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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뫼 / 법념
[84호] 2020년 12월 01일 (화) 법념 경주 흥륜사 한주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길을 나섰다. 뜻이 맞는 도반들과의 여정이라 떠나기 전부터 가슴이 설렌다.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한껏 기대가 부푼다.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린다. 새벽부터 설친 터라 자동차의 흔들림이 자장가가 되어 이내 꿈나라를 헤맸다.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휴게소였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렸지만 우산을 마다하고 화장실로 뛰었다. 이마가 차갑다. 정신이 버쩍 들어 잠이 확 달아났다. 

비가 멈추면서 바람에게 배턴을 넘겼는지 달리는 차가 약간 배틀거린다. 바닷물이 산을 끼고 들어와 호수 같은 정경이 펼쳐지는 해안길을 따라 마냥 달린다. 산 아래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집들이 드넓은 바다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햇살은 바다색을 잿빛에서 푸른빛으로 바꾸어주더니 갑자기 모습을 감춘다. 

금산(錦山)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태풍이 지나간 넓은 주차장은 더없이 썰렁하다. 나뭇가지와 잎이 이리저리 널려 있고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다. 산정에 가까워질 무렵 햇빛이 살짝 나와 나무 사이로 한려수도를 비춰주어 탄성을 질렀다.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게 아쉽다. 내려서 더 보고 싶건만 차는 야속하게 그냥 지나친다.

산 밑에선 보이지 않던 풍광이 이제 발아래 환하게 열린다. 40여 년 전에 본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만 늙었을 뿐. 뫼의 씩씩한 기상이 부럽다. 산의 정기를 흠뻑 받아드리고파 두 팔을 벌리고 큰 숨을 몰아쉬었다. 온 산이 짙푸른 물감을 들인 열두 폭 비단치마를 굽이마다 펼쳐놓은 듯 눈이 시원하다.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가 산색의 기에 눌려 왠지 우중충해 보인다.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드려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해 온 산을 비단으로 덮으려 했다. 천을 두르지 못하여 금산이라고 부르도록 한 데서 산 전체를 비단으로 씌웠다는 말이 전해온다.

인고의 세월을 거쳐 단단한 바위를 뚫고 홀로 핀 하얀 연꽃. 관음성지 보리암(菩提庵)이다. 암자 주변의 거대한 바윗덩이가 법당의 관세음보살을 지키는 호위무사가 되어 양쪽으로 당당하게 서 있다. 우람한 모습에 압도당해 죄 없는 사람도 괜히 주눅이 들어 꼼짝 못 할 것 같다. 부드러운 곡선을 긋고 있는 산과 달리 바위는 위로 우뚝 솟아 당당하고 거친 모습을 보여 대조를 이룬다. 

중생의 소망을 듣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관세음보살이 보리암 법당에 계신다. 쉴 틈 없이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정신이 없을 법하건만, 좌정한 자리에서 한 번도 웃음을 거두지 않고 마냥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고 계신다. 밖에서 듬직한 화엄신장(華嚴神將)들이 턱 버티고 보호해주어서일 게다. 

관음보살을 마주 보고 앉아 두 손을 모았다.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의 말을 다 들은 듯 고개를 끄떡이는 듯하다. 보살처럼 이타(利他) 정신으로 살아야 하거늘. 중생인지라 자기 욕심만 채우는 것 같아 공연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뒤로 물러가는 삶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는 불퇴전(不退轉)의 길을 가도록 해달라고 엎드려 절했다. 

비단뫼를 뒤로하고 내려가는 길. 다시 한번 다도해의 풍경을 보려 했지만 짙은 안개가 삽시간에 모든 걸 감춰버렸다. 지상의 안개는 해가 뜨면 스르르 걷힐 게다. 마음속을 가린 안개도 커튼 열리듯 활짝 열리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안개와 구름을 사랑했던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라는 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다.

안개 속을 헤매면 이상하여라!
숲이며 돌은 저마다 외로움에 잠기고
나무는 서로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다 혼자다.

‘모두가 다 혼자다’라는 시구가 가슴에 스며든다. ‘멋을 찾아 홀로 떠돌며 수행하는 운수납자(雲水衲子)’의 모습을 ‘혼자’라는 시구에서 다시 떠올린다. 수행자는 고독을 철저히 맛보아야 깨달음의 계단으로 진입할 수 있어서이다.

묵고 있는 숙소의 책방에 들렀다. ‘진정한 여행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라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을 입구 유리창에서 맞이한다. 비단뫼에서 마음의 눈을 열지 못하고 경치에만 팔렸던 일이 생각났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근원수필(近園隨筆)》이란 책을 한 권 샀다. 서점 한쪽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내면에 얼어붙은 감성을 깨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지에서 책을 읽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건 보리암 관음보살의 여음(餘音)이 가슴에 남아 있어서인 듯하다. 

40여 년 전 금산 보리암에서 간절하게 기도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본다. 그동안 미미해져 버린 신심이 솔솔 되살아난 듯해 미쁘다. 이번 여행길에서 얻은 소득은 무엇에다 비할 수 있으랴. 길가의 풀에게도,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발밑에 밟히는 돌멩이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푸른 비단뫼 금산. 흰 연꽃 보리암.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고프다. 처염상정(處染常淨)한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나고파서다. 

heungnyun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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