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 현대소설에 나타난 불교 ④

-조정래의 〈대장경〉과 김성동의 〈만다라〉

1970년대 우리 사회는 다각적으로 진행된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자유화 투쟁이 전개되고, 경제적으로 급속한 산업사회 이행과 함께 문화적으로는 소비문학적 현상의 하나로 상업주의소설 혹은 이른바 ‘호스테스 소설’이 팽배하였던 시대이다.

이러한 사회풍조를 70년대 소설은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과는 별개로 불교소설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 예가 조정래의 장편소설 〈대장경〉과 김성동의 장편소설 〈만다라〉이다. 전자는 불교역사소설로서 한국 전통 불교역사소설의 맥을 이어가면서, 사회현상 중 하나인 민주자유화 투쟁이라는 풍조를 우회적으로 반영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1970년대 사회현상인 상업주의적 풍조와 결탁하여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로 인해 여러 논란이 야기되지만, 이 두 편의 불교소설은 그 나름의 의의를 갖게 된다. 이 혐의를 밝히기 위해서 이 글은 시작된다.

 

1. 조정래의 〈대장경〉과 호국불교

조정래의 장편소설 〈대장경〉은 고려 고종 대의 몽골 침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수직으로 놓고, 고려대장경 판각사업이라는 사실을 허구적인 인물들을 통해서 수평적으로 엮어 직조한 불교역사소설로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조정래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소이는 아마도 부친이 조종현 시조시인 때문일 것이다. 조종현 시인은 1929년 〈조선일보〉 등단으로 활동한 시조시인으로, 조선불교청년동맹 중앙집행위원(1930), 대한불교 법화종 이사(1960), 대한불교 불입종 교정원 원장(1971), 대한불교총화종 종정(1985)을 지낸 대처 종단의 승려시인이다. 그로 인해 첫 장편소설로 몽골 침략군의 격퇴, 왕실의 안녕, 국태안민, 불법 보급, 극락정토의 왕생 등의 기원 목적으로 조성된 팔만대장경을 모티프로 쓴 것으로 이해된다.

장편소설 〈대장경〉의 작품해설을 집필한 천이두는 발문에서 이렇게 언급한다.

모든 역사소설이 그러하듯 이 작품 역시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을 배경으로 설정하면서 거기에 허구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말하자면 고종 · 최우 그리고 몽골장수 살례탑(撒禮塔) 등으로 연유되는 역사적 사실의 측면이 한편에 있고, 수기대사(守其大師) · 정장균 · 근필 등 허구적 인물들이 다른 한편에 설정되면서 이 작품의 소설적 공간이 빚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류를 이루는 것은 물론 후자의 측변이다. 고종 · 최우 등 실제 인물들이 빚는 차원이 대장경 불사(佛事)의 정치적 배경 혹은 정략적 의도를 반영하는 측면이라면 수기대사 · 정장균 · 근필 등 허구적 인물들이 빚는 차원은 그런 불순한 정치적 의도와는 별도로 불사 그 자체의 구체적 과정을 반영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천이두는 이 작품을 역사적 인물인 고종 · 최우, 몽골 장수 살례탑(撒禮塔) 그리고 대장경 조성에 관련된 허구적 인물인 부인사의 수기대사, 정장균, 근필 등을 통해 정치적 의도와는 별도로 불사 그 자체의 구체적 과정을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 허구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여 10년 동안의 대장경 조성에 몸과 마음을 바쳐온 백성들, 즉 필생, 각수, 목수 등 장인들의 서사를 통해서 새로운 차원에서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쓴 것으로 평가했다. 지배층인 당대의 왕이나 중신들을 부정적으로 그린 한편, 수기대사를 비롯한 민중들의 초인적인 안목과 태도를 긍정적으로 그린 소설로 높이 평가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발문에서 “불사를 일으킴으로써 민심을 수습하고 민중에게 희망을 줌으로써 자신에게로 집중된 원성을 회피하려던 최우의 의도는 그러나 수기대사의 신랄한 반발에 부딪히”게 되는데, “민생의 도탄에 있는 지금 백성의 원성을 엉뚱한 불사로써 회피해 보려는 최우의 술책을 간파한 수기대사가 그의 권모술수를 신랄히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은 결국은 부처를 모독하는 처사요, 백성에게는 더 무거운 짐만 지우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로부터 고승(高僧)으로 추앙받는 수기대사로 인해 당초의 계획”이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배층의 정치논리와 수기대사를 비롯한 민중의 호국불교 논리가 상충되는 갈등을 소설 〈대장경〉에서 다루고 있다고 천이두는 지적한다.

