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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대한 계급/세대갈등의 교차와 전위 / 이도흠
특집 | 한국사회의 갈등, 그 극복을 위한 청문(聽聞)
[83호] 2020년 09월 01일 (화) 이도흠 한양대 교수

1. 머리글

21세기에도 세계는 계급, 종교, 인종, 민족, 이념, 지역, 세대, 젠더 사이의 갈등으로 들끓고 있다. 기원전 4,000년 이래로 늘 계급갈등이 치열하였으며, 사회적 영향은 지극히 미미했지만 세대 사이의 충돌 또한 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 종교, 인종, 민족, 이념의 갈등은 세계대전과 대량학살을 야기하는 바탕을 형성하였으며, 21세기에는 종교와 인종의 갈등이 곳곳에서 전쟁과 테러의 밑불 구실을 하고 있는데, 젠더갈등도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사회에도 계급갈등이 지배적인 가운데 분단 모순과 한국전 경험으로 이념갈등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압축적 근대화와 독재정권의 분할정책으로 인하여 도시와 농촌, 영남과 호남 사이의 지역갈등의 골이 깊었다. 최근 들어 이주민과 난민, 미투운동, 청년실업 등의 요인으로 인하여 인종갈등, 세대갈등, 젠더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갈등은 36~37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늘 최하위권을 형성할 정도로 첨예하다. 이의 사회적 비용 또한 200조 원으로 환산할 정도로 막대하다.

작년에는 조국 사태를 놓고, 언론이 수백만 건의 기사를 쏟아내고 주말마다 서초동과 국회, 광화문에 수백만 명이 모여 집회를 하고 국민 대다수가 조국 수호층과 비판층으로 나뉘어 반년이 넘게 소모전을 되풀이하였다. 같은 진보진영에서도 수호하는 사람과 비판하는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서로 의절할 정도로 갈등은 화해의 틈을 조성하지 못한 채 극단으로 치달았다. 철저히 진영논리에 갇힌 주장과 궤변, 언론의 가짜뉴스가 난무하여 공론장은 붕괴했다. 여러 갈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가장 핵심적인 갈등은 계급갈등과 세대갈등이었다. 두 갈등 가운데 어떤 것을 더 주요 모순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담론들이 갈등만큼 치열하게 맞섰다.

이에 불평등을 중심으로 계급갈등과 세대갈등의 원인, 양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단, 현실은 권력의 개입, 이데올로기의 반영, 세계관의 투영, 형식의 매개, 기호의 한계, 이미지의 굴절 요인에 의하여 왜곡된 양상으로 재현된다. 갈등은 담론적 재현과 정치적 재현에 따라 심하게 왜곡되며, 그에 따른 결과로 통합되기도 하고 더 심화하기도 한다. 이에 갈등의 원인과 양상을 살피고, 이것이 담론과 정치로 재현되는 양상과 그 괴리에 대해 분석하며, 마지막으로 갈등을 해소하는 대안에 대해 모색한다.

2. 불평등과 계급갈등의 원인과 양상

1) 불평등과 계급갈등의 기원과 역사

모든 사회적 갈등은 자원 분배의 불평등에서 기원한다. 문명 이래의 인류사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갈등의 역사라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다. 계급갈등은 불평등에서 발생하며 그 정도와 똑같이 비례한다.

그동안 700만 년의 역사를 가진 인류가 수렵채취 시대에는 평등한 공동체를 유지하다가 농경사회 이후 계급이 갈라지고 불평등이 시작된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작년에 이를 뒤집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에이미 보가드(Amy Bogaard) 등 국제 연구팀은 유라시아 전역의 150곳에 달하는 고고학 유적지에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지니계수를 측정하였다. 이 결과, 인류가 농경사회 이후에도 8,000년 동안 평등한 공동체를 유지하였으며, 기원전 4,000년을 기점으로 소가 끄는 쟁기농법을 도입한 이후에 생산성이 10배나 차이가 나면서 불평등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이 주장을 받쳐주면서도 이의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차탈회유크의 사례다. 기원전 9,400년에서 8,000년 사이의 신석기 시대에 농경을 한 터키 차탈회유크인들의 동쪽 언덕 유적지를 보면, 집과 곳간의 크기, 소유물이 같았으며 공공장소, 행정건물, 엘리트의 주택이나 숙소에 관련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반면에, 기원전 8,000년에서 7,700년까지 석기시대에서 청동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주거지였던 서쪽 언덕 9야드 20곳의 건물에 있는 2,429개 석재 가공품을 분석한 결과, 석재도구와 조리 기구에서는 대략 평등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맷돌 등의 도구는 자급자족할 수 없었고 불평등하게 분배되었다.

