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사회의 갈등, 그 극복을 위한 청문(聽聞)

1. 이 많은 갈등들, 이 많은 이념들

한국사회에서 이념적 갈등을 문제화하는 것은 현재 사회적 갈등이 매우 격화되고 있다는 근심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다. 갈등에 대한 근심은 충분히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 이전에는 정부와 그에 반하는 집회가 있었다면, 지금은 집회마저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로 양분되어 있으며, 태극기집회는 이전의 우파 집회와 달리 단순한 동원의 양상에 머물지 않는 자발성으로 추동되고 있다. 또 ‘조국 사태’ 이후에는 하나의 거대 대중으로 드러나던 촛불집회마저 별개의 집회로 분리되어 진행되면서, 대중 안에 존재하던 이견과 갈등을 표면화했다. 이전에도 서로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었지만 이른바 ‘레가시 미디어’라고 간주되는 언론매체들은 진지한 저널리즘의 원칙 대신 클릭 수의 증가를 겨냥한 센세이셔널리즘으로 논란이 되는 문제들을 최대치로 부풀려 증폭시키고 있고, 그러한 보도에 반하여 SNS는 일종의 대항미디어로서 전통 매체들의 보도와 평가 전체를 비판하고 의문시하는 글들로 대응하고 있다. 그 틈새에서 가짜뉴스를 양식으로 삼는 ‘유튜버’들은 없는 사실마저 끌어들여 갈등을 만들고 부풀리고 있다. ‘미투’와 ‘영페미’ ‘영영페미’로 표상되는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은폐되었던 대립과 갈등을 전면화하고 있고, 세대 간의 갈등은 감각이나 생각의 차이를 넘어서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소통 불가능한 대결 양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배적인 이념들의 대립이 두드러진 시기와 달리, 지금은 어떤 ‘거대’ 이념도 다른 ‘작은’ 이념들에 대해 ‘보편성’의 자리를 갖지 못하며, 다양한 이념적 대립을 포섭할 수 있는 포괄적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지배적인 힘이나 억제력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수많은 작은 이념들이 각개약진하고 있는 지금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념적 갈등이 발견되는 상황이라 해야 할 듯하다. 이 점에서 보면 지금이야말로 이념적 갈등이 전에 없이 격화된 시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이념적 갈등을 문제화하려는 것은 아마도 이런 관점에서 이념적 갈등이 사회의 존속 가능성을 묻게 하는 심각한 상황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일 터이다. 이념적 갈등이 사회의 통합능력을 초과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그 밑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는 갈등이 심각하지 않았던가? 이념적 갈등이 심각하게 우려할 만큼 격렬하지 않았던가? 이념을 이유로 사람을 가두고 죽이는 일이 빈번했고,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죽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절보다 지금의 갈등이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한국사회에 이념적 갈등이 심각하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해도, 이전에 그것이 심각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모든 이념적 갈등이 두 개의 적대적 이념 간의 대립으로 환원할 수 있는 것이었다는 점에서 단순했다면, 지금은 어떤 이념도 다른 이념으로 환원할 수 없는 복합성과 다양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에는 그 단순성으로 인해 적대의 깊이와 충돌의 강도가 극히 강했다면, 지금은 대립과 충돌의 지점들이 비교할 수 없이 넓어지고 다변화되었다는 사실이다.

불화가 있는 곳에 갈등은 없을 수 없다. 불화가 있는 곳에 이념의 차이와 대립 또한 없을 수 없다. 그리고 불화 없는 사회는 없다. 따라서 갈등이나 대립 없는 사회, 이념적 충돌이 없는 사회란 있을 수 없다. 갈등이 단순하다는 것은 갈등의 잠재성을 갖는 불화를 그 단순화된 갈등 안에 포획하거나 갈등으로 표면화되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갈등이 여러 영역에서 복합하고 다기한 양상으로 드러나는 사회란 존재하는 불화를 더는 억압하거나 포획할 수 없는 사회임을 뜻한다. 억압되었던 불화들이 갈등으로 표면화되고 있는 사회다.

문제는 어느 게 더 나은가가 아니라, 지금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이념적 갈등의 양상이 어떠한가이다. 이념적 갈등의 양상을 다루기 위해서는 이념과 갈등의 관계를 보아야 한다. 불화가 표면화될 때 갈등이 되는데, 이념은 많은 경우 갈등을 조건으로 하고, 갈등은 또한 역으로 이념을 조건으로 현행화된다. 갈등으로 표면화된 불화는 이념의 작동양상을 규정하지만, 역으로 이념의 지배적 작동양상 또한 갈등의 양상을 규정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념적 갈등은 이념과 갈등의 관계양상에 따라 상이하게 펼쳐진다.

2. 이념에 의한 갈등

1) 이념적 전쟁

알다시피 1945년 해방 정국의 상황은 체제의 선택을 둘러싼 거대한 적대적 대립이 전면화된 시기였고, 이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간 냉전이라는 국제적 정세와 전후 신식민주의적 재편이라는 조건 속에서 두 개의 적대적인 이념 간 대결이 모든 것을 규정하던 시기였다. 이념적 차이가 개인이나 집단을 제거할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던 이 이념 간 대결의 상황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욱더 격화된다. 심지어 한 마을이나 친족, 혹은 한 가족 안에서까지 이념적 대결은 목숨을 놓고 싸우는 최대치의 전면적 충돌로 심화하였다. 이 치명적 대결은 결국 휴전 이후 군사분계선을 통해 두 개의 이념이 공간적 거소를 분리하는 것을 통해 잠정적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웃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상황은 중단되었지만, 두 공간 모두 반대편의 이념이 존재할 장소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단일성의 폭력이 지배하는 상황을 뜻했고, 그런 점에서 이념 간의 전쟁은 끝난 게 아니었다. 남한의 경우 ‘빨갱이’나 ‘공산주의’라는 딱지 하나면 어떤 극단적 폭력도 정당화되는 이념 간 적대가 지배했다. 이 경우 이념적 갈등이란 클라우제비츠의 정의를 뒤집고 비틀어,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계속”이라고 해야 한다. 즉 이 시기 이념적 갈등은 이념적 적대의 형태로 계속된 전쟁이었다. 이념적 전쟁의 시기였다.