한편, 같은 책 발문에서 조남현은 동일한 맥락에서 이렇게 〈대장경〉을 평가한다.

이 작품은 사실(事實)을 재료로 하여 작가 자신의 주제의식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작게는 불교 크게는 종교의 위대한 힘을 새삼 강조하고 있어, 어느 면에서는 종교소설(불교소설)의 형질을 갖춘 것이라 할 수 있다. 당대 불교의 정신이나 힘을 강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또는 수기대사(守其大師)란 인물의 초인적인 혜안(慧眼)과 불세출의 의지를 돋우어 보이려는 의미에서 작가 조정래는 최우(崔瑀)를 비롯한 당대 권력자들의 무능함과 이기욕과 근시안적 안목을 더 날카롭게 부조시키고 있다.

이 인용문은 역사소설로서 최우를 비롯한 당대 권력자의 이야기와 불교소설로서 수기대사를 비롯한 장인들의 이야기의 변별성을 후자의 불교 정신의 힘과 혜안, 불세출의 의지와 전자의 무능함과 이기심 그리고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판별하여 제시한다. 또한 조남현은 이 작품을 “고려 고종 대의 몽골군 침입과 대장경 판각사업이라는 사실(史實)을 우선은 역사소설의 방법론에 의거하여 처리하고 있으며 이어 불교소설과 정치소설의 방법론에 힘입어 그 디테일을 갖추고 있는 것이”며, “사실(史實)을 불교소설 특히 정치소설의 각도에서 재구성한 것은 조정래 특유의 문학적 상상력이 소산”이라고도 평가했다. 이쯤에서 불교소설과 정치소설의 각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몽골 전란 중 대장경 판각불사의 윤허가 떨어져 최우가 수기대사를 찾아와 판각불사를 침략자들의 퇴치 방편으로 삼자, 수기대사는 항명하며 최우를 이래와 같이 질타한다.

“대감은 지금 네 가지 대죄를 짓고 있습니다. 첫째, 불사를 빙자하여 패전의 책임을 은폐함과 동시에 권력을 존속시키려 함으로써 상감과 사직에 죄를 범했고, 둘째 상감의 흉중에 자리 잡고 있는 괴로움을 이용하여 판각 불사의 필요성을 거짓 고함으로써 상감을 우롱한 죄를 범했으며, 셋째 전란을 겪느라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성들에게 불필요한 노동과 과세를 강요하게 되어 생활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죄를 범하게 되고, 넷째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도함으로써 신선한 불법을 더럽히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을 경원케 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듯 수단으로 이용되는 불사를 내 어찌 찬성할 수 있으며 참예할 수 있단 말이요.”

위의 수기대사의 말은 불교를 정치논리에 이용하려는 최우에게 일갈한 불교사상으로 대승불교의 참뜻을 전하는 말이다. 그리고 고종에게는 불사 조성이 시기상조임을 고한다. 부처는 중생을 설법으로 제도하고 국왕은 백성을 의식주로 치정하기 때문에 전자는 정신이고 후자는 육체라 할 수 있는데, 지금 현 상황이 백성이 육체적으로 미흡하여 정신인 불교를 담을 수 없으니 판각불사는 시기상조라고 고한 것이다. 그러나 왕은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여 진행하기를 당부한다. 이에 따라 수기대사는 고민 끝에 세부계획을 수립한다. 경전의 채택, 필생(筆生) 확보와 훈련, 각수(刻手)의 확보와 훈련, 그리고 판목(板木)의 벌채와 수습 방안을 세워 추진한다. 이로써 호국불사가 시작된 것이다.

호국불교사상은 다른 불교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 특유의 불교사상이라고 한다. 삼국시대에 4세기경 한반도에 전래하였을 때, 토속 신앙인 무속신앙과 결합되어 호국 사상의 성격을 띠었던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그러니까 신라의 불교 토착화부터 시작된 사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호국불교사상을 통해서 삼국이 통일된 것으로 인식되면서 이 사상은 견고해진다.

이러한 흐름이 고려 시대에서 지속되어 고종(高宗) 23년(1236)에 착수한 고려대장경 조성은 몽골 침략으로 소실된 초조대장경을 대신하여 외적을 퇴치하기 위한 호국불사였던 것이다. 이 불사의 역사기록을 보면 대장경의 조성사업에 참여한 출신성분은 국왕, 왕족을 비롯하여 관료,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모든 계층이 포함되었고, 승가의 고승 대덕과 일반 승려들은 역할을 분담하여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 따라 권력층의 대표로는 교정별감 최우, 그리고 승려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수기대사를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필생 각수 오백여 명 중 필생 정장균, 경판 목수 근필, 각수 수용 등이 백성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8년 만에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알리기 위해 찾아온 각수 수용의 아들 칠삼에게 경판에 옻칠하는 일을 맡기기도 하면서 수기대사는 대장경 불사를 마친다.

