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보는 것.

그래서 기다리는 타이밍을 길게 가져가는 것. 새옹지마의 그 아비처럼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고 미지의 것에 신뢰를 두고서 행하는 그것. 

지금의 순간에 집중하지만 때를 기다려서 스스로나 상대를 다그치지 않는 것.

다그쳐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서 너그러운 그것. 더 나아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내는 그것. 

모든 일에 무심해서 시시콜콜 반응하지 않는 그것. 무심함은 세상일의 인연이 독자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는 진실을 곧장 알기에 시시비비에 걸리지 않는 그것. 

그래서 섣불리 자기 입장을 관철시키지 않고 차라리 내가 틀렸다고 수긍하는 자에게서 보이는 그것.

어눌해보이지만 결코 따스함을 놓치지 않는 것. 모든 일에 다 괜찮다 괜찮다 위안하는 그것.

자기에게 할당된 몫에 감사해하고 남의 것을 탐내지 아니하며 내가 혹 손해를 보더라도 남이 이익을 챙겼으리라 다독이는 운치가 있는 그것. 

고수할 원칙이 없는 것처럼 보여 쓸개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 그것. 상황이 답이려니 애달파하지 않는 그것.

되는 대로 되어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흐름을 따르는 지혜가 있어 늘 순해 보이는 그것. 

고여 있지 않아 어디로든 길 떠날 수 있는 담담한 그것. 남이 부러워할 좋은 자리여도 훌훌 털고 떠나는, 얽매이지 않는 그것.

나의 견해가 아무리 옳다고 여겨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헐렁한 그것. 그래서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지면 그것의 귀함을 만끽하는 그것.  

반드시 잘나야 맛인가 하여 잘나가는 친구의 그림자 역할을 무던하게 해내는 그것. 

밖으로 분산되는 에너지가 없어서 미세한 변화도 감지하는 섬세한 그것.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바깥에 있으려니 짐작하고 먼 길 돌아돌아 옛 선사들이 깨달은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속 창고에  있었다. 그것도 누구에게나 있다. 참으로 후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그 마음의 비밀을 알아낸 이들은 지혜롭다 하고 도인이라 하고 해탈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있는 이것을 우리는 왜 놓치고 있는 걸까? 그것은 탐구하는 자가 탐구되는 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찾고자 했던 진리가 바로 나 자신이었기에 밖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이 붓다가 보리수에 앉아 편안히 쉬면서 발견해낸 전대미문의 진실이기도 했다. 그래서 해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썼던 가면들을 하나씩 벗겨내게 된다. 가식을 쓸 필요가 없었던 아기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본래의 얼굴로.

사회는 개인이 원하지 않았는데 이기적이 되라고 가르친다. 이기가 당연한 삶의 지침이 되었다. 너도나도 이기의 당위로 앞으로 달려간다.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는 행복을 위해. 행복은 야금야금 새고 있는데도 그것을 감지해내는 직관이 무디어져 있기에 알아차리지 못한다. 속수무책으로 말이다. 참으로 허무하지 않는가!

부모들도 자녀들의 행복을 바라면서도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모른다. 바다를 항해하는데 나침반이 없는 것과 같다. 막연하게 남들만큼만 하라고 교육한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라고 조용히 설득한다. 가면다운 가면을 쓰라고. 이기적이 되어선 결코 깊어지는 인격을 담아낼 수 없는데 이기가 선도하고 이기가 삶을 리드한다. 남을 위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타인은 같이 행복을 누려야 할 이웃이 아니라 경계해야 하는 적이 된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일상에 즐비하고 행복지수가 낮은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남들도 기대고 나도 기대니 별문제 없으리라 믿는 상식의 세계가 눈을 어둡게 한다. 좋은 직장에만 들어가면 행복할 거라는 상식, 높은 봉급을 받기만 하면 넉넉할 거라는 상식, 스펙이 좋으면 근사할 거라는 상식에 우리의 삶을 묶어놓고 스스로 가두었던 까닭에 보물창고는 뒷전이 되고 오히려 각박해져만 간다.

선선해지는 아침의 바람에 잠깐 눈을 감고 바람을 느끼면 어느새 깨어 있음이 가까이 있게 된다. 깨어 있음이 가까이 있는 것이 눈 밝음의 시작이다. 거대한 소용돌이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브레이크를 밟고 좁은 굴에서 나와 하늘을 보고 저벅저벅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뎌 보는 것, 그것이 깊어지는 첫걸음이고 감았던 눈을 뜨는 귀한 순간이다. 마치 아기가 태어나 생전 처음 세상을 보듯이 맑고 곱게.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놀라움일 것이다. 우리도 처음처럼 놀랄 준비를 해보자. 그것의 시작은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대다수가 합의한 현실에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자아를 포함한 기존 질서체계의 해체가 아닐까? 무에서 출발하여 더 큰 무로 나아가다 보면 심해의 평안과 깊이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 

심해는 깊고 깊어 표면에서 일어나는 파도의 소식이 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 양 멀다. 잔파도의 물결이 그곳에까지 이르지 못한다. 전수무사(全收無事). 내 눈앞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한자성어. 그쯤 되어야 깊이에 다다른 것이리라. 

올해에는 초유의 사건들이 많고 많았다. 그 많은 사건 사고들이 꿈처럼 환영처럼 물거품처럼 아지랑이처럼 스러져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창밖을 열고 맑은 눈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고?’ 하면서 이 깊어가는 가을 햇살을 음미할 수 있기를…….

bababy2004@naver.com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