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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 대응한 불교적 삶의 양식 / 조현봉
[81호] 2020년 03월 01일 (일) 조현봉 chohb57@hanmail.net

1. 시작하는 말

현대사회는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과 급속한 정보 지식화에 따라 사회 전반에 걸쳐 ‘패러다임(paradigm)’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회에 공유하고 있는 공통적 가치와 믿음, 문제해결에 필요한 해법 등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변화에 부응해 개인 삶의 양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고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현상은 삶의 기본 가치관을 무너뜨려 이른바 ‘도덕적 공황 상태’가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과 정의에 의한 정치적 접근이나 합리와 상식 규범에 의한 사회적 접근은 더 이상 문제해결의 수단이 되지 못한다.

현대인은 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받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등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여 올바른 가치관과 바람직한 삶의 태도 정립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는 현대인이 자아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바람직한 삶의 틀을 세우는 일이기도 하고, 성숙한 인간관과 바른 사회를 구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러한 작업은 이성적 판단과 결단의 윤리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해와 시비를 뛰어넘는 통찰적 지혜와 믿음에 바탕을 둔 종교적 사유가 필요하다.

불교는 과학적인 교리체계와 합리적인 실천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하는 종교다. 불교의 가르침은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삶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진리와 지혜를 담지하고 있다. 문제는 세간과 출세간의 간극을 극복하고 고도로 함축된 부처님의 가르침을 현실적 삶에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이다. 이러한 종교적 모색은 불자들의 신행 활동의 질적 향상과 불교의 전법교화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와 일반 대중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중요하고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합리와 규범의 윤리적 가치체계와 통찰적 지혜의 불교적 사유체계를 결합해 현대사회를 사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바람직한 삶의 방식으로서 불교적 실천 양식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삶의 성격을 파악하고 불교의 시대적 과제와 불자의 신앙적 책무를 규정하며, 이를 바탕으로 불교적 삶의 양식의 기본개념과 실천원리, 사고와 행동체계, 신행공동체의 기능과 역할을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신행활동에 대한 인식 전환과 새로운 결의 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지식정보사회와 옳고 그름의 기준    

일반적으로 현대사회를 ‘고도 지식정보사회’라고 규정한다. 첨단 과학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하고 정보통신망이 확대 보급되고 정보화와 지식화가 급속히 확산되어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존의 사회구조와 삶의 양식, 생활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를 추동한다. 따라서 이전 사회와 다른 여러 가지 특징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다음 두 가지를 두드러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정보와 지식이 ‘부(富)’가 되는 사회이다. 모든 정보와 지식이 단순한 알음알이 차원을 넘어 돈이 되고 경쟁력이 되고 건강이 된다. 도시개발 정보나 주식 정보가 있으면 돈이 될 것이고, 유명강사나 교육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각종 시험에 좋은 경쟁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며, 의사나 약에 관한 정보를 얻으면 건강을 회복할 수도 있다. 정보와 지식이 삶을 살아가는 데 지배적인 가치가 되는 세상이 되었다.

둘째는 네트워크 중심 사회이다. 모든 정보는 사회화되고 모든 사회는 정보화되고 있다. IT, AI, 빅 데이터 등에 의해 구현되는 가상현실과, 모바일 서비스를 통한 상호 촉진의 네트워크 효과가 가치 창출의 동력이 된다. 사이버 공간이 하나의 생활영역으로 확장되면서 SNS가 대중화되고 모바일이 중요한 생활 도구가 되고 있다. 이제 모바일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어떤 정보나 지식도 얻을 수 있다. 모바일을 통해 요리나 육아, 쇼핑은 물론 재테크를 비롯한 각종 사업 등 직장 업무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와 지식을 손쉽게 얻고, 신속하고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쉽고 편리하게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현상이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불법 동영상 촬영이나 유포 등 사생활 침해, 보이스 피싱 등 금융사기와 같은 여러 가지 부작용도 급증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문화 지체 현상’이다. 정보와 지식은 급속히 발달하는데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예들 들면 생명 연장 장치에 의지해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식물인간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논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사회적 권위의 상징인 부모와 어른, 교사의 전통적 권위도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 부모나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할 영역도 줄어들고 부모나 어른으로서 권위를 세울 기회도 사라져가고 있다.