역사적 사실로 볼 때 고려 고종 때 소실되어 다시 불사를 시작,16년 만에 완성되어 가야산 해인사에 보관된 팔만대장경은 판면이 17만여에 이르고, 권수로는 약 6천5백여 권에 달한다. 이런 호국불교의 열정을 조정래는 장편소설 〈대장경〉의 결말 부분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방에 들어와 보니 그 사이 근필이는 혼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수기대사는 그 수척한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불덩어리— 수기대사의 눈에는 근필이가 하나의 커다란 불덩어리로 보이고 있었다, 제 몸뚱이를 사루다 사루다 끝내는 재로 화하고 마는 불덩어리의 자학적 정열. 마지막 재로 화하려는 순간에 간신히 건져 올린 조그만 불씨. 그것이 근필의 생명이었다. 그 불씨를 다시 일으켜 예전과 같은 크기의 불덩어리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을 수기대사는 느끼고 있었다.

이 인용문에서의 근필의 불덩어리는 근필의 입장에서 보면 판각불사의 광적인 집념과 열정적인 에너지 그리고 불심일 것이다. 수기대사의 입장에서 근필 몸의 불덩어리는 불력을 통해 적을 퇴각시키고 중생을 제도하는 불꽃일 것이다. 이러한 상징적인 표현을 소설의 결말 부분에 묘사한 것은 조정래 소설가의 작중 의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민중의 힘이 대장경 불사를 이루었다는 국면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조정래의 소설 〈대장경〉은 위에서 살폈듯이 불교역사소설로서 불교 정신을 표층에 드러내기보다는 백성들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 민중의 자각과 결집된 힘을 보여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소설이 대장경을 모티프로 한 만큼, 우리는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불교사상은 수기대사의 인물상을 통해 환기해야 할 것이다.

수기대사는 여순사건과 전쟁 공간 속에서 벌교 · 보성 지역 민중들의 삶을 다룬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법일 스님으로 다시 투영되기 때문이다. 법일 스님은 선암사 부주지 대처승으로서 한국전쟁 중 사하촌 사람들과 척박한 삶을 같이하려는 하화중생적인 삶을 산 인물이다. 그 삶의 모습이 수기대사의 삶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불사보다는 백성들의 삶을 중요시했던 수기대사는 이데올로기보다는 생존을 중요시하여 생존의 근거가 되는 토지를 분배해주어 민중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법일 스님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소설로서 혹은 사회참여 국면에서 불교소설이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것은 생존문제가 급박한 사회에서도 불교는 인간 자각에 의한 내면적 진리라는 점, 즉 불교적 진리는 역사나 사회 등 범속한 규정으로부터 일탈하여 독립적으로 그 위상이 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어느 시대, 어느 인간 무리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불변의 내면적 진리라는 것이다. 이 점이 불교의 초월성, 초역사성을 의미한다. 불교의 진리는 변증법적 발전 양상과도 무관하며 현실 순응의 논리에 부응할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불교 진리의 시대 현실과의 조응은 무가치한 것일 수 있으나 인간의 실천 방식에서 그것은 사회나 역사 현실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여 조정래의 소설 〈대장경〉에서 보여준 호국불교로서 역할을 다해야 하는 입장에 처할 때, 역사와 사회 변혁에 적극 참여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소설 〈대장경〉은 수기대사를 통해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판단된다.

 

2. 김성동의 〈만다라〉와 ‘병 속의 새’