이후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자본주의나 ‘자유주의’와 방향을 달리하는 종류의 어떤 이념에 대해서도, 혹은 특정한 이념과 직접성 연관성 없는 어떤 대립이나 갈등에 대해서도 절멸을 겨냥한 폭력이 전면화된 상황이 지속되었다. 역으로 지배자들의 이해관계에 반하거나 그와 충돌하는 모든 불화와 갈등에 대해서도 붉은색을 칠한 이념적 딱지를 붙이는 방식으로 억압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그거면 극단적 폭력을 행사하는 것조차 정당화되게 해주었다. 모든 갈등이 대립하는 두 이념으로 환원되어 이념적 적대의 효과 속에 억압되거나 제거되는 시대였다. 이를 모든 갈등의 ‘이념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이념화’란 자신 아닌 적대자, 대개는 지배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외적으로 강제되는 것이었다는 의미에서 ‘갈등의 외생적 이념화’였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에 이념이 이런저런 불화를 통합하여 사회적 단일성을 만드는 것은 적인 이념에 대한 공격을 통해서만 가능했다는 점에서 ‘대타적인’ 것이었다. 즉 반공이라는 대타적 공격과 위협 없이, 자유주의가 그 자체로 대중을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하는 긍정적인 포섭의 힘을 갖지는 못했다. 적 없이는, 적인 이념 없이는 존속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는 점에서 이념의 시대였다. 모든 것이 이념화되는 시대였으며, 이념이 모든 것의 전면에 나서는 시대였다. 이념적 전쟁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시대였다.

2) 전체성의 이념

박정희 정권은 이러한 이념적 장에 매우 중요한 변화를 야기했다. 그것은 ‘조국 근대화’라고 명명되는 경제성장의 이데올로기를 적 없이 스스로 존립 가능한 ‘대자적’ 이념으로 정립한 것이다.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민족의 번영을 위하여 국민 전체가 ‘근대화’라고 불리는 경제성장에 복무하는 것, 이것이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이 새로이 전면에 내세운 이념이었다.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의 준거가 되고, 어떤 것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된 답의 체계로서의 이념, 대중 개개인을 주체로서 호명하여 ‘조국’ 내지 ‘민족’이라는 큰 주체에게 충실하게 복종하는 ‘국민’으로 만드는 이념. 요컨대 박정희 정권은 적대하는 양대 이념과 별개로 개개인을 하나의 ‘국민’으로 포섭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을 도입한 것이라 하겠다.

이 이념은 이전에 알고 있던 ‘이념’의 형식을 취하지 않아서 효과적인 이념이었고, 부정적 위협 대신 유용성과 필요성을 호소함으로써 긍정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이념이었다. 적대적 이념을 필수적인 짝으로 동원하지 않아도 유효하게 작동하는 이념이었다. 모든 불화나 이견, 갈등은 이 경제성장의 이념 안에서 통합되고 포섭되었다. 나아가 개발과 성장은 개개인의 삶 속에 자리 잡은 삶의 목표와 방향이 되었고, 박정희가 사라진 이후에도, 심지어 지금까지도 개인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모든 언행을 지배하는 영혼으로 지속되고 있다.

3) 무기로서의 이념

그러나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 전체성의 이념 안에 지울 수 없는 균열의 선들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던 불화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먼저, 노동자나 농민 등 개인의 희생을 기반으로 한 경제성장이 진행됨에 따라 그 희생의 지속을 더는 감내할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이념의 벽에 새겨지기 시작한다. 전태일의 분신은 징후적 사건이었다. 물론 여전히 경제성장의 이념이 지배적이었기에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그것은 이후 나타날 중요한 사태의 불길한 전조였음이 틀림없다.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발생하는 작은 항의들이 시작되면서, ‘근대화’의 단일성과 전체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독재정치에 대한 항의와 저항이 근대화의 그늘에서 ‘독버섯처럼’ 퍼져가기 시작하고, 김대중처럼 통치자의 지위를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자가 출현하게 됨에 따라, 박정희는 한국전쟁을 통해 극단화된 형태로 기억되어 있는 이념적 전쟁을 이용해 그 동요와 경쟁을 억압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반대자든 경쟁자든, 그 지위를 위협하거나 그 지위를 문제화하는 모든 것에 대해 ‘갈등의 외생적 이념화’를 이용해 탄압하는 전략적 전환을 감행한다. 이로써 다시 모든 갈등이 과잉‐이념화되고, 이념적 적대의 거대한 폭력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처음에는 정치적 반대자나 경쟁자들을 겨냥했던 무기인 반공주의는 노동과 생활의 현장에서 발생한 갈등을 억압하며 근대화의 이념 안으로 강제 통합하는 무기가 된다. 그러나 억압된 불화는 지연된 시간 속에서 치환된 갈등으로 되돌아온다. 공산주의 이념이라는 외부적 요소에 귀속시켜 억압하려던 경제적 갈등은 끊임없이 증상적으로 재출현하기를 거듭했고, 폭력적으로 제거하거나 억압했던 정치적 분열은 지배자들 내부의 적대로 치환되어 재등장한다. 박정희의 사망은 이념적 적대의 폭력으로도 끝내 제거할 수 없었던 이러한 불화의 복수였던 셈이다.

