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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명상음악과 불교 그 친연성 / 보경
[83호] 2020년 09월 01일 (화) 보경 스님

1. 명상음악의 범위

명상음악은 폭이 넓다. 수행을 직접적으로 돕는 음악에서 넓게는 명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음악까지 명상음악으로 분류된다. 더구나 조용하고 차분히 가라앉는 음악까지 포함하면 명상음악의 범주는 대단히 넓어진다. 클래식 바이올린 소품인 〈타이스의 명상곡〉도 명상음악이라고 한다면, 마스카니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은 물론 드르들라의 〈추상〉까지 명상음악이 된다. 이를 오류라 할 수는 없다. 명상이라는 것 자체가 그만큼 모호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 사회에서는 명상적인 음악까지 명상음악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오쇼의 〈파초의 연못〉 같은 경우는 오쇼 아쉬람에서 만들어진 일반적인 음악이다. 그러나 오쇼와 명상과의 불가분한 관계로 이 음악은 명상음악으로 분류된다.

인도 푸나의 오쇼 아쉬람의 명상 프로그램에서는 다양한 음악을 사용한다. 티베탄 펄싱 힐링(Tibetan pulsing healing) 프로그램에서는 지구의 공전, 자전 등의 자연에너지에 맞추어 아쉬람 내부에서 주기적으로 특수 제작하는 음악이 사용된다. 특히 기억 속에 남아 부정적 작용을 하는 과거의 데이터들을 지우는 ‘미스틱로즈 명상(MysticRose Mediation)’에서는 존 레넌의 〈이매진〉, 로드 스튜어드의 〈세일링〉,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등 널리 알려진 곡들을 들려주는데, 이는 음악이 지닌 연상작용을 통해 이런 음악을 듣던 당시의 기억을 불러내 부정적인 과거를 지워버리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흔히 ‘울고 웃는 명상’으로 알려진 이 명상에서 울지 못하던 수행자들이 이들 음악이 나오면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이 경우에는 오래전에 듣던 팝송이 명상음악으로 훌륭한 기능을 한다.

어쨌든 편의상 만들어진 ‘명상음악’이라는 분류가 간혹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뉴에이지 음악’과 동의어로 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이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뉴에이지 음악을 명상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명상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은 ‘아! 명상음악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속단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명상음악이 인기를 얻자 국내의 레코드사 기획팀이 몇몇 음악인들에게 의뢰해 만든 그저 ‘조용한 음악’이 명상음악이라는 타이틀로 시장에 나온 경우도 있다.

   
 

명상음악에는 직접적으로 명상수행에 사용하는 음악과 힐링 및 테라피 음악, 릴렉스 음악, 자연의 소리를 활용한 음악, 동식물을 위한 음악, 다양한 종교음악, 찬트(chant, 聖歌), 만트라(mantra, 眞言)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수행자들이 명상에 활용할 수 있는 음악을 포함한다면 그 폭은 대단히 넓어진다. 위에서 언급한 오쇼의 〈파초의 연못〉도 많은 사람이 명상에 활용한다. 그 음악이 지닌 맑은 기운이 수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한 예로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명상 및 힐링 음악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 외에 뉴에이지 음악 가운데 많은 부분을 명상과 연관 지을 수 있다.

