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흥기와 인도 고대종교의 영향

인도학 불교학을 연구하는 데 인도 사상이나 문화의 모든 분야를 바라문의 베다 종교 전통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는 오랜 경향이 있었다. 이는 주로 서구학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기독교가 유대교의 배경 속에서 태동한 것이라는 생각과 유사했다. 불교의 기원도 마찬가지인데, 단순하게 베다(Veda) 시대, 브라흐마나(Brāhmaṇa) 시대, 아란야까(Āraṇyaka) 시대, 우빠니샤드(Upa-niṣad) 시대 그리고 그 이후에 불교와 자이나교가 나타났을 것이라고 하는 도식적인 연대기로 불교의 기원을 구하려는 경향이었다. 특히 우빠니샤드 다음에 사문종교 계열인 자이나교와 불교를 배치시켜 자이나교나 불교가 가까이 배치된 우빠니샤드 철학의 배경으로 기원한다고 보아왔다. 

이러한 관점은 근대에 들어 서구 유럽에서 인도학 불교학이 출발하면서 전제하였던 도식적인 연대기를 근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은 다시 일본의 인도학 불교학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결과로 자이나교나 불교의 전문용어와 개념, 사상을 우빠니샤드 문헌과의 관련 선상에서 구하려고 하는 시도를 흔히 볼 수 있다.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은 우리나라의 인도학 불교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까지도 이러한 동향에 근본적인 검토가 없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우선 광범위한 인도를 하나로 보는 전제와 고대 인도 사상 체계의 흐름을 애당초 베다 전통으로만 보려는 자세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자이나교와 불교의 기원을 베다와 우빠니샤드로 이어지는 바라문 종교로 보려는 이러한 태도에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저서가 바로 인도 학자인 G. C. 빤데(Pande)의 《불교의 기원》(민족사, 2019)이다. 물론 이전에도 서구나 인도 학자들이 산발적으로 불교 기원에 비(非)베다적인 요소를 언급하거나 어느 정도 논의를 진척시킨 경우는 없지 않았다. 하지만 빤데의 저서는 불교 기원의 문제에 역사 문화적인 측면에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시도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그러한 문제 제기가 대단히 압축적이어서 거칠게 여겨지는 서술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1) 빤데의 저서는 역사 문화적 논의에서 상세한 분석과 조명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졸저 《우파니샤드 철학과 불교-종교 문화적 그리고 사상적 기원에 대한 비판적 검토》(경서원, 2004)는 연구방법론에 있어 기본적으로 빤데의 역사 문화적인 불교 기원에 대한 논의의 시사점을 발전시킨 것이다. 서구의 학자들 가운데는 스위스의 브롱코스트(J. Bronkhorst)의 최신 저작들을 보면 빤데의 이러한 연구방법론을 누구보다도 세련되고 훌륭하게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2) 브롱코스트가 석사와 박사를 인도에서 수료하면서 다방면에 걸친 오래된 인도 자료의 소장과 함께 인도의 역사 문화를 들여다보는 특유의 감각을 터득한 것처럼 보인다. 이에 비해 같은 세대의 서구학자로서 초기불교 연구자인 영국의 곰브리치(R. F. Gombrich)의 경우는 브롱코스트와 비교된다.3) 곰브리치의 저서는 우리말로도 번역되었는데 빤데나 브롱코스트처럼 역사 문화와 같은 다방면의 측면에서 불교 기원을 논하기보다는 다분히 문헌 중심으로 우빠니샤드와 초기불교 문헌의 문학 비평적 비교 연구에 그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빠니샤드 성립연대를 불교 흥기 이전으로 보는 기존의 근대 서구학자들의 입장을 그대로 답습하며 불교의 기원을 논의하고 있다. 빤데와 브롱코스트가 학문을 어렵게 하는 편이라면 곰브리치는 쉽게 연구에 접근한다. 빤데의 문헌과 함께 역사 문화적인 측면에서 불교의 기원을 여러 학문 분야를 총동원하여 조명했던 방법론은 선구적이다. 그리고 현재 인도는 물론 많은 동서양 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빤데(1923~2011)는 기본적으로 고대 인도 역사학자로서 불교뿐만이 아니라 베다 전통의 문헌을 중심으로 하는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이번 저서 《불교의 기원》은 원래 인도 알라하바드(Alla-habad)대학의 박사학위 논문(1947년)이다. 이 논문이 1957년에 알라하바드대학에서 출판된 이래 인도학 불교학의 세계적인 출판사인 모티랄 바나르시다스(Motilal Banarsidass)에서 이후 몇 차례 재출간되었다. 이후 서구 학자나 일본 학자들도 곧잘 인용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초기불교 연구서가 되었다. 

이 책의 목차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에서 빨리 삼장 가운데 경장의 문헌 성립사를 고층과 신층으로 분석하고 있다. 역사 문화적인 측면에서 불교의 기원을 논의하기 위해서 전체 분량의 거의 절반에 가깝게 빨리 경전의 성립사를 다루고 있다. 물론 이후 논의를 효과적으로 전개시키기 위한 전제이다. 사실 이러한 연구는 근대 서구학자들의 전형적인 문헌학 연구 동향이었다. 여기에는 빨리 경전에 상응하는 한역 아함에 대한 일본 학자들의 초기경전 대조표도 이용된다. 경장의 다섯 니까야를 언어와 사상적인 측면에서 고층과 신층이라는 성립 시대층으로 파악하였다. 그의 저서는 전반적으로 인도 고전 바라문 문헌과 자이나 등의 원전이 바탕이 되었다. 이것은 그가 인도 고전어를 자유롭게 읽어 낼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인도인이기도 하지만 바라문 출신으로 상대적으로 산스끄리뜨 등의 언어 감각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불교 기원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논의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인더스 문명 유물에서 보이는 종교 문화적인 측면들에 특별히 주목한다. 그리고 고대 인도 문명을 베다 중심으로만 보려는 당시의 입장이 잘못되었음을 주장한다. 그는 다시 불교와 불교 외의 인도 종교의 중요 개념들을 논의하며 불교 흥기에 즈음한 역사적 인물로서 붓다의 생애를 초기경전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다. 