4) 이념적 전쟁을 초과한 분열

1980년대는 불화가 해소될 수 없는 대립의 형태로 드러나는 ‘분열’의 시대였다. 먼저, 1980년의 광주사태는 근대화와 경제성장이라는 이념을 통해 구성된 ‘국민’이라는 전체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강력한 분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이는 이념적 전쟁에도 불구하고 존속하던 ‘전체’로서의 이념이 더는 존속할 수 없게 한다. 경제성장의 이념조차 더 이상 통합적 이념이 될 수 없는 조건에서, 봉합할 수 없는 폭과 깊이를 갖게 된 분열에 대해서는 강력한 물리적 폭력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한 물리적 폭력의 이유를 대기 위해 오래된 이념적 전쟁의 방법이 동원되었지만, 일방성을 갖게 된 이념은 폭력의 알리바이를 대려는 명백한 이데올로기가 될 뿐이다. 반공주의는 이제 서로의 목숨을 겨누던 이념의 무게를 잃고, 적대자를 탄압하기 위한 공허한 이념에 지나지 않게 된다. 정치적 항의를 자명하다 가정된 이념적 적대 속에 밀어 넣어 무력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분열이 이념을 초과하고, 투쟁이 된 갈등이 이념적 전쟁의 장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5) 불화의 내생적 이념화

광주사태로 인해 정권의 극단의 폭력을 보았던 정치적 반대자들은, 정권의 전복과 대체를 가능하게 해줄 강력한 조직화를 목표로 하게 된다. 이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해줄 이념을 향한 지하의 행진을 시작한다. 목적과 이념 없는 저항에 대한 비판이 사회운동 전체를 ‘목적의식적 운동’으로, 이념적 운동으로 밀고 간다. 외생적인 이념적 전쟁의 구도로 인해 스스로 레이블링으로부터 모면하고자 애쓰던 사회주의 이념을, 심지어 주체사상까지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혁명적 전복을 꿈꾸는 지하운동이 서서히 사회 전 영역으로 퍼져가기 시작한다. 이념적 전쟁의 강력한 이항적 절단기계를 돌파한 분열이 이젠 역으로 이념을 통해 스스로를 조직하며 자립성을 획득하기 시작한 셈이다. 사회운동의 이념화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 이념화는 갈등을 억압하기 위해, 반대자의 저항을 무력화하기 위해 지배자에 의해 들씌워진 외생적 이념화가 아니라, 갈등 내지 분열을 증폭시키기 위해, 그 분열을 전복의 힘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저항운동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이고 내생적인 이념화였다.

이제 다양한 양상의 사회적 불화나 갈등은 자의든 타의든 이념적 대결의 이원성 속으로 흡수된다. 모든 갈등이 이전의 일방적이던 이념적 전쟁과 달리 새로운 이념적 대결의 양상으로 확대된다. 이념에 의한 갈등이 이제는 이념적 갈등이 된 것이다. 과잉‐이념화에 의한 갈등의 허구적 이념화는 모든 갈등의 실질적인 이념화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총을 든 거대 이념과 자기 발로 선 거대 이념이 다시 충돌하는 새로운 이념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불화와 갈등의 실질적 이념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회운동의 이러한 내생적 이념화는 그 입장이나 방향에 따라 상이한 이념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잘 알려진 대로 이른바 ‘NL’ ‘ND’ ‘PD’라는, 사회운동 내부에서의 상이한 이념들로 분화된다. 사회운동 내부에 새로이 이념적 갈등의 구도가 자리를 잡게 된다.

3. 이념 없는 시대의 이념들

1) 거대 이념의 붕괴

1987년이 이러한 이념적 대결의 장을 바꾸는 또 다른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으리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말일 것 같다. 그러나 6 · 29 선언은 사실상의 항복선언이었지만 동시에 전두환 정권의 전략적 후퇴를 위한 전술이었다. 그들은 이 후퇴를 통해 자신들의 전면적 와해를 저지하고 집권을 위한 새로운 전략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갈등을 외생적으로 이념화하던 방법은 더 이상 쓰기 어려워졌지만, 그건 사실 써봐야 별로 먹히지 않던 이전의 상황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그건 오히려 지하에서 비가시적인 방식으로 진행되는 대립을 합법적 공간으로 끌어올린 것이었다고 해야 할 듯하다.

이념적 구도에서 결정적인 사건은 오히려 1990~1991년에 걸쳐 진행된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였다. 이미 효과를 거의 상실한 낡은 반공주의 이념을 밀고 들어가며 진행되던 사회주의로의 내생적 이념화는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내건 체제가 붕괴해버리는 사태 앞에서 갈 곳을 잃게 되었고, 그 이념의 힘을 통해 지하운동의 무게를 견디어내던 이들은 발 딛고 서 있을 지반이 무너지는 곤혹스러운 사태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외생적으로 부여되는 적대적 이념이 힘을 잃고, 내생적으로 정립한 긍정적 이념도 힘을 잃은 상황에서, 그런다고 사라질 리 없는 사회적 불화와 갈등은 이제 이념 없이 드러나고 이념 없이 출구를 찾아야 하게 된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이념의 구속력은 관성을 갖기에 단번에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힘은 시간이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각자의 조건에서 발생한 불화와 갈등이, 그것을 수렴하도록 모아주던 틀이 사라짐에 따라 각이한 방향으로 발산하게 된다.

2) 이념을 벗어난 이념들

내생적 이념 안으로 수렴되던 불화와 갈등이 거대 이념 없이 자기 발로 서서 독자적인 운동을 펼치게 된 것은 대략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시절이었던 것 같다. 따지자면 일제 강점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여성운동이 새로이 진보적 운동의 독자적 전선을 펼치게 된 것은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이 만들어진 1987년인데, 남녀평등의 문제를 현실적 이슈로 제기하면서 여성들 고유의 요구를 전 사회적으로 현행화한 것은 남성 군가산점제도 폐지운동을 시작했던 1990년대 중후반이다. 환경운동도 거슬러 올라가면 공해추방운동연합이 만들어진 1988년부터 거대 이념으로 회수될 수 없는 고유한 이슈를 본격 제기하기 시작했는데, 1993년 8개 지역조직이 참가한 전국적 운동단체 ‘환경운동연합’이 만들어지면서 환경문제는 새로이 사회의 중심적 문제로 자리 잡게 된다.

