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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만난 유발 하라리 / 신종찬
[82호] 2020년 06월 01일 (월) 신종찬 신동아의원 원장

평생 쾌락을 찾아 헤매던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평정이다. 바닷가에서 좋은 파도를 받아드려 나쁜 파도를 밀어내어 자신에게 오지 못하게 애쓰는 일이다. 늘 이렇게 애쓰면 마침내 모래에 주저앉아 파도가 마음대로 오가게 놔둔다. 얼마나 평화로운가!

 

이는 세계적인 석학 유발 하라리의 명저 《사피엔스》 중, 불교의 명상 후기의 한 부분이다. 그의 또 다른 명저 《호모 데우스》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도 불교에 대한 깊은 이해를 보여주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 교수인 그는, 동서양의 고전을 섭렵한 데다 자연과학에도 해박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들을 생산하고 있다. 동서양에 대한 편견 없는 견해와 미래에 펼쳐질 첨단과학기술 사회에 대한 그의 예측은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불교에 대해 과문(寡聞)해서인지 지금까지 유발 하라리가 소개하는 글처럼 압축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불교의 핵심을 잘 설명한 글을 대하지 못했다. 그의 글들은 몸소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선(禪)을 실천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글일 성싶다. 그는 아마도 정명(正命, 살아가기 위한 의식주를 바른 방법으로 하는 것)과 정념(正念, 정정진하는 생각을 놓치지 않고 삼법인을 염두에서 놓지 않는 것)을 실천하여, 정선(定禪, 무명을 제거하여 깨달음을 얻은 상태)의 경지에 이른 게 아닐까. 

현대는 자유주의 시대다. 자유주의는 행복에 대해서도 개인의 주관적 기분을 신성시하여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 속’에 있다고 한다. 서구에서는 르네상스 이후에 와서야 장 자크 루소가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이 선이고, 내가 나쁘다고 느끼는 것이 악이다.”라고 했다. 서구에서 자유주의 이전의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선함과 아름다움, 당위성에는 성경과 같은 근본적인 척도가 존재한다고 했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입구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글귀는, 보통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2,500년 전에 벌써 불교는 행복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했다고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불교의 접근방식은 현대 과학적 접근방식과 기본적 통찰 측면에서 일치한다. 행복은 신체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온다고 보았다. 그러나 불교는 생물학과 결론은 매우 다르다. 과학자들의 불교철학과 명상법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불교에서는 행복을 즐거운 감정으로, 고통을 불쾌한 감정으로 본다. 그래서 자신의 느낌을 매우 중요시하여 점점 더 많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한편,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문제는 우리의 감정이 파도처럼 매 순간 변하는 순간적 요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불쾌한 감정을 몰아내려면 또 다른 즐거운 감정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한다. 한 번 성공해도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하고, 그 노고에 대한 보상은 없다. 이렇게 덧없는 보상을 받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덧없는 즐거움을 느끼는 대신에, 이 모든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속성을 이해하고 갈망을 멈추는 데 있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에서 ‘생명공학은 인간의 수명을 대폭 연장하고 인간의 몸과 마음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예견하고 있다. 크게 보아 인류는 기아, 역병, 전쟁을 통제하는 데 성공하였다. 성공은 늘 야망을 낳는다. 전례 없는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다음 목표는 불멸, 행복, 신성이다. 이제 노화와 죽음 자체를 극복하려 든다.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神的 존재라는 뜻)’로 바꾸려 하고 있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혁명이 겹치는 지점에 와 있다.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신체, 특히 인간의 뇌와 감정의 신비를 해독하고 있다. 동시에 컴퓨터는 유례없는 데이터 처리 능력을 선사하고 있다. 생명기술과 정보기술 혁명이 합쳐지면 빅데이터 알고리즘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자신보다 훨씬 더 잘 모니터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 후에는 인간의 권위가 컴퓨터로 이동할 수도 있다. 그때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환상은 산산조각이 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의 수명이 대폭 늘어나고, 인간의 뇌 데이터가 비유기물에 저장된 존재가 나타나는 시대가 도래하고야 만다면 그땐 인간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며,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제 이 태곳적 물음에 새로운 답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유발 하라리는 부처가 이미 준비한 답을 소개했다. “삶에는 의미가 없고, 사람들은 의미를 만들 필요도 없다.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럼으로써 우리의 집착과 공허한 현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하는 고통에서 해방되면 된다.”고 했다. 

이 가르침을 받아들인 불자들은 이를 타인에게 설명하는 데서 의미를 찾았다. 그러나 이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도 하고, 회의적인 사람들에게 강연도 한다. 사원을 짓는 데 기부금을 모으는 일도 한다. 이렇게 ‘의미 없음’은 너무나 쉽게 ‘또 다른 의미’가 되었다. 집착에서 해방되었다고 하지만, 이 말의 의미를 두고도 얼마나 많은 싸움을 벌였던가? 다른 종교처럼 ‘모든 것이 신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사람들이 싸우는 것’이라면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이에 대한 우둔한 내 질문은 ‘모든 것이 공허하다면서 진공묘유(眞空妙有)를 아는 분들이 왜 그리 싸울까?’이다. 이는 아무리 변해도 인간의 본성은 모두 ‘너무나 인간적’이기 때문 아닐까?

asjc74d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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