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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티 한 잔 / 유연
[84호] 2020년 12월 01일 (화) 유연 세상과함께 이사장

아주 오래전 북인도 우타라카쉬에서 좀 더 들어가 작은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을 지낸 적이 있었다. 한 달 방값과 식비 전액이 100달러 정도로 기억된다. 하루 한 끼와 오후에는 밀크티로 저녁을 대신했다. 히말라야 산기슭의 마을 공기는 청량하고 사람들은 순박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머리 깎은 동양의 젊은 비구니인 나를 끔찍이 좋아했다. 승려인 줄도 모르는 그녀는 나의 좌선을 하는 모습을 본 후로는 묘한 인상을 받았는지 특별히 힌두교 사두의 존칭인 ‘스와미지’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싫지 않아서 부르면 대답했다.

강고트리에서 내려오는 강의 물은 시원하고 우렁찼다. 밤이면 재스민 향기가 내 방으로 들어오고 희미한 전기불빛이 마을 집에 하나둘 켜지면, 양몰이 소년이 양 떼와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아침 일찍이 마을을 한 바퀴 돌 때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한적한 시골에 외국인 소년이 머물고 있다고 주인집에서 소문을 낸 듯하다. 머리를 깎은 내 모습이 젊은 소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마을 끝집에 가니 할아버지 한 분이 밀크티를 한 잔 들고 나에게 권하기에 받아 마셨는데 돈을 요구했다. 빈손으로 왔다고 하니 다음날 가져오란다. 낯선 땅 히말라야 기슭에서 외상을 진 셈이다. 

다음날 포행길에 10루피를 들고 끝집을 찾아가니 어린 소년이 학교를 가는지 뛰어나왔다. 외상값을 주니 빙그레 웃더니 들어오란다. 급히 나뭇가지에 불을 지피고 시커먼 냄비를 올려놓고 우유와 찻잎을 잽싸게 넣고 설탕 두 숟갈로 마무리해서, 밀크티 한 잔을 만들어 주었다. 10루피면 석 잔 값이라며 거스름돈 대신 내일도 꼭 오라고 한다. 어제는 외상이고 오늘은 내일 마실 것까지 낸 것이다. 

4km 정도를 늘 걷다 보면 천수답 사이로 이름 모를 야생화가 산들거리고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의 맑은 소리와 새벽이면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깬다. 4대성지나 번잡한 관광지를 벗어나 요가도 하고 정진도 하면서 지내는 것을 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권한다. 읍내쯤 되는 곳에 장을 보러 가는데 한 소년이 멋쩍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밀크티 집 손주가 나를 알아본 것이다. 긴 속눈썹에 까만 눈동자의 인도 미소년은 눈앞의 그림 같았다. 토마토, 우유, 식빵을 사서 소년에게 주면서 할아버지와 함께  먹으라고 했다. 부끄러워하면서 받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매일 오전이면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을 두 시간 정도 하고 내 방으로 오면, 주인장이 오렌지. 짜파티나 우유를 내 방에 갖다 놓았다. 그러지 말라고 하면 ‘도네이션!’이라는 말도 있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살짝 지축이 흔들리더니 다음날 지진이 났다. 침대까지 움직이고 유리창도 금이 갔다. 처음 겪는 일이라 밖을 나오니 희미한 불빛에 주인집 방에는 저녁기도를 하는지 힌두교 챈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몹시 두려운 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주인장에게 물으니 간혹 지진이 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면서 금이 간 창문에 파란 테이프를 다닥다닥 붙여놓았다. 
오후에 산책길 끝집을 가보니 할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밤 지진에 길가에서 끓여주던 밀크티 도구인 유리컵 두 개가 깨졌다고 했다. 가장 귀한 것인데 흙집 한편이 무너지는 바람에 손실을 입은 것이다. 

