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군 운문면 호거산(虎踞山)에 위치한 운문사는 1,5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절로, 내가 졸업한 강원이다. 전체 대중은 200명 남짓, 한 반에 40~50명 정도가 4년을 같은 공간에서 침식을 함께하며 소소하게 살다 보니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 반면 간혹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갈등하는 모습들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상대의 그런 모습에 시시비비를 하게 되지만,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연에 동화되며 자신에 대한 고뇌와 사색 그리고 부처님을 향한 지극한 믿음과 정진으로 속진의 업을 조금씩 녹이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법을 배우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임을 체득하여 성장해나가는 곳이 바로 강원이다. 

지금은 미소 지으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는 나의 강원 생활도 당시에는 풀리지 않는 은산철벽 같던 힘듦이 있었다. 그 당시 태산을 혼자 짊어진 듯 세상 모든 것을 뒤흔들 것 같았던 부끄러운 추억 한 자락을 살포시 열어볼까 한다.

4년의 강원 생활 가운데 1년 반의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맞은 기쁜 여름방학의 끝자락. 평상시 강원 생활에 불만이 많았던 나는 강원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많은 이유와 이러한 불만이 나 하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같은 느낌이고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일반화하며, 평상시 인사드리던 어른스님을 찾아뵈었다. 무엇이든 나의 청은 모두 들어주실 것 같은 어른스님이었기에 “그래, 힘들면 안 가도 된다. 잘 선택했다.”라는 말씀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어른스님의 태산 같은 한마디 말씀에 ‘어른스님 말씀이니까……’를 수없이 되뇌며 강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나의 화두는 어른스님이었다. ‘도대체 왜 스님은 이 지옥 같은 곳에 다시 들어가라고 했을까?’ ‘스님이 틀리신 것은 아닐까?’ ‘스님께서 이곳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아닐까?’ ‘그때 바쁘셔서 잘못 말씀하신 것 아닐까?’ 별의별 생각들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루는 이러한 생각들과 함께 한숨을 쉬면서 문밖을 보았다. 천연기념물 제180호인 처진 소나무 반송, 500년 된 은행나무가 불만에 가득 찬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는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일 때여서 반송의 처진 가지도, 은행나무가 파란 잎인 것도 짜증이 났다. 며칠 동안 모든 것들과 치열하게 대치하던 나는 결국 합의를 보았다. ‘그래. 스님께서 보내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 저 은행나무의 잎이 노랗게 될 때까지만, 반송 가지가 처지지 않을 때까지만 있어 보자. 그러다 정 아니면 난 나의 길을 가리라!’

과연 나는 스님께서 다시 그곳으로 보내신 이유를 그해 여름 알았을까? 대답은 NO다. 결국 난 ‘왜!’만 부르짖다 끝끝내 이유를 몰랐다. 그래서 ‘나가리라!’고 마음을 먹을 때마다 늘 은행나무가, 처진 반송이 나의 앞을 막았다. 푸른 잎이 노랗게 물들고 샛노란 은행잎이 흩날리며 쌓이고 또 앙상한 가지가 될 때마다 ‘그래, 그럼 저 앙상한 나무에 파란 잎이 생길 때까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저 푸른 잎이 노랗게 될 때까지 다시!’ ‘반송 가지가 처지지 않고 하늘을 향할 때까지 또다시!’를 외쳤다. 사계가 변화하는 가운데 무수한 반복을 하고 난 후에야 나는 반송이 왜 처져 있는지 그 의미를 알게 되었고, 은행나무만 보고 생각하던 것에서 다양한 종류의 나무, 꽃, 새들이 어울린 아름다운 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한 안목이 생기게 되니 서로 다른 개성과 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이 밉게 보이지 않았다. 

통제되고 엄격한 강원에서의 기도와 정진은 세상을 분별과 알음알이의 잣대로 바라보려는 고착된 습관을 바꾸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어느 곳, 어느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인연(因緣) ‧ 인과(因果)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연기일 뿐임을 여실히 알고, 그 여실함 속에서 분별과 감정으로 사는 삶이 아닌 중도의 삶을 여여하게 이어나가게 하는 것이다. 그해 여름 어른스님은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이후 나는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부처님과 어른스님의 가르침에 가슴 저린 눈물로 부처님 전에 참회하며 졸업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탐진치(貪瞋癡)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부딪히곤 한다. 어떠한 상황이나 대상과의 관계에서 상처받는다는 것은 상대방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나에게 문제가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상대방 때문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철저히 무아(無我)라는 부처님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할 뿐, 가슴으로는 나라는 집착과 상(想)으로 인한 서운함이 감정에 이입되어 스스로 갈등을 초래하는 것이다. 

어떠한 경계에서도 자신이 부처임을 굳게 믿고 끊임없는 기도, 수행, 정진으로 스스로를 탁마해야 함을 나는 강원 4년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부처님과 어른스님의 가르침을 통해 나름대로 수행정진한다고는 하지만, 늘 일상생활에 휩쓸려 화두를 놓치거나 마음에 감정의 파도가 일렁인다. 그러다 문득 마음이 답답하고 ‘나는 안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면 늘 어떠한 변화에도 얽매이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서 도반이 되어준 반송과 은행나무를 마음으로 그려보며 다시 한번 되뇐다. ‘될 때까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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