두 언덕의 차이를 발생한 요인은 무엇인가. 생물고고학(bio-arc-haeology)을 도입하여 차탈회유크의 유골과 잔존하는 동물의 뼈, 곡물,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의 유전자와 단백질에 대해 분석한 클라크 스펜서 라센(Clark Spencer Larsen) 교수 등의 연구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인구증가다. 중기에 접어들어 차탈회유크인들의 인구가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서자 한정된 자원 이용으로 경쟁심이 생기고, 대변 등의 쓰레기도 순환할 수 있는 양을 넘어서자 전염병이 발생하였다. 노동과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증가하자 발굴된 93개의 두개골 가운데 25개에서 골절이 발견될 정도로 폭력 또한 증가하였다.

이들 연구를 종합하면, 인류는 700만 년 동안, 농경혁명을 이룬 뒤에도 8,000년 동안 대다수 집단이 평등한 공동체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공동체의 인구가 주변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서자 공동체의 유대에 균열이 생기고 분배에 대해 불만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기후변동이나 다른 종족의 약탈 등 외부적 요인도 작용하였다. 그러자 쟁기를 가진 자들이 차츰 공동체의 분배에 불만을 품고 더 많은 몫을 요구하였고, 다른 사람 또한 이들이 완전히 이탈하면 더 손해를 볼 것이기에 이 요구를 수용하였다. 이러면서 사적 소유가 보편화하였다. 개인 차원에서는 소유에 대한 욕망과 협력 사이의 갈등과 타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사회 차원에서는 계급이 형성되고 계급에 따라 권력과 가치의 분배도 차등적으로 부여되면서 지배와 통치가 일반화했다.

기원전 4,000년 이래 인류는 한정된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를 놓고 계급끼리 대립하였다. 지배층이 폭력을 독점하였기에 분노와 저항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노예, 농노, 농민의 반란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400년 전 자본주의 출현 이후 자본가가 노동자를 임금을 주고 고용을 하는 대신에 그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하여 이윤으로 전환하고 다시 이것을 자본으로 축적하였다. 1869년에 46%에 이르던 평균이윤율이 10% 이하로 전락하고 여러 위기를 맞자, 자본과 국가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도입하여 노동의 유연성, 공공영역의 사영화, 규제 완화, 합법적 금융사기를 통하여 노동자와 서민을 과도하게 착취하였고, 이 결과 인류는 문명사 이래 최악의 불평등과 계급갈등 상태에 있다.

2) 불평등의 양상

슈퍼 갑부 8인의 재산이 세계 절반인 36억 명과 동등하고, 2019년 기준으로 전 세계 억만장자 2,153명이 46억 명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orld Inequality Database)의 2020년 6월 30일 현재 통계를 보면, 통계측정 연도가 나라마다 다르지만, 세계 주요 국가의 상위 10%는 전체 소득의 4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43.3%, 일본 41.6%, 중국 41.4%, 미국 46.8%, 러시아 45.5%, 영국 35.5%, 프랑스 33.3%, 독일 36.8%, 스페인 34.9%에 달한다.

한 지역과 한 기업 안에서 임금이나 소득 격차 또한 수백 배에 달한다. 한 도시 안에서 상위 10% 소득이 하위 10% 소득의 수백 배에 이른다. 2018년 서울의 경우 상위 10%의 종합소득 평균은 2억 2,600만 9,397원으로 하위 10%의 평균 116만 4,957원의 194배에 달하였다. 2018년 기준 CEO와 일반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의 차이는 미국 265배, 인도 229배, 영국 201배, 독일 136배, 중국 127배에 달한다. 지니계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0.620에 이르며, 멕시코 0.458, 미국 0.390, 영국 0.357, 한국 0.355, 일본 0.339, 독일과 프랑스 0.289, 스웨덴 0.282, 덴마크 0.261에 이른다.

한국도 세계 최상위의 불평등 사회다. 2018년 현재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86%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2009년의 44.38%에서부터 꾸준히 증가한 것으로 박근혜 정권 말기인 2016년 47.76%,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에 48.79%, 2018년에 48.86%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상위 10%의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은 각각 93.9%와 90.8%를 차지한다. 실업률은 4.2%에 달한다. 지금 대략 1,100만 명의 노동자가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이며, 그중 상당수가 정리해고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부동산과 물가를 포함한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악화하였다.

