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선원 독일지원 법당 옆에는 전나무들이 우뚝 서 있습니다. 법당 옆에서 의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나무에게 말을 겁니다. “오늘도 참 행복한 날이야.” 법당과 옆집을 내려다보며 전나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선원이 개원한 독일 중서부에 자리한 카르스트(Kaarst) 시는 굉장히 보수적인 곳으로, 처음 한국 절이 들어왔을 때 독일인 이웃들은 반기는 마음보다 낯섦에 대한 거부감이 먼저였습니다. 특히 옆집 크노프 할아버지 내외분 이야기를 사형 혜진 스님은 자주 하는데, 크노프 할아버지는 지역사회의 유지이자 큰 회사 사장과 로터리클럽 회장까지 지낸 분입니다.

이사한 후 얼마 뒤 우리 지원을 찾아와서 집이 붙어 있으니 방화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고 요구하였습니다. 또 다른 날은 담이 낮아 서로가 보이니 우리 절 담을 2m 높이로 다시 쌓으라 하셨습니다. 꼭 성깔을 부리는 노인네처럼 하루가 다르게 ‘이것 해야 한다, 저것 해야 한다’며 찾아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국에 계신 은사 스님이신 대행 큰스님께 여쭈면 “그렇게 해줘.”라고 하시며 이웃과 화합되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어느 날, 크노프 할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담 옆에 있는 전나무 뿌리가 담을 넘어 자기 정원으로 넘어왔을 것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전나무를 다 베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너무나 황당한 요청에 은사 스님께 전화를 드리니 “응. 이번엔 파보라고 해. 잔뿌리 하나 안 넘어갔을 거니까.”라고 하셨습니다. 

은사 스님의 말씀에 용기가 난 지원장 스님은 할아버지에게 “뿌리가 넘어갔으면 나무를 뽑겠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한번 뿌리가 넘어갔는지 확인해 보아야겠습니다.” 하고 당당히 말씀하셨습니다. 

일흔 가까이 되는 크노프 할아버지는 좋다며 직접 삽을 들고 땅을 팠는데, 정말 잔뿌리 하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일지도 모른다고 고집을 피우며 다시 몇 군데를 파보았으나 거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할아버지는 더 이상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무사히 위기를 넘긴 전나무들을 볼 때마다 마치 감사의 노래를 합창하는 듯합니다. 

1996년 대행 큰스님께서 개원법회를 위해 독일로 오셨을 때 직접 과일 바구니를 만드신 후 지원장 스님에게 옆집 크노프 할머니에게 갖다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심부름하고 나니 옆집 크노프 할머니가 큰스님께 꼭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동네에서도 좋은 이웃으로 교류가 열렸습니다. 이제는 휴가로 한 달씩 집을 비우실 때마다 집 열쇠를 저희에게 맡기십니다. 

몇 년 전 크노프 할아버지가 로터리클럽 회장단 지역모임에 모인 회원들을 절로 초대하여 불교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때 할아버지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독일 로터리클럽 회장단에게 “제 아내가 신실한 기독교 신자임에도 저에게 있어 인생의 최고는 부와 명예였습니다. 로터리클럽 회원들인 여러분도 부와 명예 등 많은 것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여러분들이 가지지 못한 세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 여러분 중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목탁 소리, 종소리를 들려주는 이웃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까? 둘째, 새 이웃이 온 후 빈번했던 도둑이 한 번도 들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보호받은 적이 있나요? 셋째, 정신세계를 충만하게 하는 이웃이 있나요?”라고 말씀하시며 인생에서 가장 좋은 최고의 이웃이 바로 여기라며 저희를 소개하였습니다. 

이제 크노프 할아버지 내외분은 생사의 문턱에서 인생의 가을 끝자락을 아주 편안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독일 노부부의 여행길을 돕는 스님들의 마음을 국적, 문화, 종교를 뛰어넘어 이심전심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전나무와 인연으로 할아버지도 마음의 문을 열고 인종, 종교의 다름을 넘어 지구촌의 한 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거창한 이론이나 논리가 아니라 인간답게 진실하게 살아가면 서로 열림으로 감응하는 조화로운 한마음의 길, 그것이 바로 진정한 불제자의 길인 것 같습니다. 은사 스님께선 어떤 생명 앞에서도 높다 낮다 생각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라 하셨습니다. 이웃과 화합하며 일상생활 그대로 수행임을 보여주는 저희의 모습에 독일 지역사회도 화답하여 카르스트 지역 문화, 종교계의 큰 행사마다 불교 대표로 초대를 합니다.

사람들이 생각이 다를 뿐이지 어찌 진리가 둘이겠는가. …… 서로 이름이 다른 종교라도 진리가 하나인 줄 알면 같은 종교를 믿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불교가 옳다, 기독교가 옳다는 따위의 말은 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내가 맞다고 믿는다면 오히려 겸손해질 터이니 너와 나, 나와 세상, 나와 우주, 나와 삼라만상이 더불어 좋은 게 도이다. 그 도에서는 네 종교 내 종교 따위의 이야기는 한 점 먼지와도 같다고 하겠다.
— 대행 선사

지금 한마음선원 독일지원이 세계적으로 눈 뜨고 귀 열린 사람들이 와서 마음을 연구하는 마음강당 건축 불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전나무는 이야기 속의 한 자락으로 들어갈 겁니다. 이렇게 하나의 뿌리로 불법의 인연을 만들어 준 전나무처럼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서 불연을 이루어낼까요? 

buddhanatur@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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