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이 버스에서 내리자, 친절하게도 운전기사는 벌써 짐칸에서 회색 캐리어를 꺼내 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가 든 데다 이런저런 이유로 몸이 굼떠진 탓이었다. 거기다 두 다리가 급할 때면 꼭 태를 내곤 했다. 그녀의 눈길이 한 차례 도로에서 절로 난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갔다가 돌아왔다. 꼭 쉰 해 만이었다.

버스가 영산호 너머의 종점인 ‘중장터’를 향해 떠났다. 여진은 캐리어의 손잡이를 붙들고서 가까이에 서 있는 정류장 표지판을 올려다보았다.

불호사……. 그녀는 확인하듯 입속으로 표지판을 읽었다. 이때 바람끝이 얼굴을 스치면서 쌉싸래한 향기가 상큼하게 코끝에 묻어났다. 그녀의 머릿속에 오래된 비자나무 숲이 넓게 펼쳐졌다. 절로 들어가는 길의 왼쪽 산자락이었다. 지금은 얼마나 울울창창해졌을까……. 일제 때 몸통이 큰 나무들을 골라서 베어내 가고, 다시 한국전쟁 때 포탄들이 떨어져 찢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조금씩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던 숲이었다.

여진은 캐리어를 끌고 큰길을 벗어나 절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인공관절로 바꿔 끼긴 했어도, 등산지팡이만 있으면 야산 정도는 거뜬히 오르내릴 수 있는 두 다리였다.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가면서 착실히 운동을 해온 덕이었다. 그런데 절집에 사는 두 스님 가운데 하나가 이제 제힘으로 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경이 된 모양이었다.

돌멩이투성이였던 길을 넓히고 아스팔트 포장까지 해놓은 덕에, 그녀의 걸음걸이는 가벼웠다. 떠날 때 언제 한 번쯤 오긴 와야 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이 바로 지금이었다. 석우 주지가 보낸 문자 때문이었다.

“부서진 수레는 구르지 못하고 늙은 사람은 닦을 수 없다.”고 문자를 보낸 사람의 속뜻을, 여진이 모르지 않았다. 사정이야 어찌 됐든 절밥을 스무 해쯤 먹으면서 속을 상하기도 했고, 두 무릎이 망가지기까지 했던 셈이었다. 끼니들을 급하게 때우고 불전에서 절을 해댄 탓이었다. 물론 모두가 옛일이었다.

용담 회주일 가능성이 크지만, 석우 주지도 꼭 아니라고 믿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 둘 가운데 하나가 나이 들어 병이 나고, 그 병이 깊었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그녀더러 와서 간병을 해달라는 뜻이기도 했다. 당연히 시봉하는 이가 있을 터인데도, 더없이 간절하다는데 어쩌겠는가. 스님이 병들면, 고작 뒷방에서 독살이 하는 신세만 돼도 호강이라고 한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여진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뒤쫓아 오는 캐리어의 바퀴 구르는 소리가 요란해지면서 그녀는 신경이 쓰였다. 서울역에서 송정역까지는 불가피하게 KTX를 이용했다 해도, 그다음에는 절까지 택시를 탔어야 했다. 후회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역전 광장에서 택시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중장터행 버스를 발견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중장터라는 지역 이름을 보는 순간, 다정한 옛 친구라도 만난 것처럼 그만 마음이 끌린 것이었다. 불호사 앞 버스정류장을 지나서 10여 분쯤만 가면 중장터였다. 장이 서는 날이면 근동의 절들에서 모여든 중들로 북적댄다 해서 생긴 이름이었다. 미륵사, 개천사, 쌍보사, 문성암……. 근동에 그만큼 많은 절들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길의 오른쪽을 따라 수량이 넉넉한 시내가 흐르고 있었다. 절의 북쪽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자락을 시내까지 펼치고 있는 산등성들에는 듬성듬성 삼나무들이며 전나무들이 섞여 숲을 이루고 있었다. 끝자락 구비구비에 철쭉꽃이 한창이었다.

작은 모퉁이를 돌아서자 쌉싸래한 향기가 와락 쏟아지는 듯했다. 비자나무 숲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두 눈이 저절로 잠겼다. 순간 마치 그곳에 오기 위해서 새벽에 서울을 떠났던 것 같았다. 가슴이 버거웠다.

문득 청년 하나가 눈 속에 그려졌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여진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녀는 더는 견디지 못하고 눈을 떴다. 눈앞은 한창 녹색에 젖어가는 비자나무들이었다. 이제 청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김삼수. 열아홉 살. 여진의 서방이었다. 그 사람이 여기서 붙들린 뒤에, 어디에 간다 온다 말도 못 하고 아주 가버린 것이 언제인가. 벌써 일흔 해가 다 돼가고 있었다. 절로 그녀를 찾아오던 길이었다. 그 사람이 여전히 여진의 가슴속 어디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계곡에는 근사한 홍예가 걸려 있었다. 홍수가 날 때면 떠내려가 버리곤 하던 통나무다리가 있던 자리였다. 여진은 홍예를 건넌 뒤에 천천히 사천왕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새에 당우가 여럿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왜인지 좀 낯설다 해졌다.

눈을 들자 잘 정비한 석축 위에 서 있는 전각이 다섯이었다. 두 개는 예전에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 가운데 지붕의 형태가 특별한 불전이 새로웠다. 불전의 격자문들이 새삼 반갑기도 했다. 그 전에는 통판문이었는데 인민군들이 덤벼들어 뜯어가 버렸다고 했었다. 그래 하긴 쉰 해 만이야……. 그냥 입속말이 나왔다.

그녀가 떠나기 전까지도 이미 오랜 세월 절을 지켜온 불전이었다. 그 안에는 건칠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좌우에서 소조 문수보살입상과 보현보살입상이 협시하고 있을 터이었다. 불전과 세월을 함께한 불상들이었다. 건칠이나 소조 방식으로 조성한 불상은, 더욱이 협시들이 입상인 경우는 어느 절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그때의 절 식구들이 자랑스러워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진은 기억을 더듬어서 회주실과 주지실을 찾아서 눈길로 더듬었다. 석축 밑에까지 가는 동안에도 그 자리가 확실히 잡히지 않았다. 그래, 쉰 해나 지났어……. 그녀는 다시금 입속말을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나이가 이제 여든일곱인데 뭐…….

캐리어를 석축 밑에 둔 채로 계단을 올라간 그녀는, 급하게 불전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그녀는 용담(龍潭) 회주의 안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석우(石牛) 주지와 전화가 되지 않아서였다. 불전을 나선 다음은 명부전이었다.

