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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가르치는 스승 / 재마
[84호] 2020년 12월 01일 (화) 재마 조계종 교육아사리

정심학교는 중등부에서 고등부를 넘어 22세까지 수용하는 교정시설이다. 그곳 아이들은 일반 청소년들과 비슷하기도, 다르기도 하다. 작년 여름 불교수련회 마지막 날은 춤을 가르쳐주기 위해 젊은 남자 선생님이 오기로 되어 있었다. 무용가이자 연예인들을 키우기도 하고, 국제 비보이 대회에서 사회를 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는 분이었다. 그날, 그분은 검은색 모자에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양팔엔 검은색 타투가 가득한 채 휠체어를 타고 등장했다. 

그 선생님이 법당에 들어오자마자 친구들의 관심과 집중을 받았다. 친구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왜 휠체어를 타요?” “어떻게 다쳤어요?” “얼마나 아파요?” “언제 나아요?” “왜 사고가 났어요?” 하나의 질문에 답을 하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답을 다 듣지 않고 자신의 궁금함을 토해냈다.

"휠체어에 앉아서도 춤출 수 있어요?” “어떻게 춰요?” “일어서서 출 수 있어요?” 질문에 거침이 없는 것은 좋은데, 선생님이 연신 땀을 훔칠 정도로 다양한 질문들이 나왔다.

이야기의 요지는 공연을 마치고 밤에 동료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다가, 사고가 났는데 혼자만 반신불수가 되었단다. 그 친구는 너무 미안해서인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사고가 난 것, 전신마취 수술을 10번 이상했는데 지금도 상상통(痛)으로 고통받는다는 것.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새록새록 생겨나는 듯,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졌다. 한 사람의 인생에 이렇게 깊이 관심을 가지고 침투해도 되는가? 우리가 뱉는 무심코 던지는 한마디의 질문과 말의 위력을 무섭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러자 그분은 조용하게 아이들의 시선을 동영상으로 이끌어, 배려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태국의 한 청년이 건물 옥상 배수로에서 쏟아지는 물세례를 받은 후, 주위를 돌아보며 상황을 파악한다. 옆에서 말라 죽어가는 화분을 물이 떨어지는 곳으로 옮겨 물을 맞게 한다. 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길강아지가 와서 그의 식탁 위에 손을 내밀자, 자신의 것을 나누어 준다. 이후부터는 2인분을 시켜 함께 먹는다. 또 할머니의 포장마차를 함께 밀어 보도를 건네 드리고, 버스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배려들을 실천하는 영상이었다. 

그 화분에서 식물이 자라고, 할머니의 근심 어렸던 얼굴이 환한 미소로 바뀌고, 강아지와 함께 식사하는 등의 화면이, 지금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사유하게 했다. 아이들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분은 다시 사고로 인해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이야기를 이어갔다. 1년 이상 우울증에 시달리고, 한 주먹씩 되는 약 복용으로 당하는 고통보다, 타인들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관념 때문에 더 고통스러웠던 이야기, 외국과 우리나라 사람들 인식의 차이를 경험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대형 백화점 엘리베이터 앞에서 1시간 반을 기다려도 누구 하나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배려해주는 이가 없는 우리나라, 그런데 외국에서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으면 안에 타 있던 사람들도 모두 내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먼저 타라고 배려해주는 차이 등을. 몸으로 경험한 차별, 인권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아이들은 점점 질문이 잦아들었고, 그녀들의 눈동자에선 빛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춤을 추지 못했다. 춤을 가르쳐줄 제자들이 두 사람 따라왔지만, 선생님은 양팔로 웨이브 동작 하나를 만들기 위해 17시간 동안 멈춰 서서 반복하는 훈련을 했다는 것을 설명하며 직접 보여주었다. 화려한 무대 뒤에서 얼마나 피땀 흘리는 연습과 훈련을 하는지, 자신에게 충실한 것이 무엇인지 몸과 삶으로 알려주었다. 팔 하나만 올려서 웨이브를 만들어도 그렇게 아름답고 매혹적일 수 없었다. 그것은 그만큼 공을 들여 훈련한 탓도 있지만, 자신에게 성실하게 집중한 덕분이었다. 아이들과 나는 매료되었다. 삶이 녹아들어 간 살아 있는 강의의 춤을 보았다. 

그날 초대한 춤 선생님의 강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의 벅찬 감동과 존재의 흔들렸던 기억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생명과 고통, 하반신 마비와 바꾼 귀한 가르침이 아이들과 내게도 흘러들어왔던 반나절, 수업이 끝나갈 무렵 아이들은 눈물을 흘렸다. 엉엉 우는 친구들도 있었다. 친구들은 “선생님이 빨리 낫기를 바란다.” “기도하겠다.”라고 했다. 또 “주소를 알려 달라”고 “편지를 하겠다.”라면서 걱정과 아쉬움으로 연결되기를 원했다.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묻자, 한 친구는 “그동안 제가 너무 편견을 갖고 있었어요.” “예전에 장애인 친구들에게 못되게 한 것이 후회돼요.”라고 답했다. 한 존재는 다른 존재를 키우고 양육한다.

jeama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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