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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수선공과의 만남
[80호] 2019년 12월 01일 (일) 노향림 시인

저 남도 광양에 있는 광양 시장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그날도 왁자한 시장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구경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구두 한쪽 가죽끈이 달아나고 없는 걸 보았다. 수선집을 물으니 시장 한쪽 구석진 곳을 가리킨다. 노인이지만 잘 고친다고 누군가 말한다. 그 구석진 곳엔 80세가 좀 넘어 보이는 노인이 재봉틀 한 대 놓고 일하고 있었다.

그는 술술 말을 꺼내는 이야기꾼이었다. “이 미싱 한 대가 이래뵈두 50년은 훌쩍 넘은 거라요, 오로지 이 재봉틀 한 대가 나를 먹여 살렸지러.”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가 광양인 만큼 양쪽 사투리를 섞어 말한다. “독일제 싱거 제품은 최상 재봉틀로 육니오(6 · 25) 이후 고관대작들만 사용했어라우.” 광양 어느 부잣집에서 버린 걸 쓸 만해서 구두 수선용으로 고쳐 써도 이제까지 고장 한번 나질 않는다고 자랑한다. “이자(이젠) 어떤 재벌이 와 억맨금을 준대도 폴지 않을겨. 나 자슥 같은 이 미싱 땜시 맘 놓고 못 죽을겨.” 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공중을 타고 멀리 뛰어오를 만큼 힘이 있다.

“남의 신발 꿰매고 고쳐주는 일이 내 업이여.” 다들 구두병원이라 간판 달지만 안 달아도 입소문으로 일이 밀린단다. 떨어져 나간 신발 끈 고치러 왔다가 나는 새삼 노인에게서 들은 ‘업’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곰곰이 그 말을 생각 중인데 여기서 노인은 말을 그치지 않고 그의 젊은 날의 업을 말하기 시작한다. 젊을 땐 신기료장수로 떠돌며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느라 끼니를 놓치면 반드시 먹을 걸 내놓은 집들이 많아 정이 많고 후덕한 것이 우리 민족성이 아닌가 하고 그때를 회상하듯 먼 하늘을 쳐다보기도 한다.

날씨도 초겨울이어서 해가 일찍 지고 쌀쌀해졌다. 먼 하늘엔 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초조해져 빨리 고쳐주었으면 했는데 노인은 계속 말하려 해, 어두워지면 시장 사람들 다 문 닫아걸고 갈 텐데 조금 외진 곳인데 어둡도록 일하면 좀 무섭지 않으냐고 물었다.

일이 많을 땐 혼자 백열등 켜고 일하는 게 더 즐겁다고 한다. 일감이 있어 좋고 그게 업이어서, 이 일이 고된 작업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고. 오히려 천지가 조용하고 아늑한 이곳이 어머니 품속 같다고 말한다. 저 둥근 밤하늘이 자신을 지켜주어 자기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 자궁 속 같은 편안함이 찾아와 밤늦도록 일하는 게 더 즐겁단다. 골목엔 벌써 불빛 꺼지고 다들 문 닫아걸고 들어갈 준비를 하는데, 노인은 손님이 올 것 같지 않은데도 일어설 기미가 없다.

구두 수선공이 된 걸 천직으로 여겨 오로지 한길로만 가는 그를 단순히 남의 구두나 깁는 구두 수선공으로만 볼 것인가.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나는 시 한 편을 썼다. 제목은 ‘업’이었다.

수선용 고물 미싱 한 대로

광양시장 한 귀퉁이에서 오십여 년을

그 구석자리만 지키며

신발을 깁는다는 노인을 만난다

벌써 나이는 팔십 세지만 아직도 많은 날들을

남의 신발을 수선해줄 수 있다고 자랑이다

젊을 땐 신기료장수로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았다며

돋보기안경만 꼈을 뿐 어느 장정 못지않다

  

이 미싱이 이래봬도 없어진 지 오래된

원적지가 독일인 ‘싱가’ 재봉틀이여

누가 내다버린 것을 가져와 기름 쳤더니 술술 잘 돌아가

이젠 어떤 재벌이 와 억맨금을 준대도 폴지 않을껴

나 자슥 같은 이 미싱 땜시 맘 놓고 못 죽을껴

나 죽으믄 이 미싱 함께 묻어달랬지

남의 신발 깁고 꿰매는 일이 내 업이여

카랑카랑 말소리가 몇 걸음씩 공중을 타고 뛰어오른다

  

재래시장 골목통과 노점상이 모두 문 닫은 늦은 밤

신발 수선용 바늘처럼 휘인 은빛 초승달만이

하늘을 박음질로 꿰맨 듯 거기 누워 뒹굴뒹굴할 뿐

노인은 늦도록 야광등을 켠 채 졸고 있다

그의 관절만큼 다 닳은 미싱도

어느덧 구부정한 섬처럼 떠 숨 멎듯 조용하다

— 졸시 <업> 전문

  

돌아보면 때론 밤샘도 해야 하는 나의 시 쓰기는 지치고 고단할 때가 더 많았다. 하지만 힘든 작업을 마다 않는 그에게서 외골수인 장인정신을 본 것이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 오늘날 우리 문화를 들여다보면 말초적이고 감각적인 것만 즐기고 찾는 세태가 되어버렸다. 살아가는 데 주어진 하나의 몫을 우리는 있는 힘을 다해내고 있는가 반성도 해볼 일이다. 의미가 없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시 쓰는 작업이라면 한 시인이 그 길을 평생 가다 보면 진정한 예술로 승화되는 기쁨도 누리는 것이다.

한길에 진정한 장인정신으로 몸 바치는 예술가 정신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인가. 그렇게 일관되고 진정한 장인정신이 있는가를 한순간이라도 긴장시켜 나를 돌아보면 누군가의 말대로 육체에서 욕망에서 벗어나 해탈의 경지도 알게 될까.

noh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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