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이 친절하게 안내하는 불교

지인이 내게 읽으라고 건네준 책은 대학 다닐 때 세미나에서나 읽었을 법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을 복사했는지 알 수 없는 흐린 복사지를 제본한 것이었다. 지인은 그 책을 읽고 자신이 받았던 감동을 몇 번이나 거듭 강조하며 읽기를 권했다. “이 책을 읽고 불교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책의 제목은 《아! 붓다》. 글을 쓴 이의 이름은 친숙했다. 틱낫한.

1999년에 The Heart of the Buddha’s Teaching(붓다 가르침의 핵심)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이 책은 출판되었을 때부터 수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 20년이 넘는 동안 미국 아마존닷컴 불교 교리 분야 스테디셀러 자리를 차지하며 불교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가르침을 펼쳤다. 국내에는 2004년에 《아! 붓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으나, 현재 절판되어 구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내게 온 책과 같은 형태로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던 것이다. 중고로 구입하려면 몇 배의 돈을 더 얹어주어야 했다.

틱낫한 스님은 2015년에 이 책을 새롭게 고쳐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냈다. 그것을 자비명상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꾸준히 연구하고 사회적 확산을 위해 노력하던 권선아 씨가 번역한 것이 《틱낫한 불교》다. 읽는 내내, 제목을 참 잘 달았다고 감탄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틱낫한의 불교’를 보여준다. 작은 체구의 스님이 전통에도, 권위에도, 다수의 입장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 실천하고 검증한 불교. 깊이 있는 부분은 더 깊이 있게 이해한 뒤 설명하고, 잘못 전해 내려온 것은 반듯하게 바로잡으며 해석한 불교. 논리적 엄정함과 시적 여운을 오가는 서술이 그답다. 틱낫한 스님의 그동안 행보와 가르침에 깊이 공감해온 이라면 꼭 한번 읽어야 할 책이다. 94년간 이어온 그의 삶을 수미일관하게 관통해온 철학이 무엇인지, 그가 삶으로 검증하며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틱낫한 스님이 그동안 써낸 책은 100권이 넘는다. 사랑, 명상, 기도, 화해, 화, 평화, 두려움, 중도, 침묵……. 수많은 주제에 대해 자신만의 단정한 답을 내놓아 왔다. 그러니 새로울 것 없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그러나 불법 전반에 대해서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낸 책은 드물었다. 사성제, 팔정도, 삼법인, 사무량심, 오온, 육바라밀, 칠각지, 십이연기 등 방대한 불교 교리 전반을 설명하고 그들의 관계를 살펴본다. 이 책의 384쪽이나 되는 두께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책은 붓다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사성제’로 곧장 들어간다. 첫 문장은 그가 붓다의 철학을 이해하는 토대다. “붓다는 신이 아니었습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처음에는 ‘고통’을 그저 붓다가 출가하게 된 계기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고통은 나와 붓다를 만나게 해주는 통로다. “그대들의 마음속에 고통이 있기 때문에 그대들은 나의 마음으로 들어올 수 있다.” 틱낫한은 부처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한다. 붓다가 신이 아니라는 것,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겪었고, 고통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은 사성제를 이해하는 데 무척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렇기에 틱낫한은 고통을 설명하는 데 공을 들인다. “부디 고통으로부터 달아나지 마십시오. 그것을 끌어안고 그것을 소중히 간직하십시오. 붓다에게 가서 그와 함께 앉아 여러분의 고통을 보여주십시오. 붓다는 자애와 자비 그리고 마음챙김으로 여러분을 바라보고, 고통을 끌어안고 그것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길을 보여줄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혜와 자비로 마음속의 상처를, 그리고 세상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붓다는 고통을 고귀한 진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우리에게 해탈에 이르는 길을 보여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통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곳에 모든 것이 있다. 틱낫한 스님은 가밤빠띠 스님의 말을 인용한다. “내 자신의 귀로 나는 붓다가 ‘비구들이여, 고통을 보는 자는 누구나 고통의 생성, 고통의 소멸, 그리고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본다. 고통의 생성을 보는 자는 누구나 고통, 고통의 소멸 그리고 그 길을 본다. 고통의 소멸을 보는 자는 누구나 고통, 고통의 생성 그리고 그 길을 본다.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보는 자는 누구나 고통, 고통의 생성 그리고 고통의 소멸을 본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가 1부 8장을 들여 고통에 대해서 여러모로 살펴보는 이유다.

그러나 그는 세 가지 법의 도장이 ‘무상, 고, 무아’라는 데에는 반대한다. 그는 “삶에는 어떤 기쁨이 남아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그가 보기에, 이전의 논리대로라면 모든 것이 고통이어야 한다. “수행을 잘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이 고통임을 증명하려는 노력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증명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만일 마음챙김으로 고통의 진리에 접촉한다면, 우리는 특정한 고통, 그것의 특정한 원인, 그리고 그 원인들을 없애고 고통을 멈추는 길을 인식하고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새롭게 제안하는 세 가지 법의 도장은 ‘무상, 무아, 열반’이다. 존재의 토대이며 모든 것의 본질로서의 열반. 틱낫한은 그것을 ‘고’의 자리에 놓는다.

2부에서 틱낫한은 팔정도를 설명한다. 고귀한 여덟 가지 길은 서로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낱낱이 떼어 설명하고는 있지만, 서로가 서로와 무척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잊지 않는다. “실제로 고귀한 여덟 가지 길 가운데 다른 일곱 가지 요소들을 수행하지 않고 어느 한 요소를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의 본성입니다.” 팔정도는 또한 사성제와도 떼려야 뗄 수 없다. “우리는 그 길 각각의 요소가 고통, 고통의 생성, 그리고 고통의 소멸에 대한 고귀한 진리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도 봅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부처의 가르침은 한순간도 예외가 없다.