특히 유의할 점은 우리 사회가 정보화됨에 따라 가치판단과 신념체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옳고 그름, 선과 악에 대한 판단 기준과 사고방식이 예전과 달라지고 있다. 성(sex)을 주제로 한 농담이 성추행으로 처벌되고, 훈육의 수단으로 수용되던 사랑의 매가 범죄 행위로 인정된다. 과거에는 도덕과 양심에 따라 처리될 일이 오늘날에는 모두 법으로 해결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법률 만능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세상이다 보니 윤리적, 도덕적이지 않을 때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순진하게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굳이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는 도덕 불감증이 팽배해진 것이다.

현대사회 문제의 근원은 옳고 그름의 가치가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객관적 기준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상황과 여건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 올바른 행동인지 판단할 기준도 없고 물어볼 대상도 없다. 나에게 이익이 되면 옳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그른 것으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정당화될 수 있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식정보사회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 낙관적 전망은 언제든지 절망과 실망, 비관적 사회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선결과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3. 현대인의 삶과 진정한 의지처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추구하는 그 자체를 ‘최고선(最高善)’이라고 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도 행복을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다. 일반적으로 행복(幸福)은 ‘복된 좋은 운수, 충분한 만족과 기쁨, 늘 기쁘고 넉넉하고 푸근한 상태’로 정의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불교는 행복의 이상적 상태를 ‘극락(極樂)’이라고 말한다. 《아미타경》에서는 극락을 아무런 고통이 없고 항상 즐거움만 있는 상태라 설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실제로 느껴지는 행복은 유쾌함이나 즐거움 등과 같은 쾌락(快樂)이다. 쾌락은 충족하는 데 한계가 있고 유지하는 데 가변성이 있다. 인간의 욕구는 무한정하고 이를 충족할 수단은 제한되어 있으며 삶은 항상 변화무쌍하여 무한정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편리하고 풍요로운 세상으로 발전함에 따라 행복에 대한 기대와 요구도 달라지고 있다. 삶의 기준이 ‘양적인 성장’에서 ‘질적인 성숙’으로 변화함에 따라 문화적인 삶을 중요시한다. 종전에는 의식주 등 기본욕구만 충족되면 그런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에 비해 지금은 물질적 욕구 외에 문화적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중심에는 재미와 즐거움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인은 감각적 즐거움과 재미에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한다. 좋은 직장이나 사람보다 재미있는 직장, 사람이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자신의 감각적 즐거움과 충동적 재미를 위해서는 남이나 사회에 대해 소홀하거나 무관심하고 극기야 무시하기도 한다. 극도의 개인주의가 심화되어 사회 곳곳에 이기심과 탐욕이 넘쳐나고 몰인간적이고 몰염치한 행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래서 인류가 오랫동안 가꾸고 다듬어 온 사회 조직과 삶의 기본 질서인 윤리나 도덕도 즐거움과 재미를 만끽하는 데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서로 믿지 못하며 언제라도 적으로, 원수로 돌변할 수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살면서도 필요할 때 자신의 걱정거리를 터놓고 어려움을 호소할 대상이 없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군중 속의 고독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전통사회에서는 가족이나 이웃 간 인정(人情)이 있어서 서로 어울려 살아가면서 서로 마음으로 위로받고 어느 정도 의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조직과 시스템으로 엮인 사회여서 냉정한 이해와 처절한 경쟁만이 지배하는 관계 속에서 몰정(沒情)만이 존재할 뿐이다. 인정은 기대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의지할 곳도 없다. 믿을 것은 오직 나밖에 없다. 믿을 만한 의지처가 상실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믿고 지탱할 수 있는 진정한 의지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인간의 삶은 본래 괴로움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불교에서는 삶은 그 자체가 괴로움(苦海)이라고 규정한다. 문제는 현대인이 겪고 있는 현대적 삶의 괴로움이 이전과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기에 느끼는 삶의 번뇌와 고통 외에도,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의 상실에서 오는 방황과 진정한 의지처의 부재에서 오는 불안에서 느껴야 하는 괴로움이 그것이다. 이것이 현대적 괴로움의 본질이다.