명부전에는 남편 김삼수의 위패가 있었다. 열여섯, 열일곱 살 색시가, 1년 반에서도 석 달이 모자라는 기간을 부부로 산 사람이었다. 여진은 남편의 위패가 명부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절을 떠났었다. 도저히 절에 더는 남아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덕행 보살님……!”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석우 주지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두 손을 덥석 잡았다. 더는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그녀는 그를 품에 안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주지 스님이었다. 그것도 이 절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는 일흔 살의 노장이었다. 참아야 했다. 어찌 그라고 안기고 싶지 않을까 했다. 두 돌이 다 될 때까지, 여진의 젖을 빨며 여진의 젖을 만지며 여진의 품에서 자랐고, 또 스무 살이 될 때까지도 보살핌을 받지 않았던가.

“참으로 오랜만이셨을 텐디, 어른께서는 그동안 극락에서 잘 지내셨다고 허시지라?”

먼저 그녀는 아픈 사람이 석우 주지는 아니었군, 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맙소. 그런데 이 사람을 왜 부른 거요? 어른스님이 많이 안 좋으신 건가요?”

석우 주지는 명부전에서 나온 여진에게 제 서방이 저승에서 잘 지내던가 하고 묻는데, 그녀는 용담 회주가 이승에서 잘 지내는가 하고 물었다. 말길을 돌린 것이다. 안에서 얼른 보아도 김삼수의 위패를 별도로 자리를 잡아 잘 모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부담스러웠다. 자신의 잘못을 애써 지우려 드는 것 같아서였다.

“이제는 폐허의 흔적이 모두 말끔히 지워졌습니다.”

전쟁 때 석축 밑에 있던 당우들이 모조리 불타버렸다 했었다. 그녀는 그 광경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로부터 석 달쯤 뒤에야 절로 들어온 그녀는, 사방에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며, 또 콩 볶는 듯한 총소리를, 당우들에 불이 붙어 벌겋게 타오르는 광경을 늘 듣고 보는 듯했다. 시커멓게 재로 남은 당우들을 보고 살아야 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사람들 마음에 남은 탄흔은 지워질 수 없겠지요. 죽을 때까지…….”

“같이 올라가십시다. 그토록 소원하시던 일봉암을 새로 지어서 잘 모신다고는 하고 있는데 그것이 아닌갑이어라. 이달 들어 영 심상치가 않으시구만요……. 죄송헙니다. 옆에서 어른스님을 지키다 본께 지까장 보살님 생각이 부쩍 간곡해져 부러서…… 꼭 젖배를 곯아서 목젖이 깔딱거리는 애기가 된 것 같더란께요.”

그때서야 보았더니 전각들의 뒤에 동백나무들이 무성했다. 선홍빛 꽃송이들은 이미 볼 수 없었다. 꼭대기에 일봉암이 앉아 있다는 서암의 넓은 자락이 거기까지 내려와 있었다. 여진은 석우 주지가 문자를 보낸 뒤에는, 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따지다가 결국에 오지 않으면 어쩌나 했을 터이었다.

둘은 일봉암을 찾아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석우 주지가 여진의 왼팔을 부축한 채였다. 사미 하나가 그녀의 캐리어를 어깨에 메고 뒤따르고 있었다.

“주지 스님은 특별히 아픈 데가 없었습니까? 거, 왜 불전이며 법당을 오래 들락이다 보면 생기는 병들이 있지 않던가요? 상기병 같은 것 말입니다…….”

여진은 자신을 부축해 주는 석우 주지의 손길이 더없이 고마웠다. 그래서 인사로 꺼낸 말이다.

“아니어라우. 지가 절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아예 신체가 절 생활에 딱 맞도록 돼 있는 것 같어요. 대덕행 보살님이 지가 스무 살 될 때까장은 쭈욱 지켜보셨은께 아시겄지만, 그 뒤에도 고뿔 한번 잠깐이라도 앓은 적이 없구만이라우. 그러다 본께 한번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어서 문제라면 문제란께요. 헛허허허…….”

“좋은 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타고나야 제대로 한다더니, 주지 스님은 참말로 중으로 타고나신 갑구만이요.”

“그런디, 보살님 말인디요. 그때 절의 당우들에다 어느 쪽에서 불을 놓았는지, 혹간 아시는가요?”

느닷없이 석우 주지가 일흔 해 전의 이야기를 슬쩍 꺼냈다. 아마 그동안 내내 그 일이 못내 궁금했었던가 보았다.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제 출생의 비밀까지도 건드릴지 모른다는 기대를 은근히 하는가 싶었다. 모르기는 그녀도 마찬가지인데, 혹시나 하는 것인가 해졌다.

“빨치산, 그자들의 기습공격 때문에 그랬다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왜 그 시절 생각만 하면 모기가 징상스럽게도 물어대는 통에, 온몸이 간지럽고 쓰라리고 부어오르고 했다는 생각부터 나는지 모르겠구만.”

여진은 그 때문인지 벌써부터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등이 젖어 드는 것 같았다. 마침 너럭바위가 보여서 석우 주지한테서 팔을 빼낸 그녀가 다가가서 엉덩이를 걸쳤다. 그때서야 측백나무 향이 새큼하게 밀려왔다. 그때가 7, 8월이었다는데 얼마나 더웠겠는가.

“스님의 생신이 9월 20일이던가요? 내가 절에 온 것이 21일이었어요.”

“저도 잘 모르지요. 어른스님허고 대덕행 보살님이 그렇다 헌께 그렇게 안 것인께요.”

둘은 마주 보고 싱겁게 웃었다. 그 광경을 보지 못한 사람과 그때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사람이, 서로의 사정을 알아차렸음이었다. 

“내가 절에 와서 봤을 때는 절이 아니었구만요. 경찰부대가 주둔해 있다가 막 남쪽으로 빠져나간 뒤였는데……. 그런데 주지 스님……. 어째서 이번에는 ‘말씀 낮춰 하세요. 어머니나 마찬가진디 어째서 말씀을 고약하게 올려서 허신다요? 지가 뭔 죄를 그렇게 지었길래 그런다요……!’ 하고 따지지 않습니까?”

“인자 포기했습니다. 아니 폴새께 포기해 부렀은께 염려는 잡어 묶어 두시시오 잉. 보살님 마음 가시는 대로 허시란 말이어요. 아시겄어요?”

여진이 말을 하다 말고 딴소리를 한 것이다. 그녀가 석우 주지에게 존칭을 쓴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었다. 행자가 된 뒤부터였다. 그녀는 당연시해온 일인데, 석우 주지가 생각이 들면서부터 불쑥불쑥 싫다 했던 것이다. 그녀가 절을 떠나 서울로 간 뒤로도 몇 년간은 전화 중에 좀 심하게 말할 때도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할 때면, 자신에게나 석우 주지에게나 참 잘했구나 했다. 그때마다 속에서 기쁨이 잔잔히 일기도 했다. 장끼가 울었다. 골짜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꾸르륵 꾸르륵 멧비둘기도 울었다. 때가 한창 그런 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봄이었다. 서울에 사는 동안에 꽤 무뎌진 사람이 되었구나 했다. 그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식집 일에 매달려 살았었다. 

“경찰부대에는 여자들도 있었던 갑지라우?”

석우 주지가 살짝 옆구리를 건드리듯이 했다. 