파도 소리, 시냇물 소리, 빗소리, 바람 소리, 새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도시인들에게 공급하는 효과음악도 명상음악의 한 분야로 자리한다. 도시 생활에 찌든 사람들에게 자연의 싱그러움을 전달한다는 기능이 있다. 미국의 한 프로덕션은 자연의 소리를 고감도로 녹음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숲속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도시에서 수련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기존 음악이 갖는 파동 가운데 명상성이 있는 음악은 많다. 클래식 음악에서 특히 좋은 작품을 찾을 수 있다. 베토벤 〈전원교향곡〉 〈교향곡 7번〉 2악장, 〈후기 현악 4중주〉 전곡과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과 〈피아노 협주곡〉, 시벨리우스 〈투오넬라의 백조〉, 헨델 〈라르고〉, 홀스트 〈행성〉, 본 윌리엄스 〈바다교향곡〉, 오케겜을 비롯한 르네상스 작곡가들의 교회음악, 드보르자크 〈어머님이 가르쳐주신 노래〉 등의 클래식 작품들은 명상성이 두드러진다. 아울러 재즈나 가요 등 여타 대중음악에서도 명상성을 찾을 수 있다. 명상에 대한 기본 콘셉트가 있고 약간의 음악적 바탕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악곡에서도 명상적 파동을 쉽게 감지해낼 수 있다.

우리 전통음악인 국악(國樂)에도 강한 명상성이 흐른다. 정악(正樂)과 산조(散調)는 물론 농악(農樂)에서조차 트랜스 효과를 통한 엑스터시를 느낄 수 있다. 모든 산조 작품은 그 자체로 명상이다. 시나위도 명상적이다. 그 유동적 즉흥성은 연주자들이 음악을 통해 삼매(三昧)에 이르렀을 때만 가능한 음악이다.

뉴에이지 음악 역시 많은 작품이 자연에 대한 관조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당연히 명상적 색채를 띤다. 그러나 한 시대의 음악사조로서 너무나 많은 아티스트가 다양한 음악을 양산해낸 관계로 뉴에이지 음악 전부를 명상음악으로 보는 것은 약간의 위험성이 있다.

뉴에이지 계열의 음악가 가운데는 뛰어난 명상적 콘셉트와 음악적 기량을 지닌 음악가들이 많다. 조지 윈스턴(피아노), 장미셸 자르(전자음악), 반젤리스(전자음악), 야니(피아노), 데이빗 란츠(피아노) 등이 그들이다. 엔야(피아노)의 음악이 선호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 음악이 많이 활용된다. 그의 피아노 음악은 군더더기가 없는 명료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어서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타로의 〈실크로드〉와 소지로의 〈대황하〉는 동양의 신비와 애수 그리고 도도한 장강(長江)의 흐름 같은 평온함 때문에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다.

비교적 단순하고 명료한 선율과 정결한 음악적 색채들이 그런 사랑의 요인이다.

이미 오래전에 작곡된 파헬벨의 〈캐논〉과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등이 뉴에이지의 원조 격인 작품으로 대접받는 것도 단순함과 명료성 때문이다.

뉴에이지 음악은 개인들의 작업에 의한 음악인 만큼 음반 제작에서도 독립 음반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미국의 윈댐힐, 스프링힐뮤직, 독일의 타오 뮤직, 덴마크의 피닉스 등이 좋은 음반을 많이 출반했는데, 모두 1980년대에는 시작이 미미했던 음반사들이지만 지금은 상당히 성장했다.

한편 시장성을 확인한 메이저 음반사들도 뉴에이지 음악 시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워너뮤직, 유니버설 등도 이 계통의 좋은 음원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인도 음악은 예술성의 추구나 여흥을 위한 음악이 아니라 신에게 바치는 음악, 즉 본질적으로 종교음악이다. 라가(Raga, 혹은 Raag)는 자연에너지 파동에 튜닝하는 음악으로 아침에 듣는 음악, 저녁 음악, 여름 음악, 장마철 음악 등 자연에너지 변환에 따라 그에 조화된 파장을 음악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각 시간대와 계절 등 자연의 변화에 따라 사용되는 수많은 음계(스케일)가 있다. 각 음계는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는데 이를 ‘라사(Rasa)’라고 한다. 베다 시대(기원전 3,000년)에 이미 그 소리의 길(스케일)이 구축되었다. 수많은 라가가 엄격한 스케일에 따라 연주된다. 형식으로는 느린 알라프(alap)와 빠른 조르(jor)로 구성되는데, 느린 다스름(마음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시작되어 서서히 빠른 템포로 전이되는 우리 산조 형식과도 맥이 통한다.