1993년 산업기술연수생제도를 통해 본격적으로 수입되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수입 직후부터 극단적 착취와 인권유린, 그것을 조장하는 법적 제도로 인해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2003년, 4개 이주노동자 운동단체가 명동성당 등에서 노동허가제 등을 요구하며 1년 이상 진행될 장기간 농성을 시작한다. 2003년 고용허가제법이 통과되었고, 2005년 이주노동자노조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2015년 대법원 판결로 합법화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집요한 탄압으로 무력화된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자기 소속의 노조 탄압에 대해 가끔 내는 성명서 말고는 어떤 지원도 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자 계급’ 안에 존재하는 불화의 심각성을 드러내게 된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불화 또한 이념을 넘어선 발산의 선을 그리며 분열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그 갈등이 심화된 경우라 하겠다. 1990년대 중반경 한국에 상륙한 신자유주의는 이전의 근대화론처럼 경제학적 형식으로 인해 이념의 색을 지운 또 하나의 이념이었다. 이 이념의 영향 아래 김영삼 정부는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조치를 도입하는데, 1997년 이른바 ‘IMF 위기’ 이후 들어선 김대중 정부는 돈줄을 쥔 IMF의 ‘권고’에 따라 비정규직 도입을 전면화한다. 노동운동의 저항이 있었지만, 2000년 시작된 한국통신 비정규직 파업은 ‘민주노조’에 속한 한국통신노동조합의 철저한 외면과 거부를 통해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분열이 대립 직전으로까지 어느새 진전되었음을 보여준 징후적 사건이었다.

3) 거대 이념 붕괴 이후의 거대 이념화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배자들의 입장에서도 다른 맥락이지만 어쩌면 유사성을 갖는 이념적 변화를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경제학적 이념이 레이건 정부의 미국과 대처 정부의 영국을 필두로 세계 안에 자리 잡은 것은 1980년대인데, 이것이 한국에 들어와 힘을 획득한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0년대였다. 작은 정부와 ‘시장에 맡기라’는 정언명령하에 기업의 자유를 가로막는 모든 규제의 철폐, 이를 위해 투기적 금융 등에 대한 규제나 고용안정성을 위한 규제 등을 철폐를 주장하는 이 새로운 이념은 개인이나 국가조차 기업을 모델로, 비용과 이익의 계산 아래 움직이는 경제주체로 만들 것을 주장한다. 개개인을 하나의 전체인 ‘국민’으로 묶어주던 이전의 근대화 이념이 붕괴한 자리에, 그와 정반대로 개개인에게 각자 알아서 하고 그 후과(後果) 또한 각자 알아서 감당하라는 이념이 들어선 것이다.

이와 달리 과거로 되돌아가는 양상으로 새로운 이념을 채택하여 재발명하려는 시도도 이 시기에 시작된다. 과거에 주체사상이나 사회주의 이념 아래 운동하던 이들, 혹은 그런 이념적 지향성을 갖고 연구하던 지식인들이, 사회주의 붕괴 등을 거치면서 이전 이념을 뒤집어 깃발을 만들고 스스로를 ‘뉴라이트’라고 자칭한다. 대체로 1998년 《시대정신》이라는 잡지를 만들면서 모여든 이들이 시작이라고들 하는데, 이후 2004년 자유주의 연대를 만들면서 어느 정도 조직적인 대열을 짰던 셈이고, 이명박 정부 이후 정계에 진출할 기회를 잡게 된다.

이들이 이전에 이념적 전쟁을 수행하던 반공주의와 유사한 것은 이들 또한 긍정적인 이념적 내용 없이 대부분 진보진영의 주장에 반대되는 주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대타적’ 이념이란 사실이다. 긍정적 내용이라 할 만한 것을 찾는다면,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서까지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점이다. 이전의 반공주의조차 시도하지 못했던 이 과감한 시도를 가능하게 해준 것은 ‘근대화론’ 덕분이었다. 반공주의와 근대화론의 결합이란 점에서 이들은 1970년대 박정희의 이념 안으로 되돌아간 것이라 하겠다.

미래에 대한 긍정적 전망은 거의 갖지 못한 채 그저 과거 역사에 대한 ‘반‐진보적’ 해석만을 고유한 내용으로 갖고 있는 이들은, 이념적 전쟁은 물론 거대 이념의 대결이란 구도마저 와해된 이후에 이념적 전쟁에 대한 헛된 꿈으로 회귀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거대 이념이 틀을 벗어나 분화되기 시작한 새로운 이념들의 발산을 보지 못한 채, 이전에 자신들이 반대하던 과거의 이념으로 되돌아간 것이었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라기보다는 반동적이었다 해야 할 것 같다. 이원적인 대립구조에서만 작동하는 거대 이념 말고는 이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는 낡은 상상력, 그리고 진보적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진보적’ 정치권의 중요 자리를 대부분 자리를 차지한 조건에서 정치권에 진입하기 위해 선택한 궁여지책이 손을 잡은 결과였을 것이다.

4) 이념들의 이념, 혹은 내용 없는 이념

다양한 입장에서 내생적 이념들이 자라나기 시작한 시대, 그래서 불화를 표현하는 다양한 이념들이 고유한 목소리를 내는 시대, 불화를 하나로 모아들이는 지배적 전선이 사라진 조건에서 그 이념들이 각개 약진하며 발산하는 시대가 시작된 셈이다.

상이한 입장들의 내생적 이념화가 제각기 발산하는 이런 상황에서 거대 이념을 대신하여 대중들에게 수렴의 지점을 제공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아마 ‘여론’이었을 것이다. 이전에는 독재정권의 지배 아래 권력의 충실한 종이었던 언론이 급속히 권력을 강화해가면서 ‘밤의 대통령’이란 자리를 얻게 된 것은 이런 상황 때문이었을 터이다. 주류 언론사들이 주도하여 만들어내는 여론이 이슈화하는 방식에 따라 대중들은 사회운동이나 이념들, 혹은 사안들에 대해 판단하게 된다. 대중의 그런 감각에 따라 사회운동은 자신의 진행 방향을 재조정한다. 이전에는 여론이 지배적인 이념을 따라갔다면, 이제는 이념들마저 지배적 여론을 따라가는 장이 만들어졌다 하겠다.