김성동의 〈만다라〉가 1978년 《한국문학》 신인상이 당선되고 그 이듬해 장편으로 개작되어 출판되었을 때, 승속의 반응은 판이했다. 독서계의 반응은 선풍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에서는 호불호가 엇갈렸다. 〈만다라〉의 원형적 작품이라고 하는 단편소설 〈목탁조〉가 1975년 〈주간종교〉에 종교소설 현상모집에 당선되었을 때, 소설 내용이 불교계를 비방하고 승려들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만들지도 않았던 승적을 박탈당했다는 일화와 함께, 〈만다라〉는 문학계는 물론이고 영화계에서도 관심을 보여 영화로도 만들어져 상업주의적인 문학 풍조에 일조한다. 이른바 ‘무교동 소설’이라는 상업주의 소설에 편승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반응으로 인해 상업주의적인 소설로 치부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삶의 문제에 적극적인 대응 자세와 체험을 통하여, 그 본질을 관념 혹은 지식화하지 않고 실재화하여 존재양식에 의한 문학적 해명보다는 관계양식에 의해서 인간과 삶을 해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만다라〉는 주목을 받았다. 서사구조가 삶의 실재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불교소설의 새 지평을 열기에 적합한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불교소설은 신문학 이후에 국문학의 제재나 소재 전통만을 계승해 왔을 뿐 뚜렷한 성격을 형성해 오지는 못했다. 설화를 재구성하는 인물 중심의 불교소설이나 배경 중심의 공간소설이 그 주류를 이루어 현대소설로서의 새 지평을 보류한 채 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문학으로서 기능을 다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분히 불교의 진리를 윤리적 측면에서 수용했거나 아니면 단순히 소재적 국면에서 수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학의 윤리적 역행성이 불교 교리의 소설 수용에 제약을 가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동리의 〈등신불〉이 불교소설의 설화성을 다소 일탈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으나 불교소설의 시대인식에 의한 새로운 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김성동의 중편소설 〈만다라〉가 문예지 《한국문학》에 당선되어 불교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되면서 역사, 사회에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가를 암시해주었다.

이 척박한 시대의 척박한 땅에 태어나서 부당하게 배고프고 부당하게 고통받는 서러운 중생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으며 나아가 잠든 영혼을 각성시켜 줄 수 있는 종소리 같은 소설을 써보고 싶다.

위의 인용문은 중편소설이 당선되면서 신인 작가로서 포부를 말한 부분이다. 이처럼 소설 〈만다라〉가 고통받는 서러운 중생들에게 얼마나 큰 각성을 주었는가를 검토하는 문제는 간단하게 속단할 문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수용미학적 국면에서 재검토되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중편소설로 그리고 장편소설로 여러 차례 판을 갈아 발표되면서 〈만다라〉는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종교계, 문학계, 출판계, 영화계 등 문화 전반에 걸쳐  1980년대까지 외적, 내적으로 파장을 몰고 온 것이다. 위선과 허위에 찬 지식인의 작태에 비수를 꽂는 한편, 불교계의 비리와 속화된 승려의 타락을 리얼하게 그림으로써 지속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만다라〉를 긍정적인 입장에서 볼 때, 속화된 승려 지산의 땡추적 작태는 이 소설의 문학성을 살리는 중요한 모멘트가 되고 있다. 부처가 되려는 인간의 강렬한 소망과 좌절, 그로 인한 허무의식과 절망이 가져온 땡추적인 삶이지만, 작가의 준열한 문학정신이나 불교사상을 의심하지 않을 때 이 서사구조는 오히려 비승려적 삶을 경계하는 갈등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불교 세계의 근원적 구도 방식인 화두를 토대로 ‘인간이란 무엇이며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에 접근하려는 작가 정신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작품에 대한 그의 열정은 곧 〈만다라〉에서 던진 ‘병 속에 든 새’의 화두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탐색의 과정이기도 하다. 병 속에 든 새는 곧 자신이자 중생이며, 병 속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과정이 곧 문학의 과정이며, 소설 속에서의 두 인물 지산과 법운이기도 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김성동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토로한다.

스님께 받은 공안(公案)은 뭇자(無字)였는데, 《만다라》에서 마루도리로 삼았던 것처럼 그것은 ‘병 속의 새’였다. 산이었고 바다였으며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세상 그 어떤 학문이나 과학, 또는 제아무리 날카로운 상상력으로도 접근이 불가능한 수수께끼였다. 위층에서 면벽 중이신 스님한테는 기침 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는데, 나는 오직 새가 힘차게 깃을 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환각이며 환시 또는 환청에 시달리느라 끙끙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만다라〉는 앞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 말한 바 있다. 위 인용문의 ‘스님’은 소설 속의 인물이 아닌 실제 인물인 지효 스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그의 상좌로서 무문관 시자실에서 기거하면서 스님으로부터 받았던 공안이 무자(無字)였는데, 그 공안은 ‘병 속의 새’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는 소회를 피력한 것이다. 그 공안 때문에 병 속의 “새가 힘차게 깃을 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환각이며 환시 또는 환청에 시달”렸음을 밝히고 있다.