“처음에는 8백 명쯤 되더래요. 나중에 보니 6백 명쯤, 또 나중에 보니 3백 명쯤 남았더래요. 민간인 의용경찰들을 내려보내고, 경찰 가족까지 내려보내고 나니 남은 머릿수가 그렇더라는 것이에요. 그때 여자들은 10여 명쯤 필수요원이라며 남아 있었대요.”

그녀는 들었던 이야기를 될 수 있으면 덤덤하게 전했다. 회주가 수좌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경찰부대가 이곳 덕룡산의 불호사까지 들어와 있었는가 모르겄네요 잉?”

“글씨…….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겄고. 초기에는 무전기가 고장 나서 부대가 오도 가도 못하고 이곳에 묶여 있었다던데, 그 뒤에 어렵게 수리가 되긴 됐다던데……. 그때는 너무 늦었다던가 어쨌다던가…….”

나이 탓인지 쉰 해 전까지 여기서 쓰던 지역 말이 저절로 섞여 나왔다.

“여그서는 그만 쉬고 올라가서 어른스님 용담 회주한테 물어봅시다.”

여진이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어른스님은 말을 안 해 줄 것인디요.”

“나는 언제 이런 말 한마디라도 헙디까요? 다 나이가 가르치는 것이지요. 용담 회주 스님도 세납 아흔여덟이면 진작에 입적헐 날을 받어 놓은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닙니까, 주지 스님? 내가 이번에 알아서 절로 내려온 것도 그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장끼가 울어대고 울어댔다. 여진의 진심이 정녕 그랬다. 아주 눈감기 전에 한 번 용담 회주를 보자는 것이었다. 둘의 그런 사이를 두고 절집에서는 뭐라 하던가. 용담 회주는 머리를 젓겠지만…… 상계(相戒)쯤 된다 할까…….

둘이서 암자의 앞마당으로 들어서자 그곳에서 종종거리고 있던 찌르레기들이 놀랐는지 킷킷킷킷……, 날아올랐다.

“잘 지으셨습니다. 용담 회주님이 퍽이나 좋아하셨겠습니다.”

“많이 늦었구만이라우. 3년밲에 안 되었은께……. 어른스님께서는 수좌 시절부터 폐허 위에다 중창허고 건립허느라고 얼마나 애를 쓰셨는디요. 보살님이 떠나신 뒤에는 더욱 열심히 허셨습니다. 저러다가 쓰러지시면 우쭈고 헐까, 다른 스님들까지 걱정헐 정도였단께요.”

찌르레기들이 마당 귀퉁이의 벚나무에 내려앉아 찌르 찌르륵 찌르 찌르륵 울었다. 여진의 암자를 둘러보던 눈길도 울음소리를 좇아 날아올라서 벚나무 가지들에 내려앉았다. 가지마다 연둣빛 새싹들이 수없이 돋고 펴 있을 터인데, 그녀의 눈에는 그냥 뿌옇기만 했다.

그자들이 경찰부대를 기습공격하기 위해서 어두워지기까지 기다렸던 곳이 바로 이곳 암자 터였다고 했다. 미리 여기까지 오르는 뒤쪽의 숨은 길을 찾아냈던가 보았다.

여진이 시린 눈들을 손등으로 비빈 뒤에 막 방문 앞으로 다가갔을 때였다. 그때서야 섬돌 위에 흰 고무신과 등산화가 한 켤레씩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지. 수좌든지 시자든지가 와 있겠구나 했을 때, 안에서 문이 벌컥 열렸다.

“바깥에 누가 오셨단가? 대덕행 보살……! 아니 여그까지 우쭈고 왔소…….”

여진은 주저앉을 뻔했다. 문을 열어젖힌 이가 용담 회주였기 때문이었다. 목소리가 갈라지긴 했어도 크게 울렸다. 생각한 대로라면 그는 자리보전하고 있어야 했다. 방 안에 요강을 들여놓고 살지는 않는다 해도, 거처 뒤에 이동식 해우소를 덧붙여 놓고 사는 것이 맞았다. 하마터면 그녀의 입에서 ‘스님 미쳤어요?’ 하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그런데 순간 달려들어 용담 회주의 두 손을 움켜잡고 싶은 충동은 무엇인가. 그녀는 석우 주지가 부축하고 있는 팔을 빼내 그 자리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세상에 마흔여덟 살의 그 젊은 사내가……, 어느새 저런……. 실제로는 그동안 늙고 병든 중 하나를, 이이가 아닌 어느 다른 누군가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여진이 방으로 들어섰을 때는 용담 회주가 아랫목의 좌복 위에 바로 앉아 있었다. 금세 석우 주지가 달려 들어가더니, 시자와 함께 부축해서 뜻을 좇아 정돈한 듯했다.

“여전하시니 참 좋습니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번뇌가 쌓인 탓에 다시 찾아뵀구만요.” 

“대덕행은 옛 모습 그대로여요. 하나도 안 변했구만…….”

“마음은 눈앞의 거리인데, 발걸음은 몇천 리 거리라고……, 겨우 이제야…….”

“……기다렸습니다. 무여열반(無餘涅槃)이라, 두깨비는 지가 벗어놓은 허물까지 먹고 간다는디……. 그동안 진짜 헐 일은 안 허고 헛짓만 허느라고 뺑돌이같이 돌아쳤던 것 같구만이요.”

시자가 그새 준비한 다과상을 내왔다. 석우 주지가 끓인 물을 식혀 차를 우렸다.

“여기가 어딘디요. 원진국사께서 지는 해를 잡어 놓으시고, 기어이 대웅전 상량식을 마저 하셨다는 일봉암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어도, 어른스님과 보살님이 말씀 나누실 시간은 넉넉헐 것입니다요. 그럼 저희들은 물러가겄습니다.”

용담 회주와 여진 앞에만 잔을 내어 차를 따라 놓은 석우 주지가 그만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이를 용담 회주가 한 손을 들어 말렸다. 여진도 무심코 머리를 끄덕였다.

“주지도 듣고 잪은 말이 쌔고 쌨을 것인디……. 시자만 내려보내드라고.”

시자가 잔을 하나 더 상에 내다 놓고 방에서 나갔다. 석우 주지가 제 잔에도 차를 따랐다. 용담 회주가 먼저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인 뒤에 내려놓는가 했다. 나머지 둘이 급하게 찻잔을 들어 올렸을 때 그가 입을 열었다. 왜인지 지는 해를 잡아 묶어 놓고 시간을 벌어 놓기라도 한 것처럼 느긋했다.

“올해 주지의 세납이 일흔이고, 법납은 예순이라 하지만 실상은 두 가지가 다 같어요. 그 나이가 될 때까장 에미 애비가 누군지 알고 잪어서 속이 숯이 되았을 것이여. 아닌가?”

“아니구만이라, 어른스님.”

