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신학자가 탐구한 여성성불사상

종교와 젠더연구소 옥복연 소장이 번역한 미국 여성 종교(불교)학자 리타 그로스✽의 《불교 페미니즘,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Buddhism After Patriarchy: A Feminist History, Analysis, and Reconstruction of Buddhism)》는 불교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책이다. 리타 그로스는 원래 기독교 신학자라고도 할 정도로 기독교 전통에 익숙한 학자다. 하지만 그녀는 서구 유신론적 일신교에서의 젠더 초월이 궁극에는 여성성을 폄하하고 희생시키며 남성성을 신성시하는 성(性) 이분법을 강화하는 것임을 간파하면서(363쪽) 불교에 심취하였다. 그녀는 불교의 가르침에서 인류 탈가부장제의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스스로 티베트 금강승불교의 진지한 수행자의 길을 가는 실천적 학자이기도 하다.

불교사의 페미니스트 재구성

저자 그로스는 우선 ‘불교 역사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스케치’를 통해서 과거 불교의 역사에서 앞으로의 새로운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를 위해서 무엇이 ‘유용한’ 자료인지를 찾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불교의 ‘정확한’ 모습이 어떠하였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일을 위해서 먼저 분명히 해야 하는 일은 ‘남성 중심주의’인 ‘가부장제’와 ‘여성혐오’를 구분하는 일이다(56쪽). 그녀에 따르면, 오늘날 특히 서구 현대 페미니즘으로 일깨워진 성 의식으로 가부장제를 무조건 ‘여성혐오’와 등가화하는 일은 정확한 역사 이해가 아니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로서 우리가 할 일은 오늘 시대의 기준으로 볼 때 여성들에게 잔인했던 가부장제적 존재 방식을 아직도 그대로 고집하고 집착하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지 모든 과거에 대해서 페미니즘적 가치를 무조건 투사해서는 안 된다(58쪽). 즉 가부장제 아래 살던 모든 사람이 ‘여성혐오자’는 아니었다는 구별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명 · 역사 진화론적 시각을 기초로 하는 페미니스트 저자로서 그로스는 놀랍게도 붓다 가르침 자체도 비신화화하고 페미니스트 시각에서 상대화한다. 그리하여 예를 들어 붓다가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출가해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간청에 대해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여성 비구니의 수행을 철저히 남성 비구의 지도 아래 두면서 허락한 일, 즉 불교 전(全) 역사를 통해서 여성들에게 결정적인 족쇄가 되어온 ‘팔경법’의 해석에서 “붓다께서 팔경계에 기록된 진술들 그대로를 만들었다면, 나는 붓다가 완전히 깨달았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86쪽) 라고 언술한다. 그녀는 붓다 자신도 당시 가부장제의 조건 아래 살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그래서 그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에도 젠더 이슈는 그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으며(77쪽), 당시 고대 인도에서 가부장적인 젠더 위계를 무시하는 일은 여성들의 출가자 삶보다도 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라고 추론한다.  

불교 페미니스트 ‘신학’ 구상

역사적인 검토에 이어서 저자가 역점을 두는 것은 불교 교리(법) 자체에 대한 점검이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불교에서는 여성들에게 그와 같은 역할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더는 그럴 수 없으며, 거기서 더해서 불교 여성 ‘신학자’들이야말로 유신론적 일신교의 특성을 지닌 기독교 신학자들보다도 훨씬 더 유리한 처지에 있다고 일갈한다. 즉 불교의 핵심 교리인 무아(無我)나 공(空), 진여(眞如) 등의 가르침은 본래 어떤 인간적 구별이나 차별, 가부장제의 성별 위계 등과는 양립할 수 없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적어도 불교 페미니스트들은 (기독교 페미니스트들과는 달리) 신의 계시나 우주 질서에 대한 해석을 재구성할 필요는 없다”(268쪽)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와 페미니즘의 만남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운동의 ‘축복할 만한 동반자’”의 만남이고, “담마(dharma, 진리/법)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라는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2,500여 년 불교 역사가 크게 초기 소승불교에서 상좌불교, 금강승불교(대승불교)로 세 번의 큰 전환이 있었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그 전환과 전개가 처음 자아 개인의 해탈에 대한 집중으로부터 점점 더 공동체 전체에 관한 관심으로 나아갔고, 무아나 공성 등의 형이상학적이고 탈세상적인 가치의 추구에서 감정과 몸, 성(性) 등을 온전히 함께 포괄하는 실천과 현세에 대한 강조로 나아갔다고 밝힌다.

이러한 전개에서 그녀에 따르면, 먼저 우리가 초기불교의 ‘무아’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면 그러한 사람은 결코 젠더를 이용하여 세상을 분류하는 남성 중심주의에 빠질 수 없다. 그녀는 묻기를 어떻게 자아의 위험과 함정에 대해서 그렇게 예민한 감각을 키워온 불교 전통이 그와 같은 젠더 의식에 빠질 수 있으며, 거기서 젠더와 무아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그러한 사람은 결코 무아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날카롭게 비판한다(307쪽). 또한 상좌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공성의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여성들은 무엇인가를 할 수 없다거나 남성은 어떤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등은 모두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특성에 대해서 절대적인 무엇인가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그것은 참된 공성의 깨침이 아니고, 곧 ‘차별’에 빠지는 것이다(324쪽). 