이로 인해 현실도피의 한 방편으로 입산한 것으로 보이는 작가의 소설 속 인물인 법운은 부처 되는 길이 더욱 멀어져 감을 느끼고 절망한다. 화두 ‘병 속의 새’를 해명하기 위해 오대산에 안거하여 용맹정진해보지만 깨달음에 대한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 가고 절망의 무게는 가중된다. 그러다가 파계승 지산을 만난 법운은 ‘외로움과 허무를 초극하기 위하여 혼신으로 몸부림치는 지산이야말로 어쩜 진짜 구도자인지도 모를 일’이라는 각성과 회의로 또다시 절망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깨달음과 부처 되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공안을 붙들고 참선에 드는 선승의 면모는 산사의 승려로서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법운의 부친은 한국전쟁 중 처형된 좌익인사다. 이로 인해 그의 어머니는 충격을 받아 가출한다. 그 후, 종조모댁에 잠시 머물던 법운은 그 종조모댁 산장에 머물고 있던 지암 스님을 만나게 되고, 지암 스님은 법운에게 불교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스스로의 내면에 불성(佛性)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 인생은 일회로서 끝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윤회(輪迴)함으로써 고해(苦海)라고 일컫는 중생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인데, 성불(成佛)을 하면 윤회 따위에 구애받음 없이 자유자재(自由自在)하는 불멸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 부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며 다만 진리를 깨달은 사람 곧 각자(覺者)라는 것, 각자가 되기 위한 방법에는 참선(參禪) · 간경(看經) · 염불(念佛) · 주력(呪力) 등이 있는데, 절대적인 의문점에 혼신으로 부딪쳐 뚫고 나가는 참선이 최상의 지름길이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누구나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처는 고유명사가 아니고 보통명사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부처는 신이 아니라 완전한 인격체, 완전한 인간,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극치라는 것”이라고 설법한다.

이 지암의 설법은 불교교리의 정법이다. 그로 인해 법운은 출가하게 된다. 그러나 속세의 업보나 인연을 끊지 못하고 방황한다. 그러다가 만행 중 벽운사에서 파계승 지산을 만나게 된다. 지산은 불교의 계율은 아랑곳 않고 술과 여자를 가까이하는 파계승이다.

이 이야기부터 〈만다라〉는 밀교적 요소를 차용하여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섹슈얼리티로 독자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것이다.

“그대의 눈에는 이것이 술잔으로 보일 테지. 그러나 내겐 부처로 보인다…… 이거야. 바로 이것이 부처와 중생의 차이야. 그대가 찾는 부처는 법당에 있고, 내가 찾는 부처는 이 방 안, 이 술잔 속에 있어. 나무(南無)소주불(佛).”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나도 모르게 문고리를 잡고 있던 손이 흔들리면서 달그락 소리를 냈다. 나무소주불이라니…… 거룩한 부처님의 명호(名號) 위에 소주를 올려놓고 그 위에 또 나무를 붙이다니…… 이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독성(瀆聖)이 아닌가. 나는 얼른 마음속으로 참회진언(懺悔眞言)을 외웠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나는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법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이의 발치에 엎드려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삼배(三拜)를 드렸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이는 빙그레 미소 짓고 계셨다. 아아 저 미소. 저 오묘불가사의(奧妙不可思義)한 천년의 미소…… 미소는 팔만사천의 법문(法門)을 설(說)하고 계실 터인데, 나는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내 무지(無知)와 신심(信心)의 결여를 꾸짖으며 고개를 꺾었다.

법당을 나와 객실로 갔을 때, 지산은 아예 러닝까지 벗어젖힌 알몸으로 앉아 여전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12)

파계승 지산의 비승려적 행태를 목격한 법운은 참승려로서의 번민이 시작된다.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삼배(三拜)’와 불상의 ‘오묘불가사의(奧妙不可思義)한 천년의 미소와 팔만사천의 법문(法門)’에 대한 무지와 신심에 대한 의혹이 지산의 모습을 통해서 의혹을 품게 된다. 지산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위해 법관이 되고 싶어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을 재판한다는 것에 회의를 느껴 입산의 길을 택했다. 수행 중 석간수를 마시러 나왔던 지산은 딱 한 번 눈길이 마주친 여인으로 인하여 파계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부처란 실체가 아니라 허상이며 의혹 그 자체일 것이라는 생각을 삶의 현장을 접하면서 느낀다. 부처가 실체라면 왜 침묵만 지키는가, 배고프고 고통받는 중생, 그보다도 한 인간을 왜 구제해 주지 못하는가 하는 의혹이 싹트게 된다. 여기에 이르러 지산은 자기의 존재적 절망을 극복하기 위해 파계승의 길을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지산을 보면서도 법운은 선 공부에 정진한다.

내가 참구(參究)하던 공안(公案)은 뭇자(無字)였어. 잘 알다시피 뭇자는 어떤 사문이 조주 종심(趙洲從諗) 선사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조주가 없다[無]고 대답한 데서부터 비롯된 공안 아냐.(僧問 趙洲和尙 狗子還有佛性也無 趙洲云有. 又有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趙洲云無)

어째서 무라 했는가?