3부에서 따로 다루고 있는 것은 사성제와 팔정도 외의 기본적인 불교의 가르침들이다. 두 가지 진리, 세 가지 법의 도장, 세 가지 해탈의 문, 붓다의 세 가지 몸, 세 가지 보물,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 다섯 무더기, 다섯 가지 힘, 여섯 가지 바라밀,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 연기의 고리들이 차례차례 조명을 받는다. 두 가지 진리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는 상대적 혹은 세속적 진리와 절대적 진리라는 두 가지 진리가 있다고는 하나 사실 이 두 가지가 둘이 아님을 역설한다. “그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과 접촉하고 계십시오. 그러면 고통의 진정한 본성과 기쁨의 진정한 본성에 접촉할 것입니다.” 고통과 열반의 본질은 똑같다. 그렇기에 먼지의 세계를 버린다면 열반의 세계 또한 가질 수 없다.

그는 12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잘못하면 빠지게 되는 함정을 짚어준다. 연기에 대해 깊이 이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칫 원인과 결과를 분리된 실체로, 시간의 순서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가 연기론의 본질로, 불교의 기원으로 인용한 붓다의 말은 이렇다. “이것은 존재한다. 왜냐하면 저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저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존재하게 된다. 왜냐하면 저것이 존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존재하기를 멈춘다. 왜냐하면 저것이 존재하기를 멈추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12연기를 업과 윤회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잘못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전통적으로 내려온 해석에 따르면 불교 수행자의 목표는 소멸 혹은 영원한 죽음이 되어야 한다. ‘존재’를 문제의 원인으로 만들어 비존재를 깨닫기 위해 수행해야 하는 상황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다는 분명히 존재와 비존재가 둘 다 잘못된 견해라고 가르쳤다. 그는 12연기의 고리를 하나하나 짚어본 뒤, 열 가지 고리와 두 가지 측면으로 다시 정리한다. 무명이 바탕이 되면 “형성-의식-마음/몸-느낌-갈망과 싫어함-집착과 거부-존재와 비존재-태어남과 죽음-윤회”의 열 가지 고리가 연하여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현상의 본성-지각하는 자와 지각되는 것의 일치-몸과 마음의 일치-느낌에 대한 마음챙김-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자유-존재가 없음, 비존재가 없음-태어남이 없음, 죽음이 없음-열반”의 열 가지 고리가 연하여 존재한다. 이 모든 고리들은 다른 모든 것들과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다른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해석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경전 속의 부처님 말씀뿐 아니라 베트남의 시, 자신의 경험, 스승들의 말씀, 전해 내려오는 일화들을 인용한다. 기존의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개념을 폐기하고 새로운 개념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부처의 가르침에 다가가기 위해, 그는 견고한 교리의 틈을 섬세하게 더듬어보고 들여다본다. 붓다의 언어에 귀 기울인다. “자등명법등명”이라는 건조한 문장 속에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귀의하라. 그대 안에 붓다, 법, 그리고 공동체가 있다. 멀리 있는 것들을 찾지 말라. 모든 것이 그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스스로에게 섬이 돼라.”는 육성을 듣는다.

붓다의 목소리는,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때때로 시가 된다. 오온을 설명하면서 그는 몸을 하나의 강으로 보기를 제안한다. “‘자아’라고 불릴 수 있는 어떤 실체도 없는 하나의 형성으로서 몸을 바라보십시오. 숨겨진 파도와 바다 괴물들로 가득 찬 큰 바다로 몸을 바라보십시오. 그 바다는 때때로 고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어떤 때에는 폭풍에 갇힐 수도 있습니다. 파도를 가라앉히고 괴물을 잠재우는 법을, 그것들에 휩쓸려가거나 사로잡히지 않게 하면서 배우십시오.” 이 책을 읽다가 때때로 멈추고 숨을 고르게 되는 건 시인으로서의 틱낫한을 만나게 되었을 때다. 논리를 따라 달리다 문득 멈추는 순간, 부처의 가르침이 눈앞에 열린다.

그는 자신의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말한다. “읽거나 듣는 동안 너무 애쓰지 마세요. 땅처럼 존재하십시오. 비가 내릴 때 땅은 오직 그 비에 자신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법의 비가 들어와 자신의 의식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씨앗에 스며들게 하세요. 스승이 진리를 줄 수는 없습니다. 진리는 이미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오직 자신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몸과 마음과 가슴을 열면 가르침이 여러분의 이해와 깨달음의 씨앗에 스며들 것입니다. 만일 그 말들이 여러분에게 들어가게 한다면, 흙과 씨앗들이 나머지 일을 할 것입니다.” 그의 책을 읽는 것은 마음을 열고 비를 맞는 경험이다. 나머지는 나머지가 할 것이다. ■

 

박사
북칼럼니스트. 주요 일간지와 각종 월간지, 주간지 등에 책과 문화에 관련한 칼럼을 기고해왔다. KBS, SBS, MBC, 교통방송 등에도 고정출연하며 책과 문화를 소개했다. 현재 〈법보신문〉 〈조선일보〉 《우먼센스》 〈더 네이버〉에 서평을 연재하며, 매달 ‘책 듣는 밤’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나의 빈칸책》 《은하철도999-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지도는 지구보다 크다》 《도시수집가》 《나에게 여행을》 《여행자의 로망백서》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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