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와 공’의 관점으로 해석한 생명현상

책의 특징과 가치

이 책은 생명과학과 불교의 만남을 시도한 화제작이다. 생명과학과 불교의 만남을 시도한 사례는 거의 없다. 생명과학철학자인 유선경 교수와 불교철학자인 홍창성 교수가 공동으로 불교의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생명현상을 해석한 책이다. 생명체와 생명현상이라는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전문용어가 아닌 일상용어로 논술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분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도 생명체와 생명현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책은 저자들이 2016년 가을부터 2018년 여름까지 대한불교진흥원에서 발행하는 월간 《불교문화》에 발표했던 24편의 에세이를 수정 ・ 보완하여 단행본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들이 언급했듯이, “생명현상에 대한 불교철학적 연구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고 또 아직까지 충분히 진지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에 생명과학계와 불교계의 반응이 기대되는 저술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와 공’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생명현상도 고정불변하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비롯된 서구의 본질주의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비판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수천 년 동안 서구에서는 고정불변하는 자성(自性)의 존재를 주장하는 본질주의를 견지해왔다. 그러나 19세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20세기 분자생물학의 눈부신 성과에도 불구하고 많은 난관에 직면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자들은 이 책에서 존재 세계를 꿰뚫는 연기법과 그것의 대승불교적 해석인 공(空)의 관점에서 서구의 본질주의와 실재론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생명과학을 다루었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자 가치일 것이다.

 

책의 구성과 내용

이 책은 크게 여섯 주제로 나누어져 있다. 즉 불교로 이해하는 생명과학, 생명과학과 깨달음, 개체, 종(種, species), 유전자, 진화 등이다. 모두 2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주제에서 다루고 있는 중요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주제는 ‘불교로 이해하는 생명과학’이다. 여기서는 불교의 연기, 무상, 공 등으로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장 생명현상과 붓다의 가르침에서 저자들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로 연기(緣起)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생존하는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들과 그들이 생성한 자연현상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들과 상호의존하며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연기법이다. 모든 생명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상계는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변화할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체는 고정불변의 본질을 갖고 있지 않다. 생명체는 어느 한 순간에도 동일한 개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생명체를 그 생명체이게끔 해 주는 생명체의 본질은 존재하지 않는다[空]는 것이 저자들이 내린 결론이다.

둘째 주제는 ‘생명과학과 깨달음’이다. 여기서는 생명과학의 혁명적 발전을 위해서는 기존의 서구적인 본질주의적 실재론의 관점에서 벗어나 연기와 공의 관점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연구방법론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 주제는 ‘개체’이다. 여기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기 마련인 생로병사에 대한 불교적 이해를 다루고 있다. 모든 현상계는 영원하지 않고 변화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원리를 생명과학으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실존의 문제인 생명의 탄생, 노화, 병듦, 죽음에 대해 생명과학의 지식을 바탕으로 논구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 우주에서 한 생명체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고,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하더라도 생명체로 형성될 확률은 극히 낮다. 또 그렇게 형성된 생명체가 다시 정상적인 성체로 자리 잡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인간의 탄생 과정도 실로 험난하다. 이른바 ‘정자의 전쟁’이라는 과정을 거쳐 한 생명이 태어난다. 또한 노화 과정과 질병이 반드시 같은 현상이 아니다. “병에 대한 공포는 불교에서 가르치는 무상에 의해 초래되는 고통과는 그 원인이 정반대가 된다.”(143쪽) 죽음도 마찬가지다. ‘내가 존재한다’는 집착을 버릴 때, ‘내 세포들의 죽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넷째 주제는 ‘종(種)’이다. 여기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소개하면서 생명 세계에 존재한다고 믿어져 온 고유한 본질을 가졌다는 종의 존재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의한다. 즉 “생명체의 무상함과 고정불변한 본질의 부재로 생명계를 성공적으로 분류했던 그 수많은 종의 존재가 최소한 모호해지거나 또는 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종의 존재를 재고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32쪽)

