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경험을 중심으로­

1. 옥스퍼드 대학 및 영국의 불교학 현황

옥스퍼드 대학에는 우리 나라나 일본의 대학과는 달리 불교학과라는 분리된 학과는 없다. 동양학부 중에 인도학과에서 불교공부를 할 수 있다. 인도학과는 두 명의 교수와 한 명의 대학 전임 강사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 전임 강사는 산스크리트 어를 주로 가르치고 있다. 두 명의 교수 중 한 명은 힌두교의 탄트리즘과 불교의 밀교를 가르치고, 나머지 한 명은 팔리 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팔리 불교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는 현재 팔리 성전 협회(Pali Text Society)의 회장으로 팔리 불교의 권위자이기 때문에, 팔리 불교를 전공하고자 하는 이는 이 분의 지도를 적절하게 받을 수 있다. 옥스퍼드 대학은 일년이 세 학기로 구성되어 있다.

본인은 첫해 입학하자마자 2학기 동안 산스크리트 어를 집중적으로 학습했다. 산스크리트 문법을 배우는 것과 동시에 산스크리트 고전들을 강독하도록 훈련받았다. 문법은 바른 독해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강의가 진행될수록 문법보다는 여러 유명한 산스크리트 전적(典籍)을 읽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2학기 동안 배운 분량은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었다. 학기가 끝나자마자 곧장 시험을 보았다.

시험은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 모두 여섯 시간이었다. 오전에는 산스크리트 문장을 영어로 번역하는 시험이었고 오후에는 반대로 영어 문장을 산스크리트 어로 작문하는 것이었다. 원래 이 시험은 학부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시험들 중의 하나이다. 산스크리트 어 시험을 통과한 나는 팔리 어 학습에 집중했다. 수업은 산스크리트 어 학습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팔리 문법과 팔리 경전 강독으로 채워졌다. 팔리 어 학습은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쉽게 진행되었다. 산스크리트 어에 비해 팔리 어 문법이 더 쉬운 까닭도 있었지만, 원래 나의 유학 목적이 팔리 어 경전 해독에 있었기에 팔리 어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있어 가장 흥미롭고 주요한 것이었다.

유학하기 이전 나는 팔리 어 경전 그 자체를 직접 활용하지 못하고 일본 서적을 통해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내가 당면해야 했던 문제는 일본인 학자의 견해가 얼마나 정확한지 나 스스로 판단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문헌의 고증이나 역사에 관한 것은 다분히 객관적이라서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교리 해석이나 경전의 문구를 해석하는 데는 나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보면, 그들이 특정한 문구를 경전에서 인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펼 때 나에게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첫째 인용 문구가 제대로 이해되고 번역되었는지 자신 있게 알 수 없었다. 물론 한역(漢譯) 경전을 인용하고 해석할 때는 나 스스로 한문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산스크리트나 팔리 문헌을 인용할 때는 나는 그들의 번역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 수가 없었다. 둘째, 인용 문구가 적절히 제자리에 인용되어 그 논지를 뒤받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일서(日書)를 읽으면서 느껴야 했던 이러한 문제의식은 나로 하여금 원전(原典) 언어의 학습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였고, 그리고 마침내 유학의 길로 이끌었다.

처음 본격적으로 팔리 어를 배울 때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나의 동료 중 한 명은 스리랑카 출신으로 이십여 년 동안 승려 생활을 했다. 따라서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팔리 경전을 잘 낭독했다. 나는 그에게 《초전법륜경(初轉法輪經)》을 읽어 줄 것을 요청했다. 그가 낭송하는 동안 나는 불타가 정각(正覺)한 후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처음으로 설법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었다.

한역(漢譯) 《아함경(阿含經)》을 읽을 때 느낄 수 없는 분위기와 감정이 팔리 어 경전에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팔리 어가 제일 오래 된 불교 경전 언어라는 지식이 나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팔리 경전이 불타 당신의 육성(肉聲)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학위 논문을 제출하는 날까지 나는 각종 팔리 경전과 주석서를 지도 교수의 지도하에 읽었다. 수업 시간에는 나를 포함해 학생 서너 명이 둘러앉아 돌아가면서 차례대로 경전을 읽고 해석했다. 우리가 읽고 해석하면 지도 교수가 틀린 부분을 바로 잡아 주곤 했다.

