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한국사회의 갈등, 그 극복을 위한 청문(聽聞)

1. 머리말

2016년 촛불혁명은 수구 정부 10년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모순의 정치적 결집이자 보다 복잡한 사회적 갈등 양상의 새로운 출발이기도 했다. 촛불 이후 일상화된 극우 태극기 부대의 도심 시위, 폭발적 양상으로 전개된 미투운동, 최근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공정성 갈등 등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새로운 갈등 양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글은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시야에서 한국사회의 갈등 양상을 고찰하고 그 특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분석을 위해서 사회구성이론의 모순구조론, 그리고 사회체제 변동이론을 이용할 것이다(2절).

이 논문은 한국사회의 갈등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특징적 양상을 분석하고 제시하였다. 먼저 최근 한국사회의 갈등은 매우 복합적이고 중첩적인 맥락에서 제기되고 있는 복잡한 사회현상이라는 점을 확인한다. 특정 사회갈등에는 현대 한국에 고유한 역사적 변동과 모순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분석적으로 고찰하면 우리 사회의 갈등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복합성을 규명할 수 있다(3절).

다음으로 특정 갈등이 내재하고 있는 구조적 복합성과 함께 그것의 사회체제적 특성을 분석할 필요성이다. 종속신자유주의 사회체제인 현재의 한국사회에는 시장주의 경쟁 원리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축적 양식에서 발생하는 양극화와 사회경제적 모순은 제반 갈등의 내용을 규정하고 변형시키는 효과를 나타내었다(4절).

셋째로 우리 사회에서 사회갈등은 시간 흐름에 따라 심화하고 중첩되며 정치적으로 결집해 강력한 대중적 사회운동을 일으켰다. 1987년 민주항쟁과 2016년 촛불집회가 바로 그러한 역사적 계기였다. 커다란 사회운동이나 정치변동이 일어난 이후에는 모순의 해결과 제도화, 그리고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또 다른 갈등이 장기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이 갖는 역동성은 갈등의 확대와 심화 그리고 해소라는 면에서 다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5절).

 

2. 분석틀: 모순구조와 사회체제 변동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를 밝히기 위해서는 현대사의 역사적 전개 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일제의 지배와 해방, 그리고 분단과 냉전대립이 장기간 계속되는 가운데 한국사회는 독특한 내적 모순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도 심대한 모순과 결과를 남겼다. 이를 근대 국민국가 형성과 관련된 민족 모순과 민주주의 모순, 그리고 자본주의 계급 모순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가지 모순은 냉전체제의 최전선이었던 한국에서 특히 심각하게 발현하였다. 또 이들은 상호 작용해서 모순의 깊이를 심화시키고 그 내용을 변형 발전시키는 고유한 내적 동학을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전쟁과 독재, 그리고 경제성장이 진행된 4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이 세 가지 모순은 점차 확대되었고 심화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으로 구성된 1987년 민주항쟁은 모순구조의 전개에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을 형성하였다. 직접적으로 민주주의 모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인 1987년 항쟁은 다른 모순에 궤적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변화는 같은 시기에 급속히 진행된 사회주의권 붕괴와 냉전 해체라는 세계사적 변동으로 더 빨라졌다. 이후 변화된 계급세력 관계와 사회적 조건에서 ‘1987년 사회체제’라는 독특한 과도기 체제가 형성된다. 이 1987년 사회체제에서 구조화된 모순구조 그리고 사회적 지형은 다음 페이지의 〈표 1〉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놓았던 1987년 사회체제는 10년간 단기간 지속하고 다시 해체된 일종의 과도기 체제였다. 1997년 갑자기 도래한 외환위기는 1987년 체제가 추동했던 사회변동의 방향을 다시 크게 바꾸어놓았다. 외환위기의 해결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축적양식이 빠르게 제도화되었는데, 이는 당시 급속히 확대되던 세계화와 기술변동과 결합해 다시 더 거대한 사회변동을 불러왔다.

이후 현재까지 약 20년 이상 한국은 시장만능주의, 경쟁주의가 전일적으로 지배하여 사회적 양극화가 극심하게 진행되었다. 서구의 신자유주의 사회와 구별하여 이를 ‘종속신자유주의 사회체제’라 부를 수 있다. 여기서 ‘종속(dependence)’ 규정은 사회민주주의 계급 타협을 경험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모순 효과가 훨씬 강하게 나타나는 후후발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을 표현한다. 극심한 사회 양극화와 빈곤, 강력한 독점자본의 지배와 국가 억압, 치열한 사회적 갈등 등을 지적하는 개념이다.

