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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 이희
[82호] 2020년 06월 01일 (월) 이희 영동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들이 있다. 재미가 있어서 또는 감동이 있어서 오래 남기도 한다. 잔잔한 감동이 오래 남는 영화 중에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는 영화가 있다. 

노리코라는 여대생이 부모의 권유로 사촌과 함께 다도를 배우기 시작한다. 둘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다케다 선생님 댁을 찾아간다. 선생님은 하나씩 가르치고 사촌은 곧 그만두었지만, 노리코는 따라 하면서 재미를 붙여 꾸준히 계속한다. 세월이 흐르고 어렵거나 괴로울 때도 선생님과 정을 나누면서 살아간다. 

평온하게 제자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다케다 선생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노리코가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는 장면은 다도가 단순히 차를 마시는 것이 아니고 도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전례를 통하여 얻는 깨달음이라고 할까. 전례가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고안된 장치라고 생각하면 그저 티백을 끓는 물에 넣었다가 2분 후에 꺼내 버리고 마실 수 있는 차를 복잡하게 정해진 의례에 따라 우리고 마시면서 다도라는 이름으로 높여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영화는 마지막에 오랜 사사를 한 노리코에게 다케다 선생님이 이제 학생들을 가르쳐 보라고 하면서 마무리되었는데, 다도를 배우는 긴 여정, 도에 이르는 길을 보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다케다 선생의 교실은 전형적인 일본식 다다미방이었는데 그 방에 걸려 있는 액자에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라고 쓰여 있었다. 일본식 서체로 쓴 붓글씨였는데 이 글귀는 당나라 운문 선사의 말씀이다. 다도 교실에 선사의 말씀이 걸려 있고 영화의 제목이 되었으니, 다도가 선을 지향한다는 뜻인 것 같다. 

운문 선사가 물었다. “보름 이전은 묻지 않겠다. 보름 이후의 것을 한마디로 말해 보아라.” 그러나 제자들이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스스로 “일일시호일”이라고 답했다. 

존 우가 쓴 《선의 황금시대》라는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보름은 깨달음을 말하는 것이라 하니, 깨달으면 ‘날마다 좋은 날’이 된다는 뜻인 듯하다. 운문 선사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면서 “일단 자기 자신이 되면 무지하고 이기적인 아집 때문에 만들어진 억압과 공포를 떨치고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워지면 일을 할 때도 행복하고 사는 것도 행복하고 죽는 것도 행복하다.”고 설명하였다. 

운문 선사가 한 말 중에 가장 행복에 겨운 말이 바로 이 말이라는 것이다. 오랜 수행 끝에 얻은 고승의 깊은 깨달음을 피상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겠지만, 삶이 고해가 아니고 날마다 좋은 날이 된다면, 죽음까지도 행복이 된다면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닌가. 

 

죽음까지도 행복이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떠오른 사람은 장자다. 그는 아내가 죽었을 때 악기를 두드리며 노래한다. 조문을 온 혜자가 곡을 해야 할 자리에서 노래를 한다고 나무라자, 자기도 처음에는 마음이 좋지 않았으나 사람이 처음부터 살아 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대답한다. 기가 모이고 형체가 생기고 삶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오늘 돌아갔으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번갈아 오는 것과 같지 않은가. 갈 곳으로 갔으니 딱히 슬퍼할 것이 없다. 슬퍼한다면 천명을 모르는 것이라 하고는 ‘커다란 방에 태연히 누워 있다’는 글귀를 남겼다고 한다. 아내의 주검 앞에서도 노래를 불렀으니 글자 그대로 일일시호일이 아닌가! 

목사님들은 하느님을 영접한 사람은 죽어 천당에 갈 뿐만 아니라,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게 된다고 하면서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물론이고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도 감사하라고 말한다. 말은 다르지만 뜻은 같은 맥락이다. 수행과 신앙을 통하여 기쁨과 행복에 이른다는 생각은 종교적으로는 보편적인 생각이 아닌가 한다.

수행의 종류와 관계없이 오래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수행 중에 기쁨을 느꼈다는 말을 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전혀 다른 수행을 하는 사람들이 비슷한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몰입하는 자체가 기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잊고 수행 자체에 깊숙이 빠져들었을 때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을 보면 미하일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의 즐거움으로 수행의 기쁨과 행복의 일부분은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경험들이 지속적인 변화로, 항상 기쁨이 충만한 삶으로 바뀌는 것은 좀 더 과학적 연구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큰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깨달음은 일상생활에서도 도움이 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욕망이 생기면 억압하여 무의식이라는 커다란 그물 안에 가두어 두고 외면하려고 애를 쓰지만, 결과적으로는 편해지기는커녕 이런저런 구속을 받게 되어 마음의 고통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억압은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방식으로 골치 아픈 일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의사와 함께 마음을 살펴보면서 그를 괴롭히던 마음의 조각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잘 다룰 수 있게 되면, 외면하기를 그치고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면 그물에 가둘 필요도 없어지고 구속도 받지 않게 되니 자유로워진다. 편안하고 행복해진다. 

 

노리코가 다케다 선생님을 찾아가던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깨달음이 멀리 산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도 다도가 많이 알려져 있고 종교와 관계없이 요가나 선이나 단전호흡 같은 명상을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 꾸준히 계속하여 마음의 여유를 찾고 기쁨을 얻어 더 행복한 세상이 되기 바란다.

dasich7777@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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