이러한 입장에서 불교 ‘업’에 대해서도 저자는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삶이 남성보다 더욱 비참하고 그래서 여성으로 태어나지 않으려는 것을 과거 부정적인 업과 연결하여 설명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여성의 현재적 고통이 지금 남성의 치유되지 않은 가부장성으로 인해 야기된 현재의 고통이라는 측면을 강조하면서 그 상황을 대처하는 방법은 결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끊임없는 흥망성쇠의 일부라는 자각에서 “그건 역사야, 이제 자네에게 달렸네”라는 언술을 가져오고(237쪽), 업 이론이 불교가 발생하기 이전의 인도 사회에서 발생했지만 불교가 거기에 너무 많이 의존해 왔다고 비판적으로 지적한다(377쪽).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를 위한 서구 여남평등의 현대불교

이상에서처럼 저자는 불교의 원론적인 교리만을 본다면 인류 어느 종교 전통보다도 불교가 현대 페미니즘과 잘 화합할 수 있고, 상호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이론과 실천 사이의 괴리가 엄청나서, 예를 들어 그녀의 수행처가 된 티베트 금강승불교에서 풍성한 성적 상징과 여성주의 이미지들이 남성들로 하여금 여성성에 대해서 긍정적이고 다른 의식을 가지게 하지만, 그것이 실제 여성들의 삶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래서 “금강승불교의 사회적 현실은 슬픔과 회한을 불러일으킨다”고 밝힌다(226쪽). 
이러한 상황에 대한 반전을 저자는 바로 서구 현대 불교도들의 여남평등적 불교 수행에서 본다. 그녀의 관찰에 따르면 서구 현대 불교도들은 기독교 등의 서구 종교 전통에서 나와서 한편으로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으면서 출가나 재가의 구분을 무색하게 한다. 그러면서 여성들도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뛰어난 불교 이론가나 지도자, 구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그들은 가장 일상적인 가정 삶과 직업 생활을 병행하면서도 우수한 불교 수행자와 요기니가 될 수 있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앞으로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의 가능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녀는 자신의 오랜 불교 수행으로 경험한 불교적 ‘고독’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지금까지의 불교가 주로 개인의 수행과 관련한 ‘붓다’와 ‘가르침’의 두 보물에 집중해 왔다면 ‘승가 공동체’야말로 미래의 불교가 더욱 전개해야 하는 주제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오랜 수행 경험에서 고독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매우 남성 중심주의적인 시각인 것을 알았으며, 그래서 앞으로 가부장제 이후의 불교는 공동체, 양육, 소통, 관계와 우정 등의 페미니스트적 가치로 채워진 새로운 승가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승가의 공동체 생활이 불교 교리 자체보다도 더 오래된 모든 존재의 관계성과 상호의존성을 훨씬 더 수월하게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불교의 탄생지인 아시아와 서구 현대 양쪽에서 불교 수행의 참모습을 보아온 그녀는 특히 일반 여성들과 직장인과 가정생활을 하는 재가자들이 어떻게 뛰어난 불교 이론과 실천을 겸한 깨달음의 사람으로 거듭나는가를 관찰한 결과 “불교 승려들이 이 수준의 영적 발전에 대한 독점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478쪽)라고 일갈한다. 

거룩함(聖)의 평범성 확대

이것은 참으로 엄청난 ‘거룩함(聖)의 평범성 확대’를 선언하는 일이다. 여기서는 더는 재가 수행자와 성직자, 여성과 남성, 일상과 거룩, 몸과 정신, 평범과 신성이 둘로 나뉘지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아시아 불교와 서구 페미니즘을 서로 관계시키며 성(聖)과 속(俗) 사이의 본질적 불이성(不二性)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지금까지의 불교 실행에서 그 둘 사이의 실체적 차이와 위계를 강조하며 누려온 모든 불의한 특권을 내려놓을 것을 촉구한다. 특히 남성 성직자 그룹에 의해 실행되어 온 오랜 가부장제 인습과 불의한 차별, 무자각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그녀의 비판은 더할 수 없는 논리성과 실천성으로 다가온다. 오늘의 한국불교가 이와 같은 서구 재가 여성불교학자, 서구 여성 요기니의 가르침과 외침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그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자명해 보인다. 

이와 함께 저자 그로스도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한 서구 여성 신학자 메리 데일리가 지적한 것처럼, 여성들이 너무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다가 우주와 존재에 대한 큰 이야기는 여전히 모두 남성에게 맡겨버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 책을 읽고 한국 불자들, 특히 여성 불자 중에서 이 책처럼 불교 가르침의 핵심과 토대와 함께 씨름하는 여성들이 더욱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단지 한국불교, 한국 여성들에게만이 아니라, 한국 종교 전반과 지성계 전체에 대한 방향 제시로도 유의미한 이 책의 출판을 다시 한번 축하한다. ■ 

 

이은선
세종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여성신학회 회장 엮임. 지은 책으로 《유교, 기독교 그리고 페미니즘》 《한국 생물(生物)여성영성의 신학》 《3 · 1운동 백 주년과 한국종교개혁》(공저) 등이 있다. 현재 현장(顯藏) 아카데미 ‘한국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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