종속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두드러진 점은 계급모순의 내용과 질이 크게 바뀌어 전체 사회에 미친 영향이 매우 커지게 된 점이다. 구조적 고용불안과 시장주의 경쟁으로 사회는 급속히 양극화되었고 정치적 보수주의도 일시적으로나마 확산하였다. 또 제한적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조건과 세계화로 인한 문화전파 속에서 새로운 가치에 기초한 신(新)사회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여성, 환경생태, 생명과 안전, 인권과 소수자, 평화와 반핵, 동물 권리 등 다양한 의제의 사회적 갈등이 복합적으로 빈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회 양극화와 신사회운동의 두 흐름은 상호작용하여 갈등의 폭과 범위를 크게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인 것이 2016년의 촛불투쟁이었다. 촛불에서 여러 사회적 주체가 다양한 의제를 중첩적으로 제기하여 이들이 복잡하게 서로 연결된 양상은 이 글의 분석 대상이다.

 

3. 한국사회 갈등의 복합성과 다중성

모순구조와 체제 분석의 거시적 시야에서 조망하면 현재 한국의 여러 사회갈등에는 각기 매우 다양한 모순구조의 내용과 시대적 조건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 40여 년의 짧은 기간에 한국사회는 해방과 분단, 전쟁과 분단국가 형성, 그리고 장기간의 개발독재와 고도의 자본주의 산업화를 동시에 경험하였다. 또 1987년 이후 30년에는 마찬가지로 외환위기와 정치적 반동 시도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고 선진국 진입을 이루어내었다.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최소 2백 년 이상 걸렸던 사회변동이 두 세대 남짓한 짧은 시간에 진행된 것이다.

이런 급속하고도 역동적인 사회변동으로 말미암아 사회적 모순들도 더 빠르게 심화하거나 왜곡되어 발생하였다. 또 모순으로 인한 사회갈등은 더욱 격렬하였고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수성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보자.