제3부는 전체 5장으로 불교문화와 사상의 기원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는 종래의 일반적 주장과는 달리 자이나교나 불교가 바라문교의 개혁종교일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한다. 불교의 기원이 바라문 “베다 종교에 저항하는 개혁운동으로 발생했다고 보는 견해는 이전의 문명에 대해 무지하거나 등한시하여 후기 베다 역사를 잘못 해석함으로써 생각난 것”(p.399)으로 본다. 이러한 주장은 앞에서 언급한 브롱코스트와 함께 불교의 기원을 여러 측면으로 논증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 무아설의 유아(有我) 개념을 우빠니샤드와 관련해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초기경전에서 우빠니샤드의 단일한 궁극적 실재 개념으로서 브라만과 아뜨만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차원에서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을 비판하는 입장이 반영된 초기불교의 맥락을 확증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국내 연구 논문에서는 불교의 무아설을 우빠니샤드의 궁극적 실재 개념인 유아설에 대한 반동으로 보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불교의 천상 개념과 지옥 개념의 기원이나 업과 윤회의 기원 또한 비베다적 기원을 말한다. 이 점에서 빤데는 우빠니샤드에 이르는 베다 문헌보다는 자이나교를 통한 사문 종교로부터 기원했을 것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현재까지 국내 불교학계에서는 우빠니샤드와 관련하여 불교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 대세이다. 특히 호진 스님의 《무아 · 윤회 문제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바라문 전통이 아닌 사문 종교 계열에서 천상과 지옥 그리고 업과 윤회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모른다. 특히 불교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진 사문 종교의 대표 격이었던 자이나교의 사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실 우빠니샤드의 업설과 자이나교의 업설을 비교해 보면 자이나의 업설이 우빠니샤드보다 더 기원이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오래된 우빠니샤드에서조차 이질적인 업설 수용의 과도기적 측면이 나타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불교에서 왜 업을 의지작용(cetanā)으로 특별히 강조했는지도 자이나교의 업설을 통해 그 이유가 가늠된다. 

자이나교는 불교와 공통되는 활동 지역에서 막 흥기하는 불교와 접촉이 많았음은 초기경전에서 증명된다. 마찬가지로 현재 동국대의 불교학 기본 교재에서조차 불교의 출가가 바라문교의 사주기에서 기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계속되며, 학술논문에서조차 변함이 없다. 하지만 빤데는 이는 ”근거 없는 억측”이며 “지나친 추론”이라고 한다. 사실 이 같은 논의는 다른 인도 학자들에게서 어느 정도 제시된 바 있다. 자이나교나 불교와 같은 사문 종교의 금욕주의도 베다 전통에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같은 인도 학자인 떳뜨(S. K. Dutt)의 저서를 인용하는 것으로 보면 그는 떳뜨의 주장으로부터 상당히 고무를 받은 듯하다. 빤데는 나중에 이러한 전반적인 문제를 다시 종합하여 바라문교와 다른 기원에 관한 사문종교에 관한 저서를 낸다.(Śramana Tradition : its History and Contribution to Indian Culture, Ahmedabad : L.D. Institute of Indology, 1978) 

빤데는 석가족의 인종적 기원이 이종사촌 근친혼과 관련하여 소위 아리야계(유럽계 인종)가 아닐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근친혼이 현재 남인도의 주된 인종인 드라비다계와 관련함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계속해서 초기경전에서는 마치 외부 기원처럼 묘사되어 있기도 한 사무량심의 기원 또한 후대 베다 문헌이나 자이나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간단하게 언급한다. 단지 성립 시기가 훨씬 늦은 《요가 수뜨라》에서 한 번(1장 33절) 언급될 뿐이다. 하지만 《요가 수뜨라》의 내용은 거꾸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렇다면 사무량심의 기원에 관한 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 기원과 관련해 우빠니샤드로 이어지는 바라문교나 자이나교와는 다른 ‘잃어버린 고리’ 또는 ‘사라진 고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추리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빤데는 불교의 기원에서 베다를 잇는 우빠니샤드의 영향에 관해 “직접적인 증거는 부족하지만”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기존의 불교 기원에 관한 주장과는 다른 새로운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다시 말해 베다를 잇는 우빠니샤드로부터 불교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일반적인 경향과는 달리 사문 종교의 여지를 크게 열어 놓은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기원은 사문 전통과 바라문 전통 모두에 신세를 진 것으로 결론을 맺는다. 이 같은 빤데의 주장은 서구에 이어 일본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기원을 바라문교에 대한 반동 또는 개혁의 성격으로 보려는 입장에 반하는 주장이다.  

이 책은 국내 불교학계에 불교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문제의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초기불교 학자라면 마땅히 불교의 기원 연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불교의 본래 의미를 끊임없이 재검토하려는 연구를 진행시켜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빤데의 저술은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조준호
동방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연구소 연구원. 동국대와 인도 델리대 불교학과에서 수학. 주요 논문으로 〈위빠사나 수행의 인식론적 근거〉 〈초기불교의 궁극적 행복과 이상적 인간-인간의 완전성 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으며, 저서로 《우파니샤드 철학과 불교》 《자기실현의 동력으로서의 욕망》(공저). 《동남아불교사》(공저) 등과 역서로 《인도불교 부흥운동의 선구자-제2의 아소카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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