석우 주지가 용담 회주의 말끝에다 곧장 대답을 올려 붙였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 그가 석우 주지를 바로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의 에미 이름이 박 양이라. 경찰부대가 산으로 들어올 때부터 같이 있었은게, 50년 7월 18일부터 있었던 것이제. 그때는 여자가 백 명도 넘었는디, 특별헌 사람이 아니었다면 기억에 없을 것이여. 근디 음식 솜씨가 원칸 좋은 디다 손이 빠르고 변죽까지 좋았단께. 우리한테 양념 같은 것을 얻어 가려고 고방에도 자주 드나들었다드만…… 나는 그때 주지를 허시던 묵암(默庵) 노스님의 시봉이었은께 나한테도 잘 보일라고 애를 썼쌌어. 그런디 나중에사 알었는디, 박 양헌테는 최 순경이라는 애인이 있었든 것이여. 그 최 순경을 따라서 경찰 가족이라고 산으로 들어온 것이제…….”

그런 박 양이 끝까지 경찰부대에 남아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사실 덕룡산 불호사로 들어온 경찰부대는 수도 서울을 방어하는 병력을 지원할 목적으로 편성된 것이었다. 물론 남서 지방은 절대 안전할 것이라는 군의 정보를 믿고 세운 작전계획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벌써 충청도를 지나 경상북도까지 인민군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곧 이 지역의 도청이 부산으로 피난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결국 고립된 이 지역 경찰부대는 모인 그 자리에서 결사 항전을 하거나, 서해안의 섬들로 후퇴해서 살길을 찾아야 할 처지가 되고 만 것이었다. 뒤늦게 상황 판단을 한 경찰부대가 의용경찰들과 경찰 가족들을 산에서 차례로 내보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병력을 정예화시켰던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 아직 박 양이 들어 있었고, 그 박 양이 최 순경의 애인이라는 소문이 대원들 사이에 솔솔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박 양이 8월이 됨시로 행방이 묘연해져 부렀다 허더라고. 당연히 최 순경은 애가 탔겄지만 다른 대원들은 별로 관심이 없었제. 사정이 원체 막막하고 답답허다 본께 남은 대원들 중에서도 한두 명씩 슬쩍슬쩍 하산해 버리기도 했던 갑이더라고.”

용담 회주는 가끔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여가면서 낮지만 고른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석우 주지는 얼굴에 아무런 표정도 담지 않은 채 찻잔이 비는 시간에 맞춰 차를 따랐다. 그는 마치 그 일을 위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런께 8월 6일이었구만. 모두가 본부로 모여서 아침 공양을 허던 때였은께. 8시가 쪼깐 넘은 시간이었을 것이어. 양재기에다 깡보리밥에 맨된장국을 받어들고 죽 둘러안거서 막 숟구락질을 시작했을 것이여. 나는 그것을 다 보고 있었다네…….”

어디서 느닷없이 총소리가 울렸다. 부주의한 대원이 오발이라도 한 줄 알았다. 모두가 그랬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다. 탕탕탕……, 탕탕탕탕……. 연거푸 쏟아지는 총소리로 보아 인민군의 따발총 소리가 분명했다. 박격포탄이 사방에서 떨어져 터졌다. 당우들의 지붕이, 벽이 날아가기도 하고 불길이 솟기도 했다. 경찰부대원들도 엠원 소총으로 응사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적이 가지고 있는 박격포라든지 자동소총에 대응할 수가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찰부대원들은 미처 전투대형조차 갖출 시간도 없어 보였다. 한마디로 역부족이었다.

그때 용담 수좌는 보았다. 요사채 뒤에 있는 고방에서 나온 박 양이, 따발총을 어깨에 멘 사내들과 함께 일봉암 터 쪽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녀는 경찰부대와 함께 지내는 동안에 절 주변의 지리를 제대로 익혔을 터였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병력의 수라든지 전투배치 상황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지 않았을까 했다.

“그자들은 한 30분쯤 절 안팎을 갈아엎어 놓고 사라져 부렀어요. 그런디 다시 생각해 본께 그자들이 인민군이 아니라 빨치산 같었다는 것이제. 어째서 그러냐 허면 복장들이 군복이 아니었은께. 순식간에 치고 빠지는 방식도 그렇고……. 연전의 여순반란사건 때, 산속으로 숨어든 것들이 때를 만났다 허고 뛰쳐나와서 한바탕 날뛰었던 것 같다는 것이란께.”

“그러니까 박 양이 빨치산이었다고라우?”

“나는 그런 말 안 했오. 그런 것 같었다면 모를까……”

“참 말씀이 이상허요.”

“내가 확인해 보지 못했은께.”

여진이 따져 묻듯 했지만, 용담 회주는 끝까지 명확한 자기 소견을 내놓지 않았다.

“그때 경찰부대의 사망자가, 그런께 전사자가 47명이나 되었단께. 부상자는 백 명도 넘은 것 같고. 멀쩡한 대원들은 허다 안 된께 주위의 동암이며 남암, 북암의 숲속으로 피해서 목숨을 구헌 경우이고.”

“그럼 최 순경은 그 난리 통에 어찌 됐단가요?”

최 순경과 박 양……. 여진은 이 두 사람의 사랑이 어찌 됐는지 부쩍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부대 안에서 최 순경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졌을까. 그 전까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하긴 남녀의 사랑에 그런 것이 보일 수 있더란 말인가. 만일에 그런 것이 보였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겠지…….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들이 잇대어 일었다.

“없어져 부렀어요. 어딘가로 사라져 부렀단께요.”

“살긴 살았네요. 그 자리에 시체가 없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지요?”

용담 회주가 가만가만 머리를 끄덕였다. 여진은 속으로 기뻤다. 두 사람의 사랑이 끝까지 잘 이어졌으면 했다. 앞에서 이미 박 양이 석우 주지의 어머니라고 밝혔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박 양이 애를 가졌고, 낳기까지 했다면, 사라진 최 순경과 그녀가 반드시 다시 만났어야 했다. 아직까지는 박 양이 아이를 가졌더라는 말이 없었으니까. 여진은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이때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용담 회주의 목소리 꼭 한 번 조금 흐트러졌다는 것을. 그의 심사가 순간 고약해졌다는 뜻이었는데도. 

그때 낮닭이 소리쳐 울었다. 산닭이었다. 경찰부대 수백 명이, 인민군 수십 명이 그토록 산을 뒤집고 다녔는데도 용케도 살아남은 닭이었다.

용담 회주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갑자기 머릿속에 박 양과 최 순경이 함께 자신의 방 앞에 나타났던 때가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한밤중이었다. 그가 수좌 시절이어서 요사채에서 지내고 있었던 때였다. 

박 양은 한눈에 봐도 만삭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사이에 배가 저렇게 산만 해졌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그자들을 끌고 와서 절 안팎을 갈아엎어 놓은 지가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았는데 무슨 낯짝으로 찾아온 것인가 했다.