그러나 여론에 대해 자신들이 행사하는 권력을 지나치게 ‘사적으로’ 사용하고, 자신들이 가진 권력을 지나치게 남용함에 따라, 그에 대한 반발이 일어난다.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통신망은, 이전이라면 힘을 가질 수 없었을 이러한 반발이 모이고 흩어지는 새로운 공간을 제공한다. 2000년에 시작되어 급속하게 확대된 ‘안티조선운동’은 정치권력이나 운동의 이념들에 대해 언론사가 갖는 힘을 상대화하면서 여론을 양분하는 새로운 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는 사건이었다. 이후 모바일 통신과 SNS를 통해 여론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양분되고, 많은 경우 여론 또한 양분되어 대립하는 새로운 구도가 형성된다.

팽팽하게 대치하던 이 새로운 대립 관계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 것인지, 다시 말해 어디에 미래가 있는지를 보여준 것은 2002년 노사모를 필두로 한 인터넷 대중이었다. 2002년은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존재하는 ‘흐름으로서의 대중’이 노무현, 월드컵, 효순 · 미선이라는 초점을 통해 그때마다 강력하게 중심화되며 수렴적 힘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 해였다. 개개인을 하나의 대중으로, 흐름으로 변환시키는 새로운 여론의 공간이 갖는 현실적인 힘이 극적으로 부상했다. 이 온라인 공간을 통해 형성되어 광장이나 거리라는 오프라인 공간에 그때마다 다른 얼굴로 등장하는 하나의 대중이, 대중-흐름이 탄생한 것이다. 대중의 집단지성이 된 ‘여론’은 과거의 매체들이 만들어내는 여론을 초과하고, 때론 그것을 와해시키기도 한다. 내생적으로 탄생한 이념들은 여전히 각자의 길을 가지만 인터넷 여론을 통해, 특히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대중의 흐름을 통해 새로운 결속과 수렴의 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대중은 많은 경우 정부와 대결하고 대립하는 방식으로 형성되기에 결코 ‘하나의 전체’가 아니었지만, 그렇게 정부에 대한 부정의 힘을 행사할 때마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대결하게 되면서, 오히려 정부 이상으로 새로운 전체를 자처한다. 이는 특히 100만 대중으로 표상되는 대규모 대중이 전국적 시위를 동시에 개최하는 것을 통해 직접적 가시성을 획득했다. 노무현-대중은 당이란 조직 안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기성 매체 및 막대한 자원을 가진 지배세력과 대결하여 끝내 대통령으로 만들어냄으로써 자신들의 위상을 국민 전체와 포개는 어떤 치환을 시작했다.

이 치환은 이전이라면 내용을 통해 구성되던 이념을, 표현형식을 통해 구성되는 새로운 양상의 ‘이념’으로 치환하는 것이기도 했다. 즉 이전에는 어떤 이념이 있고 그것을 수용하거나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다면, 이제는 대중들이 직관적으로 포착해 목소리의 흐름을 만들면 그것이 ‘이념’이 되게 된다. 내용 없는 ‘텅 빈’ 표현형식인 이념, 그렇기에 어떤 내용도 담을 수 있는 이념이 수많은 이념들의 이념으로 출현한 것이다.

5) 잃어버린 이념을 찾아서

2016~2017년 촛불대중은 하나의 집중된 요구로 하나의 전체가 되었다. 전체를 표상/대변한다고 하던 이를 ‘국민’의 이름으로 권좌에서 끌어내렸기에 그 촛불대중은 분명 새로이 출현한 하나의 전체였다. 심지어 〈조선일보〉마저 한때 그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은 이와 관련해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렇기에 그 전체 바깥에 있음을 확인해야 했던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더는 지속될 수 없는 어떤 위기에 처해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그 시위의 끝에서 축출된 대통령을 위해 태극기를 들고 모여들기 시작한 이들이 바로 그랬다.

필경 한국전쟁과 박정의 시대 근대화의 경험 속에서 반복적으로 보았던 이념적 전쟁을 자명하게 받아들였을 것이고, 그런 구도 속에서 박정희의 유산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으며, 그렇기에 박정희의 딸이기도 한 대통령의 축출을 자신이 속해 있던 전체의 몰락으로 체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사이 발생한 이런저런 이념적 구도의 변화는 어차피 별 관심사가 아니었겠으나, 이명박 정부가 재구성한 ‘종북’의 이념으로 자신들이 시대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기에, 그 추락과 붕괴는 더욱더 충격적이고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태극기를 들고 모여들기 시작한 노인들의 정서는 자신들의 시대가 이제 완전히 끝이 난 건 아닌가 하는 불안과 두려움에 물들어 있었다. 이후 기계적으로 증폭된 목소리에 배인 분노는 자신들이 서 있었던 자리가 사라진 데 대한 분노였으며, 고집스레 외쳐대는 구호는 설 자리 없이 소멸해가는 운명에 대한 항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외칠 수는 있어도 이미 완전히 달라진 이념적 구도를 바꿀 순 없는 이 분노와 항의는 단지 집회에 모여드는 노인들만의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도자를 ‘국민’의 탄핵으로 잃은 보수당과 그 ‘국민’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보수언론, 그리고 노인들의 거대한 결여와 공허감에 가짜뉴스를 공급함으로써 부와 명성을 얻는 길을 개척한 보수 유튜버들이 어느새 그 주위에 몰려들었다. 유튜버들이 태극기집회 노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말과 영상들을 이른바 ‘레가시 미디어’라는 보수언론은 사실과 섞어 정말인지 아닌지 식별할 수 없는 기사들로 ‘중화’하여 증폭시키고, 보수당은 이렇게 제기된 사안들을 현실 정치의 현안으로 변환시키는, 혹은 보수당이나 보수언론에서 새어 나온 단서로 소설을 쓰듯 부풀리고 그것이 다시 보수언론과 보수당으로 되돌아가며 서로의 말들의 순환회로가 만들어졌다. 잃어버린 이념을 찾기 위한 필사적 시도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현실의 문제라고 믿고 그것에 마음이나 감각을 내줄 사람들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돌고 있는 늙은 세 마리 ‘맹수’들 말고는 없었던 것 같다. 물고 물리며 순환적으로 증폭되던 그 게임은 2020년 선거에서의 유례없는 패배로 막을 내렸다. 그래도 다시 돌아올까? 그럴 것이다. 그것 말고는 세상을 볼 줄 몰랐고, 그것 말고는 세상을 살 줄 몰랐던 이들이 생존해 있는 한, 그 게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눈과 귀를 유혹하는 데서 생존방법을 찾는 이들과, ‘진보적’ 방향에 거슬러 시선을 모으는 센세이셔널리즘 없이는 생존을 지속할 수 없는 거대 언론 역시 자신의 생존기반과 쉽게 결별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선거 이후 자신들이 이 사회의 주류라고 믿고 있던 보수언론은 한국사회의 주류세력이 달라졌고 자신들은 그런 줄도 모르는 채 주류세력과 싸우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 같고, 보수당 역시 자신들이 몰두해 있던 정치게임에 미래가 없음을 깨달은 것 같다. 눈치 빠른 올빼미들이 날개를 편 지금, 태극기를 든 노인들의 집단적 고독은 더 깊은 어둠 속에 빠져들게 될 것 같다.