파키스탄,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회교국의 민속음악도 강한 명상성이 있다. 특히 터키의 수피 음악은 에너지를 모아 상승시키는 효과가 두드러진다. 그들의 음악은 느리게 시작되어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외형을 보이는데, 대부분이 격렬한 동작으로 전이되는 춤곡이다.

국내 제작 음반으로는 김도향이 제작한 명상음악, 태교음악, 테라피뮤직 등이 사랑받는 아이템이며, 김영동의 선(禪) 시리즈와 많은 다악(茶樂) 작품들이 있다.

이 외에도 엄청난 분량의 명상음악이 유통되고 있으나 그 다양성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지식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세계라고 하여 신비롭게만 여기는 것도 위험한 자세다. 그만큼 오해의 소지도 많다. 여하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것이 바로 명상음악이다.

2. 나왕 케촉의 명상음악

나왕 케촉은 한때 출가를 했고 현재는 환속을 하고 명상음악을 연주하는 명상음악가이다. 나왕 케촉은 음악 스승도 없고 작곡법을 공부한 일도 없이, 독학으로 이룬 세계적인 명상음악가이다. 그는 앉거나 서서 피리만 잡으면 자발적으로 입이 바람에 알맞게 불어 넣도록 숨이 골라지고 손가락이 스스로 움직여 음악이 이루어져서 그 소리가 허공을 맴돌아 흘러간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선지 위에 작곡하거나 악보를 보면서 연주한 일이 없으며, 이미 연주한 곡을 다시 연주할 때는 마음만 정하면 자연적으로 재현이 된다고 한다. 또한 세계적인 인디언 플루트 연주자인 카를로스 나카이(R. Carlos Nakai)와의 협연도 그가 자신만큼 깊은 영감을 지닌 음악가여서 그냥 물 흐르듯이 연주를 했다고 한다. 이는 재능의 발로라기보다는 영혼의 교감이라고 생각되며, 이들은 영혼의 소리를 내는 음악가들이다.

   
 

미국의 브루클린대학 석좌교수이자 선(禪) 수행을 한 시인 알랜 긴스버그(Allen Ginsberg)가 나왕 케촉의 음악에 대하여 “나왕의 재능은 참으로 희귀하다. 그의 창의성은 예전부터 티베트에만 유일하게 전해지는 전통인 명상과 마음 수련의 결과로, 시와 노래 그리고 음악에서 자기도 모르게 나타나는 자발적 표현에 의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가 고대의 전통적 명상수행에 음악의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그의 음악은 선적(禪的)이어서 부처님의 대기설법처럼 청중의 근기에 알맞게 자발적으로 연주되기 때문에 청중들이 그 음악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어 어디서나 최고의 찬사를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음악을 전공한 필자가 나왕 케촉이 처음 내한해서 연주했을 때 공연이 끝난 뒤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은 음악을 공부한 적이 없다고 해서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필자가 보기에 나왕 케촉은 금생에는 음악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윤회사상에 의하면 나왕 케촉은 전생에 음악을 공부해서 원력을 세워서 현재 명상음악가로 활동하면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힐링을 선사하는 것 같다.

그의 음악을 들어보면 불교의 공사상(空思想)이 상당히 많이 녹아 있다. 명상음악은 악보에 음표를 적당히 채우고 오선지를 적당히 비워야 제대로 된 명상음악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가 마음을 비우고 힘을 빼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그의 음악이야말로 영혼을 불어넣는 진정한 힐링의 명상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음악이 이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3. 국악의 명상음악적 성격-산조(散調)

산조를 연주한다는 것은 나(연주자)와 상대(악기)가 조화를 이루어 분별심이 없는 상태에 드는 것이다. 연주자들이 몰입하여 도달한 경지가 바로 명상의 순간이다. 자연 관조자가 결국 자연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라면 연주자가 바로 악기가 되는 것이 우리 음악이다. 다시 말해 사마디(삼매)에 드는 것이다. 이 삼매를 경험한 사람들은 영적으로 변형되고 성숙해진다.