일찍이 불타는 법화경(法華經)에서 일체중생과 유정(有情). 무정(無情)이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이 있다 했는데 어째서 조주는 불성이 없다 했는가?

무를 긍정한다면 불타의 말씀에 배반되는 것이고, 무를 부정한다면 조주의 말은 거짓말이 된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딜레마…… 이 딜레마에서부터 뭇자 화두는, 아니 1.700 공안은 출발되는 거지. 어떠한 이치도 논리도 상상도 용납되지 않는 얼음처럼 차디찬 세계가 바로 선의 세계야. 선은 거대한 성벽이고 산이며 바다인 것이지. 일체의 알음알이를 거부하며 올연(兀然)히 앉아 침묵하는 뭇자…….

나는 답답하고 답답해서, 가슴이 터져 버릴 것처럼 답답해서, 선실의 문을 열었어. 하늘에선 탐스러운 눈송이가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어. 눈이 내리면서도 또 이상하게 햇빛이 쨍쨍 내리쪼이고 있었지.

참선 공부를 하면서 이 소설의 화자인 ‘나’ 법운은 위의 인용문처럼 자신이 참구했던 공안 ‘무자’에 대한 조주 선사와 사문의 선문답에 대한 의심을 갖는다. 조주 선사는 사문이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를 물었을 때 왜 없다고 했을까. 《법화경(法華經)》에서도 “일체중생과 유정(有情). 무정(無情)이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조주 선사는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에 대한 의혹으로 법운은 절망감에 빠진다. 그것은 ‘병 속의 새’라는 화두와 관련성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법운은 새가 들어 있는 병을 그린 노사를 다시 찾게 된다. 그러나 그 노사는 묵묵히 한 손을 법운의 턱밑으로 들이밀었다.

“그 순간 나(법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계(視界)를 흐리던 눈앞의 안개가 일제히 걷히고, 병 속의 새가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조그맣게 오그라들어서 도무지 손이 들어가지 않던 병 주둥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아주 활짝 벌어지는 것이었다. 나(법운)는 병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새의 몸뚱이를 잡았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새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내 손아귀에는 아무것도 잡힌 것이 없었으니…… 나(법운)는 두 눈을 부릅뜨고 병 속을 들여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허공이었다. 나(법운)는 너무도 허망해서 눈물이 나”온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여태까지의 공부가 도로(徒勞)였음을 알게 되지만, 이 환상적인 체험을 통해 ‘병 속의 새’의 화두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다가 엉뚱하게 문학을 해보자는 한 생각을 얻게 된다. “잠들어 있는 중생들의 영혼을 각성시켜 줄 수 있는 저 새벽의 종소리 같은 소설을 써보자.”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각성 되지 못한 자가 쓴 소설이 어떻게 중생들의 영혼을 각성시켜 줄 수 있는가. 대저 소설이란 각성 된 자가 각성 된 눈으로 바라본 인간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일진대, 칼날처럼 명징(明澄)하고도 준열한 산문(散文)”이기 때문에 “1밀리의 감상(感傷)이나 사기가 용납되지 않는 냉혹한 승부”인데, “세상에는 자기의 성명 삼 자 위에 작가니 시인이니 하는 관사를 붙이고 휴지 같은 쪼가리 글로 사기를 치는 자들도 있”어 “작가나 시인이라는 관사가 어찌 자랑이며 영광이 될 수 있겠”는가. “이 척박한 시대의 척박한 땅 위에서 (……) 그것은 고통이며 형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법운과 지산이 오대산 암자에 거처를 정해 지내던 중, 어느 날 지산은 암자 아래 술집에서 술에 취해 돌아오다가 산중에서 얼어 죽는다. 법운도 자살을 생각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불을 낸다. 그리고 불길 속에서 또 다른 환상체험을 하게 된다.

순간, 나는 불더미 속으로부터 어떤 물체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한 마리의 조그만 새였다. 몸뚱이는 새의 그것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머리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 기이한 인두조(人頭鳥)는 불꽃 위에 앉았다. 나래가 활처럼 부풀어 올랐다. 팽팽하게 힘준 두 다리가 꼿꼿하게 일어섰다. 깃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새는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발톱으로 불꽃을 긁으며 힘차게 날아올랐다. 맑고 투명한 한소리 장음(長音)이 허공을 찢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빛 나래를 펄럭이며, 시간을 가르고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을 향하여, 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아아. 나는 물 묻은 손으로 전기를 만졌을 때처럼 오구구 몸뚱이가 졸아들고 입술이 갈라지는 떨림을 맛보았다. 됐어. 나는 부르짖었다. 이제 됐어. 그러나 말이 되어 나오지 않고 입안에서 뱅뱅 돌았다. 나는 생침을 꿀꺽 삼켰다. 수족이 뒤틀리며 가슴이 고동쳤다. 견딜 수 없는 팽만감이 하복부를 압박했다. 나는 불끈 힘을 주면서 눈을 감았다. 별이 쏟아졌다. 몸뚱이가 붕 떠올랐다. 넓적다리께가 끈적거렸다. 아아. 그것은 언제나 날 줄 모르고 한군데 못 박힌 듯 앉아서 끄윽끄윽 음산하고도 절망적인 울음을 울던 ‘병 속의 새’였다.