나는 박사 학위논문 주제로 《열반경(涅槃經)》과 그 주석서의 불타관(佛陀觀) 및 열반관(涅槃觀)을 잡았다. 유학 이전 한국에서 불교 공부를 할 때부터 왠지 모르게 불타의 마지막 여정을 담고 있는 경전에 관심이 많았다. 불타의 마지막 여정을 담고 있는 한역(漢譯) 《유행경(遊行經)》을 틈틈이 읽었다. 불타의 입멸이라는 사건을 통해 불타의 본질을 규명해 보고 싶었다. 나는 지도 교수와 상의하에 《열반경》 주석서를 번역하기로 했다.

《열반경》은 유명한 경전이기에 몇 차례 번역이 되었지만, 붓다고사가 쓴 《열반경》 주석서는 한 번도 번역되지 않았기에 충분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후기의 불교도들이 어떻게 불타의 입멸을 재해석하는지를 5세기경에 쓰여진 이 주석서를 통해서 보면 무척 흥미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팔리 주석서는 문체나 문법 면에서 경전과 다른 점이 있다. 경전에 보이지 않는 단어들이 있는 것이다.

현재의 팔리-영어 사전(Pali-English Dictionary)은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모든 단어를 싣고 있지는 않다. 설령 사전에 단어가 실려 있다 하더라도 주석서에서 원하는 의미가 결여되곤 했다. 단어가 사전에 나타나지 않을 땐 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곤 했다. 지도 교수의 도움을 자주 받아야 했다. 지도 교수 당신도 확실하지 못할 땐 다른 학자들에게 문의를 해주곤 했다.

대학 규정에는 박사과정에 있는 자는 단순히 배우는 입장의 학생이기보다는 연구원이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할 과목은 없다. 그러나 지도 교수의 요구가 있으면 요구에 응해야 한다. 입학한 지 대략 일 년이 지나면 정식 박사과정에 진급하기 위해 학위 논문 주제를 정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본인의 경우, 캠브리지 대학에서 시험을 치렀다. 구두 시험 끝에 한 시험관이 나에게 조언을 한 가지 했다. “어느 누구의 견해도 그대로 믿지 마라, 설령 너의 지도 교수의 주장조차도.” 옥스퍼드에 돌아와 지도 교수님에게 이 조언을 전하니 지도 교수는 빙그레 웃으면서 “정말 맞는 말이다. 어느 학자도 완벽하지 않다.”라고 동의했다. 박사 과정에 진급하고 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제껏 공부해 온 연구물을 심사 받아야 한다.

박사 과정의 학생으로서 연구를 하고 있음을 확인받는 것이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논문이 완료되어 대학에 제출하면 두 명의 심사위원이 심사하게 된다. 심사에는 자신의 지도 교수는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심사는 매우 객관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친분 등 여타 외적 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본인의 경우, 캠브리지 대학에서 온 팔리 어 문법 전문가와 초기불교의 여러 주제, 특히 여래의 사후 문제에 관한 논문을 다수 발표한 교수가 심사를 했었다. 그리고 본인이 소속한 학과의 대학 전임 강사가 참관했다.

심사 초두에 두 심사관이 칭찬을 해 주었기에 나는 편안하게 끝날 때까지 질의에 응답할 수 있었다. 심사 끝에 논문 출판도 제안받았다. 옥스퍼드 대학의 불교학 교수는 초기불교 및 상좌부(上座部) 불교에는 정통하지만 대승불교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불교학자들을 초빙해서 한 학기 또는 두 학기 강의를 전담시킨다. 본인이 재학할 때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초빙된 교수가 산스크리트 어로 쓰여진 《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과 거기에 상응하는 한역 경전을 함께 대조하면서 2학기 동안 강독했다.