이러한 괴로움을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회생활에서 옳음의 근거를 세우고 삶에서 진정한 의지처를 마련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 사회, 윤리 등 기존의 현상적 대응과 함께 종교적 해법을 연계시킨 보다 근원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4. 불교의 시대적 과제와 불자의 신앙적 책무         

일찍이 불교는 인류에게 옳음의 기준과 진정한 의지처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부처님은 《열반경》에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즉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고 했다. 옳음의 기준은 ‘법(法)’이고, 진정한 의지처는 ‘자기(自己)’라는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옳음의 기준인 법의 근원은 연기와 공이다. 연기(緣起)는 우주 만물과 세상만사는 인연 화합의 결과로서 원인과 조건이 서로 맞물려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호작용의 과정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다(此有故彼有 此無故彼無). 절대적, 보편적인 기준은 있을 수 없다. 시비(是非), 이해(利害), 당부(當否) 등을 넘어 원융회통(圓融會通)하는 역동적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균형적 조화가 옳음의 기준이다. 한편 공(空)이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실체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알음알이로 파악하고 경험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인식의 세계를 넘어, 깨달음으로만 통찰할 수 있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선입견, 고정관념, 편견을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세상에 존재하는 걸림 없는 큰 잣대, 잣대 밖의 잣대가 불교가 제시하는 옳음의 근거이다.

진정한 의지처란 무엇인가. 자기의 근원인 불성(佛性)을 가리킨다. 불성은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근본 성품이다.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갖고 있으므로(一切衆生 皆有佛性) 누구나 수행하여 깨치면 부처가 될 수 있다. 세속적 인간으로 태어나 깨달음을 얻어 부처에 이른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해야 하는 것은 신이나 절대자가 아니라 부처가 될 잠재력이 있는 나 자신이다. 불성을 의지처로 삼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불교적 관점은 오늘날 옳음의 기준이 붕괴하고 진정한 의지처를 상실하여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명료한 지침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담긴 시대적 함의를 해석하고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어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지혜와 방편을 찾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불교가 가진 무한한 잠재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함으로써 불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낮아지고 불자 수도, 출가자 수도 감소하는 등 총체적 난국에 직면하고 있다.

이에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 속에 담긴 옳음의 근거와 진정한 의지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불교적 삶의 틀을 세우고 불자로서 올바른 사고체계와 행동 양식을 정립하며, 이를 실질적으로 체득할 수 있는 수행 과정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이러한 삶의 틀을 자신의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스스로 성숙한 인간이 되고 아울러 일반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불자에게 부여된 신앙적 사명이자 책무이고 오늘날 어려움에 처한 불교를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5. 현대사회에서 불교적 삶의 양식

불교적 삶의 양식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올바른 사고와 행동 등을 종합적으로 체계화한 불자의 삶의 격식(格式)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불자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필수작업이다. 그렇다면 불교적 삶의 양식의 기본 개념과 실천 원리, 올바른 사고와 행동체계, 이를 체득하는 신행공동체 기능과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가. 기본 개념과 실천 원리   

불교적 관점에서 삶은 깨달음을 통해 괴로움(苦)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삶은 괴로움이지만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고 모든 사람은 깨달음의 잠재력을 갖고 있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信), 배우고(解), 실행하고(行) 체득하는(證)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힘(自力)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을 삶의 궁극적 목적으로 삼는다. 진리를 깨닫고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의 삶이다. 이러한 삶의 기본원리는 대승적 차원의 교화적 삶과 소승적 차원의 수행적 삶이 별개로 분리되지 않고 상관적으로 지향되는 역동적 과정이다. 수행을 통해 교화를 확장시키고 교화를 통해 수행을 심화시키는 삶이다. 이러한 삶의 작용원리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요체인 연기와 공, 불성에 기초하고 있다.

