아리야상가(a yasan.gha)’가 있다.

‘아리야상가’는 ‘성승(聖僧)’ 또는 ‘성중(聖衆)’으로 번역되는데, 우리가 ‘승보’라 부르는 것은 바로 이 ‘성승(聖僧)’ 곧 ‘성스러운 승가’이다. ‘스님’의 원래 의미가 이 ‘성스러운 승가’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일이다. 출가 수행자만을 적용대상으로 하는, 좁은 의미의 교단으로서의 승가가 세속승가 곧 세속적 의미의 승보라고 한다면, ‘성승(聖僧)’은 진정한 의미의 승보이다. 이 구별은 우리가 성직자를 말뿐인 성직자와 진정한 성직자로 구별하는 것과 대응한다.

‘스님’에도 말뿐인 스님과 승보로서 귀의의 대상이 되는 진정한 스님, 이 두 부류가 불교 문헌 안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 대승불교를 표방하는 우리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성승은 ‘성자(聖者, a yapudgala)’로도 표현되는데, 흔히 불교문헌에서 성자(聖者)와 현자(賢者)가 구별되어 쓰이듯이, 성자는 수행계위에서 보면 견도(見道) 이상의 경지에 달한 사람을 말한다.

아라한을 지향하는 부파불교에서는 예류(預流)·일래(一來)·불환(不還), 아라한의 이른바 ‘사향사과(四向四果)’의 여덟 성인이 이 성자(聖者)에 들어간다. 부파불교에서는 출세간주의적 경향이 강해서 ‘성자’라 하더라도 주로 출가 수행승을 대상으로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재가 신자가 성자의 반열에 들 수 없다는 제한은 없다. 실제로 ‘거사(居士)’로 대표되는 재가 신자가 아라한에 이를 수 없다는 견해는 초기 경전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앙굿타라니카야》에서는 21명의 거사 아라한이 언급되고 있으며, 또한 출가 수행 생활을 하는 것만이 성자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 어떤 확실한 문헌적 증거도 없다. 재가 신자라 하더라도 성자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그는 승보로서의 ‘승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보살을 이상으로 삼는 대승불교에서 부파불교 시대만큼 재가와 출가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일은 재가불교운동에서 발전한 탓인지 출가보살보다는 재가보살이 대승경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유마경》의 유마 거사, 《승만경》의 승만 부인, 《반주삼매경》의 발타화 보살 등이 대표적인 실례에 속한다. 부파불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형식에 치우친 부파불교의 입장에서는 세간승가와 성승을 동일시하게 마련이다. 곧 승보는 구족계를 받은 비구·비구니만으로 구성된다.

현재 불교학계의 한 학설에 따르면, 대승불교의 출가보살의 경우에는 대체적으로 부파교단의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 학설이 옳다고 한다면 대승의 출가보살이 부파불교의 전통적인 세속승가에 속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명백한 일로 보인다. 구족계를 받지 않은 출가보살의 교단은 부파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승보로서의 승가가 될 수 없었을 것이고, 이것이 부파불교 시대에 승보에 대한 지배적인 원칙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적 용례에서 쓰이는 ‘스님’을 승보로 여기는 것은 싫든 좋든 부파불교의 지나친 형식주의가 망령처럼 되살아난 것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대승불교의 쌍벽이라 일컬어지는 유식사상과 중관사상의 창시자인 세친과 용수의 전기(傳記)를 조사한 한 연구는, 세친이 설일체유부에서 구족계를 받은 적이 있는 출가보살이었던데 비해, 용수는 구족계를 받지 않은 출가보살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대승불교의 승가는 승보로서의 승가를 지향하고 있지, 세속승가로서의 승가를 추구하는 공동체는 아니다.

재가보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재가보살이 삼귀의, 오계를 받는다 하더라도, 이는 부파교단의 세속승가에 귀의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재일(齋日)에 팔재계(八齋戒)를 지킨다고 하더라도 부파교단의 승가람(僧伽藍)에 가는 것이 아니라 탑사(塔寺)에 참배하러 가는 것이었다. 귀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승보였지 세속승가가 아니었다. 세친은 《섭대승론세친석》 귀경게(歸敬偈)에서 삼보에 귀의를 표명한다.

그 가운데 승보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승보로서의 승가가 어떠한 내포적 의미를 지니는지, 어떠한 외연적 적용범위를 갖는지에 대해서 좋은 안내역을 해줄 것이다. 유학(有學)과 무학(無學)의 과(果)에 머물며, 그 [과에 이르는] 도(道)를 행하는, 다른 승가에 비해 월등한 부처님의 승가는, 올바른 서원(誓願)으로 티없는 공덕을 성취하고 있으니, 그 [‘승가’라는] 무상복전(無上福田)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선(善[業])을 짓는다면 지혜로운 이는 대지나 허공과 같이 광대한 해탈을 성취하리라.

불교도가 귀의하는 승보로서의 승가는 유학과 무학의 과(果)와 도(道)로 표현되듯이, 부파불교에서는 사향사과(四向四果), 대승불교에서는 팔성도(八聖道)와 해탈(解脫)·해탈지(解脫智)에 통달한 성자(聖者)들의 집단으로, 다른 공동체에 비해 수승하다는 것이 이 글의 취지이지만, 여기서 재가와 출가의 구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조건을 갖출 때 ‘승보’로 불리우는가 하는 점이 중요하다. 세친의 《구사론》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나오는 것을 보면 대승이건 소승이건 승보의 이념적 함의내용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인용을 끝으로 우리의 글을 마무리짓기로 하자. 귀의승(歸依僧)하는 이는 승가를 형성시키는 주요한 원인인, 유학·무학의 제법에 귀의한다.

그 [유학·무학의 제법]을 얻음으로써 [비로소] 팔성인(八聖人)은 승가가 된다. [천(天)을 포함해서 세간의 힘으로는] 깨뜨릴 수 없기 때문에 [‘승가’라 한다. 화합체(samagra)와 같이 깨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모든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냐 아니면 한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냐? 이치로 보아 모든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다. 도(道)에 상충되는 모습은 없기 때문이다.”(AKBh p.216, 22-24) <끝>

이종철
서울대 철학과 및 일본 동경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졸업. 철학박사.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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