그리고 일본에서 초빙된 교수가 한 학기 동안 대승불교의 불타관에 관해 강의했다. 독일 출신의 율장(律藏) 전공 교수가 초빙되어 한 학기 동안 팔리 율장과 주석서를 강독했다. 미국에서 산스크리트 비문의 전공 교수가 초빙되어 한 학기 동안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의 승려관에 대해 강의했다. 불교 서적은 세 곳의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중앙도서관에 소속되어 있는 인도학 도서관에 거의 주요한 모든 불교 서적이 비치되어 있다. 과거 인도와 스리랑카를 식민지로 경영한 역사 때문에 일찍부터 영국은 많은 불교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해 왔다.

이곳에 소장되어 있는 책은 거의 모두 관외 대출이 되지 않는다. 동양학 연구소 소속의 도서관에 기본적인 주요 불교 자료가 비치되어 있다. 여기에 있는 책은 관외 대출이 가능하다. 본인이 속해 있었던 월퍼슨 칼리지(Wolfson College)도 상당 양의 불교 문헌을 소장하고 있다. 물론 이곳의 도서관에서는 도서 대출은 가능하고 옥스퍼드 이외에 있는 도서 및 논문 주문도 이루어질 수 있다.

 

옥스퍼드에 있는 모든 도서관이 전산화됨으로써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원하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본인이 재학하고 있을 때, 대략 십여 명의 학생이 불교를 공부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의 한국인, 세 명의 영국인, 두 명의 대만 비구니 스님, 한 명의 스리랑카인, 한 명의 일본인 등이었다. 영국 본토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외국인 학생이 유학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적으로 영국 불교학의 한 면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영국에서는 불교를 대학에서 전공하고 나서 전공에 관련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이 옥스퍼드 대학의 인문학은 문헌학과 언어학에 강한 전통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불교 연구도 이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다. 물론 순수한 철학적인 논문도 있지만, 언어와 문헌에 관한 충분한 이해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대학의 거의 모든 교수들은 고전어를 포함해 대여섯 개 외국어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본인의 지도 교수도 10개 남짓의 외국어를 구사한다. 영국의 대학은 일본과 달리 불교학과가 없다.

따라서 대학에서 교수 신분으로 불교를 강의하는 숫자는 영국의 전 대학을 통틀어 몇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역할은 전세계 불교학계에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대학에서 불교 전공 교수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몇 해 전 캠브리지 대학에서 팔리 어와 초기불교를 가르치던 교수가 은퇴한 뒤 후속으로 불교 담당 교수가 채용되지 않았다.

옥스퍼드 대학에서도 지금의 불교 담당 교수가 은퇴하고 나면 같은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대학에서는 산스크리트 어 전공자를 교수로 초빙하는 것이 일차적인 것이지 불교학 진흥에는 제도적으로 관심이 없다. 만약에 불교를 전담하는 교수직을 대학에서 확보하려고 한다면 엄청난 돈이 기부되어야 한다. 불교 전담 교수의 연구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충분한 기금이 필요한 것이다. 일단 불교 전담 교수직이 대학에서 확보되면 대학이 존속하는 한 어떠한 상황에도 불교를 가르치는 교수는 계속해서 채용될 것이다.

설령 불교를 배우려고 하는 학생이 없더라도. 영국의 불교학계는 일본에 비해 소수의 뛰어난 학자에 의해 유지되는 것 같다. 다수의 평범한 학자들보다 특출난 소수의 학자들에 의한 연구 성과가 훨씬 돋보이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국 불교학 협회가 있어 해마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교류를 행하고 있다. 98년 영국 출국 직전 참석했던 학회에서는 독일의 불교 교수와 영국의 불교학자를 한자리에 모셔 놓고 대론을 정면으로 하게끔 했다. 쿠살라(kusala)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에 대한 토론이었다.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선(善)으로 번역했지만, 산스크리트나 팔리 문헌에서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이처럼 유럽의 불교학자는 여러 형태를 통해 학술 교류를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영국의 불교학에서 가장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팔리성전협회이다. 이 협회는 1889년 리즈 데이비스에 의해 창설된 이래 지금까지 팔리 불교 문헌을 간행하고 연구해 오고 있다.