먼저 가장 중요한 측면은 서로 다른 차원과 다른 시간대의 사회적 갈등이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었다. 심지어는 하나의 갈등 속에서도 이와 같은 이른바 ‘비(非)동시성의 동시성’ 현상이 관찰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서울 도심에서 주말마다 진행되었던 집회 중 극우적인 태극기 부대의 정치집회는 그 냉전적 성격이나 세대 특성으로 말미암아 매우 기이한 느낌을 준다. 1960년대나 70년대 군부독재의 관제 집회이자 지난 30년 이상 진행된 정치적 민주화를 부인하여 시대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집회가 성소수자 집회나 반핵 집회 등 21세기의 탈근대주의 지향의 집회와 같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모습은 전형적인 비동시적 사회갈등의 동시적 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태극기집회의 요구 내용을 보면 반정부 정치집회의 성격과 함께 반(反)북한 이데올로기, 반(反)동성애를 표방하는 보수종교이념 등이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이나 매카시즘 시대의 반공 이념이 21세기의 반(反)소수자, 반페미니즘운동과 결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해방정국의 서북청년단이 21세기에 다시 나타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사례로 경제적 무역 마찰, 교과서 갈등과 함께 결부된 한일 위안부 갈등은 일제 지배의 사회적 모순이 민주화와 산업화의 결과로 지금에 와서 현재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작금의 사회갈등은 다양한 시대의 복잡한 모순구조와 연관되어 발생하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둘째, 1987년 이후 모순구조의 해소와 변형 과정에서 갈등의 영역과 내용이 순차적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났다. 모순의 모든 내용이 한 번에 다 해결될 수는 없으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해결이 지체된 영역에서 갈등이 뒤늦게 나타나거나 순차적으로 발생하는 특징이 보인다. 또 사회운동의 요구와 내용이 확대 심화하면서 새로운 양상의 갈등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2016년 촛불투쟁의 직접적 요구 중 하나는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 곧 청와대의 권력 남용을 바로잡는 것이었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정치사회를 중심으로 민주주의가 크게 확장되었으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여전히 예외로 남은 영역의 비민주성이 문제로 드러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는 최근 사법개혁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들 수 있다. 민주화 이후에도 법을 집행하는 검찰과 사법부의 특권적 행태가 오랫동안 견제되지 못한 우리 사회의 조건을 반영하고 있다. 또 여성차별의 경우 민주화 이후 꾸준히 사회갈등의 주요한 영역이었으나 최근 미투운동에서는 차별 해소의 요구와 내용이 더욱 급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셋째, 대개의 사회갈등은 그 성격과 내용에서 서로 구별되는 모순이 중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대개 한국사회의 민족, 민주, 민주주의 및 기타의 사회 모순은 서로 연관되어 갈등을 일으키는 특성을 갖는다. 과거 유신독재는 그 자체로서 민주주의 모순이 심화한 것이었지만 민족모순을 매개로 발생한 정치구조 변동이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즉 남북한 간의 통일 협상을 위한 정치적 선제조치라는 명분으로 남북 모두에서 독재체제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촛불투쟁을 불러온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갈등이었던 세월호 사건의 경우가 정확히 그러하다. 원래 사회적 안전, 생명의 가치를 둘러싼 사건이었으나 박근혜 정부의 부당한 개입이 드러나면서 그것은 국가권력의 비민주성을 둘러싼 심각한 정치갈등으로 비화하였다. 또 세월호는 자본의 비정규노동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사건의 배경이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계급모순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최근 폭발적으로 확산한 미투운동은 일차적으로 남녀평등과 인권, 민주주의 의제였다. 그러나 그것에는 동시에 신자유주의가 낳은 경제적 양극화와 빈곤, 또 비정규직 고용 문제가 내재적으로 담겨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상에서 고찰한 세 가지 특성이 한국사회의 갈등에만 존재하는 특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사 속에서 구조화된 한국의 사회구조적 특성과 역사성을 고려하면 그 함의는 분명하다. 서구와 비교할 때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갈등은 더욱 복합적인 배경을 갖고 나타나며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관된 여러 가지 모순을 그 속에 담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갈등의 강도나 확장성, 그리고 모순의 심도가 더 높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한국사회 갈등의 이와 같은 복잡성, 다(多)차원, 그리고 계기적 특수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분석하는 연구가 더 진척될 필요가 있다.

 

4. 종속신자유주의 사회체제와 사회갈등

한국사회의 역동성으로 말미암아 그 양상이 복잡하나 현재 사회갈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종속신자유주의로의 사회체제 이행이다.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가 활성화되어 사회갈등이 폭발한 것은 일반적으로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민주화 이후 30년의 사회갈등 양상은 사회체제의 특수성에 따라 규정되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개념이 1987년 사회체제와 종속신자유주의 사회체제이다.

한국의 민주화 이행은 위로부터 타협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이행의 특수성, 계급구조의 역사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1997년까지 한국사회는 1987년 체제라는 독특한 이행기 사회체제를 경험하였다. 그 체제는 국가정치체제의 형식적 절차적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체제, 노동체제의 비민주성이 상당 기간 유지된 것에 특징이 있었다. 계급세력 관계도 단절적으로 바뀌지 않았고 군부독재 세력의 권력이 상당 기간 유지되는 이른바 ‘제한적 민주주의’ 체제였다. 이 10년간의 시기에는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자유화, 민주화가 꾸준히 확대되는 한편 엄청난 규모의 사회갈등이 폭발한 특징이 있었다. 특히 노동체제의 모순이 심했고 거의 매년 국가와 노동운동은 계급전쟁을 치르는 형편이었다. 오래된 재벌과 독재국가가 주도한 지배체제가 상당 부분 흔들리거나 훼손되었던 반면, 지배 블록의 새로운 헤게모니는 마련되지 못한 결과였다.