최 순경이 문 앞의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시방 요 근동에서 우리를 누가 봐주겄어요? 다들 죽일라고 달라들 텐디……. 수좌 스님……. 한 번만 봐주시오. 스님은 살인자도 봐준담시로요. 우쭈고 한 번만 봐주시오.”

박 양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입고 있는 외바지의 가랑이께부터 시커멓게 젖어 들고 있었다. 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는데도 신음이 새 나오고 있었다.

어쩔 수 없겠다 싶었다. 사정이 워낙 다급해 보였다. 이러다가 요사채의 옆방들에서 스님들이 깰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묵암 노스님을, 주지실을 생각했다. 옆에 전용 지대방이 있었다.

최 순경에게 박 양을 업혔다. 주지의 방은 계단을 올라가서 안쪽에 있었다. 그런데 주지실 앞에 다다랐을 때는 방문을 두드리고 어쩌고 할 필요도 없었다. 섬돌 위에 내려놓자마자 박 양이 냅다 소리를 지르면서 애를 쑹덩 낳아 놓았다.

당연히 묵암 노스님이 뛰쳐나왔다. 그는 금세 사태를 알아차리고서 아이의 탯줄부터 찾아서 제 입으로 끊어냈다. 또 방에서 좌복을 하나 내오더니 아이를 싸들고 들어갔다. 바라보고만 있던 둘에게는 산모를 자신의 전용 지대방으로 옮기라 했다. 일들이 그렇게 착착 진행돼 갔다. 

중들이 탁발을 하러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이집 저집을 다니려면 천수보살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한 말을 그때 묵암 노스님을 보면서 실감했다.

박 양을 지대방으로 옮긴 뒤인 새벽에 태가 나오자, 묵암 노스님은 곧 용담 수좌더러 마을로 내려가라 했다. 가서 사립에 금줄 친 집들을 빠짐없이 찾아 들어가, 혹시 낳은 아기를 날려버린 일이 있는지를 물으라 했다. 또 그런 집을 수소문하기도 하라 했다. 우리 절의 주지 스님이 지난밤에 부처님이 현몽하신 꿈을 꾸었다. 전쟁 난 뒤에 태어났으나 날려버린 갓난아기들을 찾아서 꼭 삼신재를 지내주라 하셨다. 만일 이를 어기면 부모들의 원과 죽은 갓난아기들의 한이 동네에 서려 큰 액을 몰고 올 것이다. 지킨다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동네 사람들 모두가 무사할 것이다. 그런 당부가 있으셨다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찾아낸 이가 김삼수의 색시 홍여진이었다. 지금 용담 회주 앞에서 두 눈을 반짝이고 있는 대덕행 보살이었다. 

그런데 용담 수좌가 마을로 내려가서, 두 눈 부릅뜨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뛰어다니고 있을 때, 박 양은 절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갓난애를 그 방에 남겨둔 채였다.

박 양은 누구에게 사정을 알리고 간 것이 아니었다. 묵암 노스님이 불전이며, 법당으로 돌아다니는 동안에, 살짝 몸을 빼서 일봉암 터로 올라간 것이다. 출산한 지 하루도 다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온몸이 팅팅 부어오르고, 아직 분비물이 밑으로 흐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묵암 노스님은 박 양이 곧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용담 수좌를 시켜 그런 일을 꾸몄던 것이다. 그것이 젖어미를 자연스럽게 그리고 급하게 구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용담 수좌는, 처음에 묵암 노스님의 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느닷없이 밤중에 들이닥친 임산부가 절에서 아기를 낳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중이 탯줄을 입으로 끊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경황 중인데 어디서라면 못 낳았겠는가. 그렇더라도 중으로서는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제는 거기다가 젖어미까지 들여서 아기를 아주 기를 작정이다? 그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았다. 어느 중이 아기의 아비라는 오해를 받는다면 어쩔 건가? 필경 발우를 내놓고 절에서 나가는 일이 생길 터였다.

그렇게 됐을 때 그 대상자가 자신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는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만일 묵암 노스님이 대상자가 됐을 때라면, 그가 대신해서 나서야 할 것이었다. 그는 결코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둘의 거처를 절 밖에 마련해 준다 하더라도, 감쪽같이 비용만 지원해 주어야 했다.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자비였다. 나서서는 안 되었다. 오해받기 십상이니까.

그래서 그는 젖어미를 찾아서 절로 데리고 돌아올 때도 곧장 앞문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없어진 사천왕문 자리에, 고작 나무기둥 두 개가 마주 보고 서 있긴 해도 문은 문이었다. 그래서 절의 뒤쪽까지 바짝 내려와 있는 산자락을 탔었다.

그런데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묵암 노스님이 그와 젖어미를 가로막고 서 있었다. 돌아나가서 당당하게 절의 앞문을 통해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밤새 애썼다는 말 한마디의 치하도 없었다.

“이 세상에 절이 있는 이유가 무엇이여? 이 개도 못 먹을 독덩어리 같은 인사야! 시방 본께 니놈은 중노릇 헐 자격이 없다. 그만 바루 내놓고 나가그라.”

그는 묵암 노스님이 그토록 노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래 그는 그야말로 당당하게 이유들을 들어서 항의했다. 말이 되지 않아서였다. 섭섭하기도 했다.

“지가 다 생각이 있어서 헌 일이구만요!”

그도 지지 않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나더러 중을 그만두라고? 그는 이제 화가 나기도 했다.

“내가 묻는 말이 귓구녁에 안 들어가는 것이여?”

“오해받기 십상이구만요. 만일 그러면 정말로 누군 절에서 쫓겨나야 헐 것인디요.”

그는 묵암 노스님의 말이 정말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허어! 이 독덩어리 같은 머리통이라니……. 여름에 안거 끝났을 때 내가 헌 말 못 들었단가? 만행을 나설 때도, 부드러운 빗자루로 발 디딜 곳을 쓴 뒤에, 걸음을 내디디라 했제? 중이 첫째로 지켜줘야 헐 것이 뭣인가? ……생명이란께! 그래서 이 시상에 절이 있는 것이고……. 전쟁 치름시로 그것을 모르겄어? 사람 목숨이 하루살이 목숨 같은 것을 봄시로도……? 생명을 지킬라면 당당해사 써. 용감해사 쓴다고. 오해는 당당허지 못헌 디서 생기는 것이란께. ……앞길로 들어온 뒤에, 내일 혹간 누가 묻거든 말해줘 부러. 지난밤에 주지실 앞에 강보에 쌓인 업둥이가 울고 있었다고……. 책임은 내가 질 것인께로. 알겄는가?”

“소문이 날 텐디요……?”

그는 그래도 미심쩍었다.

“우리 절 중들 중에서, 인민군이나 빨치산헌데 함부로 입 벌릴 중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호되게 당해 봤는디…….”

그는 비로소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곧 조용히 젖어미랑 절 밖으로 나갔다가 시킨 대로 앞길로 당당하게 돌아왔다.

참말로 대단한 여자였다. 아기를 가진 지 여덟 달이 됐을 때도 배에 꽁꽁 복대를 동여매고 산속을 뛰어다녔으니까. 그 사실을 최 순경만 알고 있었다.

