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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 / 조수근
[82호] 2020년 06월 01일 (월) 조수근 조은안과 원장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여행하던 중이었다. 부다성을 옆에 끼고 도나우강을 따라 걸으며 석양을 받아 낮과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겔레르트 언덕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겔레르트 언덕은 11세기 무렵 헝가리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하다 이교도들에 의해 순교한 성 겔레르트(St. Gellert)의 이름을 딴 언덕이다. 뉘엿뉘엿 기우는 햇살에 밤 그림자가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스러지는 햇빛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다 부다페스트성에 이어진 박물관의 높은 성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조각상에 눈길이 멈추었다. 도나우강을 굽어보면서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상이었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조금씩 조금씩 형체가 흐릿해지는 성모상을 애잔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양양 낙산사의 해수관음상이 떠올랐다. 종교적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은 순교의 상징인 겔레르트 언덕과 그 아래의 성모 마리아를 보다가 왜 생뚱맞게 관세음보살이 떠올랐을까?

서울의 종합병원에 있다가 가족들을 서울에 남겨 두고 홀로 강릉의 분원으로 내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수술이 일찍 끝나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병원 사택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다, 헛헛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자동차로 내쳐 달려간 곳이 낙산사였다. 무슨 이유였는지 발길은 의례적인 코스인 홍련암을 제쳐 두고 언덕 위 해수관음상으로 향했다. 지는 해를 등지고 낙산 해변을 바라보는 해수관음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뉘엿뉘엿 해는 기우는데 관세음보살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동녘 하늘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멍하니 동해와 관음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관세음보살님의 온화한 미소만이 파도 소리와 함께 짙어지는 어둠 속에 고요히 퍼지는 가운데 나도 한참을 바람에 실려오는 파도 소리만 듣고 앉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헛헛하던 마음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강릉으로 차를 돌려 내려오는 길에 마음속은 그저 잔잔하기만 했다. 그때는 헝가리에서 뜬금없이 겔레르트 언덕 아래의 성모상을 보면서 해수관음상을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풀잎 위를 재주꾼처럼 통통 튀어 다니는 빗방울들 말고는 모든 시간이 멈추어 버렸다. 법정 스님의 작은 나무 의자에 앉은 아내도, 요란한 셔터 소리를 내던 카메라도 진영각의 고요함 속에 묻혀 들어버렸다. 처마 끝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내려오는지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적멸(寂滅)의 상태. 진영각에서 잠시 정토(淨土)를 만난 것 같은 착각에서 헤어나와 길상사를 나서려는 걸음에 아내가 작은 목소리고 말했다. “여보, 저기 성모상 같지 않아?”

아내가 가리킨 곳에는 단아한 모습의 성모상이 있었다. 흰색의 조각상은 빗물에 촉촉하게 젖어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그 조각상이 관세음보살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성모상을 조각하던 최종태 선생님의 작품이라는 설명을 보고서야 우리의 착각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아차렸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윤곽선에 조용히 눈을 감은 얼굴을 바라보니 집에 있는 성모상이 겹쳐 떠올랐다. 아내의 화장대에 놓여 있는 성모상은 아내와 함께 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때 같이 근무하던 간호사가 준 선물이었다. 

결혼할 당시 아내는 모태 신앙으로 기독교를 믿고 있었고, 나는 부모님이 절에 다니시는 불교 신자였다. 결혼을 하면서 공중보건의사로 군역을 치르게 되어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때라 부부는 종교적 화합을 이루기 위해 둘 다 천주교로 개종하기로 합의했다. 몇 달에 걸친 예비자 교리 수업을 마치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신자가 된 것을 기념해 받은 그 조각상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었다. 당시 아기를 오래 기다리던 아내와 나에게는 더욱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선물이었다. 아기를 기다리면서 우리 부부는 성모상 앞에서 묵주기도도 하고 성당에 나가 미사도 드리고, 때로는 바람 쐬러 들른 인근 용문사에서도 예쁜 아기를 주십사 하고 빌었다. 이젠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에 나가 미사를 드리고, 날씨가 좋은 날에 봉은사에 들러 산책을 하고 차 소리가 조용한 날에는 봉은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잠들곤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의미로 쓰이는 톨레랑스의 기원은 칼뱅과 루터의 종교개혁이 한창일 무렵, 타 종교에 대한 자유와 관용의 자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20년 가까이 종교가 달랐던 아내와 살아오면서 서로 종교적 문제로 얼굴을 붉혀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겔레르트 언덕 아래의 성모상과 낙산사의 해수관음상, 그리고 아내 화장대 위의 성모상과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이 부부의 마음속에 함께 공존하듯이. 

다만 그 톨레랑스라는 것이 부부 사이의 이견에도 좀 발휘되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때가 가끔 있기는 하지만.

jsg11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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