산조는 예술성을 추구하는 음악이지만 정신적 기반을 명상에 두고 있다. 그래서 형식미학이나 선율의 아름다움은 부차적이다. 흔히 서양의 소나타에 해당하는 우리 전통음악이라는 비유도 있지만, 이는 다악장 규모의 기악곡이라는 형식적 측면에서의 비유이다. 그러나 그 내면에 담긴 정서와 음악 정신에서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서양의 소나타는 작곡자의 개성과 음악적 이상을 담아내는 그릇인 반면, 산조는 삶을 관조하는 수단이다.

산조는 느리게 시작하여 서서히 빠른 템포로 전이되는 형식을 지니고 있다. 이 형식 자체가 명상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동양권의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도의 라가에서도 나타나고 이슬람 지역의 수피 음악에서도 나타난다. 수피 음악은 대부분 춤곡인데 느리게 시작하여 서서히 가속도를 받으며 빨라지다가 빠르고 격렬한 템포로 전이된다. 수피 음악은 단악장 구성으로 무아지경에 들어가는 격렬한 춤을 위한 것이다. 라가는 느린 알라프로 시작하여 중간 템포의 조르, 빠른 질라로 전이된다. 알라프는 우리 산조의 다스름에 해당하는 명상 부분이다. 산조가 보통 5개 이상의 다악장으로 구성되는 반면 인도 음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산조는 일반적으로 다스름-진양조-중모리-중중모리-자진모리 등으로 구성된다. 보통 이 구조에서 악기에 따라, 또는 율에 따라 굿거리, 엇모리, 휘모리 등이 첨가되기도 한다. 느린 템포의 악장에서 빠른 템포의 악장이 순서대로 나타난다. 정해진 템포나 박자가 없는 다스름에 이어 서서히 시작되며 무언가를 끌어올리는 역할의 진양조는 그 발단이라고 할 수 있다. 중모리는 전개, 중중모리는 위기, 자진모리는 절정 혹은 결말을 의미한다. 이 가운데 많은 산조에서 자진모리에 이어 마지막 악장으로 나타나는 휘모리는 폭발을 상징한다. 자진모리는 ‘잣다’라는 어원에서 보듯 빠른 템포이고 휘모리는 ‘휘몰아친다’에서 비롯된 격렬한 악장이다.

시작 부분인 다스름은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명상이라는 뜻과 다르지 않다. 좋은 연주는 연주자와 악기와의 친화력을 선행 조건으로 한다. 악기가 내 손에 잘 안겨 제대로 울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기와 연주자 사이의 교감이 필요하다. 다스름은 이제 시작되는 음악의 항해를 잘할 수 있도록 보살펴달라는 기도 혹은 제사와 같은 것이다.

기도나 제사는 겸허하고 공손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드리는 것’ 혹은 ‘올리는 것’이다. ‘올린다’는 표현에서 보듯 높은 경지를 의미한다. 이때 연주자와 악기는 서로의 상태를 살펴본다. 사람이 연주하지만 울어주는 것은 악기이다. 날씨가 건조해 악기가 민감해 있으면 평소보다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너무 덥고 습하면 악기가 둔해진다.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 자동차의 시동을 걸어놓고 백미러를 닦고 시트의 각도 조절 등의 모든 준비가 끝나야만 기어를 넣고 서서히 출발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다스름은 기어를 넣기 전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다스름을 통해 준비가 이루어지면 항해가 시작된다. 저속기어인 느린 진양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서서히 속도를 더하며 무아경을 향해 내닫는다. 산조의 연주에는 장구의 장단이 따른다. 가야금, 거문고, 해금, 피리 등 여러 가지 전통악기를 위한 산조가 있다.