1997년 외환위기와 수평적 정권교체로 1998년 이후 갈등의 양상은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변화는 축적체제와 노동체제 수준에서 시작되었으나 곧 전체 사회체제의 수준으로 확산했다. 새 사회체제, ‘종속신자유주의 사회체제’에서 갈등 양상은 지배 블록에 유리하게 전환되었다. 대표적으로 노동운동은 구조조정과 심각한 고용불안으로 방어적인 양보 교섭으로 후퇴하였다.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빈곤의 확산에 따라서 생존권 방어 차원의 갈등이 늘어나기도 하였다. 사회체제 변동에 따라 발생한 갈등 양상의 변화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이전 체제와 비교하면 종속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반민주적 권력의 억압, 냉전 이데올로기 대립 및 각종 정치적 기본권을 둘러싼 갈등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정치적 성격의 갈등이 줄어든 것이었다. 1987년 체제에서 활성화된 시민사회의 요구는 제도권 정치에 의해 일부 수용되었고, 노동 개혁을 포함해서 각종 민주화 개혁조치가 10년간 지속했기 때문이었다. 또 두 차례의 평화적인 정권교체로 국가권력 행사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그러나 이 민주화 개혁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하게 봉합되었고 일정한 한계를 지닌 채 제한적 민주화로 마감한다. 그것은 보수 주도의 새 사회체제가 급속하게 구조화되어 시민사회나 노동운동의 힘이 크게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한편 촛불혁명은 일차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탈법적 민주주의 파괴와 관련되어 발생했으나 그 성격은 한층 복잡하다.

둘째, 두 사회체제에서 모두 노동문제와 관련된 사회갈등이 심각했다. 다만 그 성격이 확연히 달라진 점이 중요한 변화였다. 1987년 체제에서 중요했던 것은 국가와 자본의 지배개입 없이 노동조합을 자주적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 그리고 물질적 생존권이었다. 정치사회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1987년 이후에도 계속된 국가와 자본의 탈법적 억압에 대해 민주노조들은 전투적 조합주의로 맞서 싸웠고, 큰 규모의 사회적 갈등이 10년간 거의 매년 계속 벌어졌다. 이를 주도한 것은 제조업과 공공부문의 대사업장 노조들이었다. 대체로 정규직 중심의 공세적 운동이었고 그 성과는 1995년 민주노총의 결성으로 나타난다.

이에 반해서 종속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나타난 갈등은 노동운동의 수세적 방어적 투쟁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주로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조직노동의 쟁의와 자연발생적으로 벌어진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주조를 이루었다. 또 청년들의 고용불안 문제는 그들의 빈곤이나 경쟁 심화를 넘어 결혼 기피, 출산율 하락이라는 다른 사회적 갈등 요소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노동 관련 갈등은 모두 심각한 고용불안과 경제적 빈곤에 대한 저항이라는 공통점을 가졌으므로 신자유주의 고유의 갈등이라 할 수 있었다. 한편 이 시기의 전반부에는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의 노동법 개정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사회적 합의 문제가 갈등의 주요한 주제로 등장한 것도 특징적인 일이었다.

셋째, 체제 전환에 따른 중요한 변화 중 하나는 1987년 체제의 민주화 이행 시기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갈등의 의제와 폭이 늘어난 점이었다. 우선 이른바 탈(脫)물질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갈등과 사회운동이 급속하게 확대되었다. 대체로 환경과 생태, 반전 반핵 평화, 안전과 생명 그리고 동물보호, 성차별 문제와 페미니즘, 장애인 이주노동자 동성애 등 각종 소수자 차별 등이 주요한 갈등의 소재가 되었다. 이는 이전 체제의 민주화 개혁이 진척된 것의 결과이자 성과라고 볼 수 있다.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둘러싼 부안과 기타 지역의 갈등, 특히 밀양 원전 송전탑 건설반대 갈등, 황유미 김용균 구의역 김 군 등 산업재해와 직업병 문제, 제주도 강정마을과 성주의 군사기지 건설반대, 미군 장갑차에 희생된 두 여중생 사건, 그리고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과 갈등, 종군위안부 문제와 미투운동 등이 대표적 사안들이었다.