위의 인용문처럼 법운은 불꽃 속에서 하늘로 높이 오르는 인두조(人頭鳥)를 보게 된다. 그 새를 법운은 “언제나 날 줄 모르고 한 군데 못 박힌 듯 앉아서 끄윽끄윽 음산하고도 절망적인 울음을 울던 ‘병 속의 새’”로 인식한다. “갑자기 벼락 치는 소리가” 나자 법운은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고 불기둥은 쓰러진다. 그것은 환영이었지만 법운의 얼굴에 불길이 뜨겁게 흘러내린다.

우리가 고구려벽화나 평창올림픽을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신조(神鳥) 인두조는 〈만다라〉에서는 ‘병 속의 새’로 표상된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에게 그 소식을 인도해주는 새인 인두조는 이 소설에서 깨달음의 새, 혹은 경계가 없는 자유로운 새를 표상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법운은 자신의 수행이 피안으로의 도피를 꿈꾼 것이라고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구도는 피안이 아니라 불쌍한 중생을 구제하는 것에 있다고 깨닫는다. 그래서 어머니가 사는 속세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그리고 죽은 지산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삶이란 산사에서든 속세에서든 “영겁(永劫)의 시공(時空)에서 보면 참으로 찰나의 순간이 삶이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정체불명의 삶이라는 괴물 때문에 아득바득 애를 태우며 산다는 게 어쩐지 우습기도 하다. 부처는 무엇이고 중생은 또 무엇이라는 말인가. 결국 한 가지의 번뇌를 더 추가할 뿐이 아닌가. (……) 본래 존재하지도 않는 새를 꺼내겠다고 단 일 회밖에 배당되지 않은 청춘을 적막한 산속에 장사 지내면서 천신만고 끝에 병 속에 손을 집어넣었는데 손에 잡히는 것은 그러나 바람뿐이고, 병 속에 갇힌 손을 꺼내지 못해 몸부림치는 진퇴유곡의 상태”처럼 인간의 삶은 그렇게 지속될 수밖에 없다.

만다라(曼陀羅)는 밀교(密敎)의 상징적 불화(佛畵)이다. 우주 법계(法界)의 온갖 덕을 망라한 진수(眞髓)를 그림으로 나타낸 불화인데, 김성동은 굵어지는 눈발을 보고 “아우성치며 끝없는 생멸(生搣)을 되풀이 (……) 다함이 없는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처럼 수천수만 송이의 만다라(曼陀羅)가 되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다고 표현하면서 그것을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로 직유하고 있다. 만다라는 범어로 ‘Mandala’, 즉 ‘진수’ 또는 ‘본질’이라는 어원적 뜻과 어미 ‘la’가 의미하는바 ‘변한다’는 뜻과 결합되어 인간의 본질을 번뇌로 인지하고 그것을 깨달음으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 〈만다라〉는 지산이나 법운의 인물 캐릭터를 존재양식적 인물로 설정하여 구도의 길이 무엇인가를 참구하다가, 관계양식의 중요성을 깨닫고 민중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불교의 교리성에서 결코 일탈할 수 없고, 일탈하였다 해도 문학의 윤리역행성 때문에 서사구조가 지산의 방황과 죽음, 작은 깨달음과 속퇴라는 서사로 그 결론을 유보한 채 아쉽게 끝낸다. ‘병 속의 새’에 대한 해명을 상징적 혹은 은유적으로 판타지적으로 표현하여 여운을 준다. 이것은 이 소설에서 제기한 인간구원의 문제, 더 좁히자면 배고프고 고통받는 중생구제에 대한 문제 해명의 유보이기도 하다. 어쩌면 해명에 대한 기대는 불교문학의 영역이 아닌지도 모른다. 다만 이 소설이 진정한 구원과 성불의 문제를 종교적 배경으로 그려낸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소설계에서 불교소설로서 보기 드문 사례 때문에 주목받고 있다. 이 소설은 진정한 구도는 계율과 피안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속에 있다는 것을 제시함으로써 구도의 의미를 갱신한다.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지만, 필자는 졸저 《현대불교문학의 이해》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김성동이 “〈만다라〉에서 밀교적 미학으로 서사를 구조하고 허무와 절망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천착하려 했다면, 황충상은 현교적 인식을 통해 신비주의를 일탈하는 정공법으로 불교소설의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윤후명과 정찬주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끈을 불교적 상징과 인명논리에 의해서 창작하고 있으며, 김상열은 서정적 공간의 힘과 실재적인 삶의 양상을 이야기로 구조하여 인간과 삶의 문제를 하나하나 점검해 보려는 의식이 불교문학적 국면에서 주목된다.”가 그것이다.