   
 

불평등은 경제적인 모순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몸과 마음을 파괴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해치고 사회불안을 증대하기에 더욱 계급갈등을 조장한다. “불평등이 심할수록 사람들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 대신 경쟁과 힘에 의해 해결하는 전략을 선호하게 된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사회통합이 줄어들며 사회적 관계의 질은 내려가고, 범죄와 폭력은 증가하고, 스트레스가 증가하여 건강은 나빠지고 평균 기대수명이 떨어지며, 사람들 사이의 신뢰수준은 내려간다.” “소득 불평등이 높을수록, 적대감, 인종적 편견이 심하고 여성의 지위도 낮다.”

3) 한국의 계급구조와 계급갈등

이렇게 불평등이 심해지자 계급갈등은 더욱 악화하였다. 한국사회의 계급은 크게 자본가, 경영/관리자, 프티-부르주와, 노동자로 나눌 수 있다. 관습적인 계급론에서 벗어나려면, 객관적인 준거틀로 계급의 범주를 나누어야 한다. 준거틀은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 노동력의 착취 유무, 노동과정의 통제 유무, 소득의 수탈 여부다. 이렇게 구분할 때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노동력을 구매하고 노동과정을 통제하고 소득을 수탈하는 자다. 반면에, 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노동력을 판매하고 소득을 수탈당하며 노동과정을 통제당하는 자다. 경영/관리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노동력을 판매하지만, 소득을 수탈하고 노동과정을 통제하는 자다. 프티-부르주와층은 다양한 직업군을 형성한다. 이 계급은 과장 이상의 회사원, 7급 이상 3급 이하의 공무원, 자영업자 등이 이에 속한다. 불평등이 극단화하자 착취나 수탈당하는 계급이 착취하고 수탈하는 계급에 대한 불만도 극대화하였다. 촛불로 의식이 성장한 노동자들은 불평등을 완화하는 개혁과 정책을 요청하는 한편, 그동안 인내했던 상위 계급의 갑질에 대해서도 저항하고 있다.

4) 불평등의 원인

불평등의 원인은 크게 여섯 가지로,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크기 때문이며, 신자유주의 체제, 기득권 동맹, 이데올로기, 기술격차, 교육격차, 제도적 모순이다. 피케티가 잘 통찰한 대로, “부의 분배의 역사는 언제나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으며, 순전히 경제적인 메커니즘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자본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늘 크기 때문에(r 〉 g), 소득 수준별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획기적으로 증대하여 부과하는 등 이를 상쇄할 공공정책이나 제도를 집행하지 않는 한 불평등은 심화한다.”

하지만, 피케티의 분석만으로 부족하다.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 이후 자본의 수익률을 경제성장보다 큰 폭으로 늘린 주범을 찾아야 한다. 그 주범은 바로 신자유주의 체제와 자본과 국가를 중심으로 한 지배동맹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야만을 제한하던 거의 모든 제도를 규제 혁파라는 이름으로 제거하였다. 가난한 서민과 노동자들의 탄압을 막던 법과 규정들이 풀리자 이들은 자본의 야만에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이 체제는 노동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비정규직을 양산하였다. 이로 거의 절반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이들은 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거의 절반의 임금을 받고 있다. 이 체제는 공동체 유지를 위하여 공공영역으로 유지하던 수도, 전기, 교통, 교육, 의료 등을 해제하여 사영화하였다. 가난한 서민과 노동자들은 공공의 혜택에서마저 소외되고 더 높은 비용으로 이를 이용하면서 생존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특히, 기존의 자본주의와 다른 특성은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비중이 8:2로 역전되면서 금융 부분에서 합법적 사기와 수탈이 벌어진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금융자본은 다양한 방법으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회사를 창설하여 창업자 이득을 얻고, 국가의 대내외 정책을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조절하고, 유리한 조건으로 채권을 인수한다. 이에서 더 나아가 이들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고 수치를 조작하여 사기술이나 이에 가까운 방식으로 천문학적인 소득을 올렸다.

마르크스의 분석대로, 산업자본가든 대부자본가든 그들이 차지한 소득의 원천은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에서 비롯된 것, 곧 기업과 대부자본의 이윤은 실은 노동자가 생산한 것을 빼앗은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착취는 생산 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가의 소비대출은 자본가 소득, 다시 말해 잉여가치 중 재생산에 투여되고 남은 소득이므로 잉여가치에서 보전되지만, 노동자의 소비대출은 노동자 임금에서 이자가 보전된다. 대출금으로 일반적인 상품 구매가 아닌 주식이나 펀드 같은 자산 시장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투자 수익이나 손실과 무관하게 대출이자의 원천은 임금이다. 이처럼 이자의 원천이 잉여가치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노동자 임금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것은 이자를 통한 ‘수탈’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이자는 자본의 확대재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이윤(잉여가치)의 일부를 분배받는 기능을 넘어 미래 노동 소득(임금)에 대한 수탈 구조로 확장될 수 있다.”