삶의 실상에 관한 원리는 연기와 공이다. 화엄의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원리에서 드러난다. 상즉(相卽)은 ‘있음[色]’과 ‘없음[空]’의 경계가 상의상관하고 자유자재하는 존재의 원리이다. 서로 평등하면서 차별을 보이고 차별을 보이면서도 서로 평등하다. 모든 사물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여기에서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고 협조와 상생하는 균형의 원리가 세워진다. 상입(相入)은 ‘드러남[光]’과 ‘숨김[暗]’이 연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원리다. 서로가 걸림 없이 받아들이고 비추는 상호작용을 통해 융습(融襲)과 융합이 이루어진다. 모든 사물은 근본적으로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서 어떤 분별도 대립도 없는 조화(調和)의 원리가 세워진다.

삶 주체의 근원은 불성이고 참마음[眞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진실한 도리에 따라 행하는 넓고 밝고 청정한 마음이다. 있음과 없음, 드러냄과 감춤을 걸림 없이 회통시키는 마음이다. 여기에서 현상에 감추어진 참모습을 통찰하는 일체지(一切智)가 발현된다. 갈등과 대립의 편협한 마음에서 벗어나 대승적, 종합적 시각으로 현상을 바라봄으로써 다양성을 이해하고 통일성을 지각한다. 여기에서 올바른 이치와 도리[正道]를 알고 따르는 올바른 실천의 원칙이 세워진다.

불교적 삶의 양식은 균형적 조화와 올바른 실천이다. 상즉하는 존재의 원리에 잠재한 균형의 요소와 상입하는 작용의 원리에 잠재한 조화의 요소가 넓고 밝고 청정한 일심 속에서 원융회통하는 것이다. 삶의 외연과 내포가 균형적 조화를 이룰 때 소승과 대승의 차원이 각기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갖고 서로 주체와 대상이 되면서 삶의 필수조건을 구축하고,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의 삶의 내용이 각기 독특한 장점과 강점을 지니면서 서로 목적과 방편이 되면서 삶의 충분조건을 장엄한다. 이와 함께 인과응보와 윤회, 발원 등 믿음체계는 올바른 실천의 기반을 확고하게 만들어 준다.

균형적 조화와 올바른 실천이 구현된 삶이 자리이타적(自利利他的) 삶이다. 나에게도 이익이 되고 남에게도 이익을 주는 삶이다. 나에게 이익되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의 필수조건을 구비하면서 남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의 충분조건을 충족하는 삶이다. 올바른 수단과 방법으로 자아실현을 도모하고(願成就), 타인과 사회에 공헌하고(普供養), 자신이 얻은 이익을 사회에 널리 환원하는 봉사와 희생(普回向)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사리(私利)와 공리(公利) 간의 모순과 갈등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균형적 조화의 원리와 올바른 실천의 원칙이 구현된 자리이타적 삶은 사리와 공리의 모순과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한다. 인간이기에 생존, 안전, 성공 등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개인 차원의 소승적 삶을 공감과 연민, 공존과 연대 등을 통해 협조와 상생의 성숙한 공동체를 구현하는 사회 차원의 대승적 삶으로 전환시키고 상구보리의 삶을 하화중생의 삶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사고와 행동체계의 확립이 필요한 것이다.

 

나. 올바른 사고와 행동체계

올바른 사고와 행동체계는 윤리적 가치체계와 불교적 사유체계를 결합시킨 불교적 수행체계이다. 보편적 당위인 ‘옳음[正法]’과 실제적 가치인 ‘좋음[常樂]’을 균형적 조화의 원리[中道]와 올바른 실천의 원칙[八正道]을 통해 ‘덕(慈悲, 知慧, 行願)’을 함양하여 ‘훌륭함[六波羅蜜]’의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이다.