4. 공정성의 이념과 도덕주의

최근 한국사회에서 이념적 갈등을 걱정하는 시선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서로 얘기를 섞어볼 여지도 없는 듯한 극단적 분란과 대립일 것이다. 태극기 부대-보수 유튜버-보수언론-보수당을 한편으로 하고, 촛불대중-SNS 중심의 진보적 매체-진보적 정치인과 정당 등을 다른 한편으로 하여 벌어지는, 어쩌면 사소한 것까지 치명적 대결로 만드는 필사적 논쟁들. 이를 위해 반복되는 극단적인 여론몰이. 긍정적 방향도 없고 미래도 없기에 소소한 것들마저 먼지를 털어야 하는, 그런 만큼 더더욱 지켜보는 이를 피곤하게 하는 이념적 갈등임이 분명하다. 미래가 없다 해도 현재가 없는 것은 아니니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신들에게 미래가 없음을 깨닫기 시작했다면, 이런 구도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의문이다. 다만 그러한 갈등은 가짜뉴스까지 동원해 과도하게 증폭시키지 않고는 존속하기 어려운 것이니, 몸집을 불리는 소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소란에 미래가 있다고는 하기 어렵다. 미래가 없는 갈등이라면 보이고 들리는 것보다 심각하지 않다고 믿어도 좋지 않을까?

이보다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들이 부추기며 증폭시킨 것이기도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닌, ‘젊은 세대’ 속에 퍼져 있고 또 퍼져가고 있는 어떤 ‘이념’이다. 이는 최근 인천공항 비정규직을 정규화한 것에 대해 취준생들이 보여준 것이고, ‘조국 사태’ 때 조국 딸에 대해 입시에 목숨을 걸었거나 걸었던 적이 있는 학생과 부모 모두가 보여준 것이며, 페미니즘에 대해 젊은 남성들이 갖고 있는 반감이나 거슬러 올라가면 군 가산점 논쟁 때까지 소급될 수도 있는 것이다. 최근 트랜스젠더 입학자를 쫓아낸 한 여자대학 학생들의 반응이나 ‘워마드’ 같은 이른바 ‘영(영) 페미니스트’들이 성소수자들에 대해 퍼붓는 비난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흔히 사용하는 표현을 그대로 쓰면 ‘공정성’이란 말로 요약되는 이념이다. 기회의 공정성, 경쟁조건의 공정성을 뜻하는 이 말은 공정성이란 개념과 같은 단어였던 ‘정의’를 자리를 차지하여 어느새 상이한 이해나 이념들에 대한 규제원리로서의 이념이 된 듯하다. ‘아빠 찬스’ 혹은 이로부터 유추해서 표현하면 ‘비정규직 찬스’ ‘성별 찬스’ 등 자신들이 갖지 않은 모든 것을 ‘특권’이라고 간주하여 공정성에 반하는 것으로 비판하는 여론이 그것이다. 그래서 이 비판은 극히 도덕주의적 형태를 취한다. 남들 없는 ‘찬스’를 쓰는 것은 ‘비도덕적’이라는 비판.

이는 모든 이들, 특히 도덕적으로 깨끗해 보이는 진보 인사들에 대해 ‘니들이 그래 봐야 까놓고 보면 우리보다 나을 것 없는 위선자들이지’라며, 자신들의 비도덕성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때까지 신상을 털고 과장된 비난을 퍼붓는 보수언론의 반도덕적 도덕주의와 쉽게 이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도덕주의는 ‘도덕적 우위성이 진보의 힘’이라는 믿음을 통해, 대개는 기득권을 버리라는 도덕적 요구를 통해 사회운동에 접근하게 되었던 진보적 성향의 사람들에게도 빠른 호소력을 갖는 것 같다. ‘조국 사태’에 이어 정의연과 윤미향에 대한 보수언론과 보수당—그들이 위안부 운동에 대해 그동안 보여준 반감에도 불구하고(!)—의 비판이 진보층 안에서도 쉽고 빠르게 설득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보수언론에 미래가 있는 이념이 있을 수 있다면, 종종 ‘세대론’까지 동원하며 설명되고 정당화되는 젊은 세대의 이 공정성의 도덕주의와 자신들의 반도덕적 도덕주의를 식별 불가능하게 섞어놓게 될 때가 아닐까? 새로운 도덕주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인가? 아마도 당분간은 그럴 것 같다. 그것은 ‘반공’ 대신 ‘비도덕’이라고 레이블링된 자리에 누군가를 밀어 넣는 것으로 그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이 정당화되는 시대, 그런 식의 외생적 이념화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적 전쟁의 시대일 것이다. 이전의 물리적 폭력이 정신적 폭력으로 대체되고, 말할 자격을 박탈하고 퍼붓는 말 없는 폭력 대신, ‘진실’을 말하라고 요구하지만 거대한 말들의 홍수로 그 말을 들리지 않게 하고 무력화시키는 수다스러운 폭력이 주도하는 새로운 내전의 시대가 될 것이다.