한편 체제 전환에 따라 수구 세력의 시민사회 진출이 확대한 것도 갈등 양상의 변화를 불러왔다. 뉴라이트라 불리는 강경 보수집단이 기독교 보수주의를 중심으로 사회적 갈등의 중심으로 새로 등장한 것이었다. 이들은 반공주의, 현대사 교과서 논쟁, 호주제나 낙태 간통죄 폐지 반대, 동성애 반대, 남북교류 및 북한 지원 반대 등 과거 냉전 시기 이념 문제를 사회갈등의 의제로 다시 만들었다. 전쟁과 독재를 경험한 세대가 제기한 이런 의제의 갈등은 크게 보아 한국사회의 급속한 변동에 따른 ‘비동시성의 동시성’의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세대 간 갈등 성격의 이런 갈등은 대체로 점차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넷째, 신자유주의의 시장주의와 경쟁 만능주의 이념이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갈등을 불러온 것도 주목해야 할 특징이었다. 이른바 ‘을들의 전쟁’이라는 갈등 양상이다. 신자유주의의 결과인 사회적 양극화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 간의 경쟁과 알력 그리고 갈등을 불러오는 경향이 있다. 갑과 을의 착취 억압 관계도 더 심해졌으나, 양자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적 거리가 멀어지고 공간적으로 분절되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또 국가와 자본이 이런 을 내부의 갈등을 전략적으로 유도하거나 이용하는 것도 한 원인이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 간의 갈등,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성별 갈등, 고용 노동자와 실업자 사이의 갈등, 피고용 노동자와 중소 영세자영업자 사이의 갈등, 내국인과 이주노동자의 대립 등이 모두 그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최근 특히 주목해야 할 갈등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불러온 사회적 갈등이다. 이른바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로 알려진 이 갈등은 관련 정규 비정규노동자를 넘어 취업준비생 청년 일반의 정부와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불러왔다. 중요한 것은 학벌과 시험성적의 공정성, 그리고 그것에 따르는 차별적 보상을 정당화하는 청년들의 ‘공정’ 논리가 신자유주의 경쟁 지상주의 논리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는 20년 이상 지속한 획일적이고 강력한 신자유주의 이념 전파, 그리고 재벌 자본의 압도적인 시민사회와 정치사회 지배력, 또 이에 저항하는 사회 세력과 사회운동의 취약성을 잘 보여준 사례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획일성은 한국 신자유주의의 ‘종속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일지도 모른다.

5. 사회갈등과 사회운동의 동학

한국의 사회갈등은 사회변동의 압축성으로 말미암아 복합적 성격의 갈등으로 형성 발현하고 사회체제 전환에 따르는 여러 특성을 갖는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이 절에서는 그 사회갈등이 어떻게 사회운동을 매개로 표출되거나 폭발하며 나아가 해소되거나 변형되는가를 생각해본다.

먼저 국내외의 연구자들은 한국사회의 특징 중 하나로 역동성(dynamic)을 꼽는다. 특히 사회갈등과 사회운동의 폭발성, 그리고 연관된 사회변동의 속도와 깊이는 때로 놀라울 정도이다. 이런 면모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 최근의 촛불혁명과 그 전후의 한국사회였다.

2016년 가을에서 2017년 초까지 진행된 사회운동 촛불투쟁은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의 사회갈등이 어떻게 결집해 정치적 변동을 불러오며 나아가 사회변동으로 이어지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손호철에 따르면 촛불에는 세 가지 층위의 사회적 모순 혹은 갈등이 중첩되어 있었다.

먼저 표면적으로 그것은 대통령과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국가권력 핵심의 반민주적 행태, 국가권력 사유화에 저항하는 정치적 사회적 갈등이었다. 이른바 최순실과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이었다. 그런데 대통령과 청와대의 비리였으므로 그것은 개인의 사적 비리를 넘어서는 두 번째 층위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것은 청와대와 국정원 그리고 사법기관의 견제받지 않는 권력과 그 남용의 문제, 곧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정치체제 또는 헌정체제의 모순이었다. 권력기관의 노골적인 선거 개입은 물론 제반 여야 간의 정치적 갈등 그리고 많은 사회적 갈등의 사법적 해결이 불신받는 현상들이 모두 이런 구조적 모순의 결과였는데, 국정농단 사건에서 그 전모가 뚜렷이 나타난 것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 층위에서는 기타 사회경제적 모순, 곧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갈등이 집약되고 응축된 불만의 형태로 표출되었다. 촛불 대중의 구호였던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는 사실상 청년들이 오래전에 말한 ‘헬조선’ ‘N포세대’라는 외침과 같은 내용이었다. 재벌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불법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경유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도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광범한 불만을 불렀다. 또 사회경제적 불만에 더해 젊은 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의 여성혐오, 성범죄를 방치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추가했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비정규노동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분노도 겹쳤다. 그 밖에 촛불집회가 민중총궐기 투쟁에서 시작되고 민주노총의 실질적 주도하에서 진행된 것도 촛불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잘 보여주었다. 요컨대 한겨울에 장기간에 걸쳐 2천만 명에 가까운 대중이 참여한 대중동원은 사회경제적 모순이 없다면 생각하기 힘들다.

