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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지혜는 경제와 정치도 비추어야 / 윤성식
[81호] 2020년 03월 01일 (일)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

행복이 주변에 널려 있단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누가 말했던가, 직장인들은 영혼을 집에 맡기고 출근한다고. 조사에 의하면 언제든지 내쫓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싸여 사는 직장인이 절반을 넘는다. 이런 직장에 행복이 널려 있을까? 내 제자는 영업실적이 최고인데도 매년 승진에서 탈락시키고 다른 사람을 승진시키기에 사표를 냈더니, 깜짝 놀라면서 내년에 승진을 시켜줄 테니 있으라고 붙잡더란다. 이런 직장에 행복이 널려 있을까? 사법부에 행복이 널려 있을까? 행정부에 행복이 널려 있을까?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행복이 널려 있을까? 아버지는 이미 돈 버는 기계에 불과하고 남편이란 현금인출기에 불과한 가정에 행복이 널려 있을까? 부모가 돈이 많을수록 자식이 부모를 자주 방문하는 빈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상속재산을 놓고 소송을 벌이는 형제자매가 급증하고 있다. 도대체 행복이 어디에 널려 있을까?

매사에 감사하는 태도 또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건강하고 머리도 좋고 직장에서도 잘 나가고 가정도 화목한 사람이 매사에 감사하는 것은 나쁠 것이 없다. 이런 사람이 남에게 매사에 감사하라고 권한다면 그건 이야기가 다르다. 자신의 행운이 얼마나 예외적인가를 알고 제법실상과 유리된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청년실업이 50%가 넘는 스페인, 취업을 못해 부모랑 같이 사는 캥거루족이 70%가 넘는 이탈리아에서 청년들이 ‘아픈 곳이 없으니 됐어. 건강이 최고야.’라고 매사에 감사해야 할까?

조계종 총무원장이셨던 법장 스님께서 “우리 출가자들은 산중에 있으니 사는 게 쉽지요. 세간에 나와서 수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데요.”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MBN에서 시작하자 뜻밖에도 시청자의 반응이 예상외로 좋아서 놀랐다지만, 인간과 세상에 실망하고 출가하듯 산속으로 들어와도 산속에 행복이 있을 리가 없다. ‘산속에도 행복은 없지만 내 집 뒤뜰에는 있더라.’라고 감동 어린 말을 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이란 독자적인 실체가 없이 공한데 산속에도 내 집 뒤뜰에도 있을 리가 없다.

젊은이가 떠난 사찰은 노인정으로 전락했다. 마치 농촌 마을이 소멸 위기에 직면했듯이 불교 사찰도 소멸 위기에 직면했다. 불교 사찰의 소멸은 불교의 위기를 의미한다. 온 국민이 불교 신도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불교가 전 세계의 유일한 종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고통 속에서 사는 현대인에게 부처님의 말씀이 빛을 줄 수 있는데도 아직 산중에 갇혀 있는 불교 교리가 아까울 뿐이다. 젊은이에게 불교 교리라는 사실을 감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이야기하면 호응이 대단하다. 21세기에 이르러서도 불교는 여전히 삶에 지혜를 줄 수 있는 종교다. 어떻게 해야 불교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불교의 지혜에 의해 치유받을 수 있는 많은 사람이 구제될 수 있을까?

고통 중에 어떤 고통이 가장 힘들까? 부처님은 생로병사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출가하였다고 말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까? 부처님은 죽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가난으로 인한 고통이라고 했다. 경제 문제야말로 현대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고 있다. TV에서 뉴스를 보다가 기분 나빠서 채널을 돌린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뉴스를 보면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난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채널을 돌리고 음악이나 듣고 춤이나 보고 드라마를 시청하면 일시적으로 기분이 전환된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가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지만, 정치를 외면할수록 정치는 국민을 떠나 정치인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버린다.

불교는 이미 삶의 장식품으로 전락했다는 비관적 생각이 든다. 불교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지 못하고 불자가 불교를 걱정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불교가 경제와 정치라는 세속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는 한 불교는 삶의 장식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경치 좋은 국립공원에 갇혀서 현실과 동떨어진다면 부처님 당시 도시에서 활발하게 중생의 삶 속에 뛰어들었던 부처님의 뜻에 어긋난다. 경제와 정치를 외면하는 게 부처님의 뜻이라면 당연히 우리도 경제와 정치를 외면해야 한다. 경전을 보면 부처님은 우리의 예상과는 너무나 다르게 경제와 정치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다. 출가자의 경우에는 일정한 제약을 두었지만 재가자의 경우에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제시하셨다.

부처님의 연기법은 세간의 법칙이고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이기도 하다. 경제와 정치를 외면할수록 불교는 현대인의 삶에서 멀어지고 부처님의 뜻에서도 멀어진다. 부처님에게 돌아가자. 그래야 불교가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부처님에게 돌아간다는 의미는 과거로 돌아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교를 현대화하자는 의미다. 이미 불교는 부처님 뜻에서 너무나 많이 이탈했다. 이탈한 과거에서 벗어나 부처님에게 돌아가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부처님에게 돌아가면 교리의 현대화를 위한 길이 보인다. 불교 교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현대인의 고통을 해결하는 불교 교리의 현대화를 이루어야 불교가 세상을 비추는 지혜가 될 수 있다. 경제와 정치 문제부터 불교적 관점으로 보고 불교적으로 행동해야 부처님의 제자다. 부처님에게 돌아가야 불교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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