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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식하다 / 이동민
[82호] 2020년 06월 01일 (월) 이동민 소아과 전문의

1990년 초에 유홍준 선생이 영남대학교에 부임했다. 선생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발간되기 전이었지만, 대구에서 문화유적지 답사를 유행시켰다. 대구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유홍준 선생의 시민강좌는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나도 그때 시민강좌를 듣고 나서 그의 팬이 되었고, 유적지 답사 여행에도 열심히 따라 다녔다.

경상도는 신라의 옛 땅이라선지 골마다 돌부처상과 석탑이 있다. 경주가 고향인 나는 밭둑에 팽개쳐져 있는 석조 부조물, 무슨 용도인지도 모르는 돌 조각들을 흔하디흔하게 보아왔다. 돌부처상이더라도 나의 눈에는 조금 특이한 돌덩이(?)랄까, 아니면 시골 할머니들이 오다가다 그 앞에서 고개 숙이고 손으로 비는 미륵님일 뿐이었다. 학교에서 배웠듯이 폐기해버려야 할 미신의 잔존물이었다. 

유홍준은 미술사가이다. 그때 우리는 미술사라는 학문이 있는지도 모를 만큼 무식했다. 그의 덕택으로 경주 부근에, 특히 남산에 널려 있는 여러 불교 유물은, 산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쓸모없는 돌덩이에서 황금보다도 더 값이 나가는 보석으로 재탄생하였다. 특히 우리의 흥미를 끈 것은 탑에 관한 양식의 변화였다. 어느 사이에 우리는 통일신라 탑이니, 고려 탑이니 하는 말을 하게 되었다. 부처님상에 대해서도 아는 척했다. 이 부처님은 양식으로 보아서 어떠니 하면서 떠들었지만, 그건 순전히 미술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었다. 

경주 남산에 답사 여행을 여러 번 갔다. 갈 때마다 안내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술 이야기로 답사의 전 과정을 채운다. 남산의 부처님들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모진 세월을 보내느라 목이 떨어져 나간 분이 많다. 언제였는지 또는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머리와 몸체를 시멘트로 결합한 부처님도 계신다. 남산의 해설사는 물을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소신을 펼친다. “이것 보세요. 얼마나 부자연스러워요. 옛 석공의 미적 아름다움을 이렇게 손상하다니, 차라리 내버려두는 것이 낫지요. 무식하게도.” 

이처럼 유홍준 선생의 영향이 경주 남산의 문화유산해설사에게도 깊숙하게 퍼져 있었다. 해설사의 말을 듣고 있던 분이 듣기가 조금 거북하였는지, 나더러 이렇게 말했다. “시멘트로 목을 붙인 사람은 미술가가 아니지요. 어쩌면 막일꾼인지도 모르지요. 미술작품으로서가 아니고 부처님으로 생각하고 자기 나름으로 정성을 다하였을 것 같아요. 저 시멘트 표면을 매끄럽게 손질한 것을 보세요. 그 일꾼의 정성이 보이지 않아요?” 해설사의 말에 흠뻑 취해 있었지만, 그 말을 들으니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지식이고,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은 무식이 된다. 

신라 탑을 미술사의 입장에서 보면 석가탑이 최고봉이다. 석가탑 이후의 탑은 미적 표현에서 가치가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보기에는 볼품이 없어도 탑파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주요한 탑들이 있다. 그 탑을 찾아가 보면 잘 돌보지 않아서 쓰러질 듯이 퇴락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있다. 

안내하는 분들 중에 간혹 스님들이 무식하여 탑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여 관리하지 않고 내버려두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해설사도 있다. 우리는 ‘그럼 그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스님이 무식해서 그렇다는 데 동의했다.

경남 창녕 술정리탑을 답사 갔을 때의 일이다. 술정리탑은 석가탑이 퇴영하는 9세기 초의 양식을 보여줌으로써 탑파사에서 아주 중요한 탑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탑 주위에 둘러서서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해설사는 긴 막대를 들고 탑의 부위를 여기저기 지적하면서 술정리탑의 이런저런 특징을 설명했다. 그 특징이 바로 석가탑 양식이 매너리즘에 빠져드는 본보기라고 했다. 긴 막대가 말하고자 하는 탑의 위치에 닿지 않자 그는 기단석 위에 올라가서 막대를 탑 위로 뻗어 설명하려는 부위를 툭툭 쳤다. 

“거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어요?”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비구니 스님 한 분이 소리를 높여서 꾸짖고 있었다. 해설사는 흠칫했고, 우리 모두 그 비구니 스님을 바라보았다. 

“이보세요. 탑은 우리가 숭배하는 신앙의 대상입니다. 당신네들이 막대로 툭툭 쳐도 되는 그런 돌덩이가 아닙니다.”

해설사는 입을 다물고 탑에서 내려왔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탑은 절을 아름답게 꾸미는 장식물이 아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는 무덤이다. 우리가 아버지의 무덤에서 절을 하면서 경배를 드리듯이 탑은 불자들에게 숭배의 대상이지 미술작품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미술 이야기를 하면서 스님이 무식해서라고 했지만, 정작 무식한 건 우리가 맞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donmie2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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