여기서 ‘옳음’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당위이고 윤리적 판단의 기준이다. 일상사에서 지켜야 하는 약속,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행위 등을 말한다. 부처님 가르침이자 올바른 진리인 정법(正法)이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행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는 칠불통계게(七佛通誡偈)는 불교의 지향점이다. 부처님이 규정한 악은 열 가지(十惡)로서 몸과 관련한 세 가지(殺生, 偸盜, 邪淫), 입과 관련한 네 가지(妄語, 綺語, 兩舌, 惡口), 뜻과 관련한 세 가지(貪愛, 瞋恚, 痴暗)이다. 여기에 반대되는 열 가지를 선(十善)으로 규정하였다. 이는 인간의 사회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어서 오늘날에도 불자들이 지켜야 할 생활규범의 원칙이 되고 있다. 정법을 지키면 법력(法力)이 생겨서 매사 여의원만하게 성취할 수 있지만 지키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도 고통에 빠뜨리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법대로 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옳음에 앞서 좋음에 사로잡히는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좋음’은 누구나 욕망하고 갈구하는 대상이고 소중하게 여기는 실제적 가치이다. 부나 명예나 권력 같은 물질적 가치, 행복, 희망, 건강과 같은 정신적 가치, 정의나 자유와 같은 사회적 가치 등을 일컫는다. 언제나 괴로움이 없는 즐거움, 즉 상락(常樂)이다. 부처님이 전도선언에서 지적한 이익과 행복과 안락이다. 좋음은 선과 악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 잘못 취하면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옳음과 좋음을 균형적으로 조화시키고 올바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에서의 ‘균형적 조화’는 사려분별하여 조절하는 것이다. 기존의 관습이나 습관을 무조건 따르거나 대안도 없이 사사건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깊이 생각하고 이치에 맞도록 판단하고 균형에 맞게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다. 바로 중도(中道)의 원리이다. 중도는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리로서 옳음과 좋음의 조율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중도는 올바른 실천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구현된다.     

‘올바른 실천’이란 좋은 목적을 이루는 데 올바른 수단을 취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중도의 원리를 적용하여 판단하고, 판단한 대로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팔정도(八正道)인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실천이다. 부처님이 전도선언에서 당부한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은 법’을 세우고 ‘원만하고 완전하고 청정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선방편(善方便)의 추구이다. 팔정도를 닦아 합리적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균형적 조화의 원리와 올바른 실천 원칙이 원만하게 발휘되기 위해서는 덕을 쌓아야 한다.

‘덕(德)’은 품성, 태도, 인격 등으로, 일이나 사람을 대하면서 공정하고 넓게 포용하고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와 행동이다. 불자에게 요구되는 덕은 문수보살의 지혜와 관음보살의 자비와 보현보살의 행원이다. 지혜(智慧)는 선악을 분별하고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안목이다. 자비(慈悲)는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시비를 뛰어넘어 남을 돕고 사랑하는 것이다. 행원(行願)은 보다 높은 것을 염원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행동하는 인내와 열정이다.

‘훌륭함’이란 탁월함이다. 사람 됨됨이나 행실, 능력이 나무랄 곳이 없이 뛰어난 모습이나 태도이다. 어떤 것과 비교하여 평가된 상태나 수준이라기보다 어떤 목적이 잘 구현된 상태이다. 육바라밀(六波羅蜜) 즉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반야(般若) 바라밀을 행하는 보살행의 실천을 통해 구현된다.

균형적 조화와 올바른 실천의 사고와 행동체계가 사회생활이나 삶 속에서 훌륭하게 구현되면 내적, 외적으로 심오한 힘[福德]이 형성되고 촉진된다. 내적으로는 좋은 일을 바르게 성취함으로써 활기차고 생동감, 환희심이 충만한 긍정적 삶을 누릴 수 있다. 외적으로는 자신의 의견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지지와 존경을 받아서 일반 대중에게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과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전법교화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렇듯 불교적 삶의 양식인 올바른 사고와 행동체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해하고 믿고 실천하는 끊임없는 수행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며 신행공동체를 중심으로 수행할 때 더욱 효과적으로 체득할 수 있다.

 

다. 신행공동체를 통한 불교적 삶의 양식 체득   

신행공동체는 사부대중을 중심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실천하고 전파하는 수행과 포교의 공동 목적과 공동체적 유대감을 갖고 활동을 함께 하는 조직이나 기관 및 단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여기서는 출가자를 중심으로 하는 수행공동체보다 종교성, 개방성, 상호성이 강조된 보다 포괄적인 차원의 불교공동체를 의미한다.

