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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꽃씨를 품었네 / 한승희
[83호] 2020년 09월 01일 (화) 한승희 수필가

오늘도 아파트 뒷산을 오른다. 작년 가을부터 더해진 일상이다.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었는데 하루 일과를 산에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 것은 내 일생에 잘한 일 중 하나다. 

처음 산에 오를 때는 조금만 올라도 숨이 차고 다리가 아팠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한시도 떨어지지 않던 나는 잠깐의 이별에도 그 따뜻하고 포근한 품이 간절하여 몇 번이나 되돌아가려 했다. 그렇지만 이를 꽉 물고 참았다. 처음에는 고개 하나만 오르고 돌아섰다. 좀 더 몸이 익숙해지자 첫 고개를 찍고는 내려가는 길을 애써 뒤로하고 다시 올라 두 번째 고개를 달성했다. 그러더니 어느새 아무런 갈등 없이 세 번째 고개도 성큼 지나 산 정상까지 오르게 되었다. 정상에 올라도 숨 고르기가 일정해지까지는 시간이 또 걸렸다. 주변에 있는 운동기구를 사용해 몸을 풀 정도가 되자, 산 경치를 음미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산을 찾은 지 두 달여 만이었다. 허리운동을 마치고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쨍한 하늘에 겨울 나목의 여백 가득한 풍경. 빈 가지들을 활개 치듯 벌리고서 꼿꼿이 서 있는 겨울나무의 당당함이라니! 순간 축 처진 내 어깨를 추슬렀다. 빈 가슴으로 겨울바람만 숭숭 지나가는지 한기가 들었다.

작년에 다니던 직장을 1년도 못 견디고 그만두었다.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 나이 들어도 늘 서툴다. 마음 상처로 끙끙대다 더는 몸마저 상할 것 같아 나오고 말았다. 떠나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몸과 마음이 더 힘들어졌다. 급기야 된통 심한 몸살까지 앓고 나니 건강이 걱정돼 산에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겨우내 산을 오르면서 나는 왜 저 겨울나무같이 우뚝 서지 못하고 움츠리고 떨고만 있는가, 하는 질문에 매달렸다. 겨울나무처럼 알몸으로 나앉은 나는 무엇을 버린 것인가? 아니면 놓쳐버린 것인가? 그 문제를 다 풀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는 봄기운이 감돌았다. 강직한 겨울나무들은 포르스름한 아우라를 부드럽게 내뿜고 있었다. 바위에 앉아 나른한 봄볕을 쬐며 눈을 감고 있노라면 숲 전체가 사부작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발에 밟히는 낙엽에도 축축함이 느껴지고 나뭇가지에도 윤기가 돌더니, 드디어 어느 날 움이 트고, 노란 꽃망울이 맺혔다. 산수유와 생강나무를 구별하는 법을 이 나이에야 배웠다. 우리 뒷산 진달래가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다. 여태껏 멀리까지 유명한 산들을 찾아다녔으니 옆에 있는 파랑새를 두고 산 넘고 물 건너 헤매고 다닌 꼴이었다

산은 더욱 분주해졌다. 철쭉꽃이 피고, 산 벚꽃이 흐드러지고, 산 목련이 피어나고……. 헐벗은 검은 가지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꽃들이 필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매달지 않고 빈 가지만 벌리고 서 있는 겨울 나목들이 그렇게 당당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속 깊은 곳에 꽃씨를 품고 있기 때문이리라. 한때 화려하던 시절 지나고 제 분신 다 떨어낸 세월의 상처 자리에 사리 같은 꽃씨를 배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겨울 나목 앞에 서면 저절로 내 상처를 어루만지게 되는 것이다. 늙어가는 나를 한탄한 것이 어리석고, 세속적인 가치에 집착한 것이 부끄럽고, 옹졸하게 분개한 것도 무안해지는 것이다. 생채기를 다 드러낸 채 혹독한 겨울바람을 맞서는 그 의연함에 고개가 절로 숙어지는 것이다. 

따스한 봄 햇살에 제각기 아름다운 꽃씨들이 매일 새로운 꽃으로 피어났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지를 새삼 느끼는 봄이었다. 어느덧 봄꽃들이 진 자리에는 옅은 초록이 진초록으로 하루가 다르게 짙어갔다. 우거진 나무 사이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들은 마냥 즐겁고, 무리 지어 핀 꽃들은 은은한 향기를 품어냈다. 

맑고 향기롭게 운동을 시작한 법정 스님께서도 과일에 씨앗이 있듯 우리도 불성 또는 영성이란 씨앗을 품고 태어난다고 했다. 이 영성 또는 불성의 씨앗을 움트게 하고 꽃피우는 것이 삶의 의미이고 사명이라 생각됐다. 또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유교경(遺敎經)》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모든 고뇌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만족할 줄 알아라. 만족할 줄 알면 항상 넉넉하고 평온하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령 극락에 있을지라도 그 뜻에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잠시나마 세상살이 다 내려놓고 홀가분한 자유에 흠뻑 취했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짜릿한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진정 만족할 줄 안다면 마음의 병이 치유된다더니 상처받았던 마음도 초라하던 열패감도 다 날아가고 달짝지근한 기쁨이 내 속에 차올랐다. 아마 내 안에 작은 꽃씨 하나 품고 있나 보다! 

오늘도 산행을 하면서 내 안의 꽃씨는 어떤 꽃일까, 사유의 미로를 걷는다. 

djswpsk19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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