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과 성찰

1.

필자는 오늘(2020. 1. 31)로써 불음주계를 수지(守持)한 지 2,012일을 맞았다.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 계율을 실천해 오고 있는 셈이다. 필자가 이렇게 불음주 시행의 날짜 수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일기에 기재하기 때문이다. 일기에 이런 것도 다 쓰느냐고 생각할 독자도 계시겠지만, 필자로서는 몇 번 불음주계 수지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겨서 매일 일기에 꼬박꼬박 기록하고 있다.

필자는 불음주계를 수지한 뒤에 스스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나날이 무기력해지던 건강을 되찾았고 가족의 신뢰를 회복했으며, 나아가 허송세월이 현저히 줄었다. 아울러 이 계율 수지를 바탕으로 오계(五戒)의 다른 계율도 수지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다.

오계수지는 깨달음의 집을 짓기 위한 기초 작업이자 터다지기 작업이라고 본다면, 앞으로 필자가 겨냥하는 깨달음에 도달하는 데 불음주계는 실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 셈이다. 이제 필자가 이 계율을 수지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2.

시골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필자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막걸리를 마셨다. 3대 독자였던 필자는 철들고 나서부터 증조할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는데, 당시 70이 넘으셨던 증조부께서는 어머니가 집에서 담가서 드리는 막걸리를 즐겨 드시곤 했다. 그때마다 조금 남겨서 옆에 있는 어린 필자에게 마시라고 주셨다. 어머니가 어린애한테 술을 주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증조부께서는 “우리 집안이 애주하는 것은 내림[유전]인데, 앞으로 술버릇이 중요하다. 나이 든 연장자 밑에서 술을 배우면 술주정하는 일은 없다고 하니까 마셔도 된다.”고 하면서 계속 술을 남겨 주셨다. 막걸리 맛을 일찍 알았던 셈이다.

이후 중학교부터 진주에서 생활한 필자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하였고, 대학에 가서는 본격적으로 양조장 막걸리를 마셨다. 그러다가 시골에 가면, 중학교 1학년 때 별세하신 증조부를 이어서 조부께서 집에서 쌀로 담근 막걸리를 즐겨 드시면서 필자에게도 권하셨기에 맛 좋은 막걸리를 계속 마실 수 있었다.

이후 1983년에 경상대학교에 자리를 잡은 뒤에 술자리가 자주 있었는데, 필자는 유독 막걸리만 찾았다. 어린 시절 맛 들인 막걸리를 능가하는 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아무리 마셔도 화장실에 가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만큼 흡수율이 좋다는 증거인데 대신 빨리 취하였고 나중에는 필름이 끊어졌다. 이런 경우, 그 후유증이 1주일을 갔다. 정상 상태를 회복하는 1주일 동안 온갖 것에 걸리면서 제자리에서 제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막걸리 마시고 정신을 잃은 채 넘어지는 바람에 턱을 심하게 다쳐서 한 달 이상 입원하여 수술받느라 고생한 적도 있었다.

어느 시점에 술을 자제하기 위해서 당대의 고승(高僧)으로부터 계를 받자고 생각하였다. 당시 전라남도 곡성군의 성륜사(聖輪寺)에 계시던, 필자가 두어 번 친견한 적 있었던 청화(淸華, 1923~2003) 큰스님이 떠올랐다. 이에 큰스님의 유발 상좌로 알려진 경상대학교 철학과 박선자 교수(현 원통불법연구회 회장)와 상의한 뒤, 박 교수의 주선으로 날을 잡아서 둘이서 성륜사로 갔다.

요사채에서 유숙한 뒤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박 교수와 함께 큰스님의 주석처 조선당(祖禪堂)으로 올라갔다. 큰스님께서는 상좌 스님의 보좌를 받으면서 수계식(授戒式)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셨다. 이에 정식으로 오계를 받고 연비(燃臂)의식을 거행하였다. 그런데 그때도 불음주계에 대해서만큼은 자신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큰스님의 “한 방울의 술도 입에 대면 안 된다.”는 말씀에 엉거주춤 확답을 못했더니, 평소 매우 자애로웠던 큰스님께서 큰 소리로 “(불음주계를) 지키겠느냐?”고 다시 물어서 얼떨결에 “예.”라고 대답은 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필자는 마시되, 다만 취하지 않을 정도로만 마시면 이것은 파계(破戒)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이후, 다시 술을 마시면서도 취하기 전에 그만두기가 어려웠고, 그때마다 마음 한구석에는 늘 큰스님에 대한 죄송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다시 필름이 끊어지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제 다음 날 아침이면 가족들로부터도 싸늘한 눈총을 받아야 했다.

무언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생각은 안 나고 그렇다고 물어볼 엄두도 안 나고, 속은 쓰리고 아픈데 주머니에는 엊저녁까지 분명히 있었던 수십만 원이 온데간데없었다. 아니면 어떤 때는 주머니에서 주점에서 결제한 카드와 영수증이 나왔다. 역시 수십만 원의 돈이 적혀 있었다. 돈도 아까웠지만, 몸과 마음까지 아프고 괴로우니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앞으로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몇몇 모임의 멤버들한테도 선언하였다. “앞으로는 술 안 마실 테니 권하지 마라.”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술을 보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안 마신다고 했기에 스스로 마시지는 않지만, 남들이 권하면 못 이기는 체 다시 마셨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까 필자는 술에 대해서만큼은 전혀 신용이 없었다. 지인들의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필자에게 술은 만악(萬惡)의 근원이었다. 그래서 회갑을 맞이하던 해 가을에 굳게 결심하였다. 앞으로 3 · 7일 곧 21일 동안만 우선 금주하자. 그래도 꼭 마시고 싶으면 마시되, 일단 3주 동안만큼은 철저하게 금주해 보자!

 

3.

이 결심으로 필자의 불음주계 수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지금껏 5년 넘게 지켜오고 있다. 그동안 계속 술자리 모임에 참석했지만 적당하게 핑계를 대면서 자의로는 단 한 방울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가족들도 이제 필자의 불음주계를 확실하게 믿는다. 언제나 맑은 정신을 유지하니까, 이제 대상경계에 걸리더라도 빨리 알아차리고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허송세월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불음주계 습관화의 성공을 계기로 필자는 3 · 7의 법칙에 의거해서 많은 권계(勸戒)와 금계(禁戒)를 습관화할 수 있었고, 이처럼 좋은 습관이 형성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5년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모했다고 여긴다. 아울러 스스로를 신뢰하는 자신감(自信感)이라는 귀중한 덕목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 오계의 철저한 수지로 인해서 이른바 계체(戒體)가 형성되어서 어기려야 어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도 실감 나고, 모든 습관은 삼칠일 만에 형성된다는 말도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사실임이 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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