 

팔리 삼장(三藏)은 거의 모두 영역(英譯)해 내었고 지금은 주석서를 하나씩 번역 출판하고 있다.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 팔리 불교 연구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이 협회의 회장은 옥스퍼드 대학의 곰브리치 교수이다. 협회는 서적 출판과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불교도 수는 정확하게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 대다수가 불교의 명상(瞑想) 수행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기독교의 신앙 행위에 식상하고 현대 물질주의에 지친 사람들이 불교의 지혜와 자비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리라. 스리랑카나 태국에서 온 불교도가 런던이나 런던 외곽에 사찰을 만들어 포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른 나라 불교도의 활동보다 두드러진다. 티베트 불교도의 활동도 보인다. 대승불교보다도 팔리 불교의 합리적이고도 현실적인 성격이 영국인에게 더 호소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

2. 동경대와 일본 불교학 현황

동경대 인도철학불교학과(印度哲學佛敎學科)는 일본 불교학을 이끌어 가는 중심이다. 여기에서 숱한 저명한 학자가 배출되었다. 현재 동경대 인도철학불교학과는 네 명의 교수와 몇 명의 시간 강사로 구성되어 있다. 교수들의 전공을 보면 화엄 사상, 일본 불교, 여래장 사상 등 대승불교에 중점이 주어져 있다. 팔리 불교나 초기불교에 관한 전공자가 없다는 게 나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다. 인도문화언어학과(印度文化言語學科)에서 팔리 어나 산스크리트 어를 가르치고 있어 팔리 및 산스크리트 불교 문헌에 관한 연구도 가능한 것 같다.

7∼8 명의 우리 나라 학생이 이 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일본 불교학에 대한 우리 나라 불교학의 의존도를 보여 주는 한 단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옥스퍼드 대학의 도서관만큼 동경대 도서관은 효율적이지 못했다. 일본어의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컴퓨터의 검색 기능은 너무 불편했다. 정보 처리 속도에 뒤진다는 것은 그만큼 학문 연구에 불이익을 가져온다. 내가 떠날 즈음 상당히 개선되었다.

현대 일본 불교학의 시초는 일군의 학자들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으로 유학해서 산스크리트 어나 팔리 어를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서양 학풍을 익히고 자국에 돌아와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시작된다. 명치(明治) 시대의 개방 정책에 적극 호응해 불교도들은 서양식의 불교학 방법을 배움으로써 학문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가지고 불교를 새롭게 접근하게 된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이 유럽에서 유학할 때는 유럽의 불교학 연구가 가장 왕성한 시기였다.

 

불교의 주요 산스크리트 원전과 팔리 원전 및 한문 전적이 영어, 불어, 독일어로 번역되고 활발하게 연구되던 시기였다. 일부 일본 유학생은 막스 뮐러의 동양 고전을 번역하는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문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문 경전의 번역과 소개에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산스크리트 어나 팔리 어 문헌뿐만 아니라 한문 고전에 대한 서구 학자의 엄밀하고 체계적인 연구 방식은 초기 일본 유학생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문헌학적 연구의 중요성을 십분 인식한 결과가 바로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의 간행이다. 현대 불교학의 역사에서 이보다 더 큰 위대한 작업은 없을 것이다.

한문 불교 경전의 최고 결정판으로서 그리고 참고 문헌으로서 전세계의 학자들에게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 나라의 ‘고려대장경’은 창고에서 갇혀 있은 채 관광의 대상으로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불교 문헌학에 대한 한국 학계의 무관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일본 불교학자들은 대정신수대장경을 단지 간행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일본말로 번역하여 일본 불교 신도 및 일반인에게 읽혀지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국역일체경(國譯一切經)’이다. 국역일체경이 오래 전에 이루어져 문어투 및 고어가 많기 때문에 읽기가 불편해 다시 번역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한글대장경’이라 하여 한역(漢譯) 경전을 한글로 오래 전부터 번역해 오고 있지만 아직 완결되지 못한 실정이다.

번역 사업이 전문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불충분한 점이 한두 가지 아니라고 한다. 처음 불교가 중국에 전래될 때 역경 사업은 국가 사업으로 역경원이라는 전문기관이 담당했다. 정확한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나라도 전문 불교 문헌 번역인을 양성해 경전을 현대인에게 쉽게 읽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산스크리트 전적(典籍)도 한역 경전을 참조하면서 번역되어 연구되고 있다. 국역일체경과 대비되는 것으로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이 있다.