후기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자본-국가-보수언론-사법부-종교권력층-전문가집단과 어용지식인’으로 이루어진 기득권 동맹이 견고하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는 자본의 강탈과 사기를 견제하기는커녕 이를 방조하고 제도적으로 지원하며, 때로 자본의 편에서 노동자에게 폭력을 가한다. 조세정책은 불평등 완화와 정반대 방향으로 간다. 언론은 자본에 유리한 프레임을 구성하면서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종교권력층은 불평등을 교리적으로 합리화한다. 정부와 국회가 구조적 폭력, 곧 노동배제와 정리해고를 합리화하는 법과 제도를 제정하고, 사법부는 자본에 유리한 판결을 하며, 전문가집단과 어용지식인은 불평등을 심화하거나 옹호하는 담론을 구성한다. 이에 기득권 동맹은 자신만이 아니라 자식들의 자본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리창을 강화하기 위하여 모든 권력과 자본, 정보를 동원하여 제도와 법을 바꾸고 안 되면 편법을 구사한다. 서민과 노동자 또한 욕망의 증식에 사로잡혀서 탐욕을 키우고 살아남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쟁한다. 복지를 행하기는 하지만, 자본의 수익을 어느 정도 보장하고 사회 해체를 막고 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선에 늘 머문다. 이들은 서로 이권을 주고받으면서 유리창을 견고히 한다.

기술격차는 숙련기술을 쌓은 노동자나 전문가에게는 높은 임금을 부여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실업과 저임금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교육격차는 학력에 따라 소득을 차등지급하는 바탕을 형성한다. 문제는 산업화 초기에는 가난한 집안의 학생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가능하여 교육이 계층 사다리와 사회통합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했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와 세습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교육이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하였다는 점이다. 상류층의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좋은 학교나 학원에서 맞춤 교육을 받고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는 경력과 스펙을 관리하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런 모든 것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와 담론이 작동한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와 이타, 선과 악이 공존하는데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라고 선전하며, 토끼와 거북이 우화와 같은 담론이 지배한다. 노벨상까지 받은 공유의 희극론은 거의 알려지지 않고 허구인 공유지의 비극론이 명약관화한 사실처럼 군림한다. 분수효과가 타당하고 이것이 경제도 성장시킬 수 있는데, 경제성장이나 낙수효과론이 서민과 노동자의 파이도 늘릴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한다. 사회주의나 평등한 공동체는 현실성이 전혀 없는 이상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된다. 자본에 유리한 정책들은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것으로, 반대로 불리한 정책은 좌파적이거나 경제를 죽이는 것으로, 복지책 등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빨갱이적 발상이나 포퓰리즘으로, 노동자의 시위는 과격하거나 경제위기를 야기하는 것으로 매도된다.

3. 세대갈등의 원인과 양상

세대는 두 가지 층위를 갖는다. 생애주기에 따른 연령별 집단을 뜻하거나 공통의 역사적, 문화적 경험을 한 집단을 의미한다. 전자의 경우 청년세대는 아직 가진 것이 없고 세상에 도전적이기에 상대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바라고, 노년 세대는 가진 적이 있고 사회경험이 많기에 안정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후자의 정의를 따를 때, 이런 생애주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 문화적 경험에 의존하여 세계를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전 세대는 대개 공산주의, 북한, 진보, 좌파적 정책을 혐오한다. 반면에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는 50대가 되어서도 독재에 대해 비판적이며 군사독재에 기원을 둔 정당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다. 이 두 가지 층위의 세대는 일치하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보이는데, 이를 동일화하면 오류를 범하거나 잘못된 해석을 할 수 있다.

실례로, 이번 21대 총선을 보더라도, 전반적으로 젊은 층이 민주당을 지지하고 노년층이 미통당을 지지했지만, 기존의 선거와 달리 50대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였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의 56.4%, 30대의 61.1%, 40대의 64.5%가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에 전체 유권자의 19.7%인 865만 명에 달하는 50대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여 민주당 49.1% 대 미통당 41.9%로 투표하였다. 60대 이상에서는 민주당 32.7% 대 미통당 59.6%로 압도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드러냈다.