사실 촛불집회의 구성원들은 해결되지 않는 서로 다른 많은 갈등 의제들을 떠올리며 집회에 참석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종속신자유주의 사회체제 20년은 물론, 1987년 이후 억압되거나 불완전하게 해소된 수많은 사회갈등이 응축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직접적으로 보면 2014년 이래의 세월호 투쟁, 2009년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용산 참사, 20년 가까이 진행되어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각종 비정규노동 투쟁, 2008년 광우병 사태와 4대강 개발에 대한 환경운동의 저항, 전교조와 철도노조 등 노동기본권과 노조에 대한 탄압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갈등이 축적된 결과였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10 대 90의 사회적 양극화와 빈곤의 심화가 가장 깊은 층위에 자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여기서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갈등 사이의 관계라는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 세 번째 층위의 사회경제적 모순에는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축적체제와 연관된 갈등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의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페미니즘을 둘러싼 갈등이다. 사실 성차별과 페미니즘 운동은 촛불의 원인이기도 하였고 그 결과이기도 하다. 촛불 이전의 강남역 10번 출구 집회, 그리고 이후에 더 확산하고 심화한 미투운동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한국사회의 성차별 문제는 2000년대 이후로 증가 양상이 뚜렷했는데, 그 이유로 대체로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민주화와 경제성장이 동시에 진행되어 성차별 반대 운동이 확대하였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급속히 늘어나 사회로 진출한 시점에서 고용불안 문제가 심각해진 점이었다. 최근 젊은 세대의 여성혐오를 둘러싼 거친 대립, 페미니즘 운동의 급진화는 모두 경쟁주의 시장환경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문제뿐만 아니라 환경생태와 탈핵, 안전과 생명 나아가 정치적 반동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관점에서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 응축된 갈등이 일거에 폭발하는 사회갈등의 역동성과 함께 고찰해 볼 것이 있다. 갈등의 표출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국 사회운동의 특성 문제이다. 최근 미국의 플로이드 인종차별 항의 시위와 비교하면 촛불투쟁은 두드러지게 평화로웠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심지어 집회 시위와 관련된 불법행위와 범죄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나 정보화 기술인프라를 매개로 한 시민사회운동의 효과적 의사소통과 연대 역량, 그리고 높은 교육 수준과 시민 의식이 일차적으로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시위의 정당성과 대규모 동원력 등에서 나오는 자신감도 하나의 이유였다.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분단국가의 강한 물리력과 통제 능력에 대응하는 유일한 방법이 평화적인 비폭력시위의 전통을 발전시켰던 것으로 추론해볼 수도 있다.

다음으로 갈등의 해결이나 처리 과정에서 보아도 한국사회는 독특한 측면을 갖고 있다. 사회갈등이 중첩되고 응축해 폭발하는 특성에 비해 그것의 제도적 해결이나 처리가 많은 경우 지지부진하게 진행된다는 특성이다. 한국사회에서는 갈등의 폭발성으로 말미암아 커다란 정치변동이 발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1987년 이후의 6공화국 성립, 1997년 이후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그러했고 촛불혁명은 곧바로 정권교체를 불러왔다. 새 정부들이 대규모 사회운동의 요구를 정치적 개혁의 의제로 삼는 것도 매우 당연했다.

