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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와 훈민정음의 상생 관계
-신미를 비롯한 11인의 집단지성 역할을 중심으로
[80호] 2019년 12월 01일 (일) 정진원 suriya21@naver.com

1. 우리에게 《월인석보》란?

우리 고전에 대하여 우리는 이름이나 제목, 지은이만 알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국민 착각의 책이 많다. 조선시대 걸작인 《월인석보》 또한 그렇다. 1459년 세조가 지은 《월인석보》, 이 책은 그로부터 12년 전인 1447년 최초로 지은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의 수정보완판이라는 것만 알아도 우리 고전의 지식이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석보상절(釋譜詳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책을 합편하여 다시 만든 책이다. ‘석보상절(釋譜詳節)’은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평생 설법한 내용을 중요한 것은 상세히(詳) 하고 간추릴 것은 요약(節)한 책이라는 뜻이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의미는 부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추듯이 진리는 하나이지만 온 세상에 나투어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특히 《월인석보》는 일반 불경의 순서와 달리 형식이 특이한데 게송이 앞서고 설법이 뒤따르는 우리식 ‘조선대장경’의 효시라 할 만하다.

《월인석보》 서두에 책 속의 책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 언해》에 대해서도 우리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훈민정음을 학습한 후 《월인석보》를 읽게 하려는 훈민정음 보급의 목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199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지만, 한문으로 쓰인 그 책으로 문자의 원리나 체계 가치를 이해하기는 정작 쉽지 않은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인석보》 속 《훈민정음 언해》는 ‘해례본’의 상호 보완판으로 재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훈민정음의 뒤를 잇고 있는 지금의 한글이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라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결정적인 사료가 훈민정음 창제 1년도 채 못 돼 만들어진 24권의 방대한 《석보상절》과 그것을 시로 지은 《월인천강지곡》이라는 것도 아는 사람들이 드물다. 

요컨대 《월인석보》는 세종과 세조의 합작품으로서 결국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두 권의 책뿐만 아니라 서두에 들어 있는 책 속의 책 《훈민정음 언해본》까지 일석삼조의 공부를 할 수 있는 훌륭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2. 《월인석보》 권 1의 구성과 신미의 등장

《월인석보》 권 1의 구성을 알면 《월인석보》 전체의 틀을 알 수가 있다. 곧 다음과 같은 차례로 시작해 현재 전하는 25권까지 이어지고 있다.

1) 훈민정음 언해
2) 팔상도
3) 서문(석보상절 서+월인석보 서)
4) 패기
5) 월인천강지곡
6) 석보상절

1) 《월인석보》 간행 동기

   

〈그림 1〉 牌記: 世宗御製 月印千江之曲 昭憲王后 同證正覺

《월인석보》 권 1의 목차 중 1)~4)는 권 1에만 들어 있는 구성이다. 이후 현전하는 25권까지 20권의 책은 5)~6)의 순서로 이어지고 있다. 이 순서에 앞서 이 책 탄생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소헌왕후(1395~1446)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월인석보》의 패기에는 ‘세종어제 월인천강지곡 소헌왕후 동증정각(世宗御製 月印千江之曲 昭憲王后 同證正覺)’이라고 하여 ‘세종이 친히 월인천강지곡을 짓고 소헌왕후 함께 정각을 증득하기’를 바라는 발원문의 성격이 강한 내용이 등장한다.

소헌왕후는 세종의 부인이자 수양대군(세조)의 어머니인데, 1446년 3월 훈민정음 반포 6개월 전에 승하하였다. 소헌왕후의 죽음에 대하여 두 부자는 극락왕생 발원을 위한 노래와 산문을 지었던 것이다. 반포 후 10개월 후인 1447년 7월 25일의 일이다. 소헌왕후의 승하가 결국 훈민정음의 보급을 앞당기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단 10개월 만에 《석보상절》 산문 24권의 대작과 《월인천강지곡》 운문 600수의 장편 대서사시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월인석보》 서문에 등장하는 신미를 비롯한 11인의 자문단이 활약한 집단지성의 협업을 엿볼 수 있는 단서라 하겠다.

(1) 세종 어제 훈민정음‐훈민정음 보급의 중요성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훈민정음에는 세종 28년(1446)에 나온 초간본인 원본으로 한문으로 쓴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이 있고, 이를 한글로 풀이한 《훈민정음 언해본》이 있다. 