문명사 이래 세대갈등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문명사 이래 세대갈등이 사회변동의 계기가 된 적도 없었다. 세대갈등은 늘 상존하였지만, 가족과 집단 내부에서 부모와 자식, 젊은 층과 노년층 사이의 견해와 입장 차이일 뿐이었다. 그것이 집단의 갈등을 증폭시키기도 하였지만, 청년층이 노년층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하고 노년층이 청년층의 도전과 패기, 진보적 발상을 수용할 때 외려 집단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그것은 단순히 의견 수렴 차원이 아니라 노년층이 청년층에게 권력을 위임하거나 자리를 양보하는 형식으로 실행되기도 하였다.

조국 사태 이후 세대논쟁이 지배적 담론을 구성하였다. 청년세대들이 386세대들을 비판하고, 386세대와 이를 옹호하는 친문재인 세력들이 청년세대들을 비판하면서 386세대와 청년세대들 사이의 갈등이 첨예해졌다. 그동안 노무현 정권 때부터 본격적으로 민주당과 정권을 비판하려는 교두보로 386을 비판하기 시작한 보수언론은 가짜뉴스를 양산하면서까지 조국과 386세대 비판에 언론의 공정성을 송두리째 상실한 보도를 쏟아내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청년세대의 눈에는 조국과 정경심이 기득권이 할 수 있는 온갖 금수저의 편법을 자행하여 자신의 자식을 명문대에 입학시키며 유리창을 견고히 하고, 울타리 밖의 흙수저에게 또다시 좌절과 절망을 안겨 준 울타리 안의 부모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층은 조국을 문재인 정권과 이 정권의 권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386들의 도덕적, 정치적 정당성에 결정타를 날릴 수 있는 호재로 삼았다. 민주당 지지세력, 그중에서도 친문재인 세력과 386에게 조국은 검찰 권력의 과도하고 편파적인 수사와 보수층의 광기에 가득한 총공세에 휘둘리는 희생양이자 고초를 겪을수록 검찰개혁의 정당성을 표출하는 아이콘이었다. 반면에, 민주당보다 좌측에 있는 진보진영에게 조국은 보수여당인 민주당의 실세이자 기득권 동맹의 한 축으로 울타리 안의 권력자답게 울타리 밖의 서민과 노동자와 동떨어진 삶을 살면서 자신의 딸을 유리창 안에 안착시키기 위하여 여러 편법을 자행한 기득권자였다. 무엇보다 서민과 노동자에게 조국은 사학 귀족의 자제로 서울대 법대와 외국의 명문대를 거쳐서 서울대 교수를 지내고, 자신의 딸마저 그런 길을 걷게 하고자 금수저로서 온갖 편법을 동원한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이렇게 여러 층위의 모순이 겹쳐 있었음에도 전선은 조국 수호와 비판으로 양분되었다. 진보진영이나 노동자가 조국의 객관적 편법행위와 그것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는 것까지 민주당과 친문재인 세력은 ‘기승전(起承轉)-자한당’의 논리를 전개하며 결국 자유한국당을 도와주고 검찰개혁을 약화하는 행위로 치부하였다. 보수층은 사실을 포장하고 확대하고 더 나아가 인신공격과 가짜뉴스까지 양산하며 아직 판결도 나지 않은 조국의 행위를 중대한 범죄로 확정하여 매도하였다.

생애주기별 세대갈등은 필연이다. 쌓아둔 자산이 전혀 없고 사회경험이 거의 없고 매사 도전적이며 기성세대로부터 권력과 자산을 빼앗아야 하는 청년층이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거나 기성세대에 적대적인 것은 당연하다. 사회경험이 많고 매사에 신중하고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은 자산을 지켜야 하는 노년층이 안정을 바라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청년층의 도전에 방어적인 것 또한 자연스럽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비롯하여 최근에 표출된 청년층의 저항은 다른 층위의 원인이 있다. 386이 졸업정원제로 쉽게 대학에 입학하고 국제적인 호황기를 맞아 쉽게 취업하고 주식과 부동산을 하여 재테크를 하고 그중 상당수가 민주당에 들어가서 권력의 실세를 차지하였다. 반면에 청년층의 경우 부모를 잘 둔 금수저들은 명문대에 입학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대신 나머지 99%는 흙수저라는 이유로 ‘루저’가 되고 30%가량이 취준생으로 집단을 형성해야 하며, 부동산 가격의 급상승으로 집을 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고 연애와 결혼도 기한 없이 유보해야 한다. 더구나 이들은 신자유주의 교육으로 인하여 치열한 경쟁과 탐욕이 내면화하고 일상화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데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 언론은 청년 문제를 사회와 정치로부터 소거하여 개인화하거나 일자리 문제로 환원하였고,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이들을 지지율을 확대하는 일에 동원하였다.

