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합성섬유인 나일론(ny-lon)은 때로 환자나 신자 같은 단어 앞에 붙어서 ‘가짜’ 또는 ‘엉터리’라는 뜻의 속된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는 나일론이 천연섬유가 아니라 합성섬유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나일론으로선 어딘가 부당한 오명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난데없이 나일론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나에 관해 설명하기 위해 그 관용적 표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른바 나일론 신자다. 대대로 불교 집안이라 태중에 있을 때부터 절에 자주 다니긴 했지만, 불교에 대한 소속감은 약했다. 신도증을 만든다거나 정기적으로 시주하는 등의 공식적 종교 행위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명절이나 부처님오신날을 제외하면, 연중 절을 방문하는 횟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나는 그저 가고 싶을 때, 혹은 답답할 때만 절을 찾아가는, 말 그대로 나일론 신자가 맞다.

 

사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내 생애 최대의 위기를 맞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 따라서 가는 것 외에는 내 발로 절을 찾아가는 일은 아예 없었다. 개원을 염두에 두고 은행에서 대출받은 자금을 지인에게 맡겨 좀 늘려 보려다가 일이 잘못되는 바람에 생빚만 고스란히 떠안게 된 그 사건은, 단순하고 편하게 사는 게 인생의 목표였던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큰 시련이었다. 머리만 대면 그곳이 바로 잠자리가 되어버리곤 했던 내게 불면의 밤이 찾아왔고, 하루만 운동을 안 해도 온몸이 근질근질할 정도로 운동중독에 가까웠던 내가 한동안 헬스클럽 출입을 끊었더랬다. 그렇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심하니 몸 상태도 좋을 리 없었다. 지병인 과민성대장증후군 증상이 더 심해졌고, 감기가 떨어질 줄 몰랐다.

앉으나 서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밀려드는 잡념들, 눈을 감아도 떨쳐낼 수 없는 분노와 후회에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던 내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절에 가고 싶다!’

절에 가서 삼천 배 같은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목표를 삼천 배로 잡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숙달된 사람도 삼천 배를 하려면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말에 선뜻 엄두를 내지 못했다. 목표를 좀 낮춰서 천 배, 결국은 조금 더 낮춰서 108배까지 목표치가 내려갔다. 하지만 아무튼 부처님 앞에 찾아가서 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당시 내가 거주하던 분당에 있는 절을 검색해보니, 서현의 대도사, 구미동의 골안사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규모가 큰 대도사보다는, 산중에 있는 작은 암자 같은 분위기의 골안사가 왠지 더 끌렸다.

바로 그 주말 저녁, 나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여느 토요일 저녁 같으면 어김없이 클럽 갈 채비를 했을 터였지만, 그날만큼은 퇴근 직후에 바로 저녁을 먹고 샤워한 후 절에 갈 준비를 했다. 출근할 때 입었던 정장 바지를 다시 입었다가는 아무래도 편안한 쪽이 더 낫겠다 싶어 운동복 바지로 갈아입었다.

이윽고 도착한 골안사 입구. 주차장에서 산기슭의 절 입구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어둠이 내려 온통 깜깜하기만 한 산길은 자못 무서웠다. ‘그래도 법당에는 불이 켜져 있겠지?’ 하고 생각하며 뛰듯이 걸어 도착한 골안사에서는 불빛이나 인적을 찾기 힘들었다. 머리털이 쭈뼛 서고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공포감에 휩싸인 나는 법당을 향해 황급히 세 번 합장한 후 곧바로 차를 향해 뛰어왔다.

‘나의 불심을 이대로 접어야 하나?’

맥이 탁 풀리는 좌절감을 느끼며 골안사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에 진입한 그때, ‘대광사’라고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표지판의 안내에 따라 찾아간 대광사는 골안사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천태종 절이었다. 절 주변은 으리으리한 고급 빌라촌이었다. 높다란 계단 밑의 적당한 지점에 차를 세워두고 계단을 올라갔는데, 마당에 세워진 탑이 내뿜는 불빛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법당에 들어섰다. 천태종 절을 방문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조계종 사찰 분위기와 비교하면 좀 더 웅장하고 화려한 느낌이었다. 아무렇게나 놓인 붉은 방석 위에 자리를 잡으려던 찰나, 옆에 계시던 할머니 보살님이 남자는 푸른 방석을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다. 그래서 나는 법당 뒤편에 있는 벽장 중에 ‘처사용’이라 쓰인 칸에서 초록색 방석을 꺼내 가져왔다. 그리하여 나는 난생처음 108배를 시작했다.

108배를 끝내고 나니, 절하는 내내 숫자 세기에만 몰입하느라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기분이었다. 힘겹게 108까지 센 후 처사용 초록색 방석에 앉고 나서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법당을 나와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다리가 후들거렸다.

‘운동으로 단련된 나도 이렇게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인데, 우리 삼 남매 대학입시 때마다 백일 동안 매일 108배 하셨던 울 엄마는 어떻게 그토록 힘든 걸 해내실 수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사실 그 시절엔 매일 같이 108배를 하시고 수시로 갓바위를 오르내리시는 어머니를 지켜보는 일이 다소 짜증스럽고 속상했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쏟아붓는 정성이 아무 의미 없는 듯 보였고, 적잖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인생의 위기를 겪으며 절실함이란 걸 가져 보니, 그제야 비로소 그 시절 어머니가 108배 하시던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 거다.

그 후로도 나는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거나, 혹은 마음속에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을 때면 아무 절에나 가서 108배를 하곤 한다. 

솔직히 말해 절에 가서 부처님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든다. 평소엔 얼씬도 안 하다가 내가 답답할 때만 부처님 앞에 나타나는 게 못내 송구스럽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마음이 힘겹거나 답답할 땐 꿋꿋이 절에 가서 108배를 하고 말 것이다. 부처님은 왠지 그런 나도 받아주실 것 같기 때문이다. 종교에 이바지하는 바는 쥐뿔도 없으면서 ‘심신의 정화’라는 종교의 순기능만 날름 취하고 있는 나 같은 얌체 나일론 신자일지라도, 인자하신 그분은 너그럽게 포용해주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jhkwahk@naver.com

저작권자 © 불교평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