언해본은 《월인석보》(1459) 제1권에 실린 것으로 책 이름을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 訓民正音)’이라고 하였으며,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언해본 훈민정음(諺解本 訓民正音)》은 ‘어지(御旨) · 음가(音價) · 운용(運用) · 성음절(聲音節) · 방점(傍點)’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례본 훈민정음(解例本 訓民正音)》은 국보 70호로 정인지 · 신숙주 · 최항 · 박팽년 · 성삼문 · 이개 · 이선로 · 강희안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들었다. 내용은 ‘예의(例義, 본문) · 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 · 정인지(鄭麟趾) 서문’의 순서로 짜여 있다. 특히 해례는 ‘제자해(制字解) · 초성해(初聲解) · 중성해(中聲解) · 종성해(終聲解) · 합자해(合字解) · 용자례(用字例)’를 망라한 것이다.

(2) 팔상도

《월인석보》에는 ‘도솔래의-비람강생-사문유관-유성출가-설산수도-수하항마-녹원전법-쌍림열반’의 팔상도가 그려져 있는데 ‘월인석보 서강대본’은 마지막 ‘쌍림열반’이 낙장되어 있는 상태이다.

팔상도는 ①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상(兜率來儀相), ② 룸비니 동산에 내려와서 탄생하는 상(毘藍降生相), ③ 사문에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상(四門遊觀相), ④ 성을 넘어가서 출가하는 상(踰城出家相), ⑤ 설산에서 수도하는 상(雪山修道相), ⑥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의 항복을 받는 상(樹下降魔相), ⑦ 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상(鹿苑轉法相), ⑧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는 상(雙林涅槃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석보상절 서〉

‘서(序)’는 ‘글 만든 뜻을 자세히 써서 나중 사람들에게 알게 하는 것’이라는 주석이 달려 있어 훈민정음 초보 학습자를 위한 사전의 역할을 한다. 앞으로 《월인석보》는 불교 경전으로서의 내용과 필적할 만한 협주(夾註)의 15세기 국어대사전의 가치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석보상절 서문〉은 특히 〈세종어제 훈민정음 서문〉과 형식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발원문’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훈민정음 서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중국 문자인 한자로 우리의 의사 표현을 하기가 어렵다. 내가 이를 위하여 새 문자 훈민정음 28글자를 만들어 사람마다 쓰기 쉽게 하고자 하노라.

〈석보상절 서문〉의 내용을 요약한다.

부처가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무량공덕을 중생들은 아무리 찬탄해도 모자라는 바이다. 세상의 부처의 도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부처의 활동하시던 때부터 열반에 드실 때까지 그 과정을 아는 이가 드물다. 또 안다고 하더라도 팔상도 이해에 그치고 만다.

그래서 이즈음에 소헌왕후 극락왕생을 위하여 여러 경전에서 가려 뽑아 책 한 권을 만들어 석보상절이라 하였다. 또 차례에 맞춰 팔상도를 그리고 훈민정음으로 번역하니 사람들이 쉽게 깨달아 삼보에 귀의하기를 바라노라.

내용은 양자 모두 백성들이 쉽게 글자를 깨쳐 일상생활이 편리해지고 불교의 도리를 깨달아 삼보에 귀의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지몽매한 세상에서 개명천지가 되는 새로운 세상을 아버지 세종은 문자로, 아들 세조는 불교의 가르침으로 백성과 평등하게 의사소통을 하겠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초기까지 특권층의 전가의 보도였던 ‘문자’를 누구나 사용하는 평등한 세상을 실현한 것이다. 천지를 뒤바꾸는 결단이요 새로운 세상을 여는 혁명의 선언문이 아닐 수 없다.

(4) 〈(세조) 어제 월인석보 서〉

그다음에 이어지는 수양대군에서 왕이 된 세조의 〈월인석보 서문〉은 그야말로 조선 훈민정음의 명문장이요 백미라 할 만하다. 〈석보상절 서문〉이 초등학생 정도의 쉬운 문장이라면 〈월인석보 서문〉은 대학원 이상의 지식을 요하는 철학적이고 현학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뉜다. 먼저 불교의 진리를 깊이 있게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우리를 제도할 부처를 찬탄한다. 둘째 소헌왕후의 극락왕생 발원과 아버지 세종의 《월인천강지곡》이 합해지게 된 연유, 셋째 의경 세자의 요절로 인한 불교귀의, 넷째 《월인석보》 편찬을 위한 팔만대장경과 인도 글자로 된 불교 경전 섭렵, 그리고 신미를 비롯한 11명의 자문단이 등장한다. 다섯 번째 모든 중생과 만조백관의 보리피안 곧 깨닫기를 발원한다.

