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시험에 낙방했다. 충격이었다. 아들은 담담한 척했지만 말수가 적어지고, 잘 먹던 반찬에도 밥을 남겼다. 아내는 수시로 눈물을 찔끔거렸다. 비슷한 실패 경험이 있는 나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아내와 아들을 다독였지만, 안타깝고 속상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어깨가 축 늘어지고 의기소침한 아들이 떠오르면 자다가도 눈이 번쩍 떠졌다. 가슴이 벌렁거리기다가 아프기도 했다. 

‘내가 이럴진대 어머니가 아시면?’ 

낙담할 것이 염려되어 어머니께는 가능하면 숨기기로 했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마음은 각별했다. 결혼 후 5년 만에 생긴 아들은 백일 지나면서부터 알레르기 피부염과 천식을 앓았다. 아내가 아들 낳고 얼마 안 되어 둘째를 가졌기에 어머니가 아들을 돌보기도 했다. 천식으로 숨소리가 거칠거나 피부염으로 얼굴에 진물이 나는 것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심장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눈물로 그 심장을 적셨다는 어머니는 날마다 기도를 바치고, 알레르기에 좋다는 음식들을 찾아 일일이 찌고 말려 가루를 내어 직접 이유식을 만드셨다. 꾸준히 이유식을 먹은 아들은 여섯 살 무렵에 피부와 천식이 거의 다 나았다. 

그 후로 아들은 승승장구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고등학교를 거쳐, 의과대학에 합격했고 부속병원에서 인턴을 마쳤다. 어머니의 기대는 점점 더 커졌고 대학병원 의사이자 교수가 될 것으로 믿으셨다. 그러나 당연히 합격할 줄 알았던 전공의 선발 시험(전공과를 선택하는 시험)에서 실패를 맛본 것이다. 

“우리 손자 지원한 과(科)에 남았지?”

87세인 어머니께서 어떻게 아셨을까? 발표 날 오후에 전화를 하신 것이다. (우리는 하루 먼저 결과를 알았다). 집사람이 눈물을 쏟아버렸다. 결국 어머니가 가장 먼저 알게 되셨다.

“내 기도가 부족한 탓에 우리 귀한 손자가 실패한 거야. 당연히 합격할 줄 알고 게으름을 피웠던 게야. 이제는 앉을 수 있으니 기도하면 좋아질 거네.” 

얼마 전 어머니는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낙상하셨다. 골절은 없었지만 근육과 연조직을 심하게 다쳐 꼼짝 못 하셨다. 심장질환으로 항혈전제를 복용하고 있었기에 온몸에 멍이 들었고, 출혈이 우려되어 절대 안정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아들 소식을 접했을 때는 앉아서 식사할 정도로 회복되었기에 기도를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다음날 새벽부터 어머니의 기도가 다시 시작되었고, 시험에 실패한 아들은 곧바로 군대에 가야 했다. 군의관 대신에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첫 발령지가 웬걸, 코로나19 환자가 많은 지역이었다. 알레르기 천식 병력이 있어서 이 또한 걱정이었지만, 한 달 동안의 파견 근무를 무사히 마쳤다. 

“내가 기도하면 좋아질 거라고 하지 않았나. 부처님이 보살펴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 손자 다 잘될 테니 걱정 말게나.”

어머니가 기도드리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은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기 전이었을 거다. 뒤뜰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바치고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며 두 손을 비비셨다. 그러던 어머니가 30여 년 전 부처님께 귀의한 맑은 마음의 제자를 만난 후부터는 부처님께 빌었다.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을 때였으니,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기도를 올렸다. 촛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고 108배를 올리고 염주 돌리면서 《지장경》과 《천수경》을 읽고, 마지막으로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읽으셨다. 3시간 정도 걸렸다고 했다. 관절염이 심해져 절을 올리지도 못할 때는 다리를 뻗어 이불 밑에 넣고 독경을 하셨기에 지난 30년 동안 새벽 기도를 쉰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하셨다. 

그동안 어머니가 자식들을 키우면서 어려운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삼 남매의 중요한 시험, 손자들 입시, 아버지의 수술과 3년에 걸친 투병 그리고 아버지의 임종. 누나 가족의 수술, 형님 가족의 수술, 아내의 교통사고 등, 어머니의 기도는 쉴 날이 없었을 것이다. 특히 암 수술 때 독경 소리는 더 커졌을 테고 목소리는 더욱 애절하고 때론 눈물 콧물 범벅이 되기도 했으리라. 

어머니는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다고 믿으셨다. 암이 조기에 발견되고 폐 수술도 한 쪽 폐 전부가 아닌 부분 엽 절제로 끝난 것, 그리고 수술 후에도 별 후유증 없이 잘 이겨낸 것도 부처님의 은공이라고 생각하셨다. 

언젠가 내가 어머니 기도에 응답이 있는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부처가 당신 맘속에 있다고 생각하고 부처님 말씀대로 살려고 한 덕분이라고 하셨지만, 가톨릭 신자인 내게는 쉽게 와 닿는 얘기는 아니었다. 다만 내가 그동안 보아온 어머니 기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무언가가 잘못되면 그것은 당신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범사(凡事)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암이 생긴 것에 대한 원망보다 조기에 발견해서 감사하다는 마음 같은 거다. 또 하나는 협상을 하시는 거다. 막내아들이 잘되면 주위를 잘 돌보며 좋은 일을 할 것이니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하는 식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내가 특별히 잘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주위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많았다. 그게 어머니의 기도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에는 자꾸만 든다.

taese2@hanmail.net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