이것은 팔리 어 삼장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중국 불교사 초기에 역경이 주요한 사업이었듯이 근현대 일본 불교학도 경전의 일본어 번역사업에 집중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러 경전을 알기 쉬운 현대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지속되고 있다. 이전과 달리 대규모로 기획되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개별적으로 특정 경전을 쉬운 말로 번역하고 자상한 주석을 붙여서 독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초기불교가 역경사업으로 특징지워지고 일본 근대불교학이 원전의 번역과 연구가 시작되는 것과 달리 우리 나라 불교학은 이러한 기초작업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경전 번역이나 문헌학적 불교 연구는 제대로 불교학계에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실정이다. 오히려 학계 외부에서 역경사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나라 불교학은 인물 중심, 사상 연구에 너무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나라 고승의 사상이나 불교, 특히 대승불교의 주요한 교리나 사상 연구에 치우쳐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사상 및 교리 연구도 일본 학자의 연구 성과물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상 중시 풍토는 현 한국 불교학계의 수준에 비추어 보면 몇 가지 간과할 수 없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원전 자료에 대한 정확한 해독――적어도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언어 능력을 의미한다――없이 이루어지는 사상연구는 자칫하면 쉽게 오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원전 자료보다 이차 자료에 근거해 사상을 연구하면 이차 자료가 잘못 이해했을 때는 자연히 따라서 오류를 범하게 마련이다. 이차 자료의 정확성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이러한 함정에 빠질 위험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결코 용이한 것은 아니다. 나는 여기에서 원전 자료 및 언어의 독해 능력 없이는 교리 사상 연구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교 경전 내용 자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먼저 갖추고 거기에 근거해 철학적·사상적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경전에 관한 적절한 지식 없이 바로 철학적 논고에 몰입하는 것은 불교 전반에 관한 깊고 바른 통찰력이 없는 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이차 자료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가설을 세우고 경전을 섭렵하는 것은 자신의 사고의 틀 안에 경전을 끼워 맞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차 자료를 참고하면서 경전 강독에 중점을 두는 것이 바람직한 연구 절차일 것이다. 경전을 충분히 소화하고 난 후에야 연구자는 경전의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토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전에 의거한 논고는 자의적이고도 편협한 이해를 방지해 줄 것이다.

따라서 경전을 적어도 문법적으로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불교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엔 다양한 불교학회와 학술지가 있다. 모든 불교 종립대학은 제각기 자신이 주관하는 불교 학술지를 가지고 있다. 물론 특정 대학에 국한하지 않고 외부 연구자에게도 개방되어 있는 학술지도 있다. 예를 들면 <불교연구(佛敎硏究)>나 <동양의 불교(Eastern Buddhist)>는 그 주요한 예이다.

이들 학술지는 영문(英文) 논문들을 선호하고 있다. 일본의 다른 여타 분야와 마찬가지로 불교학계도 국제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사실 일본 학자들이 낸 훌륭한 불교 서적이나 논문들은 대개 영역되어 서양인에게 읽히도록 하고 있다. 일본 최대의 불교학회는 인도학불교학회(印度學佛敎學會)이다. 이 학회는 매년 9월 초순에 양일간 개최된다. 대략 250명이 이틀 동안 발표하기 때문에, 한 발표자에게 15분의 발표 시간과 5분의 질의 응답 시간이 주어진다.

