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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축의금 이야기 / 박배훈
[81호] 2020년 03월 01일 (일) 박배훈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어렵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서로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미풍양속이 있다. 인생 대소사를 치르고 나면 한평생이 다 지나간다. 그중에 큰일이 자녀 혼사이다. 옛날에는 동네잔치가 있으면 막걸리 한 동이, 소주 한 되짜리 한 병, 묵 한 판 또는 약간의 축의금 등을 보내거나 일손을 보태주었다. 지금은 세태도 많이 변했지만, 요즈음도 아직 축의금 전달은 예전이나 다름없다. 돈이 많이 들어갈 때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서로를 도와 어려운 고비를 넘겼던 전통이 이런 방식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나에겐 축의금에 관한 슬프고 해결 안 된 아픔이 있다. 바로 도둑 누명을 쓴 일인데, 세월이 수십 년 흘렀건만 아직도 나는 누명을 못 벗고 있고 벗을 길도 없다. 벗겨줄 분도 이미 고인이 되었으니 방법도 없다. 아마 지금쯤은 내가 도둑이 아닌 것을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40여 년 전 젊을 때 내가 다니던 직장에 몇 명이 계(契)를 만들었고, 같은 계원인 정 교수 따님의 결혼이 있었다. 서울의 유명 예식장에서 결혼식이 있어 내가 대표로 가게 되어 밤 열차를 타고 새벽에 서울역에 내렸다. 예식 시간까지 별 쉴 곳도 없어 지친 몸으로 예식장에 가서 곗돈 축의금을 접수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며칠 지나 정 교수님이 나에게 곗돈을 냈느냐고 물었다. “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접수가 안 되었어.” 나는 틀림없이 접수시켰다고 하여도 정 교수님은 이미 나를 의심하고 계셨다.

내가 평소에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존재였던가를 느꼈다. 심지어 돈만 되돌려주면 그걸로 눈감아주겠다는 뜻도 은근히 내비쳤다. 내가 만약 돈을 주면 나는 영락없는 도둑이 되고 만다. 차라리 돈을 주고 그 모욕을 벗어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며칠 지나서는 여기저기 소문이 났고 내게는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없었다. 세월이 가면 가져간 사람이 나타날 거다. 그때는 누명을 벗을 수 있으리라 믿고 참고 견딜 수밖에 나에게는 아무 도리가 없었다.

우리의 이 이야기를 만약 부처님께서 듣고 계신다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여래가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이고득락(離苦得樂)의 법(法)을 중생들에게 널리 펼치니 많은 사람이 따르고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니 이교도들의 시기와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자신들을 따르던 사람들이 줄어들고 공양도 예전에 비해 적게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한 해결 방법은 여래를 모함하고 누명을 씌워 그 인기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여래가 제자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것이 불사음(不邪婬)인 것을 알고 그들은 미인계를 썼다. 이교도들은 순다리라는 예쁘고 젊은 여자를 시켜 모함하려 했고, 순다리는 저녁에 승원에 와서 아침에 나갔다. 마침 아침에 승원에 오는 사람과 마주쳤고, 여래도 속절없이 모함에 당하고 말았다.

순다리에게 여래를 모함하라고 사주한 폭력배들은 거짓이 드러날까 봐 순다리를 살해하여 여래가 거주하는 승원 가까운 곳에 버리고는 여래의 측근들이 한 짓이라고 소문을 내었다. 이 소문을 들은 왕은 군대를 동원하여 그 경위를 조사하게 했다. 며칠이 지나 왕의 군대가 어느 술집을 지나는데 큰 소리가 들렸다. 순다리를 죽인 폭력배들끼리 싸움이 벌어져서 서로가 순다리를 죽였다고 다투는 소리였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왕은 순다리를 살해한 일당을 체포하게 되었다. 여래는 누명과 모함을 벗게 되었다.

 

여래는 깨달음으로 전생의 업을 다 소멸시켰으니 누명을 벗었지만, 나는 아직 전생의 업보가 남아 누명을 벗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분은 ‘누명이란 실체가 없다. 제법무아(諸法無我)이고 모두가 공(空)이다. 그러하니 원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흘러가는 구름을 보거라’라고 하시지 않을까. 아니면 현대식으로 풀어보라고 하실까?

나를 신뢰 못 하시는 정 교수님이 야속도 하고 나에게 누명을 씌운 정 교수님을 원망도 했다. 세월이 수십 년 흐른 지금에도 정 교수님이 계신다면 아직도 그 마음이 그대로인가 한번 여쭈어보고 싶기도 하다. 그분은 분명 누명이 아니고 내가 축의금을 가졌다고 굳게 믿고 계시기에, 나에게 향한 마음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웠을까. 젊은 놈이 돈에 손댔다고.

나는 나대로 정 교수님은 정 교수님대로 서로를 원망하고 할 말 다 못하고 가슴에 묻어두고 살게 된 지난 세월도 이제는 흘러갔다. 만약 내가 대표로 그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그렇게 생각하면 모두가 나로 인해 생긴 일, 누구를 수원수구(誰怨誰咎)할 수 있을까. 그래도 꼭 한마디 하고픈 말이 있다. “나는 틀림없이 축의금 곗돈 접수했습니다.”

ymbaeh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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