다섯째 주제는 ‘유전자’이다. 여기서는 유전자 개념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한다. 먼저 유전자의 개념이 역사상 어떻게 변천해 왔는가를 살펴보고, 분자생물학이 전제하는 DNA 분자로서 유전자 개념이 가진 장단점을 논의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전자는 고정불변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1953년 DNA 분자의 이중 나선형 다발의 발견으로 고정불변한 유전자는 바로 DNA 분자라고 받아들여졌다. 그 이후로 생명과학자들은 DNA 분자의 배열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DNA 분자의 다발도 생명체에 존재하는 여느 사물과 마찬가지로 무상하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42쪽) 한편 ‘돌연변이’라는 것도 특별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변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요인에 의해 DNA 분자 다발에 끊임없는 변이가 일어난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명현상이다. 고정불변의 속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DNA 분자의 다발도 사실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변하고 있다. DNA 분자의 다발은 그 스스로를 고유한 DNA 분자의 다발로 규정하는 본질적 속성을 지닐 수 없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본질이 결여된 공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주제는 ‘진화’이다. 여기서는 진화란 향상이 아니라 변화의 과정이며, 진화는 결정론도 아니고 비결정론도 아닌 연기의 과정임을 밝히고 있다. 또 진화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불식시키고, 다윈이 해결하지 않고 과제로 남겨 놓은 두 가지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요컨대 생명현상인 진화는 순수한 물리현상일 뿐이다. 자연을 구성하는 생명체들은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변화하지 않는다. 생명체들은 그저 환경과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변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는 제23장과 제24장의 내용 중에 부정확한 표현이 발견된다. 이를테면 남방불교에서는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설하고, 북방의 대승불교에서는 아공법공(我空法空)을 주장해 왔다는 대목이다.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부파 중에서도 오직 설일체유부(Sarvāstivādin)에서만 아공법유를 주장했을 뿐, 경량부(Sautrāntika)를 비롯한 다른 부파에서는 그렇게 주장한 사실이 없다. 그리고 현재의 남방 상좌부(Theravāda)는 예로부터 ‘분별설부(Vibhajjavāda)’로 불렀으며, 그들은 ‘분별론자(Vibhajjavādin)’ 즉 ‘분석적으로 설하는 자들’이라고 자칭했다. 그들은 지금도 분석적으로 법을 설하는 붓다의 전통을 계승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책은 지나치게 대승불교적 시각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불교도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연기와 공’의 개념

한편 저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타당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책의 핵심 키워드인 ‘연기와 공’의 개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는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생명체와 생명현상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모든 것은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생겨나는데, 이것이 불교에서 가르치는 연기(緣起)이다. 사물은 조건에 의존해서(緣) 생겨난다(起).”(5쪽)는 ‘상호의존의 관계’를 연기라고 이해하는 듯하다. 처음 붓다가 연기법을 설한 목적은 인간의 근본적인 괴로움은 어떻게 발생하고 소멸하는가 하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의 구조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저자들이 지적하듯이 대승불교에서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화엄의 법계연기로까지 발전한다. 따라서 저자들이 말하는 연기는 대승불교적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저자들은 연기와 같은 개념으로 ‘공(空)’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저자들은 “어떤 존재자도 그 스스로 존재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것 스스로를 고유하게 만들어 주는 어떤 본질적 속성(自性, svabhāva)을 소유할 수는 없다.”는 의미로 ‘공’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이란 ‘고정불변하는 본질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초기불교에서는 ‘나(我)’라고 할 만한 고유한 실체, 즉 자아(自我, ātman)가 없다는 뜻으로 무아(無我)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대승불교에서도 처음에는 무아와 동일한 의미로 공(空, śūnya) 혹은 공성(空性, śūnyat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공의 개념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도 ‘고정불변하는 본질이 없다’는 의미로 확대 해석되었다. 따라서 저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연기와 공’의 개념은 대승불교적 해석을 거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붓다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쨌든 저자들은 대승불교적 해석인 ‘연기와 공’의 관점에서 생명과학, 즉 생명체와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며 또 예측해야만 제대로 된 생명과학 연구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승불교적 해석인 ‘연기와 공’의 논리를 거부하거나, 이러한 접근 자체를 비과학적인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끝으로 붓다의 무아(無我)를 비아(非我)로 이해하거나, 인간의 마음밖에 별도로 불변하는 ‘참나(眞我)’가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

 

마성
팔리문헌연구소장. 스리랑카팔리불교대학교 불교사회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철학석사, M.Phil).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에서 〈삼법인설의 기원과 전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원 겸임교수 역임. 저서로 《마음비움에 대한 사색》 《잡아함경 강의》 《동남아불교사》(공저) 등이 있으며,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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