한국 불교소설이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소설이 현실 사회의 반영물로서 인간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문법이 있다면 불교소설의 중생화, 혹은 민중화를 위해서 그 가능성을 짚어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솔하게 말하건대, 그 가능성을 명쾌하게 개진할 힘이 필자에게는 없다. 우리의 국문학에서 불교문학을 통시적으로 꿰뚫지 못하고 있는 데에도 그 이유가 있지만, 이 주제가 단순하지 않은 데 큰 이유가 있다.

불교는 은둔이나 은일의 불교에서 벗어나 현실참여를 실천하여야 하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는 문학적 논거 제시는 그다지 어렵다고는 볼 수 없지만, 삶의 다양성에 따라 또는 사회구조와 역사의 진행에 따라 대응해 가야 하는 문학의 속성과 관련된 불교 교리의 재해석이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불교의 교리도 역사와 사회의 흐름에 따라 대응하는 신축성을 지니지 못한 오늘, 그 심오한 사상을 문학의 사상으로 수용하는 문제는 두 개의 몫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불교인으로서 몫이고 하나는 창작인의 몫이 그것이다. 소설 〈만다라〉에서 법운이 문학을 통해서 한 소식을 얻고 싶어 했던 마음이 이 마음이다.

불교소설이 현세적이고 합리주의적인 문학관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는 우리 소설의 한계를 무너뜨릴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불교의 인본주의적인 세계관과 초월주의적인 인식논리, 그리고 그 미학이 소설문학의 수용에 적합하며 서구문학의 오염, 침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길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비언어적 마음의 형상에서부터 밀교의 문학적 수용과 변용에 이르기까지 방법의 다양성이 제시되고 있는 지금의 자리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더욱이 불교는 인간의 고통을 해소해주기 위한 종교라는 점에서 문학의 사회적 기능, 교시적 기능과 원론적 국면에서 만나게 된다. 인간이 유한한 생명성을 바르게 인식하며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불교는 사람들의 성격이나 삶의 방식에 따라 하나하나 제시해 주는 종교라고 할 때, 문학도 이러한 불교의 실천적 기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불교적인 사고로 삶을 영위하며 글로써 운위했던 사람이 세속적인 욕정 하나 버리지 못한 채 바른 삶으로 마무리 짓지 못한 경우에 공헌하기 위해 불교소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침묵해도 고통스럽지 않고 삶이 즐거울 때, 그리고 침묵해도 환희의 소리가 가득할 때 불교소설은 그 몫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두가 소중하다. 존재적인 의미 해명도 중요하고 관계양식의 갈등구조 해명도 필요하게 된다. 조정래의 〈대장경〉에서처럼 역사 사회적 상상력에 의해서 당면 문제인 호국불교를 실천하려는 의지도 가져야 하며, 백성이라는 민중과 삶을 영위하면서 정신적 문제인 팔만대장경 조성 불사를 이루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실천하는 서사를 소설로 제시함으로써 그 가능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또한 김성동의 〈만다라〉처럼 선(禪)이라는 수행방식이 은일이나 은둔사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천적 삶의 방식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과 인간 삶의 고통 해소를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구원하려는 의지를 소설을 통해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종교적 실천’의 문제로 기존 불교의 참선 방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조정래의 〈대장경〉은 역사소설 호국불교사상에 경도되었다는 혐의로부터, 김성동의 〈만다라〉는 1970년대 베스트셀러 소설의 반열에 편승했다는 혐의로부터 벗어나서, 민중과 삶을 공유하는 다른 패턴의 불교소설로 주목할 수밖에 없다. ■

 

유한근
시인 · 문학평론가. 동국대 국문학과, 동 대학원, 명지대 대학원(박사) 졸업. 〈동아일보〉 신춘문예(평론) 당선 등단.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교수 역임. 시집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입니다》 평론집 《현대불교문학의 이해》 《인간, 불교, 문학》 등 저서와 논문 다수. 만해불교문학상, 문학평론가협회상, 동국문학상, 월산문학상 등 수상. 현재 《인간과 문학》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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