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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넘어서기 / 이혜숙
[84호] 2020년 12월 01일 (화) 이혜숙 본지 편집위원
   
이혜숙
본지 편집위원

2020년 연초부터 온 세상이 코로나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자연히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그간 사방팔방에서 알려주는 정보에 의하면 세계사의 오래전부터 다양한 전염병이 여러 차례 사람들을 혹독한 죽음으로 내몰았다는데, 그 역사를 거의 모른 채 살아왔다. 비교적 최근이라 할 2003년도의 사스 · 2009년도의 신종플루나 조류독감(AI) · 2015년도의 메르스 때까지도 바이러스니 전염병이니 하는 소식에 대해서 남의 일처럼 잠깐 건성으로 들었던 것 같다. 한편에서 일찍부터 이 분야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팬데믹(pandemic)을 예측하였고, 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왔다는 사실도 이번에서야 자세히 듣게 되었다. 도대체 우리는 왜 그렇게 무지하고도 태평했던가.

이처럼 근시안적(近視眼的)인 생애에서 접한 코로나 팬데믹은 예상 밖의 황당한 사태인 듯하지만, 실로 오래전부터 유사한 위기가 인간사에 있어 왔던 일이고,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일이 지금 벌어졌을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진화학자 장대익은 교육 측면에서 지금의 팬데믹을 “기가 막힌 교과서”라고 말하기도 했다(JTBC, 2020.08.25일 자 방영). 사계(斯界)의 전문가들이 여러 관점으로 코로나 대유행의 경과를 해석하는데 자세히 들어보면, 결국 연기법에서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왈가왈부 · 일희일비하는 뉴스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모쪼록 우리는 작금의 상황을 온전한 맥락에서 통찰해야겠다. 우선은 사태를 깊은 안목으로 침착하고도 바르게 보고[正見], 당장의 불편함과 불안감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기존의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하는 대처(對處) 수행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불자들에게는 삶의 온갖 ‘괴로움’이라는 명제가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다. 평상시에 우리가 특별한 곤란 없이 ‘살 만하다’ 싶은 때조차도, 불교는 우리에게 삶의 ‘괴로움’을 직시하라고 가르쳐 왔다. 그 괴로움[苦]을 통찰하는 데서 불교가 시작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괴로움인가. 아마도 청춘들은 활기와 포부를 가지고 즐거운 인생을 설계하려는 마당에 괴로움이 뭔 말인가 싶을 테고, 심지어 중년 이상의 불자들이라도 괴로움의 진리[苦聖諦]라는 근본교의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공(功)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 내 탓인지 네 탓인지 가릴 틈 없이, 남녀노소 · 지위고하 · 빈부 차이에도 상관없이, 모두들 괴로움의 증거를 목격하고 있다. 삶은 본래 이와 같이 괴로움이다. 

매일매일 익숙하게 돌아가던 각자의 생활방식과 생활반경에 커다란 변동이 생겨서 상당히 불편해졌고, 무엇보다도 코로나 감염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커졌다. 은연중에 늘 유지되리라 여겼던 일상생활의 안정에 위협이 생기고, 전혀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놓인 것 자체, 바로 이것이 무상[諸行無常]의 괴로움이 아닌가. 모두 수개월 동안 계속되는 일상의 통제와 긴장으로 인한 심리적 괴로움이 클 것이다. 전염병이 돌 때마다 정신과 질환자가 늘어났다는 통계치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전반적으로 겪는 우울감과 무력감을 부인할 수가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불완전한 주체성 즉 무아[諸法無我]의 괴로움이 아닌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예측할 수 없고 자기의 뜻대로 조정할 수 없는 세상살이로 말미암아 불안하고 두려운 정서는, 누구나 알다시피 코로나 팬데믹과 상관없이도 흔히 겪어온 바이다. 다만, 우리가 때때로 얻은 안락(安樂)에 기대어 잊어버리거나 덮어두고 싶었던 괴로움이라는 것이다. 불교는 이처럼 사람들이 평소 회피하고 싶은 두려움 · 괴로움의 연고(緣故)를 냉철하게 직시하도록, 제대로 지켜보고 바르게 생각하라[正見 · 正思惟]고 가르쳐 왔다. 호흡을 가다듬고 내심 지켜보면, 코로나 감염 등등에 대한 걱정이 시도 때도 없이 거친 파도처럼 일어난다. 그러니 지금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3분씩이라도 올바르게 집중하며 ‘지금 여기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다[正定 · 正念].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오직 현재이다. 혹시 불행히도 지금 코로나를 앓고 있는 사람은 아픈 만큼만 염려하고, 다행히도 건재한 사람은 건재한 만큼 안심하고, 행여나 지레 과도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우리의 현존(現存)을 놓치지 말자는 뜻이다.