4. 불교음악과 명상음악

불교는 음악을 많이 활용한다. 음악을 통해 불교 의식이 발전되었고, 의식을 통해 음악의 발전도 이루어졌다. 인도의 불교가 동남아시아 각지로 전파되면서 자연스럽게 불교음악도 전파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동남아시아 음악에 불교적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 일본, 태국, 미얀마 등 불교의 맥이 흐르는 국가의 전통음악에도 명상성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불교의 영향이다. 불교가 분포하는 동양권의 각 지역에는 각 민족 고유의 음악 및 언어로 의식을 행하는데, 이에 따라 토착화되기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로써 다양한 불교음악이 존재한다. 불교가 명상 수행을 본질로 하는 만큼 불교음악을 명상음악으로 구분하면 그 역사와 지역분포에 따른 양과 질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우리의 전통적인 불교음악은 강한 명상성을 지닌다. 범패는 물론 각종 불교 제의에 쓰이는 음악 모두가 깊은 명상음악이다. 명상을 꽃피운 불교의 강한 전통에서 강렬한 명상음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중에 발매된 《금강경》 《천수경》 등의 경전 독송 음반이나 예불음악 등은 명상성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 예술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김영동의 〈선 I〉 〈선 II〉 등의 앨범은 우리 불교의 제의음악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한국과 인도의 월드 퓨전 그룹 ‘쌍깃프렌즈’의 〈아유타 시리즈〉는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허황옥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수록된 곡 중 특히 〈금강경〉은 《금강경》 독송의 음운을 따라 새롭게 창조한 현대 불교음악이다. 이 외에도 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만든 불교 명상음악이 있다. 록그룹 ‘유라시아의 아침’의 〈신묘장구대다라니〉는 현대적 뉘앙스가 풍기는 불교음악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수작이다.

이 글에서는 찬불가와 불교를 다룬 대중음악이나 월드뮤직은 제외하고 전통적인 불교음악만을 다루고자 한다.

‘염불’이란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수행법으로 부처의 공덕이나 모습을 마음으로 생각하여 떠올리는 것이다. 문자 그대로 부처를 염원한다는 뜻이다. 부처를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신 염불’, 부처의 공덕이나 형상을 마음에 떠올리는 ‘관념염불’, 부처의 이름을 입으로 부르는 칭명염불 등이 있다.

초기불교 경전인 장아함경에서는 염불을 6종 또는 10종의 불수념으로 나누었다. ‘불수념’이란 ‘부처의 공덕을 되풀이해 생각한다’는 뜻이다. 꿈속에서 부처를 보는 견불, 명상에 들어 부처를 관찰하는 관상이나 관불도 염불이다. 대승불교는 ‘찬불승’이라는 입장에서 부처들의 덕을 칭송 공양하기를 강조했기 때문에 선정에 들어 염불하는 ‘염불삼매’를 널리 설했다. 특히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길 바라는 정토신앙이 성행하자 아미타불의 이름을 듣고 부르는 것도 염불로 간주되었다.

가) 범패

절에서 법회나 의식에 사용되는 단선율의 노래를 ‘범패’라고 한다. 승려가 포교나 교화를 위해 사용하기도 하고 일반 신자가 신앙을 표현하거나 고양시키기 위하여 부르기도 한다. ‘범음’ ‘어산’ ‘인도소리’ 등으로 부른다. 이 음악을 반주로 추는 춤은 ‘작법’이라고 한다.

범패는 인도에서 발생하고 불교에 사용되었다고 하지만, 그 기원은 불교 발생 이전의 바라문교(베다에 근거하여 자연신을 숭배하는 힌두교 이전의 종교)에 두기도 한다. 한반도에는 830년 당나라에서 돌아온 신라의 진감 선사에 의해 처음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당풍’ ‘향풍(신라풍)’ ‘고풍(당 이전의 범패)’ 등 형태가 다른 세 종류의 범패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 범패는 절에서 올리는 각종 재 때 써왔으며 가곡, 판소리와 함께 한국의 3대 성악곡으로 발전했다.