공정성의 도덕주의가 새로이 지배적 이념이 된다면 그간의 갈등은, 각자의 입장에서 자라나온 이념들의 갈등은 새로운 조절과 균형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이 난감한 이념적 갈등으로 위태로워 보이는 상황을 호전시키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단언컨대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오히려 갈등은 점점 더 작은 문제, 점점 더 왜소한 사안으로까지 확대될 것이고, 갈등의 크기는 증폭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선 그 도덕주의는 자신이 없는 ‘찬스’를 사용했다며 남들을 비난하는 부정적 도덕주의이고, 신상을 털어 남들을 비도덕적으로 만드는 수다스러운 도덕주의이기 때문이다. 어떤 의혹이나 단서만 있다면, 그것을 일관되게 물고 늘어진다면 확실한 증거가 없어도, 심지어 반대증거가 있어도 무시하고 단죄하는 요란한 여론몰이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화 비판에 이르기까지 이미 누차 반복된 것처럼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선 증폭과 과장, 일방적 조롱과 사실의 조작을 이용하는 데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는 뻔뻔한 양심을 기반으로 하는 도덕주의이기 때문이다.

좀 더 본질적인 것은 이러한 도덕주의를 떠받치는 ‘공정성’이란 관념 자체가 경쟁조건의 동등성을 요체로 하기에 경쟁적 갈등의 표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고, 그러한 경쟁을 통해 자신의 이득을 잃지 않고 싶다는 개인주의적 욕망과 계산이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공정성의 이념은 모든 행동 주체를 ‘기업’이라 가정하고, 투자와 이득을 모델로 이루어지는 기업의 경쟁을 삶의 모델로 만들었던, 그렇기에 시장의 공정성, 경쟁조건의 공정성을 세상의 원리로 삼고자 했던 신자유주의의 이념과 정확하게 동형적이다. 이러한 공정성 개념이 이념이나 원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모든 이득을 위한 행위와 그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은 정당화되고 평준화되며, 이득이 있는 모든 자리는 경쟁과 갈등의 자리가 될 것이다.

또 하나 추가해야 할 아이러니는 경쟁조건에서의 모든 ‘찬스’를 비난하는 이 공정성의 이념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자원과 재산이라는, 어쩌면 최고의 ‘찬스, 최대의 ‘특권’에 대해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찬스, 특권이라고 생각할 여지도 없는 당연한 권리라고 믿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는 신자유주의적 이념에 속함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라 하겠다. 그게 아니면 시험 보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경쟁방법이라고 알기에 시험 보는 것이 제일 공정하다고 믿고, 시험 보는 조건을 동등성만이 최고의 공정성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이런 공정성 개념이 이념이 되는 사회란 입시생의 멘탈이 지배하는 사회를 뜻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대통령도 시험 보아서 뽑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입시에 젊은 시절을 몰수당했던 젊은 영혼의 복수인 셈이다.

이런 종류의 관념이 젊은 세대 사이에 쉽게 확산되는 것은, 일자리가 급속히 줄어들고 있고, 일자리 중에도 ‘좋은’ 일자리가 매우 적다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지만, 불안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러한 공정성 관념을 그런 현실이나 ‘세대’의 이름으로 정당화할 순 없는 일이다. 그런 공정성이 확대된다 해도 일자리를 두고 다투는 고통이나 갈등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며, 단지 부분적으로(!) 균등화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균등화는 기회의 차이에 대해 좀 더 민감하게 하기에 점점 더 작은 차이에 불만을 갖게 하고 갈등으로 비어져 나오게 할 것이다. 즉 이런 공정성의 개념이 포괄적 이념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은 불화나 갈등을 축소하고 이념적 갈등을 완화하기보다는 반대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5. 이 이념적 갈등을 어찌할 것인가?

경쟁조건의 공정성은 조건의 차이를 최대한 보지 않고 동등화할 것을 요구한다. 즉 거기에는 무조건적 공정성의 관념이 내장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갈등은 불화의 산물이고, 그 불화는 현실적인 조건과 관계의 산물이다. 동일하지 않은 조건, 불평등하고 대개는 억압적인 조건들이 모든 불화와 갈등 밑에 있다. 갈등은 그 조건으로 인해 야기된 불화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갈등이 사라지면 불화가 사라진 것이라는 믿음에서 갈등이란 없어져야 한다고 하면 그것은 불화를 가리고 그 밑에 있는 고통을 억압하는 것이 된다. 신체의 고통은 신체에 발생한 어떤 ‘문제’—불화!—의 표현인 것처럼, 그래서 그저 진통의 방식으로 고통을 제거하는 것은 신체의 병을 깊게 한다. 반대로 신체의 상태를 진단하고 병을 치료하기 위해 고통을 이용해야 한다. 무상이나 무아처럼 심오한 개념과 더불어 고통이 최고의 지혜 중 하나가 되고, 지혜로운 삶의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불화나 갈등은 그것의 존재 이유를 부정할 때 가장 심각해진다. 불화와 갈등이 있다 함은,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 그래서 해결하고 싶은 어떤 것이 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그것은 제거하려 할수록 더욱 강해진다. 무시하고 억누르려 할수록 더욱 강력해진다. 존재하는 불화와 갈등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들어 주어야 한다. 들어 주어야 할 것을 제대로 들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우회로를 돌아 되돌아온다. 듣지 않을 수 없는 큰 목소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우리는 이런 갈등의 사례를 세월호 사건에서 새삼 확인한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비통함은 호소할 곳을 찾았던 것이고, 빈소에 오긴 했어도 제대로 듣고 가지 않은 대통령에게 가겠다고 나섰던 것도 자신들의 그 비통함과 고통을 들어 주었으면 하는 소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들을 줄 모르는 대통령과 듣는 게 중요한 줄 모르는 아랫것들은 이를 그저 ‘시위’로 간주하여 막고 진압했다. 그렇게 그들을 거기서 해산시킬 수야 있었겠지만, 어떻게든 말하고 싶은 게 있는 이들이 반복하여 되돌아오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반대로 잘 들어 주고 그 비통함을 최대한 덜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면 심지어 국민 모두가 비난해도 감싸줄 지지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듣지 않으려 했기에 그들은 탄핵으로 정권이 무너지는 날까지 그들의 목소리에 포위되어 살아야 했다. ‘다문(多聞)’이란 단지 과거에 아난이란 인물에 귀속한 한 특성이 아니라, 귀 기울여야 할 것이 넘치는 조건에서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덕목이나 좋은 삶을 위해 중요한 능력으로 재해석되어야 함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금의 불화와 갈등은 다양한 매체, 심지어 이전에는 ‘진실의 보도’를 의무로 믿던 매체들마저 일방적인 해석과 지나친 과장에 가짜뉴스까지 덧붙여 말하기에, 그저 듣는 것만으론 안 된다. 들은 얘기가 옳은지를 따져보고 생각해야 한다. 관련된 사실들을 찾아보고, 다른 말들을 찾아 듣고 무엇이 옳은지를 정확하게 보아야 한다. 들은 것과 본 것, 들은 얘기와 따져본 것을 대조하고 비교하여,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무엇이 저렇게 말하도록 하는지를 올바르게 생각해야 한다. 말해진 것들을 그것이 기대고 있는 연기적 조건에 비추어 생각하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바르게 보고[正見], 바르게 생각해야 한다[正思惟]. 그럴 경우에는 심지어 가짜뉴스와 가짜 불화, 부당한 갈등마저 진실을 위해, 좋은 삶을 위해 기여하게 될 것이다.