묵암 노스님은 세상을 뜨기 전에, 그새 주지가 된 용담 수좌에게 말했다.

“나는 그때도 시방도 박 양이 애기를 두고 혼자 떠나분 것이 참말로 다행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단께. 애기는 우리가 키우면 된께……. 그 사람은 지 시상을 쫓아댕기지 못허면 못 사는 사람이여. ……그때 만약 그 사람이 애기 껴안고 그냥 그 방에 누워있었으면 우쭈고 됐겄어? 나중에 국군이 들어왔을 때 여럿 죽었지 않겄냐고? 애기도 물론 무사헐 수 없었겄제.”

“근디 우쭈고 스님은 박 양이 떠날 줄을 미리 알었다요? 참말로 부처님이 현몽해 주십디여?”

용담 수좌가 물었다.

“박 양허고 최 순경이 나헌테 왔을 때 본께, 주변에 검은 그림자들이 왔다 갔다 허더랑께. 그것이 뭣이었겄어? 애기만 낳고 나면, 그냥 끗고 가불라고 저러는 것이구나 해지더라고. 왜냐? 만약에 경찰부대에 붙잽히기라도 허는 날에는 어쩌고 될 것이여? 또 나중에 국군이 들어왔을 때 붙잽히면 어쩔 것이여? 붙잽혀서 본인이 죽는 것도 죽는 것이지만, 중요한 정보들을 안 불고는 못 배길 것 아니여? 그러면 또 그 결과가 우쭈고 되았겄어? 내 말 알아 묵겄어?”

 

전쟁이 끝나고도 몇 년이 지났을 때, 그러니까 소년 석우가 김삼수와 홍여진의 자식으로 호적에 올랐을 때였다. 용담 수좌가 묵암 노스님을 찾아가서 일이 뜻대로 됐다고 알리자, 그는 그제야 정말 안심이 된다는 얼굴이었다. 석우가 섬돌 위에서 태어난 지 일곱 해 만이었다. 그때까지는 물론 지금까지도 여진과 석우 주지 본인은 모르는 일이었다. 

용담 회주는 바람벽에 등을 기댔다. 벌써 30분쯤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힘이 많이 든 것 같았다. 셋은 그저 찻잔을 들었다 놨다 하기만 했다. 그 가운데서 석우 주지가 좀 바빴다. 잔이 빌 때마다 채워야 했고, 새로 차를 우려내는 일을 맡고 있어서였다.

사실 석우 주지가 볼 때 어른스님 용담 회주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심상치 않았다. 오늘 아침 공양 때도 조죽(朝粥) 몇 숟가락으로 끝낸 터였다. 그동안 많은 말을 했고 꿋꿋하게 앉아 있었다. 어디서 갑자기 저런 힘이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제 부모가 최 순경과 박 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데서 오는 놀라움보다, 회주의 그런 변화가 더 놀라웠다. 대덕행 보살 덕이라 해도 심했다. 매우 심했다. 설마 마지막을 생각하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했다.

자신은 오로지 절집에서만 산 중이었다. 그것도 어언 일흔 해나 됐다. 속세의 삶과는 단 하루도 인연이 없었다. 그런 그에게 속세의 부모가 누구였든, 어떤 사람이었든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그토록 있겠는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볼 수도 없고 소식도 들을 수 없는 인연들이었다. 어른스님 용담 회주님도 그래서 지금껏 기다렸다가 비로소 입을 연 것이 아니겠는가 했다. 다 삭아 들기를, 그 냄새마저 사라지기를 기다렸을 것이라 여겨졌다.

비로소 명부전에 자리한 ‘최대길(崔大吉)’이란 위패가 누구 것인지 알게 돼서 오랫동안 찜찜했던 마음이 좀 시원해졌다는 정도였다. 대덕행 보살의 서방인 ‘김삼수(金三洙)’의 위패와 나란히 자리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라는 박 양은 명부전에 위패조차 없는 것을 보면, 필시 어떤 집으로 개가하지 않았겠는가……. 서방이 일찍 죽었으니 당연한 일일 터이었다. 그는 그렇게 마음을 이리저리 정리해가고 있었다. 

“박 양의 이름을 알고 싶구만요. 또 어디 사람인지도요…… 그분이 석우 주지 스님의 생모시라는데…….”

기다리다 못한 여진이 나섰다.

“이뻤지요? 이뻤을 것 같구만요.”

용담 회주의 대답이 없자, 여진이 좀 엉뚱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석우 주지를 돕자는 것이었다.

“그래요. 이뻤습니다. 얼굴이 훤했은께…….”

자기 생각이 맞았기 때문일까, 여진의 얼굴이 더불어 훤해졌다.

“쯧쯧쯧쯧……. 그렇고나 알고 싶은가? 그래도 내가 말을 안 하는 것은, 내가 모르기 때문이여. 그 전쟁 통에 이만큼이라도 알고 있다가 전해 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허제.”

용담 회주가 자화자찬으로 여진의 입을 막고 나더니, 다시 거기서부터 말을 끊었다. 석우 주지는 머리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용담 회주는 눈을 감고 있다가 뜨고 있다가 했다. 피로가 몰려드는 것 같았다.

정말로 용담 회주는 박 양의 이름을 몰랐다. 단지 술집에서 부르는 이름만 알았다. 춘희였다. 최 순경도 그렇게 그녀를 불렀다. 그렇다고 석우 주지에게 술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어머니의 이름이라고 전해줄 수는 없었다. 또한 박 양이 순천 어디에 있었다는 ‘낙동원’이라는 술집의 작부 노릇을 하던 사람이었다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최 순경한테 직접 들은 말이었다. 용담 회주가 수좌 때였다. 박 양이 달아나 버린 뒤였다.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제 여자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속으로는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고향으로 휴가 갔다가 만났다고. 그래서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출산을 도와준 일을 감사한다는 말에 덧붙여진 말이었다. 어쩌면 그때 자신의 마지막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 말까지 누구한테라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어서 최 순경의 죽음이 있었던 것이니까. 박 양이 달아나 버린 뒤에도, 최 순경은 한밤중에 아기가 있는 방 앞에 나타나곤 했다. 아기를 위한다고 그 시간을 택했을 것이었다. 아비 어미의 신분을 꼭꼭 숨겨야 할 정도가 아닌가. 한 달쯤을 그렇게 했던 것 같았다. 어디서 자고 어디서 먹고 다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젖어미가 안에 있는 까닭에 아기의 울음소리만 듣고 돌아설 때도 있었으리라. 누구에게 아기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다는 말을 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대여섯 번은 우연인 것처럼 그가 기다렸다가 만났다. 아기 얼굴을 보게 해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가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에게 충고를 했던 것이다. 아기를 위해서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라고 말한 것이었다. 밖에서 알게 된다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쌓인 까닭이었다. 아직 인민군들의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의 주검이 발견된 곳은 일봉암 터였다. 돌아온 국군 20여 명이 예전의 경찰부대 터에 2년쯤 주둔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들이 수색을 한답시고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다가 발견한 것이었다. 주검 옆에 어디서 가져온 것인지 엠원 소총 한 정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탄피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그사이에 흘러간 1년이 넘는 세월에 그의 주검이 벌써 많이 삭아 있었다. 탄피에는 퍼런 녹이 슬어 있기도 했다. 