집을 살펴보니 기막혔다. 무슨 이유로 어린 손자하고 사는지 사연은 모르지만,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지푸라기가 깔린 침구에는 긴 수건 두 장과 냄비 하나 그릇 몇 개가 고작인 살림이었다. 나에게 밀크티를 팔아서 손주 노트와 연필을 샀다는 것이다. 참 영리한 인도의 할배였다. 내가 걷는 시간에 기다렸다가 밀크티를 판 것이다. 손님은  오직 한 사람 나였다. 그나마 유리컵이 깨져서 스테인리스 잔에 따끈한 밀크티를 마시면서 찡한 아픔이 밀려왔다. 밀집된 소나무들 사이로 바람이 불 때면 솔향이 마을에 가득해진다. 그날 밤 지진으로 유리컵만 깨진 게 아니라 설탕도 엎어져 모래에 뒤섞인 탓에 그날 밀크티는 달콤하지 않았다. 

다음날 설탕 두 포대, 다르질링 티, 유리컵 3개, 우유를 사서 할아버지 집을 방문했다. 마침 일요일이라 손주도 있었다. 고마워 어쩔 줄 모르는 할아버지와 손주는 나뭇가지를 모아 급히 불을 지피고 밀크티를 만들었다. 셋이 유리잔에 따끈한 밀크티에 설탕도 듬뿍 넣어 마셨다. 말없이 방긋거리며 마시는 인도 짜이티가 우리를 참 행복하게 했다. 

전생에 그들은 내 가족이나 친척이나 동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달간 나는 오후에 그 할배 찻집에서 유일한 손님이 되어 말없이 짜이 한 잔을 마셨다. 이틀 후면 나는 이곳을 떠나 리쉬케시로 간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할배의 깊게 파인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내일은 올 수가 없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고, 순간 나도 가슴이 아렸다.

“가는 곳마다 정 들여놓고 이별이 잦아서 나는 못 살겠네!” 우리나라 민요 구절이 생각났다. 어쩌면 싫증을 잘 내는 내가 이 낯설고 외로운 땅에 짐을 풀고 잘 있었던 것은 밀크집 주인 할배 덕분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우타라카쉬에 가서 버스표도 예매하고 주인아줌마에게 줄 샴푸를 사서 오니 내 방 앞에 할배와 손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다는 것이다. 밀크티를 끓여 왔는데 다 식었다면서 한 잔을 내게 주면서 무릎을 꿇고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나는 놀라서 일어나라고 손을 잡았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내가 수행자라고 수다를 떤 것이다. 나는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사주었다. 양고기가 든 만둣국을 시켜주었더니 맛있게 먹었다.

내가 좀 넉넉했으면 몇백 달러를 줬을 텐데 돈이 없어서 100달러를 루피로 환전해서 학비에 보태라고 주었다. 식당을 나올 땐 이미 어둑어둑해졌다. 가게에 들어가 작은 전구를 사서 주고 조심히 들어가라고 손을 흔들어주고 게스트하우스에 오니, 주인장이 재스민 꽃잎을 잔뜩 따서 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다음날 오전 8시에 버스를 타려고 가니 멀리서 손주가 부끄러운지 가까이 오지 못하고 서 있었다. 차가 서서히 움직이니 소년도 내 모습을 더 보려고 움직였다. 내가 손을 흔드니 소년도 차가 멀어질 때까지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아, 25년이 넘은 이야기이다. 나는 간혹 밀크티를 만들어 마신다. 그럴 때는 나의 혼이 북인도 그 마을로 날아가곤 한다. 키가 크고 마른 할아버지와 까만 눈의 작은 소년이  나를 바라보면서 부끄러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천명에 이르니 지난날 여행길에 만난 정다운 일들이 그리워진다.

가을 감나무 잎들이 마당에 떨어져 날리면 무상함이 무섭게 가슴을 파고든다. 얼마 남았는지 모르지만 남은 인생을 잘 살아야지. 잘 관조하면서 지내야지. 나에게 요즘 말이 많아졌다.

mettar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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