듣는 것만이 아니라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불화를 말하는 것. 하지만 ‘무엇을’ 말하는가 이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말하는가이다. 모든 익숙한 것은 우리의 감각과 인식 속으로 제대로 들어오지 못한다. 매일 보는 것은 있어도 대충 보고 쉽게 잊는다. 그렇기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려면, 익숙한 통념이나 손쉬운 공감에 기대어 목소리를 높이는 것보다, 오히려 그 익숙함을 깨면서, 문제나 갈등을 보는 통념적인 틀을 벗어나서 말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중생이 곧 부처고, 번뇌가 곧 깨달음이라 하지만, 또한 일상의 삶이 바로 극락이라 하지만, 중생의 번뇌와 일상에 익숙해진 감각이나 사유는 중생 속의 부처를 보지 못하고, 번뇌 속의 깨달음을, 일상 속의 극락을 알지 못한다. 일상의 삶에서 평상심과 무위의 도를 추구했던 선사들이 파격의 언행을 사용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불화나 갈등 또한 그렇지 않을까? 그것을 다루는 기존의 적지 않은 개념들이 있고, 그것을 문제화하는 이념들을 통해 그것은 갈등으로 표면화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보아도 충분히 보이지 않고, 들어도 충분히 들리지 않는다. 그것을 들리게 하려고 볼륨을 올리고 보이게 하려고 빛의 강도를 높이지만, 강한 소리와 빛이 그러하듯 그것은 보고 듣는 이를 빨리 ‘피곤하게’ 하고 쉽게 지치게 한다. 여론이란 이름 아래 동일자의 폭력이, 이견이나 반론을 묵살하고 묻어버리는 전체화의 권력이 작동하기 쉽다. 이념적 갈등에 대해 많은 이들이 힘들어하거나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갈등이 있다’는 사실 못지않게 모든 이의 동의를 생산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이 거대한 소리와 빛 때문 아닐까? 하나로 모을 수 없는 많은 이념들, 수많은 목소리에 대해 동의를 강요하는 말 많은 여론의 소란 때문은 아닐까? 많은 소란과 갈등에 사람들이 지치고 피곤한 상황이라면, 오히려 듣기를 강요하는 높은 고함소리가 아니라, 피아니시모의 작은 목소리로 말해도 귀를 쫑긋하게 하는 특이한 목소리 아닐까? 조명 없는 희미한 빛을 사용해도 시선이 모이게 하는 파격의 언행으로 불화를 드러내는 능력 아닐까?

또 하나, 날카롭고 감정이 실린 말들, 무겁고 엄숙한 말들, 심각하게 힐책하는 말들은 방어기제를 발동시킨다. 굳이 ‘나’를 겨냥한 비난이 아닌 경우에도 그 날카롭고 힘든 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아’라는 방어기제를 가동하게 한다. 비난에 대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이 그런 문제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에 이유를 달고 정당화하게 한다. 터져 나온 불만이나 불화를 담아내기보다는 쳐내게 한다. 반면 무거운 얘기도 가볍게 하고, 심각한 얘기도 웃으면서 하고, 감정적인 문제도 감정 없이 쿨하게 하면 듣기 쉽고 받아들이기 쉽다.

파격의 언행을 구사할 때 선사들이 보여준 놀라운 유머 감각, ‘우주적 스케일의 유머’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래서 불화나 갈등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개인적 및 집단적 자아라는 방어기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하려는 말은 전달될 것이고 보여주려는 것은 보이게 될 것이다. 덧붙일 것은 이때 ‘유머 감각’이란 농담으로 남들 웃기는 재주가 아니라, 남들 얘기에 즐겁게 웃을 수 있는 능력이고, 진지함을 가벼움의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란 사실이다. 이는 자신이 속한 상황에 매몰되어선 작동하지 않는다. 상황에서 거리를 둘 수 있을 때, 그 상황 속에 처한 자신을 웃으며 볼 수 있을 때, 그 상황에서 정말 자신이 들어야 할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자신을 보며 웃을 수 있을 때, 자신에게 밀고 들어오려는 얘기를 수용할 수 있다. 불화와 갈등을 이해하고 해결하게 하는 데 아주 중요한 미덕이 바로 유머감각이다. 웃으며 말할 수 있고, 웃으며 들을 수 있는 능력, 웃으며 말하게 하고 웃으며 듣게 하는 능력. ■

 

이진경 / 본명 박태호.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 서울대 사회학과, 동 대학원 졸업.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실질적 전공은 잡학이다.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철학과 굴뚝청소부》 《미-래의 맑스주의》 《노마디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대중과 흐름》 《불교를 철학하다》 《설법하는 고양이와 부처가 된 로봇》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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