2) 《월인석보》는 훈민정음 보급을 위한 책

《월인석보》 본문의 구성

먼저 구결을 단 한문으로 된 본문이 나온다. 이어서 ‘조선시대 우리말 큰사전’이라 할 《월인석보》 협주의 세계가 펼쳐진다. 예를 들어 《석보상절》 서문의 첫 문장 ‘불위삼계지존(佛爲三界之尊)’에 대한 협주는 다음과 같다.

(구결 단 한문 본문)

佛이 爲三界之尊샤

(협주)

佛은 부처이시다
爲는 되어 계시는 것이다
三界는 욕계 색계 무색계이다
之는 어조사이다
尊은 높으신 분이시다 하는 뜻이다

이처럼 주석을 해놓고 훈민정음으로 다음과 같이 풀어서 쓴다.

(훈민정음 언해)

부처께서 삼계의 높으신 분이 되어 계셔서

《월인석보》의 세주(細註), 또는 협주에는 이와 같이 독학자를 위한 학습서처럼 사전적 풀이가 간단명료하면서 아주 쉽게 설명되어 있다. 글자만 알게 되면 다섯 살 어린아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표현으로 《석보상절》을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백성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훈민정음 보급 교육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 《월인석보》를 만든 집단지성

그리고 《월인석보》 서문에 11명의 자문단이 등장한다. 그들의 역할을 밝히면 훈민정음 참여와 관련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① 혜각존자 신미(信眉) ② 판선종사 수미(守眉) ③ 판교종사 설준(雪埈) ④ 연경사 주지 홍준(弘濬) ⑤ 전 회암사 주지 효운(曉雲) ⑥ 전 대자사 주지 지해(智海) ⑦ 전 소요사 주지 해초(海招), ⑧ 대선사 사지(斯智) ⑨ 학열(學悅) ⑩학조(學祖) ⑪ 김수온(金守溫)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이들이 등장하지 않는 반면, 훈민정음 문자를 운용해서 《월인석보》 책을 쓰는 데 자문으로 거명이 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들이 단순히 훈민정음과 상관없는 《월인석보》의 불교적 지식만 자문했을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2년 후 설치되는 훈민정음 불교경전 간행기관인 ‘간경도감’에서는 이들이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고 검수를 하는 등 전천후로 활약을 하고 있다. 그 구체적인 사례를 다음 장에서 살펴보자.

3. 《월인석보》와 간경도감에 등장하는 신미의 활약

간경도감은 《월인석보》(1459)가 지어진 지 2년 후인 1461년에 설치된다. 제일 먼저 《능엄경언해》(10권)가 1462년 간행된 것을 비롯하여 10여 년 동안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는 대표적인 훈민정음 불경들과 신미의 본격적인 역할이 구체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 먼저 《월인석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전하는 1권부터 25권의 시험본 《월인석보》 간행을 통해 훈민정음 불경 간행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뒤 그 추진력으로 간경도감을 설치했을 것이다.

가령 ‘월인+석보’의 두 책의 합편은 ‘게송+법문’이라는 불교 경전의 형식을 갖추는 모습으로 볼 수 있고, 자세한 세주는 조선시대 언어를 망라한 ‘훈민정음 사전’의 구색을 갖추고 있다. 그리하여 간경도감에서는 본격적인 조선대장경의 시대를 열고 경전을 언해할 때마다 10단계의 번역 과정을 갖추게 된다. 이 과정을 소급해보면 첫 조선대장경의 시작인 《월인석보》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상정할 수 있다. 《월인석보》는 그러므로 본격적인 간경도감 출발의 시금석 역할을 충실히 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림 2〉 “의심스러운 곳이 있으면 모름지기 널리 물어 의지하여 여쭤본 사람은 혜각존자 신미”(〈월인석보 서문〉 일부)

   
 

1) 간경도감 《능엄경언해》로 본 훈민정음 보급의 증거

우리는 《훈민정음 언해》가 《월인석보》 권 1 서두에 실려 ‘책 속의 책’을 표방하고 있다는 것은 훈민정음을 학습하고 《월인석보》를 텍스트로 본격적인 훈민정음을 보급하려는 의도라고 보았다.

한편 《훈민정음 해례본》의 형식 또한 일반적인 불경 형식처럼 ‘산문+게송’으로 원리를 설명하고 요약한 시로 구성되어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불교 경전 관련성을 엿볼 수 있는 단서라 하였다.