신행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기도와 수행, 법회와 의식 등 신행 활동을 통해 신심을 고양하고 불심을 증장시키고 신행 체험을 서로 나누고 회향하는 수행공간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함께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불교적 삶의 틀을 다듬어 나가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수련도장이어야 한다. 아울러 모두가 동참하여 보람과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구성원 간의 관계와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는 다음과 같은 마음 자세가 확립돼야 한다.

첫째, 신행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차별이 없고, 분별이 없는 대등(對等)한 역할을 하는 관계이다. 각자 동등한 위치에서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동등한 인격체로서 협력하고 협조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하나라는 동체(同體) 의식을 갖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함께 변화하고[共變] 신뢰와 믿음을 쌓아가는 파트너십을 조성해야 한다. 더불어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자비심으로 배려심과 협동심 등을 발휘해야 한다.

둘째, 신행공동체의 모든 일은 민주적 과정과 절차에 의거하여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이다. 모두가 동일한 자격으로 참여하는[實參] 가운데 토의와 토론을 통해 대중의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귀일시켜 공의(公義)를 만들어 실행하는 의사 결정 과정[羯磨法]을 일상화해야 한다. 양극단을 뛰어넘어 있는 그대로 보는 눈뜬 자의 지혜를 갖추어 균형감과 포용성, 융통성 등을 발휘해야 한다.     

셋째, 신행공동체에 임하는 마음 자세는 화목과 화합이다. 구성원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대중을 아우르는 원력(願力)을 세워, 사사로움과 분별심이 없는 공심(公心)을 유지하고 일체의 상(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여 봉사와 헌신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고 신심을 조장함으로써 자신에게는 보람과 환희심을, 타인에게는 믿음과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대자비에 입각한 행원(行願)을 실천하고 앞장서서 수범하며 책임감, 성실성을 발휘해야 한다.

오늘날 신행공동체는 이전과 다른 새로운 기능과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공동체 정신과 시민 정신을 함양하는 인성교육 공간, 다양성과 차이가 어우러지진 만남과 소통의 열린 공간, 즐거움과 재미가 넘쳐나는 놀이 공간, 안식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힐링(healing) 공간 등 종합적 문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와 사람들의 기대가 반영된 신행공동체가 조성될 때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고 다양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며 긍정적 변화가 일어난다. 그리하여 헌신적으로 동참하고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는 진정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나와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한 삶을 이루는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의 진정한 구현이라 할 수 있다.        

 

6. 인식 전환과 새로운 결의

불교적 삶의 양식을 현실에서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고양시켜 나가려면 신행활동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불보(佛寶)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불보살은 불자들이 발원하고 귀의하는 신앙 대상이기도 하지만 불성을 가꾸어 복덕을 지어나가는 수행의 대상이기도 하다. 복덕은 부처님을 믿고 스스로 만들어 나갈 때 생겨나는 결과물이다. 무작정 복을 비는 기복(祈福)이 아니라 신행활동을 통해 복덕을 쌓아나가는 작복(作福)이어야 한다. 작복의 방편은 기도와 참선과 보살행이다. 어디서나 할 수 있지만, 불법승(佛法僧) 삼보가 완전히 장엄된 법당에서 하는 것이 마땅하고 효과적이다. 법회에 참석하고 법당에서 정진하는 것을 습관화하는 신행 자세가 필요하다.     

둘째, 법보(法寶)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부처님의 깨달음과 삶의 지혜를 함축하고 있는 법(法)의 보고는 바로 경전이다. 경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성적 지혜도 필요하지만 깨달음을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교의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함께 진정한 실체를 파악하려는 건전한 탐구정신이 필요하다. 경전을 읽으면서 궁금증을 갖고 해결해 나가는 공덕이 쌓일 때 경전을 이해하는 안목이 열리고 삶의 지혜가 드러난다. 경전은 불교적 삶의 양식을 공부하는 교재다. 읽고 외우는 것 못지않게 생각하고 깨달아 나가는 경전 공부의 생활화가 필요하다.