따라서 충분히 깊이 있는 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단지 다양한 새로운 연구 성과를 홍보한다는 측면에 더 의의가 있는 것 같다. 거의 모든 일본의 불교학자들이 모인다는 점에서 전국 규모의 학회이다. 우리 나라도 이러한 전국 규모의 불교학 대회를 매년 개최한다면 우리 나라 불교학의 진흥과 위상을 진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일본에는 불교학은 있지만 불교는 없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학문으로서의 불교는 존속하지만 참된 의미에서의 실천 수행하는 불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반 서점에 가 보면 불교 교양서적은 물론이고 전문서적까지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대학들이 불교학 교수들을 확보해 두고 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각종 불교 종단이 자신의 종립대학을 갖고 있고, 국립대학이나 일반 사립 대학에도 불교학과 및 관련 학과가 있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불교학은 흥성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의 불교 신도는 통계에 의하면 일본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절반은 신도(神道) 신자라고 한다. 신도가 불교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아 매우 밀접하고 근사해, 일본인은 불교와 신도를 확연히 구분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불교 인구 및 유사 불교 인구는 일본 전체 인구를 거의 총망라하고 있다고 말해도 크게 그릇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신도라고 할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의문스럽다. 일부 신흥 불교교단을 제외하고는 기존의 불교 사찰은 장례(葬禮) 불교에서 지칭되듯이 신도들의 조상묘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선조의 묘가 사찰에 모셔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신앙심과는 관계없이 절의 행사에 따라 사찰을 찾는 것이다. 부처님을 예배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조상묘에 참배하러 절에 가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주요 사찰은 거의 과거의 유산물로 관광의 대상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 같다. 《법화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창가학회(創價學會)와 《열반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진여원(眞如苑)를 비롯한 신흥 불교교단에서 일본 불교도의 생기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일본 불교학계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적어도 양적으로 흥성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는 불교학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동경대를 위시한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많은 불교대학들이 어려움을 직면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불교와 불교학이 현대의 젊은이에게 제대로 다가가지 못하고 외면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불교학 현실과 미래와도 무관하지 않다. 일본 불교학은 한자(漢字) 불교 문헌이나 티베트 불교 문헌에 탁월한 연구 업적을 보이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산스크리트 불교 문헌이나 팔리 불교 연구에는 약한 점이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서양의 유명한 학자들을 초빙하기도 하고 연구 성과물을 활용하고 있다. 본인이 동경대에 있을 때, 독일의 저명한 학자가 대학에서 불교에 있어 육식과 채식에 관해 강연을 했다. 일본의 이름난 거의 모든 불교학자가 참석했다.

단적으로 지금도 서구의 불교학에 대한 의존도를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일본 불교학은 다소 권위 지향적이고 비판적인 의견 교환이 부족하다. 어떤 큰 학자가 어떤 문제에 대해 어떤 학설을 내리면 다른 연구자들은 거의 모두 그의 학설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새로운 학설의 주장이나 의견 제시는 무척 힘든 분위기인 것 같다. 요컨대 학문의 장에서 논쟁이 없는 것 같다.

설령 있더라도 너무나 완곡하고 조용해서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 전체 문화의 영향인 것 같다. 서양 학풍에서는 토론이 매우 중시되고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토론에 논리성과 개방성이 강조된다. 어떤 큰 학자가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여겨지는 일은 없다. 물론 그의 학설은 존중되겠지만, 새로운 학설이 나와 반박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어떤 특정 주제를 두고 학자들 간의 논쟁은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토론 분위기는 불교의 근본 정신과도 상응한다고 할 수 있겠다.

 

불타는 어떠한 권위에 의해 진리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불교 교리가 경직되게 해석되거나 편협되게 이해되는 것을 미리 막아준다고 본다. 서양의 불교학자들은 경전에 근거해 치밀하게 그리고 깊게 주제를 논의하는 데 비해 일본 불교학자들은 주제에 관련된 경전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 정리함으로써 넓은 시야를 보여 준다. 서양인이 특정 문헌이나 주제를 세부적으로 깊게 논의하는 데 비해 일본인은 주제와 연관된 문헌을 체계적으로 보여 주지만 심도 있는 논의는 충분하지 못한 것 같다.

자료를 정리하고 연구한 성과물은 그 분야에 정통하지 못한 학자나 입문자에 매우 유용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주제에 대한 자기 나름의 통찰력이나 이해력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마련이다. 서양의 학자들은 자신의 견해와 입장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다. 불교의 어떤 주제를 자기 나름대로 충분히 이해하고 소화한 모습이 보인다. 자기 목소리가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를 가진 학자와 뚜렷하게 구분이 된다.