이제 용담 회주는 바로 앉아 있었다. 그런데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가끔 체머리를 한 차례씩 흔들어 대곤 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여진은 용담 회주가 몹시 힘에 부쳐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리를 펴고 편히 쉬게 해주고 싶었다. 시자를 불러 놓고 주위에서 물러가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편한 이부자리를 싫다 했다. 중은 좌복 두 개면 잠자리로 넉넉하다고 고집했다. 더욱이 자신은 지금 어디까지나 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부 들어 의처한 객승 입장도 못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득 내가 이곳에 뭣 하러 와 있지……, 해졌다. 

“다른 말씀이 더 없으시면…….”

그녀의 속마음을 알았을까, 석우 주지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러면 그렇제……. 꼭 소리 내서 허는 것만 말이 아닌께……. 인연생기(因緣生起)라……. 이 시상에 소중허지 않은 인연이 어디 있겄어. 그중에서도 우리 인연은 특별히 소중허제.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 지난 세월에 못다 헌 이야기를 나눴구만. ……석우 주지가 내 이야그를 잘 알아 묵었는지 모르겄구만……?”

용담 회주가 눈을 감은 그대로 석우 주지한테 얼굴을 돌려 한 말이었다. 한 시간을 넘기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누구에게 무슨 말을 알아들었느냐고 묻는가. 여진은 둘을 번갈아서 보았다.

“예, 어른스님. 저는 절집에서 태어나 자란 석종(釋種)이라서, 법 앞에서 게으름을 피워도 당연히 이 땅의 최고 사찰인 불호사에서 상단을 차지허고 안거 있는지 알었구만이라우. 그런디 이 자리서 주신 어른스님 말씀으로 그만 쇠똥밭으로 궁글어 떨어져 부렀습니다. 그런께 앞으로 잠자지 말고 공부허란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겄는가요. 주신 말씀 뼛속에 새겼구만이요.”

“시방 내가 주지헌테 허고 싶은 말은, 수레를 타고 갈람시로 미리 그것이 움직이는 이치까장 다 알고 난 뒤에사 타고 갈라고 허면 못 간다는 것이여. 이왕에 수레를 몰고 가는 사람은 몰고 가는 일을 잘 허고, 이왕에 수레를 타고 가는 사람은 닿어서 헐 일을 잘 허면 쓴다는 것이여. ……지목행족(智目行足)해야제. 또한 수범수제(隨犯隨制)해야제. 소소계(小小戒)는 파해 감시로…….”

“예.”

순간 여진의 눈에 왜 그렇게 보였을까, 용담 회주를 바라보고 있는 석우 주지의 눈이 살짝 젖어드는 것 같았다. 둘 사이에 무슨 느낌이 오고 간 것 같았다. 섭섭함이 그녀의 가슴으로 싸하게 스며들었다.

“그러먼 되았네. 인자 그만 일어스시게. 나는 헐 말 다했은께……. 혹간 점심 공양 허시고 시간 나면 세 시쯤에 한번 다시 올라와 보시든지…….”

“예, 어른스님. 그럼……. 대덕행 보살님은 여그 계속 계시겄지요? 보살님헌테 귀동냥헐 말씀이 쌔고 쌨는디…….”

석우 주지가 승복 앞자락을 여며 잡고 일어섰다.

“대덕행 보살은 그냥 안거 계시시오. 째깐 있다가 나가서 점심 공양 준비도 해줘사 쓴께…….”

따라 일어서려는 여진을 용담 회주가 붙들었다. 그녀는 그의 말에 붙들려 그냥 앉아 있었다. 석우 주지는 용담 회주한테 가 있던 눈길을 일어서는 동안에 그녀에게 돌렸다. 문께로 나가면서도 끝내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여진이 그렇게 보려 했던 것일까, 잘못 보았던 것일까. 석우 주지의 입이 달싹했다. 엄니……. 그녀를 그렇게 부르고 있는 듯싶었다. 콧등이 시큰했다. 그가 나갈 때 연 문을 밖에서 닫았다. 그 눈길이 그제서야 끊겼다.

“이따 세 시쯤에 다시 올라오겄습니다.”

여진이 그렇게 생각해서 그러는 것일까. 그의 목소리가 젖어 있는 것처럼 들렸다. 

“우는구만……. 어째서들 그런당가? 다시는 못 만날 사람들만치로……. 대덕행 보살님께서 아까 박 양 이야기를 듣고 난께로 석우 주지가 많이 짠헌 갑이네 잉.”

“아닙니다. 그것이…… .”

그녀는 무심코 대답을 해놓고서야 어디서 무슨 소리가 났는가 했다. 문득 용담 회주를 보았다. 그가 언제부턴가 멀쩡하게 두 눈을 뜨고 있었다. 그사이에 그녀는 잠시 정신줄을 놓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주지는 복을 겁나게 타고 난 것이여. 갓난애기 때 젖배를 곯아 보기를 했는가, 젖 띠고 나서 밥배를 곯아 보기를 했는가. 학비가 없어서 학교를 못 댕겠는가? 놈덜보다 좀 늦게 갔지만 대학도 나왔제. 뭣이 모자런가? 호강허고 산 것이여……짠헐 것 없단께요.”

여진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왠지 가슴속의 짠한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참말로 짠헌 사람은 대덕행 보살이여. 그놈 땜새, 나 땜새 신세 망친 사람은 본인이란 말이여.”

“그래서 어쩌란 말씀이요? 나는 두 스님 덕에 세상 잘 살았구만이요. ……그런데 나는 여기 올 때에, 스님이 다 돌아가신지 알고 있었는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그렇게 멀쩡허시요?”

여진은 마치 용담 회주의 건강이 그만해 보여서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캐리어로 다가가서 뚜껑을 열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가 삼삼합니다. ……오늘부터는 여진 보살님을 엄니라고 부르지 마러라. 그래서는 안 된다. 앞으로 중이 안 될라면 몰라도 중이 될라면 속세와 인연을 싹 끊어야 헌다는 것이다. 석우 행자의 속세는 여진 보살님이다. 알었냐? 그때 스님께서는 마치 칼로 잘라내듯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석우 행자가, 아니 지금의 주지 스님이 얼마나 서럽게 울던지…….”

용담 회주가 맥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 맞아! 내가 어찌 그 일을 모르겠는가 하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 말을 안 했을 뿐이지,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석우가 저녁 예불이 끝난 법당에 혼자 들어가서 부전 위에 엎드려 밤새 울었던 것이다. 그는 입에 살짝 웃음까지 베어 문 듯이 보였다. 