4. 계급갈등과 세대갈등의 교차와 전위(轉位)의 문제

불평등이 계급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청년 실업이 증대하면서 《88만 원 세대》를 비롯하여 이들의 열악한 상황을 대변하는 담론들이 연이어서 출간되었으며, 이들의 대척점에 ‘386세대’를 설정하고 이들을 비판하는 담론도 봇물을 이루었다. 조국 사태로 386세대와 청년세대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다시 세대담론이 부상하였으며, 장안의 화제가 된 대표적인 저서가 이철승의 《불평등의 세대》다.

첫째는 거대한 베이비붐 세대가 위계 구조 상층을 독점하면서, 유교적 연공 사회의 대전제인 ‘세대교체’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 ……둘째, 세대 네트워크 내부에 속한 386세대 상층 리더들과, 거기에 속하지 못한 동 세대 하층 및 다른 세대들 간의 정치 · 경제적 권력 자원의 격차가 커지면서 세대 내 그리고 세대 간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셋째, 최대 규모의, 최고의 응집성과 연계성을 가진 세대 네트워크가 국가와 경제, 시민사회의 상층권력을 장악하고, 동시에 그 ‘세대 네트워크’가 ‘위계구조’와 결합하면서, 386세대 상층 간 조직 내부 및 조직 간의 지대추구 행위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철승은 불평등의 문제를 세대의 프리즘으로 분석하였다. 386세대가 강력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벼농사로부터 기원되고 유교사회에서 체계화한 위계와 결합하여 386세대 네트워크 위계를 형성하고, 이들이 위계 구조의 상층을 독점하면서 다른 세대와 격차를 크게 벌렸고, 그 결과 불평등을 심화하였다는 것이다. 기존의 세대론과 달리 386세대가 저항 네트워크를 만들어 시민사회와 국가를 점유해가는 과정과 정보와 조직의 우위를 바탕으로 권력 자원을 축적하면서 불평등의 생산자이자 수혜자로 등극하는 과정, 이에 의하여 청년과 여성이 희생당한 양상에 대해 추론만이 아니라 실증적 연구를 겸하고 있기에, 설득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여러 부분에서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하였던 모순의 실상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이 연구는 전반적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철승이 언급한 이들이 386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은 1960년대생 가운데 30%대에 지나지 않으며, 그 대학생 가운데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이들은 대략 10% 남짓이며, 소위 운동권 가운데 민주당이나 유사한 노선에 있는 참여연대 등의 시민사회단체로 간 사람은 그중에서도 1%도 안 된다. 또, 386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더 강한 권력을 형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세대든 30대의 엘리트들이 50대가 되면 시장과 정치권력에서 상층을 형성하며 한국사회의 특성상 위계와 결합한다. 이인영, 임종석, 송영길, 박원순을 비롯한 386세대의 엘리트들이 강력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권력 자원을 축적하고 상층으로 진입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한국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것처럼 묘사한 것은 착각이거나 조작이다. 386이 시장의 장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권력은 재벌에 비하여 미미하며, 정치의 장에서 권력은 산업화 세력, 보수정당과 관료와 분점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장에서 권력은 참여연대를 비롯하여 친민주당이거나 자유주의 노선을 걷는 시민사회 단체에서만 힘을 발휘하며, 이들 단체는 진보적인 시민사회 단체와 운동의 노선, 전략과 전술을 놓고 늘 대립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철승은 이를 무시한 채 과대포장하고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연구가 환원론에 빠졌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에서 이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결과에 해석을 맞추지 말고 결과를 야기한 여러 변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하는데, 이철승은 학벌이라는 변인을 소거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의 학벌 체계가 정치권력과 시민사회의 권력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제1 요인인데 이를 무시하고 있다. 이철승이 예로 든 386의 엘리트들은 모두 명문대의 엘리트들이다. 필자는 지금 20대인 명문대의 엘리트들에 대해 30년 뒤에 연구를 수행해도 디지털 사회의 변화로 위계에 대해서만 약간 차이를 보일 뿐, 이철승의 연구와 똑같은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세대 사이의 불평등은 과장되거나 왜곡된 것이고, 세대 안에서 계급에 따른 불평등이 압도한다.

