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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냄을 없애면 근심이 없어진다 / 김대원
사색과 성찰
[83호] 2020년 09월 01일 (화) 김대원 수필가

‘날씨마저 도움이 안 되네.’ 안부 전화를 해온 지인의 말이다. 열대야처럼 밤에도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틀어 놓아야 잠들 만큼 무덥다가 간간이 비가 2~3일 계속되기도 하는 것이 이즈음 날씨다. 비가 오면 시원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터분하기만 했다. 그러니 아침저녁 일상으로 하는 샤워를 어떤 날은 낮에도 몇 번 할 정도였다. 슬그머니 짜증이 날 법도 했다. 무더위야 계절이 여름이니 어쩔 수 없지만, 더워지면 사라질 거라던 코로나19란 녀석이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더 기승을 부리니 세상 어디라도 안전한 지역이 없어 불안과 분노가 뒤엉켜졌다. 

지난 1월 이후 하던 강의마저 중단하고 통신강의로 전환했다. 그리고 문학 행사나 동창 모임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중단된 상태이니 자연히 ‘집콕, 방콕’의 부자유 상태로 갇히게 되었다. 하긴 나는 예년 같으면 ‘개인 하안거나 동안거’를 이유로 스스로 ‘집콕, 방콕’을 하기도 하고, 인연 있는 산사에 가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은 순전히 내 의지에 의해 결정하고 실행한 것이어서 하등의 불평 원인이 될 수 없었다. 오히려 그 안온함을 쉼과 성찰의 시간으로 즐겼으니까.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정작 어느 산사에 가서 한 달이나, 아니 일주일이라도 머물다 오고 싶어도 눈치가 보여 그냥 있자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문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마스크를 써야 하고, 어디를 다녀오려 해도 전철이나 버스, 택시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꺼림칙하여 자제하고 있자니 답답함은 극에 달한다. 어느 여행 잡지에 연재하는 ‘사찰로드투어’도 문학 도반이 차편을 제공해서 엊그제 연천의 한 사찰을 취재하고 왔다. 구속 아닌 구속 상태로 지내니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고,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세상일들을 신문방송으로 보고 들으면서도 분통이 터질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다. 아예 뉴스를 보지 말자 하면서도 채널을 돌리게 되고 조 · 석간신문 올 시간을 기다리기도 하니 마음의 간사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아내도 나다니던 내가 종일토록 칩거하고 있으니 답답한지 어떤 때는 더위도 식힐 겸 서점에라도 다녀오라고 할 때가 있고, 하찮은 일로 언쟁을 하는 일이 늘어나기도 한다. 심한 골다공증을 비롯해 내과, 안과 등 ‘종합병동’인데, 내게는 삼시 세끼 꼬박 잘 챙겨주면서도 자기는 안 먹으니 그게 주로 말싸움의 단초다. 

이럴 때, 나는 슬그머니 집을 나와 한 시간 이내면 닿을 수 있는 산사를 찾는다. 텅 빈 법당에 홀로 좌정하고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 가벼운 짜증에서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화까지 분노의 크고 작음, 깊고 얕음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겠지만, 화를 내지 않거나 나지 않게 할 뾰족한 방법이 없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며 내가 좀 유머러스하게 넘어가고 참을 걸 하며 이내 자책으로 끝내기 일쑤다. 그리고 잠들기 전에 언제 말다툼했냐는 듯 아내에게 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마를 해주며 무언의 아양(?)을 떤다. 당연하다는 듯 아내도 몸을 맡기고 안마가 끝나갈 즈음이면 이내 잠들어버리곤 할 때가 많다.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빌리면 화는 참으면 참을수록 끓는 냄비를 뚜껑으로 덮는 것과 같아 어느 순간 겉잡을 수 없이 터지게 돼 있다고 한다. 간혹 이성을 잃고 폭언이나 욕설까지 하게 되는데, 재미있는 것은 화가 났던 장소에 계속 머무를수록 화가 점점 더 커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 장소를 벗어나 다른 곳에 가서 최소한 3분 이상 머물러 있으라고 권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해야만 다른 생각이 가능해지고, 화가 났을 때 첫 번째 떠오르는 생각은 당연히 ‘상대방이 나를 화나게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행동’은 돌아보지도 않고 상대방에 대한 분노만 더 커지게 된다. 앞으로는 나도 화를 참아야 하겠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엔 산사에 오르거나 개천 길을 걸으며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성내는 마음을 없애면 안온하고 후회가 없다. 성냄은 독의 근본이어서 모든 선근을 없애 버린다. 성냄을 없애면 부처님께서 칭찬하시고 근심이 없어진다.”고 《대지도론》에 나와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로 졸지에 집안에 갇힌 신세가 되었지만 언제까지 답답해하지만 말고 옛 선현들의 지혜를 빌려서라도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겠다. 

 

고요 익혀 따지는 일 잊어버리고, 인연 따라 성령(性靈)을 길러 보누나. 손님의 농담에 답할 맘 없어, 대낮에도 산집 빗장 닫아둔다네. 

 — 신흠(申欽, 1566~1628)의 

        시 〈우감(偶感)〉 중에서

 

고요함에 익숙해지자 헤아려 살피는 일도 심드렁하다. 마음 밭은 인연 따라 흘러가도록 놓아두고 작위하지 않는다. 실없는 농담과 공연한 말이 싫다. 산자락 집 사립문은 대낮에도 굳게 잠겼다. 나는 나와 대면하는 게 더 기쁘다. 나는 더 고요해지고 편안해지련다. 

코로나19를 원망할 게 아니라 그 녀석이 태어난 귀책사유(歸責事由)가 우리 인간에 있거늘 백신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녀석과도 어쩔 수 없이 ‘거리 두기’로 공생(共生)할 수밖에 없지 싶다.

dk95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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