그러나 《월인석보》의 형식은 ‘게송+산문’의 순서로 불교 경전과 순서가 반대인데, 이것은 아버지 세종의 노래를 앞세우고 아들인 세조 자신을 뒤로하는 겸양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월인석보 서문〉 속 자문단에 신미를 비롯한 10인 전문가 그룹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훈민정음에 대한 이해 정도가 아니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실력과 불교 지식에 통달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실마리이다. 곧 훈민정음 창제에 어떤 기록도 없는 신미 등 자문단이 갑자기 훈민정음으로 《월인석보》를 지으면서 12부에 해당하는 불교 경전을 다 섭렵하고도 의문이 남을 때 최종적으로 해결을 해주는 해결사 역할을 하였다는 내용이 서문에 분명히 쓰여 있다는 점이다.

결정적으로 《월인석보》 간행 2년 후 설치되는 간경도감에서 신미는 세조가 경전에 구결을 달면 그것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증의의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훈민정음으로 한계희와 김수온이 번역하면 그것이 정확한지 검수하는 역할을 한다. 자문단 중 한 사람인 신미의 동생 김수온이 훈민정음으로 쓰는 일을 맡는 것이다. 훈민정음에 대하여 막힘없이 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렇게 신미와 김수온 형제의 존재는 간경도감의 역할에서부터 역추적해야 훈민정음 창제 관련 사실에 이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림 3〉 〈능엄경언해 발문〉 

   

〈그림 4〉 〈능엄경언해 세조어제 발문〉에 나타난 불제자 세조

2) 《능엄경언해》 발문 속의 세조와 신미의 관계

1461년 간경도감 설치 후 1년 만에 10권의 《능엄경언해》가 완성되었다. 이 또한 초고속의 기록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는 후일의 연구로 남겨두고 구체적으로 신미의 역할을 살펴보자.

《능엄경언해》에는 〈표 1〉에서 보는 것처럼 10단계의 언해 과정 속에서 세조와 신미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신미를 대하는 세조의 태도는 〈그림 3〉 능엄경언해 발문에 잘 나타나 있다. 신미대사를 거의 부처처럼 받들어 글을 쓸 때도 세조 자신을 나타내는 ‘아(我)’라고 쓴 뒤 ‘왕이나 부처’를 대우할 때처럼 줄을 바꾸어 동행한 ‘혜각존자’ 신미를 써서 높이고 있다.

발문 마지막에는 ‘불제자 조선국왕(佛弟子… 朝鮮國王)’이라고 자신을 호칭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세조의 불교신앙은 철저하고 투철하며 신미에 대하여서도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는 불자로서 최고의 예를 갖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464년에 간행되는 《금강경언해》에는 〈표 2〉에서 보듯 많은 인원이 증원되고 좀 더 체계가 공고해진 번역작업이 눈에 띈다.

이상과 같이 훈민정음 보급을 위한 《월인석보》를 위시한 훈민정음 불경 간행에 불교 관련 지식인의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참여와 역할을 훈민정음 반포 후 간행되는 일련의 서적들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우리에게 금과옥조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크지만, 그 문자를 600년 동안 비상하게 하고 진화 발전하여 지금의 한류문화의 토대가 된 데에는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그리고 《월인석보》를 시작으로 이루어진 간경도감의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 《금강경언해》 등과 같은 주옥같은 일련의 훈민정음 작품들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훈민정음을 넘어 이들 경전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해야 할 때다. 그 경전들의 목록은 〈표 3〉과 같다.

     

4. 《월인석보》의 미래, K Pop에서 K Classic으로

우리는 《월인석보》와 훈민정음의 상생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신미에 대해서도 《월인석보》에 자문단으로 이름을 올린 뒤, 간경도감에서 구체적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제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차근차근 퍼즐의 조각을 모아 학제 간 연구로 매진할 때이다. 한편 훈민정음 창제 후 10개월 만에 《석보상절》 24권, 《월인천강지곡》 600수의 창작 비밀을 밝혀야 함은 물론 간경도감의 초고속 경전 번역에 대한 참여 인물들 연구도 면밀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훈민정음’의 위대함만을 역설하는 문자의 연구 중심 일변도에서 벗어나 그 문자로 이루어진 작품을 연구해야 할 시점이다. 그리하여 다양한 어린이, 외국인, 일반인 《월인석보》 버전으로 우리 고전 인문학, K Classic의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이다. ■

 

정진원
동국대 세계불학연구소 연구교수. 홍익대학교에서 《석보상절》과 《월인석보》를 주제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국어학자. 이후 동국대학교에서 삼국유사를 주제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훈민정음 불경과 《삼국유사》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국내외 강의와 글쓰기에 주력하고 있다. 《월인석보, 훈민정음에 날개를 달다》 《삼국유사, 여인과 걷다》 《삼국유사, 자장과 선덕의 신라불국토 프로젝트》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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