1998년도 제1차 노동패널 자료에서 밝혀진 점은 전체 불평등 가운데 세대 간 불평등은 전체 불평등의 약 12%로 그다지 크지 않았으며, 각 연령 코호트 내의 불평등에 의해서 나머지 88% 정도의 불평등이 설명된다는 사실이다. 세대 내 불평등에서는 40~49세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연령 코호트 내의 불평등이 전체 불평등의 약 3분의 1 정도를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88만 원 세대’ 논의와는 달리, 2007년 전체 불평등에서 세대 간 불평등에 의해서 설명되는 부분은 3.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여전히 전체 불평등에서 세대 내 불평등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컸고, 그중에서도 특히 40대 내의 불평등이 전체 불평등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점은 비록 20대와 30대나 40대와의 평균 근로소득 격차가 크지만, 각 세대 내의 격차가 대단히 커서 세대 간 격차를 압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 세대 간 전쟁이라고 부른 세대 간 불평등 문제는 실제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세대 간 불평등은 실제로 그다지 크지 않으며, 세대 내 불평등이 가장 중요한 불평등 요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제활동이 활발한 연령 코호트인 30대와 40대의 세대 내 불평등이 가장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세대 간 불평등은 상당히 과장되고 또한 왜곡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 신광영의 결론은 전국에서 5,000가구를 추출하여 동일한 가구와 가구원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매년 추적 조사한 노동임금패널 자료에 대해 각 연령 코호트의 근로소득 변화를 분석한 것이기에 실증적으로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다. 이철승은 386세대가 지대추구를 할 것이라는 가설이 자신이 행한 실증적 연구에서도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386세대 내부의 높은 네트워크 밀도와 강도로 인한 지대추구 행위가 증대되었다는 ‘실증에 기반한’ 결론을 도출해낼 수는 없다. 다만, …… 이들 또한 지대추구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심지어는 사회 개혁을 위해 자신들이 구축한 연대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대추구가 더욱 용이해질 수 있다는 경고는 가능하다.”라며 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신광영이 10년 동안의 실증적 분석을 통하여 잘 파악한 대로, 세대 사이의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이는 아직 미약한 수준이고 계급에 따른 불평등과 갈등이 이를 압도하는 것이 실제 현실이다.

불평등에 대한 세대담론은 청년층의 좌절과 절망을 껴안거나 동원하려는 열망과 민주당 집권기마다 실세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386세대에 대한 보수적 학자나 언론의 비판이나 진보진영의 성찰이 맞물려 빚어놓은 신화다. 민주당을 포함한 기득권 동맹은 계급갈등을 지역갈등이나 세대갈등으로 대체하고 진보적인 담론들을 ‘용공, 빨갱이, 종북’으로 매도하여 진보운동을 무력화하며 권력, 자본,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대담론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계급갈등을 세대갈등으로 대체하는 ‘모순의 전위(displacement)’를 일으켜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가 야기한 주요 모순인 극단적인 불평등과 계급갈등, 이를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계급의식, 이에 기반한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을 거세하는 지배담론으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세대담론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좌파들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 한국사회가 1980년대부터 이어진 재테크 붐과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하여 세습자본주의와 렌트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의 특성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세시대처럼 방세, 집세, 임차료, 초과소득 등 지대 형식의 렌트를 통한 불로소득이 점점 대세를 형성하고 있다. 청년들의 꿈은 어엿한 건물을 소유해 평생 일자리 걱정 없이 월세 수금만으로 풍요롭게 사는 것이다. 현실은 대학생이나 청년노동자 때부터 기숙사, 학교나 회사/공장 인근의 룸을 빌려 사용하고, 결혼해서도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채 월세나 전세로 소득의 일부를 수탈당하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 이들은 집주인인 기성세대와 금수저들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시장으로 표현되는 인간의 경제활동이 렌트에 지배되면 시민들은 렌트 추구에 몰입하게 되고 신뢰, 협력보다는 부패와 관계망 등이 시민사회의 지배적 가치가 된다. 이 지점에서 청년들은 내적 모순을 경험하게 된다.”