   
 

한국의 범패는 중복적(melismatic, 한 글자에 여러 음을 지니는 특성)이고 장인(길게 끄는 것)과 굴곡(가락의 진행)이 심한 인도 음악의 특성을 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범패보다는 티베트의 범패에 가깝다. 그리고 한국의 범패는 일본의 불교음악인 ‘소묘’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범패에는 양식에 따라 ‘안채비소리’와 ‘겉채비소리(바깥채비소리)’가 있다. 염불은 안채비소리를 말한다. 안채비소리는 제주를 축원하는 내용으로 요령(놋쇠로 만든 종)을 흔들며 한문으로 된 산문 사설을 읽듯이 낭창한다. 겉채비 또는 바깥채비는 범패를 전문으로 하는 승려로, 보통 다른 절에 초청을 받고 가서 소리를 한다. 겉채비소리에는 ‘홋소리’와 ‘짓소리’가 있다. 홋소리는 재에서 사용되는 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교적 간단한 노래다. 합창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독창으로 불리고, 합창의 경우도 2~4명이 반주 없이 소규모로 부른다. 음역은 주로 한 옥타브 이내의 음역으로, 중간음역에서 자비성(가볍고 부드러운 발성)으로 노래한다.

짓소리는 홋소리를 모두 익힌 범패승이 배우는 것으로 30~40분 이상 걸리는 긴 음악이다. 합창으로 부르는데, 지도자 격인 장부가 입 모양이나 손가락으로 지휘한다. 사설은 대부분 한자로 된 산문 또는 산스끄리뜨어로 되어 있다. 짓소리가 불리는 의식은 의식 자체가 훗소리가 불리는 의식보다 길기 때문에 짓소리는 의식에 따라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시왕각배재(저승에 있는 열 명의 왕에게 자비를 비는 의식), 생전예수재(죽은 후에 극락에 가게 해달라고 생전에 미리 지내는 지신의 재), 수륙재(물과 육지에서 홀로 떠도는 귀신과 아귀들에게 공양하는 굿), 영산재(죽은 사람을 위해 사흘 동안 지내는 재) 등에 쓰인다. 구성지고 부드러운 홋소리에 비해 짓소리는 악곡의 흐름이나 규모 면에서도 장중하고 무게가 있다. 저음에서 시작해 한 옥타브 이상의 넓은 음역을 갖고 있으며 음악적으로도 홋소리에 비해 어렵고 예술성이 높다. 크고 억센 발성으로 부른다.

짓소리에는 일종의 전주 혹은 간주에 해당하는 ‘허덜품’이 있다. 독창으로 부른 허덜품은 곡을 더 길게 늘이기도 하고, 합창하는 이들을 쉬게도 하는 역할을 한다. 음역은 한 옥타브 이상으로 비교적 넓고 주로 저음으로 노래한다. 창법 또한 배에 힘을 주어 우렁차고 꿋꿋하게 불러 장엄한 느낌을 준다. 짓소리는 예전에는 72가지가 있었으나 지금은 의식이 간소해져 범패가 불리지 않게 되자 거의 없어지고 몇몇 범패승에 의해 13곡만 전한다.

나) 화청과 회심곡

불교 포교의 방편으로 쓰인 음악으로 민중들이 잘 알고 있는 민요 등의 가락에 불교의 교리를 사설로 부르는 ‘화청’과 〈회심곡〉이 있다. 불교의 포교를 위하여 만들어진 대중성이 짙은 음악으로 범패의 일종이다. ‘화청’은 제불보살을 고루 청하여 불국토 왕생을 비는 음악이다. 경기민요의 특징을 닮았으나 일정한 장단 없이 사설에 따라 태징이나 북을 쳐나가는 점이 다르다. 대게 엇모리장단으로 사설은 그때그때 새로 지어 부르기도 한다. ‘화청’(우리말가사)과 ‘축원화청’(한문 가사)으로 나뉜다.