그녀가 가방 속에서 꺼낸 것은 케이크 상자와 텀블러였다.

“혹시 드시고 싶어 할지 몰라서 챙겨 왔습니다. 빵은 사온 것이지만, 커피는 직접 내린 것입니다.”

언젠가 한번은 아직 수좌였던 그가 대덕행 보살한테 살짝 말한 적이 있었다. 밖에 나갔는데 대학가 앞을 지나다 보니, 젊은 남녀들이 찻집 창가에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더라 했다. 그런 말끝에 그가 그녀에게 내민 것이 인스턴트 커피 병이었다. 물론 설탕 봉지도 함께였다. 그날 밤에 그녀는 그와 함께 공양간에서 난생처음으로 쓴 커피 맛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요사채에 살았고 그녀는 여전히 주지 스님이 내준 방에서 살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절에서 워낙 오래 산 탓에 밖이 낯설기도 했지만, 남편이 행방불명이 된 마당에 시가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스님들의 옷도 빨고 공양간에서 끼니 준비도 도우면서 지낸 터였다.

그런데 절에만 있는 그녀에게, 수좌 스님이 밖에 나갔다 돌아올 때면 살짝살짝 그렇게 선물을 건넸다. 빗이며 머리핀 브로치 같은 장신구……. 때로는 찐만두라든지 카스텔라같이 새로운 먹을거리…….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여기저기서 만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절 안에서였다. 여진은 그때마다 가만히 가슴이 설레었다. 마치 건듯 지나는 바람결에 흔들리는 장다리밭의 노란 꽃잎처럼.

여진은 빵을 썰어서 차 접시에 담고 커피를 종이컵에 채워 찻상에 차려냈다. 용담 회주가 박수를 쳤다. 그런데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겨울밤에 봉창으로 날아든 눈송이 몇 개가 창호지를 스쳐 가는 소리 같았다. 말은 알아먹게 하면서도 손뼉 칠 힘은 없는가 했다.

그는 커피 컵을 바로 들지 못했다. 하마터면 엎지를 뻔한 것을 여진이 잽싸게 붙잡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서 조금씩 맛보듯이 마셨다. 그와 함께 치즈 빵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여진도 흉내 내듯 그렇게 마시고 먹었다.

“참말로 좋구만 잉……!“

“너무너무 좋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생각났습니다. 스님이 밖에 나갔더니 그 모습들이 참 좋아 보이더라고 한 옛 말씀…….”

“그래 그랬제. 나나 보살님이나 그동안 오로지 놈덜을 위해서 살았은께. 놈덜한테 젖 나눠 멕이댁기 허고 살았은께……. 날마다 밤낮으로 놈덜을 위해 정근했은께…….” 

용담 회주는 거기서 말을 더하지 않았다. 여진은 그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이 이어지기를 바랐다. 간절히 기다렸다. 그러나 입 언저리에 아주 가벼운 경련이 지나갈 뿐이었다.

그녀가 마치 그가 된 듯이 말을 이었다. 벌써 오래전에 버릇이 돼버린 입속말이었다.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른 스님들한테는 소소계는 파하라 하셨지만…… 정작으로 내가 파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또 스님께서 파하신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반야공(般若空)입니다. 스님…….”

여진은 김삼수의 천도재를 지내고 난 뒤에 절을 떠났다. 그 김삼수에 대한 생각이 명치께를 턱턱 막고 드는 통에 절에서는 숨을 쉬고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소문이 나고 있었다. 용담 수좌는 그녀의 마음을 알고서도 말리지 않았다. 

용담 회주는 아직도 걱정하는 듯이 여진의 명치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였다. 

그녀의 서방인 김삼수의 주검이 비자나무 숲에서 발견된 까닭이었다. 행방불명된 그였다. 대중공사 끝에 뜻이 모여서 스님들이 봄을 맞아 운력을 나갔을 때였다. 그런데 그동안 쌓인 낙엽 속에서 엉뚱하게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그동안 깨끗이 육탈된 그는 두 가지 징표를 갖고 있었다. 신분과 사인이었다. 도민증과 총알이었다. 총알이 아홉 개나 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그것들을 수습해간 뒤에, 곧 주지 스님에게 알려왔다. 김삼수가 인민군의 따발총에 사살되었다고.

여진은 서방이 왜 거기까지 와서 그런 일을 당했을까 했다. 그때 퍼뜩 떠올랐다. 인민군 스무 명쯤이 민간인들을 앞세워 몰려와 절을 접수했을 때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스님들이 모두 거처에서 쫓겨나 불전과 명부전에서 지내고 있었다고 했었다. 주지 스님 덕에 오래 가지 않아서 그들이 물러갔지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소행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해 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도 있었다. 바로 불전의 통판문짝들이었다. 그것들을 뜯어내다가 어딘가에 참호를 판 뒤에 지붕으로 덮었다는 말이 절집 안에 오랫동안 돌아다녔던 것이다. 비용이 없어서 문짝을 새로 해 넣는 데 시일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김삼수는 젖어미로 들어간 아내가 돌아올 줄 모르고 머물러 있자, 절을 찾아오던 길이 아니었겠는가. 아무리 시가 사람들이 그녀에게 아기를 날려버린 책임을, 죄를 씌워 놓았다 해도 그의 아내는 아내였다.

백날에 걸려 정조를 한다 해도 눈썹 하나만큼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반상합도(反常合道)라 하셨지요? 왜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요……. 혼잣말을 하던 여진이 용담 회주를 보았다. 제 생각에 빠져 있던 그녀였다.

그가 가만가만 머리를 끄덕이는 것 같았다. 얼굴에 엷게 뿌려 놓은 분가루 같은 웃음기가 배어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찬찬히 용담 회주를 보았다. 조용했다. 두 손을 무릎에 두고 바로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고요했다. 

“스님, 용담 회주님……”

여진이 가만히 불러보았다. 그는 대답이 없었다. 속삭이듯이 불러보았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고요였다. 여진은 늪 같은 그 고요 속에 빠져들었다. 눈썹 하나만 좌복 위에 떨어진다 해도 천둥소리가 날 것 같은 고요 속이었다.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용담 회주가, 세 시쯤에 시간이 나면 올라와 보라 했던 석우 주지였다. ■

 

✽이 소설에 나오는 ‘불호사’라는 절 이름은 366년 창건 때부터  써오다가, 1808년 무렵의 중창 때 ‘불회사’로 바뀌었다.

 

이상문

소설가. 1983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창작집으로 《살아나는 팔》 《영웅의 나라》 《은밀한 배반》 《누군들 별이 되고 싶지 않으랴》 《이런 젠장 맞을 일이》 등과 장편소설로 《황색인》(전 3권) 《계단 없는 도시》 《자유와의 계약》(전 2권)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립니다》(전 5권), 《방랑시인 김삿갓》(전 10권), 《인간아 아, 인간아》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노근리평화상(문학 부문), 조연현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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