그러나 새로이 들어선 권력은 급진 개혁은커녕 개혁적인 방향에서 갈등을 해소하지도 않았다. 많은 경우 극히 온건하고 제한적인 해결책으로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었다. 때로는 개혁 의제를 외면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흔하였다. 1987년 이후 등장한 6공화국 노태우 정권은 군부독재의 연장이었던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이후 김영삼 ·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는 모두 급진적 선거공약을 제시하고 집권 초반에 개혁을 표방했음에도 후퇴하거나 실패하고 말았다. 앞서 한국의 사회갈등에서 ‘비동시성의 동시성’ 현상이 두드러진 것도 갈등 해결 과정의 이런 특성과 연관된다. 이전 시기의 갈등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고 다시 살아나 새로운 갈등의 요소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정부의 갈등 해결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되풀이된 약속에도 불구하고 촛불 이후 대선이나 국정과제에서 약속했던 개혁들은 현재까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특히 원전 폐기 등 환경정책이나 최저임금 1만 원을 비롯한 개혁적 노동정책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재벌개혁이나 부동산 문제 해결 등은 거의 역주행에 가까울 정도로 약속이 폐기되거나 거부되었다.

한국사회에서 갈등 해결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제도 정당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보수정당의 압도적 우위가 계속되고 있고 이들 간에 적대적 상호의존 구조가 양당제로 굳게 자리한 것의 결과였다. 강한 시민사회 또는 사회운동의 연대 역량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정치사회와 국가의 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다. 요컨대 국가와 정치사회가 시민사회와 비교해 비대한 ‘과대성장국가’라는 한국사회의 특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갈등의 복합적 전개, 그 응축과 주기적 폭발 현상은 정치개혁이 없다면 향후 다시 되풀이될 개연성이 크다.

이렇게 폭발적으로 드러난 갈등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고 지체되거나 역전되는 현상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폭발적 전개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촛불투쟁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규모 사회운동의 주요 의제로 공인된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촛불 이후 비정규직 문제나 사법개혁, 그리고 미투운동과 같은 사회적 갈등은 이전과 다르게 더 커졌고 공개적 사회적 쟁점으로 나타났다. 정치적 제약으로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현실도 더 큰 갈등을 불러오는 경향을 부추기는 것으로 보인다.

6. 결론: 요약과 토론

지난 30년 동안 한국사회는 엄청난 규모의 사회갈등과 심대한 사회변동을 경험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갈등의 양상과 특징,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변동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변수로 민족 · 민주 · 계급모순과 여타의 모순적 의제들을 설정하였다. 또 1987년 이후 이런 모순구조들의 역동적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서 1987년 사회체제와 종속신자유주의 사회체제 이론을 도입하였다.

1987년 민주항쟁을 전환점으로 한국사회는 다중적인 갈등의 격랑에 빠져들었다. 1997년까지 10년간의 1987년 사회체제에서 주요한 갈등의 소재는 정치적 민주화와 민중들의 생존권 및 노동 민주화였다. 이 시기에는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한 제반 사회운동과 시민사회가 갈등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수평적 정권교체를 지나면서 한국사회는 종속신자유주의 사회체제로 급속히 변화하였다. 이후 20년 이상의 기간에도 사회적 갈등은 여전히 폭발적으로 발생하였는데 다만 그 내용과 양상이 크게 달라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시민사회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었고 노동운동은 수세적 방어 투쟁으로 후퇴했다. 그렇지만 종속신자유주의 사회체제의 고유한 모순은 사회적 양극화와 궁핍화 그리고 경쟁주의 문화 확산과 같은 보다 새롭고 복잡한 양상의 사회갈등을 산출하기 시작하였다. 신자유주의 모순의 심화, 탈물질적 가치의 신사회운동, 그리고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낡은 냉전 민주화 시기의 갈등이 복잡하게 상호작용한 결과였다. 2016년 촛불투쟁과 그 이후의 사태 전개는 이런 갈등의 복잡성과 중첩성, 그리고 폭발성을 잘 보여주었다.

촛불혁명은 20년 이상 응축되었던 모순이 일정 부분 해소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지형을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개혁적 사회변동이 그렇게 쉽지 않은 것은 최근 문재인 정부의 행보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재벌 중심의 지배체제와 보수정당 주도의 제도정치 환경, 여전히 취약한 사회운동, 그리고 시장경쟁 만능의 신자유주의 담론 구조가 여전하다는 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촛불 이후 한국사회 갈등의 지형이 어떻게 재구조화되었는가를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

 

 

노중기 /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동 대학원 졸업(사회학 박사). 비판사회학회, 한국산업노동학회 회장,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등 역임. 주요 저서로 《한국의 노동체제와 사회적 합의》 《노동체제 변동과 한국 국가의 노동정책》 《한국의 노동정치와 노동운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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