5. 대안의 길-결론을 겸하여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스티글리츠는 이에 대하여 잘 요약했다. “금융 부분의 규제를 강화하고 독점금지법, 파산법 등 1%에 유리한 법과 제도를 개혁하고 집행 효율성을 강화하며,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 지원금을 폐지하고, 조세 회피 통로를 차단하고 조세개혁을 단행하며 교육, 의료, 금융, 주택 분야에서 공공성을 확대하고 중하위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노동자와 시민의 집단행동을 지원하고 선거자금을 개혁하고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획기적인 정책을 추진하면서 중하위층의 기회를 확대한다면, 중하위층이 자신만의 이익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의 이익과 공공복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개인적 이익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한다면, ‘만인을 위한 자유와 정의’란 말이 진정한 의미를 발휘하는 사회는 가능한 미래로 다가올 것이다.” 앞에서 피케티가 말한 대로, 소득 수준별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를 획기적으로 증대하고 조세개혁을 하여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보편적 복지를 강화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공공성을 증대해야 한다. 무상급식처럼, 교육, 의료, 금융, 주택, 교통만큼은 무료를 목표로 점차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반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담론 투쟁을 전개한다. 비정규직과 정리해고의 철폐 주장이 좌파적 발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30대 대기업의 경우 매년 기업이 벌어들이는 당기순이익의 단지 1.5%만 투자하면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는 허구에 불과하며 분수효과(fountain effect)가 타당하다. 성장과 복지는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적이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IMF조차 낙수효과를 부정하는 보고서인 《소득 불평등의 원인과 결과: 세계적 전망》을 2015년에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상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5년 동안 GDP는 0.08%포인트 감소했지만, 하위 20%의 소득이 1% 증가하면 GDP는 같은 기간에 0.38%포인트 증가했다.”

위의 대안이 현실로 구현되려면 대대(待對)의 정치가 실현되어야 한다. 대대는 A and not-A의 퍼지(fuzzy) 사유이자 대립물을 모시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공론장을 회복하고 독일식 정당명부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을 개혁하여 진보와 소수자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수렴될 수 있는 길을 열고, 모든 갈등이 발생할 때 권력을 대칭으로 만든 후에 서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며 대화를 하도록 위원회를 구성하며, 아픈 자를 우선하는 것이 정의라는 입장에서 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아울러, 노동자를 더욱 조직화하여 노동 중심을 바탕으로 진보정당이 더 많은 의석, 권력,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는 여러 노력을 실천해야 한다.

더불어 양자의 갈등을 해소할 공정하고 합리적인 중재자나 중재기구가 필요하다. 미국의 ‘컨센서스빌딩인스티튜트(Consensus Building Institute)’는 세계적인 갈등 조정 전문기관으로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을 조정하고 있다. 한국사회도 이런 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모두 개량적 대안들이다. 노동자 서민들이 이 체제의 모순을 인식하여 계급의식을 각성하고 역사적 주체가 되어 신자유주의 해체를 목표로 연대 투쟁을 한다. 노동자들이 연대하여 자본과 이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 동맹에 대항하는 조직을 결성하여 낡은 사회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체제를 수립하는 것이다.

불교를 결합한 대안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갈등이 있는 사람과 집단이 만나 자신의 동일성을 해체하고 서로 눈부처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갈등의 대상자들은 “① 만남, ② 대화, ③ 공정한 중재와 변증법적 종합, ④ 일심이문(一心二門)의 화쟁, ⑤ 자기 비우기와 대립적인 것과 타자, 적을 내 안에 모시면서 하나로 어우러지는 대대(待對)의 실천, ⑤-① 업의 받아들임, ⑤-② 아공(我空)-‘자기애’ ‘자기의 버림’ ‘자기의 거듭남’ ⑤-③ 법공(法空), ⑥ 공공(空空)의 상생”을 거치며 하나로 어우러진다.

다음으로 원효의 일심과 이문의 화쟁을 통하여 다산 정약용의 여전제를 결합한 눈부처공동체를 곳곳에 만들고 이를 연계시켜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체제를 무너트리는 진지로 삼는 것이다.

그럼에도 갈등과 범죄가 생길 것이다. 갈등이 생길 경우 화쟁의 원리에 따라 서로 눈부처의 자세로 대화하고 성찰한다. 그러고도 범죄가 생기면, 응보적 정의(punitive Justice)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에 입각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인류 역사 700만 년 가운데 불평등한 사회는 0.00057%인 4,000여 년에 지나지 않는다. 돈이 신이 되고 소외를 심화하고 자본이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체제는 0.000057%인 400년에 불과하다. 평등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것은 빨갱이식 발상도, 과격한 주장도, 현실성이 없는 꿈도 아니다. 그것이 인류의 본래 모습이고 부처님이 바라신 모습이며, 불평등한 사회가 찰나의 일탈이다. 코로나 이후의 대안도 근본적으로 이런 전환이 없으면 다른 모든 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인류사회는 자연과 공존하며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 ■

 

이도흠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양대 국문학과, 동 대학원 졸업. 한국학연구소 소장, 민교협 상임의장 등 역임. 저서로 《화쟁기호학, 이론과 실제》 《신라인의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읽는다》 《인류의 위기에 대한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등이 있음. 현재 정의평화불교연대 상임대표,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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