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해양부 바닷길 비단길(Silk Voyage)을 따라 곳곳에 무역왕국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14세기 이전에도 바닷길은 거기에 있었다. 바닷길은 계절에 따라 정확하게 열리고 닫혔는데, 동남아 해양부에서는 12월 초부터 3월 말까지 동북아로부터 밀려오는 동남풍과 안다만-니코바르 열도를 거슬러오는 서남풍이 약 4개월 동안 말라카해협과 자바해에서 만났다. 15세기 말라카왕국의 전성기에는 세계 80여 개 지역에서 무역상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성시를 이루었다.

동남아의 바로 이웃에 자리한 인도 대륙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신들의 세상이 있고, 그 아래 인간들이 모여 살면서 힌두문명을 꽃피웠다. 그 중심에 힌두교가 있었다. 아직 왕국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거나 보다 큰 왕국을 지향한 해양부 동남아의 왕국들은 바닷길을 따라 전파된 힌두교의 핵심인 바르나(varna) 즉, 카스트제도에 큰 관심을 보였다. 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무사), 바이샤(농민과 상인), 수드라(노예) 등 사성제 계급사회가 왕국의 근간을 세우는 데 유용할 것으로 여겨져서다.

수마트라 동부 해안과 말레이반도에 생겨난 군소 무역왕국들은 힌두교와 힌두 문자 산스끄리뜨(Sanskrit)를 두루 살펴 왕국의 외형을 넓혀가면서 종종 관할권 분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말라카해협으로부터 자바해를 통제하고 관장할 대왕국의 출현이 절실하게 요청된 것이다. 머지않아 말라카해협 쪽 수마트라 중남부의 빨렘방(Pale-mbang)에서 불교문화를 앞세운 스리비자야(Srivijaya) 왕국이 발흥하였다. 중국 문헌에 삼불제(三佛齊)로 등장하는 이 왕국은 영토 확장을 통해서 통치력을 강화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교역을 통한 상호이익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바닷길 군소왕국들의 환영을 받았다.

스리비자야 왕국은 650년부터 1377년까지 700년 넘게 존속하며 동남아 바닷길 비단길을 관장하였다. 힌두왕국의 터전 위에 세워진 이 불교왕국이 오래 지속된 까닭은 계급사회를 바탕으로 하는 힌두왕국보다 만인평등의 불교 교리가 훨씬 유용하였기 때문이었다. 스리비자야와 같은 시기에 자바에서는 산자야(Sanjaya) 힌두왕국과 사일렌드라(Sailendra) 불교왕국이 등장하였다. 스리비자야는 수마트라와 자바 사이의 주요 항로를 모두 장악했으나, 내륙의 농업 지역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식량을 산자야로부터 공급받았다. 그러나 수마트라와 자바 간의 해상 무역 주도권을 놓고 두 왕국은 경쟁 관계에 돌입하였으므로 식량공급에 큰 차질이 생겼다.

스리비자야는 새로운 식량 공급원을 찾게 되었고, 자바 중동부를 지배하며 825년 보로부두르(Borobudur) 불교사원을 완공한 사일렌드라와 가까워졌다. 832년에는 산자야 왕과 사일렌드라 공주 간에 결혼동맹이 이루어졌으므로 자바의 주도권이 다시 산자야 힌두왕국으로 넘어갔다. 이 왕국은 856년 보로부두르에 견줄 수 있는 미려한 쁘람바난(Prambanan) 힌두사원을 세웠다. 마쟈빠힛(Maja-pahit)왕국(1293~1527)이 스리비자야의 뒤를 이었는데, 자바를 장악하여 무역뿐만 아니라 농업을 육성한 해양부 동남아의 대표적인 ‘힌두불교’ 왕국이었다.

동남아 해양부의 중심이자 인구 밀집 지역인 자바는 이처럼 일찍이 힌두교와 불교가 공존하는 터전으로 변모하였다. 자바에서 만개한 힌두교와 힌두 문화와 교섭하여 해양부로 전파된 원시불교를 ‘힌두불교(Hindu Buddhism)’라 칭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힌두 요소를 전면 거부하고 원시불교의 원형을 고집한 곳도 있다. 자바 이웃인 발리(Bali) 동쪽 롬복(Lombok)의 사삭족들이 신봉하는 ‘사삭보다(Sasak Boda)’가 한 예다. ‘사삭불교’라는 뜻인데, 이러한 문화적 특이 현상은 군도로 구성되고 군도 간의 소통이 어려웠던 해양부 동남아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었다.

힌두교와 불교는 많은 부분에서 종교로서 맥을 같이한다. 업(karma) 사상, 인도철학의 근간인 법(dharma)과 제도, 해탈(moksha), 윤회 사상 같은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불교가 힌두교의 한 부류(종파)라고 말하기도 한다. 두 종교는 모두 브라만교(Brahmanism)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힌두교 창시가 앞선다. 다른 점도 많다. 무엇보다도 힌두교는 시바(Siva), 비슈누(Visnu), 브라만(Brahman) 등 세 신을 정점으로 한 다신교라는 점이다. 또 소(牛)를 숭배하는 것도 특이점이다. 그러나 불교는 잡신을 거부하고 수행을 통하여 스스로 진리를 깨닫는 열반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힌두 사회의 카스트제도와 불교의 만인평등 사상은 당연히 같지 않다. 힌두불교문화권의 우뚝한 힌두왕국 발리는 어떨까. 그곳에 카스트제도는 없다.

힌두교와 산스끄리뜨어는 동양의 역사문화에 수많은 사상과 문화 어휘(cultural vocabulary)를 남겼다. 나가(Naga) 사상을 예로 보자. 뱀 숭배 사상이다. 힌두 사원마다 돋보이는 거대한 머리의 뱀은 왕국과 최고 지도자의 위엄과 존엄을 상징한다. 부처님 주변에도 여러 마리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 우리나라도 집 지킴이 가신신앙의 주체가 뱀이다. 우리나라의 ‘나라’도 산스끄리뜨어에서 나왔다. 해양부 동남아에서도 나라는 나가라(nagara)다. 《나가라꺼르따가마(Nagarakertagama)》는 인도네시아 최고 역사서인데 ‘나가라’가 맨 앞에 나온다. 해양부 동남아의 법률 관계나 천문, 의학용어 등도 대부분 산스끄리뜨어에서 발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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