〈회심곡〉은 대중에게 친숙한 가락에 불교 교리를 우리말 사설로 부른 음악이다. 불교 포교의 한 방편으로 불교의 이치와 인생의 무상함을 알기 쉽게 노래로 부르게 한 것이다. 석가여래의 공덕으로 이승에서 살다가 죽은 뒤에는 명부에서 재판을 받아 좋은 사람은 극락으로, 나쁜 사람은 지옥으로 간다는 내용이다. “〈회심곡〉을 듣고 가슴을 찡하다면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의 내면을 각성시키는 힘이 있는 음악이다. 조선시대 중엽, 서산대사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다) 만트라와 다라니

힌두교와 불교에는 신비하고 영적인 힘이 있다고 하는 만트라가 있다. 특정 주문을 반복해서 암송하거나 명상하면 탈아의 경지로 들어가게 되며, 높은 차원의 정신적 깨달음에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진언(眞言)’으로 번역된다. 대부분의 진언은 말 자체에는 의미가 없으나 신성하고 심오한 의미가 내재된 영적인 지혜의 정수로 여겨진다. 정신적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사악한 영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한 여러 종류의 진언이 있다. 힌두교에서 가장 강력하면서 널리 쓰이는 진언은 우주의 근본 소리라는 ‘옴(Om)’으로, 성스러운 음절로 인식된다. 불교에서는 ‘옴 마니 반메 훔’이 중요한 만트라로 널리 암송된다. 힌두교의 많은 종파 입문식에서 구루는 입문자의 귀에 비밀스러운 진언을 속삭여준다. 진언은 구루나 그 밖에 영적인 스승에게서 구두로 전해 받았을 때만 진정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다라니’가 있는데 이는 ‘총지, 능지, 능치’ 등으로 의역되는 신성한 글귀를 말한다. 불교와 힌두교도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부적이나 주문으로 사용하거나, 요가 수행자들이 정신집중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 암송한다. 원래는 경전의 근본 원리를 요약한 것으로 경전을 기억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후대에 이르러 형식상의 유사함 때문에 주문까지도 ‘다라니’로 통칭되었으며, 길이에 따라 짧은 것은 ‘진언’ 또는 ‘주’라고 하고, 긴 것을 ‘다라니’ 또는 ‘대주’라 한다. 다라니를 제대로 암송하면 경전 전체를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가져다준다고 하여 다라니를 암송하는 신앙 형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다라니의 의미는 정확히 규정하기 어렵다. 초심자가 들으면 마치 의미 없는 말들을 늘어놓은 것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칠 때는 정확한 의미를 전달한다. 불경을 한역할 경우, 비밀스러움을 보존하기 위해 의역하지 않고 음역만 했다.

다라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천수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관음정근〉 〈지장정근〉 〈아미타정근〉 등은 모두 암송할수록 대단한 효과를 보는 그런 정근들이다. 불교 신자들이 기도 중에 이런 정근을 1,000번씩 암송하는 것도 우주의 공명과 파장으로 치료 효과와 부처님의 가피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같은 다라니나 정근, 만트라, 그레고리안 찬트 같은 주술들은 과학적으로 모두 입증할 수는 없지만 미묘한 효과와 치료 효과 가피 등이 나타난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

 

보경 / 불교명상음악치료협회 회장. 통도사승가대학,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 선학과 · 신문방송학과, 미 버클리음악대학 졸업. 동국대학교 불교사회복지대학원, 숙명여자대학교 음악치료대학원 졸업(석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졸업(심리치료학 박사). 동국대학교 외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으며 불교TV 〈영혼의 소리 NADA〉 시즌 2 진행을 맡았다. 현재 동국108합창단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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