셋째, 승보(僧寶)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승보는 보살도의 실천을 통해 보살의 삶을 구현해나가는 스승이다. 불교적 삶을 인도할 수 있는 진정한 사표(師表)이자 도사(導師)이다. 따라서 승보는 정법과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은 여법한 삶의 방법을 찾아 불교적 삶을 실현해야 한다. 승보는 설법과 의식 같은 법사(法事)를 통해 불심을 증장시키는 외경의 대상이자 보살의 삶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이끄는 공경의 대상인 만큼, 승보는 근기와 이익을 살펴 설법의 장[福田]을 마련하고 대중은 정성을 다해 보시와 공양을 제공하는 맑고 밝은 도반(道伴) 관계의 정립이 필요하다.

아울러 현대사회를 사는 불자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불교적 삶을 구현시키기 위해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사홍서원(四弘誓願)과 함께 다음과 같은 새로운 결의가 필요하다.

첫째, 세상에 기여하는 삶이다. 나만의 성공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이 불교적 가치를 찾는 것이다. 능력껏 보시하고 봉사하여 복덕을 쌓고 일체의 상을 갖지 않고 사람과 사회를 위해 공덕(功德)을 짓는 것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공리(公利)를 추구하는 삶을 통해 진정한 창조의 기쁨을 누리고 윤리적 자존감을 스스로 높여 나가야 한다.

둘째, 결과보다 과정에 충실한 사고와 행동이다. 당장 남보다 앞서고 눈에 보이는 이득을 위해 필요한 과정을 무시하고 불성실하게 행동하여 얻은 결과는 절대로 오래가지 않는다.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이다. 불자는 법에 거슬리지 않고 윤리나 도덕에 어긋나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넘어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는가, 정법에 합당한가를 항상 성찰하고 참회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셋째, 생업과 신행이 균형적 조화를 이루는 생활이다. 가정의 행복, 직장의 성공, 건강 등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울러 항상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바로 세워나가는 신행생활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 생업과 신행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자신이 뜻하는 바를 원만하게 성취할 수 있고 성공하면서도 행복한 삶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7. 맺는말

지금까지 현대사회를 사는 불자들에게 요구되는 바람직한 삶의 방식으로서 불교적 삶의 양식에 대해 살펴보았다. 불교적 삶의 양식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함의한 삶의 작용원리인 균형적 조화와 올바른 실천을 통해 소승적 차원의 자아실현과 대승적 차원의 사회공헌을 회통(會通)시켜 자리이타의 보살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다.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 극단을 벗어난 중도 원리로 삶의 상관적 차원을 확장하고, 인간에 대한 경의, 존경, 믿음으로 자신에 대한 긍정적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성숙한 인간관을 갖추고 참된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

균형적 조화와 올바른 실천의 불교적 삶의 양식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현대사회를 사는 불자들에게 올바른 가치관과 사고체계를 재정립하고 바람직한 삶을 새롭게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오늘날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인간 삶의 양식의 기준과 근거를 제시함으로써 인성 및 자기계발 등에 대한 불교 교학의 활용 영역을 확장시키고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 불자들은 불교적 삶의 양식을 실천함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삶의 차원과 수준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입증해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 제시한 불교적 삶의 양식을 자신의 삶에서 반영하여 내면적, 정신적으로 훌륭한 인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침으로써 유대와 신뢰가 형성된 공감과 소통의 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이러한 삶의 자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추구하는 진정한 불자의 모습이며, 오늘날 우리 사회가 불자에게 기대하는 시대적 사명과 책무를 완수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

 

조현봉 
동국대학교 윤리문화학과 강사. 철학박사(동국대). 주요 논문으로 〈윤리문화적 접근방법에 관한 고찰〉 〈윤리문화적 리더십 모형에 대한 탐색적 연구〉 〈협조적 전법교화 체제 활성화를 위한 재가 포교사 리더십에 관한 연구〉 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 리더십 윤리문화》가 있다. 불광연구원 전법학술상 수상. 현재 한국윤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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