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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내 난다 / 박양근
사색과 성찰
[83호] 2020년 09월 01일 (화) 박양근 수필가 

모든 사물은 고유의 냄새를 지니고 있다. 동식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에서도 냄새가 난다. 무엇인가 낌새를 알아차리면 냄새난다고 말한다. 세상 만물이 체취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므로 오감 중에서 후각이 가장 발달하였다. 

냄새 중에는 좋은 것이 있고 나쁜 것이 있다. 흔히 좋은 냄새를 향기라 부른다. 차향, 꽃향이 있고 한지에 쓴 글씨에는 묵향이 배어 있으며 천년 참나무에서는 침향이 스며난다. 향기야말로 모든 사물이 지니고 싶은 이상적인 기운일 것이다. 옛 선비들도 자신의 글에서 지필묵 향기가 묻어나기를 소망하였다. 그런데 글과 글씨에서는 문향과 묵향이 풍긴다고 하지만 정작 글을 쓰는 사람에게서는 먹물 냄새가 난다고 한다. 옷에 먹물을 잔뜩 묻힌다고 먹물 냄새가 나지 않는다. 몸 구석구석까지 냄새가 배도록 글을 가까이하여야 겨우 먹물 냄새가 밴다. 꽃내음과 목질 냄새가 줄기와 뿌리까지 내려야 냄새가 되는 것과 같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거의 매일 마을 뒷산에 있는 암자에 오르내렸다. 서너 평 고작인 시골 암자의 대웅전 청소만은 한사코 당신이 맡은 독실한 보살이셨다. 청소를 마치고 법당을 나올 때면 할머니는 항상 “향내 난다”고 했다. ‘향기 난다’고 말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향내라는 말은 향과 냄새가 합친 말이었다. 법당에 가득 찬 향불을 촌 노인답게 표현한 말이었다. 

냄새라면 어딘가 낮춤말로 들린다. 명품보다는 범상한 물건을 떠올려준다. 향기(香氣)가 한자어고 냄새가 우리말인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선입견일 수도 있다. 향기라 하면 정자가 떠오르고 문방사우와 매란국죽이 연상되지만 냄새라면 거름더미나 쑥떡이 생각난다. 향기가 정신적 가치를 향유하는 계층의 언어라면 냄새는 몸으로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나누는 말이라 해도 된다. 

냄새라면 부정적인 말이 먼저 떠오르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곱살스러운 접미사 ‘-내’에 갖가지 말이 붙는다. 살내, 젖내, 땀내, 분내, 단내, 흙내⋯⋯ 이때의 ‘내’는 ‘냄새’를 줄인 말이다. 살 냄새, 젖 냄새, 땀 냄새, 분 냄새, 흙냄새를 줄여 ‘살내’ ‘젖내’ ‘땀내’ ‘분내’ ‘흙내’라 말하면 까닭 없이 마음이 저리면서 눈이 감긴다. 오래 졸이고, 한참 묵히고, 늘 지니고 다녀야 우러나는 것이므로.

냄새는 온몸으로 맡아야 느낄 수 있는 기운이다. 냄새라는 말을 줄여 ‘내’라고 하면, 진짜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기운이라는 확신이 든다. 사람 냄새는 얼굴에서가 아니라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므로 코라는 감각기관만으로 감당하기에는 충분치 않다. 그래서 사람 향기라는 단어보다 사람 냄새라는 말을 즐겨 쓰는가 보다. 

달력이 제법 넘어가서 어느덧 해가 조금씩 늦게 뜨고 일찍 서산으로 넘어간다. 짧은 셔츠를 입던 사람들이 긴소매 옷으로 갈아입고 짧은 스커트가 긴 치마로 바뀌었다. 다투어 피어났던 꽃들은 다 져버리고 무성했던 나뭇잎들도 가을 색으로 변해간다. 갖가지 형상이 넘쳐나는 여름이 지나면 자연의 모든 것들은 거추장스러운 겉모양을 버리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세상에 증명하는 단 하나의 기운만 간직한다. 그건 흙냄새이다. 제 몸에 숨어 있던 흙 기운이 몸 전체로 퍼지기 시작한다. 계절이란 갖가지 향기를 단 하나의 흙냄새로 변하게 하는 시간, 난 그렇게 믿으려 한다. 

요즘 글 냄새에 대해서 종종 생각한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는 말을 믿으며 글 향이 묻어나오길 기대했다. 언젠가는 향을 피울 때와 같은 문향이 묻어나기를 바랐다.

이제 내 나이가 늦가을이 되었다. 풀벌레 소리 들리는 산사로 향하는 숲길을 걸으며 내 글에서 글내가 났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문향은 여전히 과분하고, 글 냄새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글내라면 사람내는 있을 테니까. 

왜 갑자기 할머니가 생각날까. 법당 구석구석을 정성스럽게 닦아내고 문을 나서며 하신 “향내 난다”고 했던 말씀이 왜 불쑥 떠오를까. 어쩌면 할머니는 법당에 들어설 때마다 부처님이 가르친 불법 향기와 사람들이 살아가는 냄새가 어울려야 절답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어 제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차디찬 법당 마룻바닥을 단내나도록 걸레질하셨던 할머니, 그 정성을 본받으면 글내가 풍겨 나올까. 

세월이 지나면서 법당 마루가 달라지고 있다. 말간 목제 바닥이 하나둘 사라지고 냉기를 막는 두꺼운 매트리스가 깔린다. 향을 태운 향기는 변함없으나 사람내 나는 사람들이 산사로 찾아오는 모습도 점점 줄어든다. 향내 나던 조그만 법당의 문고리를 잡던 정월이 어제 같은데 벌써 한 해의 흙냄새가 짙어간다,

ykpark@p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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