따라서 토론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발전시키거나 수정할 수 있다. 일본의 불교학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하지 않고 논쟁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원만한 인간 관계를 더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서양의 불교 서적은 불교에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으면 그 주된 요지는 파악할 수 있지만, 일본 불교 서적은 전문 지식이 없으면 접근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일반인에게 불교는 매우 난해해 고급 지식인에게나 적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된 경위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역 경전과 고대 중국의 한자 문화권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서양인 학자는 불교를 연구할 때 불교 용어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리라고 생각된다. 불교 문화는 그들의 문화와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스스로 이해해야만 한다. 영어 문자 문화는 산스크리트 어나 팔리 어나 한자 문화와는 전혀 다르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에 자신의 언어와 문화로 소화한다는 것은 집중적인 주의와 사려가 요구된다.

이질적인 문화를 접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산스크리트 불교 경전을 한역하는 일에 종사했던 사람들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일본 불교는 오래 전부터 한문 불교 문헌을 이용해 왔고 일반인도 한문을 일상 생활에서 사용해 왔기 때문에 불교 한자 용어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다시 재번역하는 번거로움 없이 사용해 온 것이다. 바로 여기에 한자 문화권에 살고 있는 불교학자가 빠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서양인에 비해 우리는 재차 재삼 불교 용어를 재해석하는 일없이 일상 언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 용어가 일상의 언어로 되어 버리고 사상적인 내용은 다분히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예를 들면, 지혜이다. 한자인 지혜(智慧)나 그에 상응하는 산스크리트 어를 영어로 이해하거나 번역할 때 서양인은 그 의미를 되새기고 되새기면서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만 한다.

그에 비해, 한자 문화에 익숙해 있는 우리는 지혜라는 단어를 일상 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어 이 단어에 대해 서양인만큼 충분한 주의를 주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불교 한문 전적을 다루는 한자 사용인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함정을 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영어로 자신의 이해를 옮겨 보는 것이다.

 

3. 결어:경전 중심의 불교학

불교학이란 불교 즉 불타의 가르침을 학문의 대상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불타의 근본 정신을 알기 위해서는 불타의 말씀을 연구해야 할 것이고, 불타의 말씀을 배운다는 것은 불교 경전의 연구인 것이다. 불타의 가르침이 전해져 내려오는 ‘경전’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서는 불교학의 토대는 사상누각과 같다.

한국의 불교학이 좀더 내실 있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전 연구를 중점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최초기 경전인 팔리 경전은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며 한역 《아함경》의 번역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해 재번역이 요청된다. 대승경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요컨대 체계적으로 경전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불타의 말씀을 되새기며, 경전이 현대인을 위해 어떻게 번역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자.

한 제자가 불타에게 건의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심오하고 고상하오니 일반인이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지식인의 언어인 산스크리트 어로 중생을 가르치시지요.” 불타는 대답했다. “나의 가르침은 각각의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이해될 수 있는 그들의 말로 가르쳐야 한다.” 불타의 말씀, 즉 경전은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번역 연구되어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 영국을 위시한 해외의 불교학의 역사와 현황에 관한 자료가 몇 해 전 한국에서 발표되었고, 일본 불교학의 역사와 현황을 정리한 단행본이 출판되었다. 따라서 두 나라의 불교학 역사를 좀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분은 그 자료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본인의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두 나라의 불교학 사정을 살펴보면서 한국 불교학의 현실과 미래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무엇인지를 적절한 곳에 언급해 보고자 한다. 필자는 1993년 7월부터 5년간 옥스퍼드 대학 박사과정에서 초기불교의 《열반경(涅槃經)》과 그 주석서를 중심으로 불타관과 열반관을 연구하였다.

1998년 9월부터 1년간 동경대학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대승불교의 열반경을 중심으로 불타관에 대해서 연구하였다. 옥스퍼드 대학과 동경대학에서의 본인의 유학 경험을 근간으로 이 글을 작성하는 것이기에 다소 주관적이고 치우친 면이 있으리라 사료된다. 독자 제위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끝>

안양규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동국대 불교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영국 옥스퍼드 대학 철학박사.일본 동경대학 연구원 역임.현재 동국대 강사. 논문으로 <대반열반경과 긔 주석서에 보이는 불타관-붓다고사의 열반경 주석서 번역과 아울러>,역서로 <부처님의 생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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