팬데믹으로 인한 걱정을 일상적인 통찰명상으로 해소하자고 제안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국제적인 교역의 중지를 비롯해서 소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는 동안에 완전히 위축된 경제활동과 재정문제의 해소는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라도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이 생산과 분배에 있다는 점 역시 실로 오래된 이치다. 설상가상 코로나 때문에, 경제지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동네에서 평소 이용하던 상업지역을 돌아보면 바로 곤궁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갑자기 늘어난 비대면[untact]의 거래에서 수익을 더 얻게 된 분야도 있다지만, 훨씬 광범위한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 등에서 발생한 재정결손은 다 같이 풀어야 할 중요과제가 되었다. 사회공동체 안에서 구성원 간의 소득 불균형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면, 결국 빈부(貧富) 관계자들이 서로 적대적이게 되고 생존을 위해서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연기법으로 경제를 보면, 그 참여자들이 알아야 할 것이 더욱 명확해진다. 소비자가 있어서 생산자가 있고, 생산자가 있어서 소비자가 있다. 소비자가 사라지면 생산자도 사라지고, 생산자가 사라지면 소비자도 사라진다. 그러므로 생산자를 위해서 당연히 소비자를 살려야 하고, 소비자를 위해서 당연히 생산자를 살려야 한다. 노약자와 청소년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산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다. 

까닭에 지금처럼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더욱 절실히 상생과 공존을 위한 경제활동의 지혜가 필요하다. 특히 불자 수행의 필수과목인 올바른 생업 활동[正命]이야말로 지금 최선을 다해서 실천해야 할 때가 아닌가. 혹시 사업장의 사용자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근로자의 고용유지와 소득보전에 힘쓰고, 혹시 근로자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성실하게 생산성 증대에 힘쓰고, 그처럼 상의상관(相依相關)하는 법을 알고서 고용 관계를 지킨다면 진정 올바른 경제가 될 것이다. 또, 단순한 소비자로서 우리의 선택들도, 마치 보시하는 마음처럼, 공동체적 관계망[Indra net]을 통찰하는 소비가 되어야 할 때이다.
 
전문가들의 진단을 종합해보면, 코로나 팬데믹은 인간 본위 사고방식과 소비 본위 물질문명이 오랫동안 서로 얽혀서 발전해온 인과법의 현현(顯現)일 뿐이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만물이 상호연(相互緣)하여 세상만사를 형성하는 이치에 무지하고[痴], 오직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경쟁하고 서로 원망하며[瞋], 자본의 소유와 소비에 맹목이 되어서 탐닉하고[貪], 그 결과 생태체계 내 공존공영의 기틀이 훼손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돌이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사회적 거리 두기’가 아니라 그저 물리적 거리 두기다. 사회적으로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워진 마음의 거리에서 ‘나-이웃-국가사회-지구촌 생태환경’의 상호관계를 성찰하고, 구체적으로 반연(絆緣)들을 돌보는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본래 불교는 단단히 일렀으나 불자들조차도 종종 건성으로 듣고 넘긴 세간사 괴로움의 연기법을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다시 학습하고 그 괴로움에 대처하는 수행으로 큰 걸음 나아가기를 바란다. 


2020년 12월
이혜숙(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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